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고 가파른 경고등이 메인 콘솔의 투명 디스플레이 위로 1.2초 간격으로 점멸했다.
남서쪽 1.2km 지점에 위치한 전력 허브의 실시간 피드는 열화상 카메라의 노이즈와 송전탑의 스파크로 어지러웠다. 정찰 드론이 전송하는 FHD 화질의 화면 중앙에는 붉은색 털코트를 걸친 거구, 마석두가 서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대형 마도 도끼가 백청색 마력 전류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하강 궤도를 그렸다.
콰아아앙!
도끼날이 구리 도선 합금으로 이루어진 메인 배전반을 직격했다. 물리적 충격파와 함께 과부하된 전류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며 기화했다. 녹아내린 구리 액체가 영하 40도의 칼바람에 닿자마자 기괴한 실 모양으로 굳어지며 눈밭을 검게 태웠다.
[경고: 외부 전력 도입선 물리적 파손율 42% 돌파.] [경고: 초당 전력 유입량 340kW 급감.]
태혁의 심박수는 분당 62회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그의 시선은 깜빡이는 적색 경고 창 너머, 가동 중인 경영 장부의 수지타산 그래프를 쫓고 있었다. 눈앞의 파괴 행위는 단순한 폭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낙원 빌딩의 유지 비용을 폭등시켜 자신을 시스템적으로 고사시키려는 정밀한 회계적 살인 시도였다.
옆에서 비서 신지혜가 가죽 바인더를 품에 안은 채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구두 굽이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며 규칙적인 금속음을 냈다. 지혜는 정리된 보고서의 한 페이지를 태혁의 데스크 위에 정렬해 놓았다.
"방금 오태식의 잔여 자산 처분과 지하 공사 노예 14명의 계약 등록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보수 작업 중 마스터 키의 하위 장부 대여 로그에서 기이한 데이터 흐름을 발견했습니다."
태혁의 손가락이 가볍게 허공을 저었다. 지혜가 가리킨 로그 파일이 가상 화면으로 확장되었다.
[로그 넘버: #L-90823 - 마스터 키 하위 라이선스 우회 접속 기록] - 유출 항목: 미정제 마도석 40박스, 정밀 구동 기어 120세트. - 대상 IP / 마력 주파수 대역: [블랙 하이에나 무장 세단 전용망]
"오태식이 단순한 횡령을 저지른 것이 아니었군."
태혁의 목소리는 고요했다. 기계적인 분석이 뇌리를 스쳤다. 오태식이 백도어를 통해 야금야금 유출한 빌딩의 자원은 마석두의 무장 선단으로 고스란히 흘러 들어갔다. 이번에 확보한 C급 스킬 '장거리 마력 전도' 역시 그 유출 통로를 개설하기 위해 오태식이 시스템 틈새에서 편법으로 발현시킨 파생물임이 데이터로 증명되고 있었다. 오태식이라는 내부 기생충은 이미 지하 노역장으로 격하되어 배제되었으나, 그가 남긴 유출의 흔적은 고스란히 마석두의 무기가 되어 낙원 빌딩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그때, 로비의 이중 강화 유리문이 거칠게 열리며 매서운 한기가 로비 안쪽으로 밀려들었다.
방한 고글을 이마 위로 올린 한서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은빛 갑옷 위에는 굳어버린 괴수의 피와 얼어붙은 성에가 두껍게 엉겨 붙어 있었다. 등 뒤에 매어둔 대검의 칼날 끝에서 핏방울이 얼어붙어 툭툭 떨어졌다.
"태혁 씨! 큰일 났어요. 남서쪽 철로 보급망이 완전히 끊겼어요!"
서윤이 거친 걸음으로 데스크 앞까지 다가와 지도를 펼쳤다. 지도의 남서쪽 진입로 전체에 붉은색 가위표가 촘촘히 쳐져 있었다.
"마석두 그 인간들이 빌딩으로 들어오는 길목이란 길목은 다 막아섰어요. 우리 외주 대원들이 캐오던 식량 상자랑 약초 수송 마차까지 전부 불태우고 있다고요. 지금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원 입고량이…… 완전히 '제로'예요!"
서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태혁의 가슴팍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태혁의 얇은 셔츠 너머로 붉은색 기하학적 균열이 가느다랗게 빛나기 시작한 탓이었다. 시스템이 경고하는 적자 도래의 물리적 징후였다.
[경고: 향후 48시간 이내에 예상 지출 대비 수입 비율이 역전됩니다.] [현재 주간 수지 예측: -42,900 마일리지 (적자)] [수지타산 보정 조항 제3조 발동 대기.] [적자 확정 시 소각 예정 보유 마력: 100%] [적자 확정 시 예상 수명 소각량: 12년 4개월 15일.]
"이대로 가다간 이번 주 결산 날에 당신 진짜로 죽어요! 마일리지 적자가 나면 수명이 소각된다면서요! 당장 용병들을 모아서 남서쪽 포위망을 뚫어야 해요. 저들이 공급선을 완전히 말려 죽이기 전에!"
