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지이이이잉-!

공기를 찢는 고주파 진동음과 함께 시퍼런 마력 광선이 눈보라를 꿰뚫었다. 한서윤의 확장된 동공 속으로 파란 섬광이 쏟아져 내렸다. 피할 수 없는 거리였다. 콘크리트 바닥에 밀착한 신체는 순간적인 회피 기동을 허용하지 않았다. 기계 거미의 붉은 외눈 센서가 타오르는 열기를 뿜어내며 하강하는 그 찰나였다.

틱.

돌연 한서윤의 시야 한구석에 반투명한 시스템 윈도우가 강제로 팝업되었다.

[알림: 낙원 빌딩 경영 장부의 '장거리 마력 전도(C급)' 기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알림: 임시 전력망이 남서쪽 1.2km 지점의 미등록 생존자 '채유리'의 단말 제어판과 동기화됩니다.]

동시에 한서윤 뒤편, 반파된 발전기 잔해 속에 숨어 있던 괴짜 마도 엔지니어 채유리의 손목 단말기가 미친 듯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채유리가 들고 있던 스패너를 떨어뜨릴 정도로 강렬한 기계음이 고막을 때렸다.

"앗 뜨거! 뭐야, 이 강제 접속 코드는? 내 방화벽을 그냥 씹고 들어왔어?"

채유리의 동그란 안경 너머로 당혹감이 스쳤다. 그녀의 단말기 화면에는 정교한 수식과 회로도가 실시간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그것은 눈앞에서 충전을 완료해 가던 기계 거미 '아라크네-IV'의 내부 회로 우회 공식이었다.

[시스템 메시지: 대상 기체의 제3 마력 바이패스 밸브에 역류 전류를 인가하십시오. 무상 마력 퓨즈(원가 0골드)의 과부하 루프를 생성하면 4.2초 내에 자폭 시퀀스가 강제 가동됩니다.]

태혁은 낙원 빌딩의 쾌적한 집무실 가죽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반투명한 인터페이스 창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그의 눈동자는 마치 작동 중인 계측기처럼 흔들림 없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한서윤을 잃는 것은 향후 외주 채굴망의 노동력 공급률을 32.5% 영구 감소시키는 치명적인 손실이다. 따라서 이 개입은 감정적인 구출이 아닌, 자산 가치 보존을 위한 가장 이성적인 기회비용 집행이었다.

"거기 안경 낀 친구."

채유리의 단말기 스피커에서 태혁의 정제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노이즈 하나 없는, 기계음처럼 서늘한 고음질이었다.

"죽기 싫다면 3초 내로 제어판 우측 하단의 파란색 단자를 접지해라. 마력 전도율은 내가 장부를 통해 100%로 보정해 주지."

"아하, 대박! 누군지는 몰라도 이 설계 역학 완전 미쳤잖아!"

채유리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본능적인 희열에 젖어 단말기 내부 회로에 구리 와이어를 처박았다.

찌이이이익!

장거리 마력 전도 스킬을 타고 고밀도의 전력 에너지가 허공을 가로질러 기계 거미의 외장 수신 안테나로 다이렉트 주입되었다. 은빛 마력 전류가 강철 거미의 다리 관절을 타고 역류했다.

콰과과과궁!

순간 아라크네-IV의 동체 중앙에 위치한 마력 응축로가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내부에서부터 짓겨 나갔다. 관절형 강철 다리 여덟 개가 용융점인 1,538℃에 도달하며 시뻘겋게 녹아내렸고, 내부의 유압유가 열팽창을 견디지 못하고 고압으로 분출되었다. 사방으로 튀는 불꽃과 쇳물 속에서 거대 기계 거미는 단 한 발의 광선도 발사하지 못한 채 칠흑 같은 재가 되어 무너져 내렸다.

매캐한 유황 냄새와 타버린 실리콘 냄새가 눈보라 속으로 흩어졌다.

"하아, 하아……."

한서윤은 지면에서 상체를 일으키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의 뺨 위로 기계 파편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붉은 핏방울이 맺혔지만, 눈빛만큼은 생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허공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태혁 씨. 임무를 계속 수행하겠습니다."

"아니, 복귀해라. 거미의 자폭 파형으로 인해 마석두의 본대가 이쪽 좌표를 특정했을 거다."

