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서 시작된 마비는 서서히, 그러나 정교하게 올라왔습니다.
당신의 오른손. 수많은 생사의 경계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메스를 휘두르던 천재 서전의 손이 지금은 테이블 위에서 가볍게 떨리고 있습니다. 정밀 근전도 검사(EMG) 결과는 참혹할 정도로 명확했습니다. 요골신경과 정중신경의 비가역적 변성. 수십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어졌던 초인적인 집도와 극단적인 육체적 과부하가 말초신경의 연결고리를 영구히 끊어버린 결과였습니다.
"신경 전도 속도가 정상 범주의 10%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이선우 선생, 유감스럽지만…… 더 이상의 처방은 의미가 없습니다. 미세 문합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정밀 동작도 어렵습니다."
동료 의사의 메마른 목소리가 진료실을 채웁니다. 당신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소리를 지르거나 절망하지도 않습니다. 메스를 쥐고 사선을 넘나들던 순간에도 당신은 늘 차가운 이성으로 기회비용을 계산하는 외과의였으니까요. 병원의 추악한 권력 세력을 도려내고 도망치듯 방치된 환자들을 살려낸 대가가 자신의 손이었다면, 그것 또한 수술의 일부였을 뿐입니다.
교수실의 책상을 정리하는 당신의 귓가에, 환청처럼 익숙한 수술방의 소리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QRS 파형을 그리며 규칙적으로 울리던 바이탈 모니터의 비프음, 금속성 마찰음을 내며 손바닥에 착 감기던 모스키토 포셉의 감각, 석션 팁이 붉은 혈액을 빨아들이던 서늘하고도 정교한 소음들. 이제 그 세계는 당신에게 영원히 닫혔습니다.
캐비닛을 비우고 병원 로비로 내려서자, 정적 대신 이례적인 열기가 온몸을 감쌉니다. 재단의 추악한 횡령과 범죄 사실은 만천하에 드러났고, 정의를 비웃던 자들은 법의 심판대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묵묵히 칼을 쥐었던 당신의 퇴장을 배웅하듯, 로비 한편에는 수주째 들이닥친 수천 통의 편지와 작은 선물들이 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제 남편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이어붙여 주신 제 다리로, 오늘 처음 다시 걸었습니다.'
신파적인 눈물도, 억지스러운 찬사도 당신의 얼굴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메스를 쥐지 못하는 당신의 차갑게 식어가는 오른손 위로, 당신이 살려낸 이들의 맥박이, 온기가, 삶의 기록들이 거부할 수 없는 무게로 얹힙니다.
당신은 가방을 고쳐 멥니다. 왼손으로 끈을 쥐는 동작은 다소 어색하지만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병원의 무거운 회전문을 열고 나서는 당신의 단단한 등 뒤로 가을바람이 차갑게 불어옵니다. 비록 스스로를 구원하진 못했으나, 당신이 지나온 궤적 위에 남겨진 수많은 심장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을 향해 힘차게 고동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당신이 허공에 남긴, 가장 완벽하고도 쓸쓸한 마지막 수술이었습니다. 구원자는 그렇게, 자신을 제외한 모든 생명을 구한 채 고요히 군중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