부원장의 제안을 거절한 대가는 지독할 정도로 신속했다. 다음 날 아침, 당신의 이름은 수술 스케줄 표에서 완전히 소멸해 있었다. 외과 과장은 당신을 유령 취급했고, 전공의들과 스크럽 간호사들에게는 엄중한 접근 금지령이 내려졌다. 철저한 고립무원. 부패한 거대 병원이 눈엣가시 같은 실력자를 매장하는 가장 흔하고도 비열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생사의 저울은 인간의 권력 투쟁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오후 2시, 병원 전체에 붉은색 재난 경보가 요란하게 울린다. 영동고속도로 터널 안에서 발생한 30중 연쇄 추돌 사고. 붉은 경보등이 응급실 입구를 피처럼 물들이며 구급차들이 줄지어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당신은 즉시 병원장실로 향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나온 병원장의 표정은 빙하처럼 차가웠다. "지원은 없네, 이선우 선생. 규정상 다른 대학병원들로 이송 중이니까 자네는 자리를 지키기만 하게." "이송 시간 동안 버틸 수 없는 중증 환자들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당신의 건조한 지적에 병원장은 냉소했다. "그럼 자네 혼자 힘으로 해보든가. 우리 병원의 정식 수술실과 인력은 이미 포화 상태라네."
지원은 없다. 병원 수뇌부는 이 재난을 이용해 당신을 완전히 파멸시키거나, 제 발로 나가게 만들 심산이었다.
당신이 급히 내려간 응급실(ER) 로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아밀레이스 특유의 비린내와 피비린내, 소독약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수십 개의 환자 감시 장치 비프음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울려 대고 있었다.
"혈압 계속 떨어집니다! 70에 40! 맥박 130회!" 간호사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당신이 다가간 환자는 30대 남성으로, 복부가 터질 듯이 팽창해 있었다. 휴대용 초음파(FAST) 화면을 대자, 간 아래쪽과 골반강 내에 시커넓게 고인 피가 선명하게 잡혔다. 활동성 출혈(Active bleeding). 장기 파열로 인한 저혈량성 쇼크(Hypovolemic shock)였다.
"수술실! 3번 방 비었습니까?" 당신이 소리쳤지만, 이송 요원은 고개를 저었다. "과장님 지시로 가동 중단 상태입니다! 열쇠도 잠겨 있어요!" "마취과는?" "모두 정규 수술에 들어가 있어서 내려올 인력이 없답니다!"
환자의 호흡이 거칠어지며 모니터의 심전도 파형이 눈에 띄게 완만해지기 시작했다. 째깍거리는 죽음의 초읽기 소리가 당신의 귓가를 때린다. 이 야전 병원 같은 아수라장 속에서,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5분 남짓이었다. 당신은 차가운 이성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결단을 내려야 했다.
체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환자의 창백한 얼굴을 내려다보는 당신의 손끝이, 차갑게 얼어붙은 메스의 감각을 기억해 낸다. 눈앞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당신은 거대한 벽을 깨부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