태혁의 무미건조한 음성이 허공에 울렸다.

"그리고 네 등 뒤에 있는 그 기계쟁이도 함께 데려와라. 쓸모 있는 자산이다."

채유리는 그을린 머리카락을 털어내며 안경을 치켜올렸다. 그녀의 시선은 이미 허공에 잔상처럼 남은 태혁의 시스템 장부 통신 궤적에 고정되어 있었다.

"와……. 방금 그 시스템 연산 구조, 대체 정체가 뭐야? 나 무조건 저 빌딩 갈래! 안 보내줘도 쫓아갈 거야!"

***

한 시간 뒤. 낙원 빌딩 로비의 온도는 정확히 영상 22.5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영하 40도의 외부 사지(死地)에서 복귀한 한서윤 일행은 온수 샤워를 마친 뒤 두툼한 양모 배스로브를 걸치고 로비 소파에 주저앉아 따뜻한 코코아를 들이켰다.

그 옆에서 채유리는 고양이처럼 눈을 빛내며 로비 구석구석을 관찰하고 있었다.

"여긴 마력 순환 배관이 전부 벽 내부로 내장되어 있네? 벽면 두께만 해도 최소 2.5미터는 되겠어. 대공포를 맞아도 흠집 하나 안 나겠는데?"

태혁은 데스크 뒤에 단정하게 앉아 서류 몇 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 곁에서는 비서이자 재무 파트너인 신지혜가 두꺼운 바인더를 품에 안은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채유리를 감시하는 중이었다.

"지혜 씨. 발견한 장부 대여 로그를 이리 건네."

태혁의 명령에 신지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바인더를 펼쳤다.

"네, 사장님. 지하 3층 문서 보관실에서 회수한 마스터 키의 하위 시스템 로그입니다. 오태식이 지하 노역장으로 압송되기 전, 정기 결산 시스템의 백도어를 이용해 누출시킨 자원 명세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태혁의 눈동자가 서류의 수치들을 빠르게 훑어내렸다.

[로그 분석 결과: 마도 전도성 구리선 약 420kg, 미정제 철광석 1.2톤, 고농축 난방 오일 800L가 불법 대여 형식으로 무단 인출됨.] [최종 수신처: 마석두의 블랙 하이에나 남서쪽 전초 기지.]

신지혜가 침을 삼키며 덧붙였다.

"오태식 그 인간, 단순히 자원을 빼돌린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낙원 빌딩의 마스터 키 권한 일부를 하위 장부 대여 형식으로 가공해 마석두 세력에게 매달 이자로 상납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번 결산 주기까지 이 사실을 몰랐다면, 적자 차액만큼 사장님의 수명이 강제 소각되었을 겁니다."

태혁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분노가 아닌, 버그를 완벽히 색출해 낸 개발자의 서늘한 미소였다.

"오태식의 신용 등급을 F에서 즉각 '채무 불이행 파산자' 등급으로 조정해라. 그리고 잔여 가족 및 부하 14명의 강제 노역 기간을 기존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한다. 소모된 원가 손실액은 이들의 일일 마력 한도액을 강제 채취하여 보전하도록."

"즉시 집행하겠습니다."

신지혜가 펜으로 장부에 서명하자, 지하 깊은 곳에서 비명이 섞인 둔탁한 진동이 미세하게 울려 퍼졌다. 오태식이 남긴 마지막 찌꺼기까지 시스템의 톱니바퀴 아래 완벽히 갈려 나간 것이다. 이로써 내부의 기생충은 단 한 마리도 남김없이 박멸되었다.

"자, 이제 새로운 자산의 가치를 평가해 볼까."

태혁의 시선이 채유리에게로 향했다. 채유리는 침을 꿀꺽 삼키며 태혁이 띄워놓은 시스템 원가 상점 인터페이스를 들여다보았다. 화면에 나열된 아이템들의 이름을 본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홍조로 물들었다.

"이, 이거…… 미친 거 아냐? '티타늄-알루미늄 합금 골격'이 단돈 150골드? 게다가 '고밀도 마력 축전지 프로토타입'이 원가로 등재되어 있잖아! 장난해? 이거 바깥 암시장에서는 기지 하나를 통째로 줘도 못 구하는 전설 등급 부품들이라고!"

"낙원 빌딩의 경영 장부 안에서는 모든 것이 시스템 원가로 취급된다."

