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손에 쥐어진 종이 봉투는 지나치게 가볍다. 평생을 갈고닦아 온 온기가 서린 메스의 무게에 비하면, '의사 면허 효력 정지 처분 통지서'라는 인쇄용지 한 장의 무게는 차라리 허망할 정도다.

복도를 걸어 나가는 당신의 발소리가 대리석 바닥에 차갑게 부딪힌다. 외과 중환자실(SICU)의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흘러나오는 규칙적인 바이탈 모니터의 비프음과 산소포화도 경보음이 귓가를 스친다. 저 소리들은 더 이상 당신의 영역이 아니다. 소독약 냄새와 피비린내, 생사의 경계에서 뿜어져 나오던 치열한 열기마저 이 하얀 가운을 벗는 순간 유령처럼 흩어진다.

로비를 가로지르는 동안, 사방에서 수군거림이 들려온다. "결국 면허 정지라니…… 말도 안 돼." 연차 낮은 전공의들이 당신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숙인다. 거대 재단과 권력가들이 짜놓은 올가미는 견고했고, 법의 이름으로 자행된 사법 처단은 신속했다. 규정 위반과 혐의를 뒤집어쓴 천재 서전의 몰락. 그것이 그들이 원한 완전한 침묵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썩어 들어가는 환부를 도려내지 않으면 결국 전신이 괴사한다는 의학적 진리다.

병원 정문을 나서기 직전, 로비 벽면에 걸린 대형 모니터의 화면이 일제히 전환된다. 긴급 속보가 붉은 자막으로 흐른다. 당신이 남겨둔 마지막 처방전, 즉 대학병원의 불법 대리 수술 명단과 비자금 흐름이 담긴 파일들이 언론과 수사 기관에 동시에 폭로된 것이다. 멈춰 선 원내 직원들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 교수님이 전부 뒤집어쓸 일이 아니었어." 뒤돌아본 로비, 한 젊은 전공의가 가운을 벗어 의자에 얹어 놓는다.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양심 의사들이, 간호사들이 소리 없는 동조를 보내기 시작한다. 불길은 이미 번지기 시작했다. 당신의 메스가 부러진 자리에, 거대한 변혁의 칼날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당신은 가물거리는 병원의 자동문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한때 당신의 전부였던 수술방의 붉은 불빛이 멀어져 간다. 비록 당장 환자의 배를 열고 심장을 뛰게 만들 순 없지만, 이 병원이라는 거대한 환부를 치료하기 위한 진짜 수술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병원 밖, 회색빛 세상을 향해 당신은 첫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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