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교수 연구실 책상 위에는 반짝이는 금빛 명패가 놓여 있다. ‘외과 교수 이선우’. 그러나 당신은 미련 없이 하얀 가운을 벗어 그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는다. 이사진의 탐욕과 권력투쟁은 그들이 흘린 더러운 피와 함께 쓸려 나갔다. 폭로된 비밀 USB는 병원장과 이사장 세력의 목줄을 완벽하게 끊어 놓았지만, 권력의 정점이 눈앞에 보이는 순간 당신이 느낀 것은 오직 깊은 환멸뿐이었다.
정치꾼들의 모략이 난무하는 백색 탑을 내려온 당신이 향한 곳은, 가장 낮고 어두운 곳이다. 재단의 부패 자금을 환수하여 설립한 자선 전문 외과 네트워크 ‘메디컬 리버티’. 이곳에는 서열도, 눈치 보아야 할 이사장도 없다. 오직 살려야 할 환자와 직관적인 당신의 손끝만이 존재할 뿐이다.
*삐- 삐- 삐-*
단조롭고 정직한 바이탈 모니터의 비프음이 소형 수술실 상공을 메운다. 대학병원의 거대한 수술실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정밀 장비는 모두 철저히 구비된 공간이다. 싸늘한 소독액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스크럽 간호사가 건네는 메탈릭한 도구들의 마찰음이 익숙한 평온을 선사한다. 수술대 위의 환자는 심장 판막 손상으로 수술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가난한 청년이다.
"포셉. 그리고 5-0 프롤린(Prolene) 준비하세요."
당신의 목소리는 침착하고 서늘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환자의 고동을 다시 뛰게 만들겠다는 강인한 열기가 흐르고 있다. 메스가 피부를 가르고, 오직 해부학적 진실만이 가득한 시야가 열린다. 대학병원 천장 너머의 음모도, 당신의 면허를 박탈하려던 자들의 협잡도 이 차가운 메스 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석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밀한 손놀림. 서서히 원래의 리듬을 찾아가는 심전도 그래프의 파동이 당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한다. 돈과 정치가 얽매이지 않는 곳에서 당신의 메스는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영리하며, 자유롭다.
수술이 막바지로 치닫는 순간, 어시스트를 서던 젊은 의사가 당신을 경외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거대 병원의 권력을 쥐어 잡을 기회를 던져버리고 이 좁은 수술실을 선택한 천재 서전. 당신은 말없이 심장의 마지막 봉합을 마치며 타이(Tie)를 당긴다.
영원한 방랑 서전이자, 경계에 선 자유로운 구원자. 당신은 다시 한번 메스를 굳게 쥐며, 다음 환자의 고동 소리를 향해 기꺼이 고개를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