서윤의 다급한 외침이 넓은 로비에 메아리쳤다. 그녀의 어깨가 들썩였다. 동사 직전의 유민들을 구해준 태혁의 시스템적 신뢰를 잃고 싶지 않은 갈망과, 눈앞의 냉혹한 지배자가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원초적인 공포가 섞여 있었다.
그러나 태혁은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모니터의 수치 변화만을 쫓고 있었다.
"노이즈가 심하군. 서윤, 목소리의 데시벨을 30% 낮춰라. 감정적인 소란은 연산 성능을 저하시킬 뿐이다."
"지금 연산 타령할 때가 아니잖아요! 적자가 나기까지 이틀밖에 안 남았다고요!"
"틀렸다. 정확히는 47시간 12분이다."
태혁이 건조하게 대꾸하며 턱을 굄과 동시에, 오른손가락으로 가상 키보드를 두드렸다. 화면 위로 빌딩 내부의 정밀 입체 설계도와 전력 배선도가 입체적으로 떠올랐다.
"자원 공급망이 차단되었다면, 내부의 소비 효율을 극대화하여 적자 도달 시점을 늦추는 것이 첫 번째 수순이다."
태혁의 눈앞에 빌딩 구석구석의 기기 목록이 나열되었다.
[낙원 빌딩 내부 전력 소비 장치 목록] 1. 로비 메인 온풍기 (소모: 시간당 120 마일리지) 2. 지하 2층 구식 대형 냉장고 (소모: 시간당 45 마일리지) 3. 3층 복도 상시 마도 조명 (소모: 시간당 18 마일리지) ……
태혁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경영 장부 시스템의 최적화 알고리즘과 동기화되어 있었다.
"지하 2층 구식 대형 냉장고의 압축기 구동 방식을 단상에서 삼상 가변 주파수로 강제 변환한다. 냉장실 온도를 영하 1.2도에서 1.5도로 0.3도 상향 조정. 보관 중인 보존 식품의 변질 임계점까지 남은 여유 시간은 180시간. 따라서 마력 소모를 0으로 고정해도 식품 회손율은 0%를 유지한다."
틱, 틱, 틱.
그가 입력을 마칠 때마다 빌딩 내부에서 미세한 기계음이 울리며 전력 소모 그래프가 수직으로 꺾였다.
"로비 및 공용 구역의 난방 제어 장치를 격등제로 전환. 인간의 체온 유지 한계선인 영상 16도를 기준으로 자동 온오프 루프 설정. 3층 이상의 미사용 구역 전체 전력 공급 차단."
[시스템 최적화 완료.] [시간당 고정 소모 비용: 280 마일리지 → 12 마일리지로 감소.] [적자 도래 예상 시간 변경: 47시간 12분 → 126시간 8분.]
붉게 점멸하던 수지타산 경고 창의 숫자가 순식간에 늘어났다. 태혁의 가슴팍에 새겨지던 붉은 마력 균열의 광채가 눈에 띄게 흐려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신지혜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그녀는 평생 회계를 다루며 숫자를 조율해 왔지만, 이토록 무자비하고 완벽하게 자원의 낭비를 도려내는 광경은 처음 보았다.
"빌딩 구석의 구식 냉장고 온도와 조명 주기를 조절하는 것만으로…… 적자 시점을 사흘 넘게 뒤로 미루신 건가요?"
"공학적 최적화의 기본이다."
태혁이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공급망이 차단되었다고 해서 즉시 사지로 뛰어나가는 것은 자멸 행위다. 적들이 노리는 것은 내가 이 안전 구역 밖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이니까. 내가 빌딩 밖으로 1cm라도 나가는 즉시 방어력은 0이 된다. 마석두는 그 변수를 바라고 포위망을 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변수를 원천 차단하고 내부에서 게임의 규칙을 바꾼다."
그는 유유히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시간을 벌었으니, 이제는 적자를 메울 합법적이고 압도적인 상업적 히든카드를 발굴할 차례였다. 원자재 공급이 일시적으로 막혔다면, 소량의 원료로도 천문학적인 마일리지를 창출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완제품'을 유통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선 한 인물이 필요했다.
태혁이 콘솔의 주파수 수신기를 조작했다. 지이잉- 하는 거친 노이즈 너머로, 톡톡 튀는 하이톤의 목소리가 간헐적으로 흘러나왔다.
- 아, 아! 마이크 테스트! 거기 낙원 빌딩의 깐깐한 대머리……가 아니라 건물주 양반! 내 목소리 들려? 여기 남서쪽 전력 허브 지하 벙커거든? 마석두네 멍청이들이 사방에 깔려 있어서 나갈 수가 없네! 내 기계 인형 연료가 다 떨어져 간단 말이야!