태혁이 건조하게 대답했다.

"조건은 간단하다. 내 밑에서 설계팀장으로 근무하며 장부에 등록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아이템을 생산해라. 계약을 체결하는 즉시 이 모든 원가 상점의 부품들을 가공용으로 무제한 신청할 수 있다."

"사인할래! 당장 사인할래! 나 여기서 평생 썩어도 좋아!"

채유리가 펜을 빼앗듯 낚아채 계약서 서명란에 자신의 이름을 휘갈겼다. 서명이 완료되는 순간, 낙원 빌딩 전체를 관통하는 마력의 파동이 한층 더 짙어졌다.

[알림: 신규 주민 '채유리(A급 마도 엔지니어)'가 낙원 빌딩 설계팀에 정식 등록되었습니다.] [알림: 채유리의 고유 기술 '마도 장비 설계도'가 경영 장부 시스템에 동기화됩니다.]

채유리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품속에서 꼬질꼬질한 가죽 노트를 꺼내 태혁의 데스크 위에 펼쳐 놓았다. 그것은 그녀가 평생을 바쳐 설계했으나 자원 부족으로 단 한 번도 제작해 보지 못한 수호 골렘의 도면이었다.

"이것 봐! 내가 설계한 '가디언-아머'야! 원재료만 있으면 내부 반사 코어랑 연동해서 빌딩 주변을 순찰하는 자동 방어 병기로 쓸 수 있어. 그리고…… 이것도!"

그녀가 다음 페이지를 넘기자, 기하학적인 마력 회로가 촘촘히 그려진 기묘한 구체 도면이 나타났다.

"이건 내가 개발 중이던 '불안정한 열량 폭작 코어' 프로토타입이야. 열효율을 극대화해서 소형 난방기 안에 집어넣으면, 기존 난방유 소모량의 10분의 1만으로도 한겨울 도심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미친 물건이지. 다만 기폭 제어가 너무 어려워서 봉인해 뒀었어."

태혁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확장되었다. 그의 뇌리 속에서 수백 개의 계산 공식이 빛의 속도로 나열되었다.

[알림: '불안정한 열량 폭작 코어'의 기술 데이터가 경영 장부에 정식 등록되었습니다.] [수지타산 분석 중…….] [분석 완료: 해당 코어의 원리를 기본 철광석 및 구리선 가공에 적용할 시, '기계 가공 혁신' 잠금이 해제됩니다.] [혜택: 낙원 빌딩 내 모든 마도 제품 생산 시 원재료 소소량 60% 영구 감축.]

완벽한 수지타산의 혁신이었다.

"채유리."

태혁의 목소리에 평소보다 한층 더 짙은 무게감이 실렸다.

"지금 당장 이 코어를 기반으로 한 '고효율 마도 난방기'의 양산 라인을 구축한다. 원재료 소모량이 60% 감축되었으니, 생산 원가는 대당 겨우 12골드에 불과하다."

"12골드?! 말도 안 돼, 그건 그냥 돌멩이 몇 개 값인데?"

채유리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외부 생존자들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가치를 지니지. 이 제품의 판매가를 150골드로 책정한다. 마진율은 정확히 1,150%다."

태혁의 눈빛이 탐욕이 아닌, 극도의 효율을 달성한 기하학적인 충족감으로 빛났다.

밖은 영하 40도의 지옥이다. 마석두가 남서쪽 전력망을 차단해 대피소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지금, 이 고효율 마도 난방기는 단순한 가전제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유일한 구원줄이었다.

***

그날 저녁. 낙원 빌딩 지하 1층 공작실에서는 기계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위이이이잉-! 쿵! 쿵!

자동화 가공 프레스가 철판을 찍어내고, 채유리가 설계한 마도 전도 회로가 구리선을 타고 정교하게 도포되었다. 원재료 소모량 60% 감축 버프 덕분에, 창고에 쌓여 있던 무가치한 잡석과 철광석들이 순식간에 세련된 금속 케이스의 마도 난방기로 둔갑하여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쏟아져 나왔다.

[마도 난방기 '낙원-I형' 생산 완료. 원가: 12골드 / 판매가: 150골드] [현재 재고: 150대]

태혁은 곧바로 집무실 단말기를 켜고, 낙원 빌딩 외부 상업 통신망을 전면 가동했다.

