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상행 대동맥에 삽입된 카눌라를 통해 붉은 선혈이 튜브를 타고 인공심폐기로 흘러간다. 이완기 종말기 정지를 유도하는 심정지액이 관상동맥으로 주입되자, 격렬하게 요동치던 환자의 심장이 거짓말처럼 굳어 버린다.

수술실을 가득 채우던 규칙적인 비프음이 한순간 플랫 라인(Flat line)의 단조로운 경고음으로 바뀐다. 완벽한 인공적 가사 상태. 이제 환자의 폐와 심장을 대신해 기계가 온몸으로 산소를 공급해야 하는, 서전에게 있어 가장 극도로 긴장되는 순간이다.

"체외 순환 시작합니다. flow 올리세요."

당신의 차분한 명령에 체외순환사가 롤러 펌프의 다이얼을 돌린다. 하지만 그 순간, 기분 나쁜 기계 마찰음이 수술실의 무거운 공기를 찢었다.

끼이익, 툭.

투명한 튜브 속에서 세차게 소용돌이치던 붉은 혈류가 뚝 멈춰 섰다. 롤러 펌프의 회전축이 기괴하게 비틀린 채 굳어 버린 것이다. 인공심폐기의 터치스크린이 일제히 점멸하더니, 이내 칠흑 같은 암전 속으로 가라앉았다.

"어……? 전원이, 메인 보드가 나갔습니다! 비상 전원도 안 들어옵니다!"

체외순환사의 음성에 서린 건 단순한 당황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공포였다.

바이탈 모니터의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평균 동맥압(MAP)을 가리키는 수치가 80에서 60, 다시 40으로 속절없이 추락한다. 전신 관류가 중단되었다. 이대로 4분이 지나면 환자의 뇌세포는 산소 결핍으로 괴사하기 시작하고, 10분 뒤에는 돌이킬 수 없는 뇌사에 빠진다.

"수동 크랭크는? 수동으로 돌려!"

어시던트의 외침에 체외순환사가 황급히 수동 크랭크를 결합하려 했지만, 기계 기어 자체가 완전히 뭉개져 맞물리지 않았다. 단순한 기계 노후화로 인한 고장이 아니다. 누군가 사전에 물리적인 타격을 가해 기어 스핀들을 손상시켜 놓은 것이다.

치밀하고 악랄한 사보타주. 이 수술을 기획하고 당신을 밀어 넣은 외과 과장과 병원 이사진의 추악한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참관실 유리창 너머, 어둠 속에 숨겨진 카메라 렌즈가 이 아수라장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당신의 파멸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교수님, 어떻게 합니까? 환자 바이탈이 무너집니다!"

마취과 의사의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모니터의 알람 소리가 수술실 신경망을 갉아먹듯 울려댄다. 어시던트들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스크럽 간호사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린다.

하지만 당신의 눈동자만큼은 얼어붙은 호수처럼 고요하다. 심장은 차갑게 뛰고, 머릿속은 수백만 개의 뉴런이 동시에 발화하듯 깜빡인다.

남은 골든타임은 단 3분. 기계를 고칠 시간은 없다.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비열한 덫을 놓은 자들의 목을 꺾어버릴지, 아니면 이 불가능에 가까운 사선 속에서 오직 서전의 두 손만으로 기적을 증명할지.

당신의 두 눈이 참관실의 어두운 유리창을 한 번 심연처럼 응시한 뒤, 다시 붉게 물든 환자의 흉강을 향해 가라앉는다.

선택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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