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차갑게 식은 소독약 냄새와 비릿한 혈흔의 향이 뒤섞인 응급실. 대학병원 조교수로서의 첫 출근길은 환영회 대신 지독한 모니터 경고음으로 시작된다.

"BP 70에 40! 하트 레이트(심박수) 130회로 계속 치솟습니다! 수액 풀 드롭(Full drop) 상태인데도 혈압이 전혀 안 잡혀요!"

간호사의 절박한 외침 속에서 당신은 환자의 복부에 손을 올린다. 가죽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복강. 침묵 속에서 진행되는 내부의 파쇄(破碎). FAST(외상초음파) 화면을 가득 채운 시커먼 음영은 명백한 복강 내 대량 출혈(Hemoperitoneum)을 가리키고 있다. 이 상태로 구급차에 몸을 싣는 순간, 환자는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저혈량성 쇼크로 심정지에 이를 터였다.

"이송해."

그때 등 뒤에서 들려온 것은 차갑다 못해 건조한 목소리였다. 외과 과장 김태영. 그의 시선은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가 아닌, 차트에 적힌 환자의 신원과 모니터 옆에 붙은 '권역외과센터 평가 지표'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 병원 상급종합병원 재지정 평가가 코앞이다. 사망률 지표에 감점 요인을 만들 순 없어. 인근 2차 병원으로 전원(轉院) 수속 밟아." "이 환자, 이송 도중에 어레스트(심정지) 옵니다."

당신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배제되어 있다. 오직 서전(Surgeon)으로서의 이성적인 판단만이 차갑게 날을 세우고 있을 뿐이다.

"간 열상(Liver laceration) 최소 IV도 이상에 활동성 출혈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금 복강을 열어 일시적 패킹(Packing)으로 지혈하지 않으면 이송 중 사망합니다." "이선우 조교수."

김 과장이 굳은 표정으로 당신의 어깨를 무겁게 짚었다.

"자네가 여기 어떻게 들어왔는지 잊었나? 칼잡이 솜씨가 아무리 좋아도 조직의 규칙을 거스르는 자는 도태되기 마련이야. 지시대로 해. 이 환자는 우리 병원 환자가 아니다."

박동하는 심장의 힘이 약해질수록 모니터의 비프음은 더욱 날카롭고 빠르게 울려 퍼진다. *삐- 삐- 삐-* 환자의 입가로 검붉은 혈액이 울컥 토해져 나온다.

병원 수뇌부의 추악한 셈법에 맞춰 환자를 죽음의 길로 밀어낼 것인가, 아니면 의사로서의 선을 지키기 위해 검을 뽑아 들 것인가. 결단의 순간이 당신의 손끝에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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