그의 타깃은 마석두의 지배하에서 숨죽인 채 죽어가고 있던 군소 대피소의 상인들과 중소 피난민 연합체들이었다. 마석두가 남서쪽 전력 허브를 장악해 전력을 끊어버린 탓에, 그들은 당장 오늘 밤 얼어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태혁은 통신망에 단 한 줄의 계량화된 광고 문구를 띄웠다.

[낙원 빌딩 독점 공급: '낙원-I형' 고효율 마도 난방기 1차 한정 예약 판매 실시.] [사양: 기존 난방기 대비 마력 소모량 90% 절감. 단 한 개의 하급 마석으로 영하 40도 환경에서 168시간 연속 가동 보장.] [수량: 100대 한정.] [가격: 150골드 (혹은 동등 가치의 철광석 150kg, 마석 15개로 대물변제 가능).]

광고가 게재된 지 단 3초 만에, 통신 단말기의 수신 알림음이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 [연희동 대피소] 15대 예약 신청. 철광석 2.2톤 즉시 송금 담보 설정 완료! - [마포 생존자 연합] 30대 예약! 제발 먼저 배송해 주십시오. 애들이 얼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 [개인 상인 최덕배] 5대 신청! 마석 75개 즉시 선입금 처리했습니다!

[알림: 경영 장부 수지타산 급증!] [실시간 매출액: 22,500골드 수금 완료.] [원가 차감 후 순이익: 20,700골드 (흑자율 1,150% 달성).]

태혁의 가슴 깊은 곳에서 마력의 파동이 거세게 요동쳤다. 장부의 수지타산이 압도적인 흑자를 기록하면서, 그의 체내에 내재된 최대 마력 수치와 생명 에너지가 역류하듯 팽창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빌딩 밖으로 단 한 걸음도 나가지 않은 채 거둬들인 독점적 상업의 승리였다. 폭력으로 지배하려는 마석두와 달리, 태혁은 철저히 자원과 수요의 공식을 지배하고 있었다.

"서윤아."

태혁이 전송 포트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포트 안에는 붉은빛의 마도 회로가 선명하게 각인된 낙원-I형 난방기 박스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예, 태혁 씨. 준비되었습니다."

단단한 가죽 갑옷을 다시 고쳐 입은 한서윤이 검을 차며 대답했다.

"1차 예약 물량 50대를 인근 연희동 대피소와 마포 연합의 접선지까지 수송해라. 이번 수송의 외주 수수료는 대당 5골드로 책정한다. 총 250골드다."

"정확한 거래 조건이군요. 완벽하게 배송하겠습니다."

한서윤이 이끄는 수송 대원들이 난방기 상자들을 썰매형 수송 수레에 싣고 낙원 빌딩의 결계 밖으로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영하 40도의 칼바람이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았지만, 수레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열기 덕분에 대원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태혁은 집무실 창가로 다가가 창밖의 하얗게 얼어붙은 도심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몰아치는 눈보라가 아니라, 낙원 빌딩을 중심으로 뻗어 나가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금전적 배관망이 보였다. 그 배관망이야말로 그 어떤 장벽보다 단단하게 자신을 지켜줄 절대 안전의 요새였다.

그때였다.

삐비비비빅-!

집무실 데스크의 적색 경고등이 요란하게 회전하며 경보음을 울려댔다.

[경고: 수송 대원 한서윤 일행의 GPS 신호 급정지.] [경고: 남서쪽 800m 지점, 물리적 충돌 에너지 감지.]

화면에 출력된 열감지 센서 스캔 영상에는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무장 집단 수십 명이 수송 루트의 골목길을 포위한 채 한서윤 일행을 압박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잡히고 있었다.

그들의 어깨에는 블랙 하이에나를 상징하는 굶주린 늑대의 표식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거기 멈춰라, 빌딩의 개새끼들!"

수송로를 가로막은 마석두의 정예 돌격 대장이 시퍼렇게 날이 선 대검을 바닥에 내리찍으며 포효했다.

"이 난방기들은 전부 블랙 하이에나가 무상 몰수한다! 저항하면 이 자리에서 전부 얼려 죽여 가죽을 벗겨 주마!"

눈보라 속에서 수십 자루의 마력 소총이 한서윤 일행의 심장을 일제히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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