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삐- 삐- 삐-"

마취과 모니터가 내는 규칙적인 비프음이 수술실의 가라앉은 공기를 채웁니다.

"활동성 출혈 부위 지혈 완료했습니다. 손상되었던 비장 비가역적 파열로 절제했고, 십이지장 천공 부위 일차 봉합 마쳤습니다. 세척 들어갑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성적이고 차분합니다. 피로 물들었던 소독포 너머로, 환자의 호흡이 인공호흡기의 일정한 기계음에 맞춰 안정적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수축기 혈압 115에 75, 맥박 82회. 바이탈 사인 스테이블합니다. 어시스트 선생들 고생했어요."

마취과 의사가 마스크 너머로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수술실의 팽팽했던 긴장을 눅여냅니다.

외과 과장이 병원 평가 점수 하락과 책임 회피를 위해 타 병원으로의 전원을 강압적으로 지시했을 때, 당신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응급의료법 제11조, '전원 수용 능력이 확인되기 전이거나 환자의 생명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이송을 금지한다'는 예외 규정을 메스처럼 날카롭게 들이밀었습니다. 법리적 회색지대를 정확히 꿰뚫어 본 의학적 결단 앞에 과장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메탈 소재의 개수대에서 흐르는 물에 손을 씻는 당신의 뒤로, 묵직하고 차가운 발소리가 다가옵니다.

"환자의 생명이라는 의학적 명분을 법적 방패로 삼다니. 대단한 순발력이더군, 이선우 교수."

돌아서자 보이는 것은 부원장 강태훈입니다. 단정한 은발에 흐트러짐 없는 백색 가운을 걸친 그의 눈빛에는 지독한 야심이 번뜩이고 있습니다. 이 병원에서 외과 과장을 비롯한 구태 세력을 몰아내고 대권을 쥐려는 권력의 핵심 인물입니다.

"이송 도중 대동맥 클램프가 풀렸다면 구급차 안에서 사망했을 환자입니다. 외과의로서 상식적인 판단을 내렸을 뿐입니다."

당신은 젖은 손을 티슈로 닦아내며 건조하게 대답합니다.

부원장은 흥미롭다는 듯 엷은 미소를 지으며 당신에게 한 걸음 더 다가옵니다. 구두 굽 소리가 복도의 정적을 깨우며 서늘하게 울립니다.

"상식이라... 하지만 그 상식적인 판단 때문에 자네는 조만간 과장의 보복을 받게 될 걸세. 장비 지원은 끊길 것이고, 까다로운 수술 건수만 자네 앞으로 밀려들겠지. 이 더러운 모함의 소굴에서 정직함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보나?"

그의 말은 냉혹한 현실입니다. 대학병원은 생명을 살리는 신성한 공간인 동시에, 철저한 계급과 라인으로 움직이는 세속적인 정치판이기도 합니다.

부원장이 가운 안주머니에서 붉은 직인이 찍힌 서류 한 장을 꺼내 보입니다.

"내 라인으로 들어오게. 자네의 그 압도적인 손기술과 영리한 머리를 내 날개 아래에서 펼쳐보란 말이지. 과장이든 이사장이든, 자네 앞길을 막는 자들은 내가 전부 도려내 주겠네. 그 대신, 내가 병원의 정점에 서는 날까지 자네는 내 가장 날카로운 ‘칼’이 되어줘야겠어."

그의 제안은 달콤하면서도 치명적입니다. 힘을 손에 쥐면 더 많은 환자를 아무런 방해 없이 살릴 수 있지만, 동시에 추악한 권력 암투의 진흙탕 속으로 온몸을 던져야 합니다.

부원장이 서류를 내밀며 당신의 대답을 기다립니다. 그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가 당신의 흔들림 없는 시선과 허공에서 팽팽하게 맞부딪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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