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 레이트 74, 세이빙 되었습니다."
마취과 의사의 나직한 목소리가 수술실의 무거운 공기를 갈랐습니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바이탈 모니터의 비프음이 그제야 평온한 리듬을 되찾았습니다.
당신은 메스를 내려놓고 메피스토펠레스의 손아귀에서 환자를 끌어온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습니다. 다발성 장기 파열로 흉강에 피가 가득 고여 있던 환자였습니다. 이송 중 사망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던 생명을, 당신은 병원장의 이송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한 채 단 40분 만에 꿰맸습니다. 지혈을 위해 혈관을 묶고 찢어진 간 실질을 봉합하는 당신의 손놀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차갑고 정확했습니다.
수술실을 나와 스크럽대로 향했습니다. 센서가 작동하며 차가운 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소독액을 묻힌 솔로 손끝과 팔뚝을 거칠게 문지르는 `슥, 슥` 소리가 틔어 나온 한숨 소리와 섞였습니다. 물줄기로 붉은 피 얼룩을 씻어 내는 당신의 눈빛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환자는 살렸지만, 이제 폭풍이 몰아칠 차례였습니다.
"솜씨가 제법이더군, 이선우 조교수."
뒤편에서 들려오는 음산한 목소리에 당신은 물을 잠갔습니다. 외과 과장 강춘식이었습니다. 그의 입가에는 불쾌한 패배감 대신, 기묘할 정도로 비열한 미소가 걸려 있었습니다. 명백한 조롱이 섞인 눈빛이 당신의 젖은 손을 향했습니다.
"지시 불이행에 대한 징계 위원회를 열 생각이었네만…… 자네의 그 잘난 '천재성'을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했네."
강춘식이 비닐 팩에 담긴 두꺼운 차트 하나를 당신 옆의 선반에 툭 던졌습니다. 붉은색 낙인처럼 '최고 기밀(CONFIDENTIAL)'이라는 스탬프가 찍혀 있었습니다.
"H그룹 명예회장일세. 활동성 상행 대동맥류 파열 직전에, 심박출률은 25% 미만이지. 국내의 그 어떤 서전도 메스를 대지 않겠다고 도망친 환자야."
차트를 훑어보는 당신의 눈동자가 차갑게 굳어갔습니다. 환자의 상태는 최악이었습니다. 고령에 광범위한 혈관 석회화, 그리고 심각한 심부전. 수술대 위에서 대동맥이 터져 나가 사망할 확률이 90%를 상회하는, 그야말로 움직이는 시한폭탄이었습니다.
"내일 오전 수술이네. 자네가 집도하게."
강춘식의 눈빛 속에서 시퍼런 독니가 보였습니다. 만약 수술이 실패한다면, 병원에 항명하고 독단적으로 메스를 잡던 무모한 낙하산 조교수가 VVIP를 죽였다는 오명을 쓰고 의료계에서 영원히 매장당할 것입니다. 반대로 기적적으로 성공한다면, 그 공은 이 수술을 배정한 외과 과장 강춘식의 몫이 되겠지요.
피할 길 없는 외통수. 뻔히 보이는 드러난 덫이었습니다.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찌르는 적막 속에서, 오직 당신의 가쁜 숨소리만이 벽을 타고 울려 퍼졌습니다. 어둠 속에서 자란 당신이 마주한 거대한 권력의 함정. 이 치명적인 수술 제안을 눈앞에 두고, 당신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