채유리. 시스템 원가로 희귀 정밀 부품을 조달받는 대가로 독점 계약을 맺기로 약속했던 천재 괴짜 기계공이었다. 그녀는 지금 마석두의 포위망 한가운데 갇혀 있었다.
태혁이 서윤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한서윤."
"네, 네?"
"새로운 외주 계약을 발행한다. 난이도 B급."
태혁이 테이블 위로 시스템 계약서를 밀어 넣었다. 계약서의 표면이 푸른 빛을 발하며 공중에 세부 조항을 띄웠다.
[외주 용역 계약서: 천재 기계공 채유리 신병 확보] - 임무: 남서쪽 전력 허브 지하 3구역에 고립된 채유리를 구출하여 낙원 빌딩 내부로 안전하게 에스코트할 것. - 기본 보수: 고농축 난방유 200L, 유민 캠프용 종합 식량 배급권 30일분. - 계약 위반 및 실패 시 페널티: 향후 2주간 낙원 빌딩 상점 이용 한도 50% 제한.
서윤의 눈이 보수 목록을 보는 순간 크게 떠졌다. 고농축 난방유 200L와 식량 배급권 30일분은 현재 얼어붙은 한강 도심에서 수십 명의 목숨을 한 달 동안 지탱할 수 있는 가치였다.
"이, 이걸 진짜로 주시는 거예요?"
"나는 계약서에 적힌 수치 이상의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 미끼를 물었으면 확실하게 회수해 와라. 채유리가 보유한 마도 공학 기술력은 마석두의 자원 봉쇄를 무력화할 유일한 열쇠다. 그녀가 빌딩 내부의 제조 설비에 합류하는 순간, 수지타산은 영구적인 흑자 궤도로 진입한다."
서윤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차가운 이성 뒤에 숨겨진 완벽한 계산과, 자신들을 굶기지 않겠다는 무언의 약속이 그녀의 가슴을 뛰게 했다.
"좋아요. 계약 성립이에요. 채유리인지 뭔지 하는 괴짜 천재, 머리끄덩이를 잡아서라도 데려올 테니까 방 온도를 조금만 더 올려두고 기다려요!"
서윤이 계약서에 빠르게 자신의 마력 낙인을 찍었다. 푸른 광막이 계약서 속으로 스며들며 계약이 최종 확정되었다. 서윤은 지체 없이 대검의 손잡이를 고쳐 잡고 로비 밖, 영하 40도의 눈보라 속으로 몸을 던졌다.
***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시야를 가리는 남서쪽 포위망 인근.
반쯤 무너진 고층 빌딩의 1층 필로티 구조 안쪽에서 한서윤과 그녀의 수색 대원 3명이 숨을 죽인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대원들의 방한복 표면 위로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가 이내 얼음 결정이 되어 바스러졌다.
서윤은 소형 마도 망원경을 눈에 대고 1.2km 전방의 전력 허브를 주시했다.
그곳은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블랙 하이에나 조직원들이 횃불과 마도 서치라이트를 밝힌 채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들의 발치에는 파괴된 송전 시설의 잔해가 널려 있었고, 간이 철로 위에는 탈탈거리며 공전 중인 소형 궤도 차량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대장, 사방이 경계병입니다. 전력 허브 지하 통로로 진입하려면 저 차단벽 우측의 틈새를 노려야 할 것 같습니다."
부하 대원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알고 있어. 정밀 크롤링(포복 이동)으로 간다. 마력 주파수를 최소화해. 태혁 씨가 준 차폐 스크롤이 작동하는 동안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지하 해치까지 도달한다."
서윤이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가슴을 붙이고 기어가기 시작했다. 눈바람이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지만, 이빨을 악물고 전진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낙원 빌딩으로 무사히 돌아가 유민들을 따뜻한 온수와 식량이 있는 안식처에 머물게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태혁이 보여준 냉혹할 정도의 기계적 효율성은, 오히려 이 미쳐버린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그 어떤 인간적인 온정보다 확고한 생존의 보증수표였다.
그녀가 전력 허브 외곽의 낡은 철골 구조물 아래, 정밀 크롤링 구역의 마지막 코너에 도달했을 때였다.
찌이이이익-.
기분 나쁜 금속성 마찰음이 머리 위쪽에서 들려왔다.
서윤의 척추를 타고 서늘한 전율이 흘렀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폐건물 콘크리트 슬래브 위,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일어나는 중이었다. 여덟 개의 관절형 강철 다리가 콘크리트를 사정없이 찍어 누르며 기괴하게 구부러졌다. 몸체 중앙에는 붉은색 외눈 센서가 원을 그리며 회전하고 있었다.
마석두가 남서쪽 봉쇄선 전역에 매설해 둔 거대 강철 거미형 구획 지뢰였다.
지이이잉!
붉은색 외눈 센서가 정확히 서윤이 엎드려 있는 위치를 향해 고정되었다. 기계 거미의 등 쪽 포탑이 기하학적인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고, 시퍼런 고열의 마력 충전 광선이 눈보라를 가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