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멈춰라, 빌딩의 개새끼들!"
수송로의 얼어붙은 아스팔트를 가로막은 사내의 목소리는 칼바람보다 날카로웠다. 블랙 하이에나의 정예 돌격대장, 흉터 가득한 얼굴의 곽철두가 시퍼렇게 날이 선 대검을 지면에 내리찍었다. 콰르릉, 하는 진동과 함께 도로의 균열 사이로 얼어붙은 흙먼지가 산산이 흩어졌다.
그의 뒤편,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무장 대원 오십여 명의 어깨에는 굶주린 늑대의 표식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영하 40도의 극저온 속에서도 그들이 뿜어내는 살기는 대기를 고온으로 굴절시키는 것처럼 일렁였다. 수십 자루의 마력 소총 총구가 일제히 낙원 빌딩의 수송 대원들을 겨냥했다.
"이 난방기들은 전부 블랙 하이에나가 무상 몰수한다! 저항하면 이 자리에서 전부 얼려 죽여 가죽을 벗겨 주마!"
수송 썰매에 실린 낙원-I형 난방기 50대. 붉은빛의 마도 회로가 각인된 상자들은 이 빙하기의 생태계에서 금보다 귀한 절대적 가치였다. 수송 대장 한서윤의 손이 즉각 검자루로 향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 서린 마력이 폭발적인 기류를 만들어내며 주변의 눈송이들을 밀어냈다.
"비켜라, 약탈자 놈들. 이 물건은 낙원 빌딩의 정당한 사유 재산이자, 연희동 대피소 생존자들의 목숨줄이다."
"하하하! 사유 재산? 이 멸망한 세상에서 그딴 법전 조각이 무슨 소용이냐! 죽기 싫으면 당장 손 떼고 물러서라!"
곽철두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 한서윤이 대검을 뽑아 들고 전방으로 도약하려던 찰나, 그녀의 귀에 장착된 초소형 마력 전도 인이어에서 기계적인 금속음이 울렸다.
[수송 대장 한서윤. 즉각적인 전투 행위를 금지한다.]
낙원 빌딩 최상층 집무실에 앉아 있는 강태혁의 목소리였다. 물리적 고립을 고수하는 그의 음성은 잡음 하나 없이 투명하고 고요했다.
"태혁 씨? 하지만 저놈들이 난방기를…!"
[연산 결과 출력: 현 위치에서의 교전 시 수송 대원의 생존율 74.2%, 난방기 파손율 89.4%. 무기 마모 및 마력 소모량 대비 기대 수익률 마이너스 210%. 비효율적인 물리 충돌을 거부한다. 물품을 양도하고 전원 즉시 빌딩 내부로 퇴각하라.]
"하지만 이대로 빼앗기면 연희동 생존자들은 전부 동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신용도는…!"
[명령을 재전송한다. 퇴각해라. 이것은 계약상의 강제 구속력 발동이다.]
귓가에 울리는 시스템의 억제 마력이 한서윤의 신경계를 일시적으로 마비시켰다. 그녀는 이가 갈리는 소리를 내며 검을 거두었다. 곽철두는 그 모습을 보며 비열한 웃음을 터뜨렸다.
"과연, 빌딩 안구석에 처박힌 겁쟁이 쥐새끼답군! 유통망을 지배하겠다고 깝치더니 총구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는구나! 흐하하하! 전부 실어라!"
블랙 하이에나의 대원들이 썰매를 가로채 전방 기지 방향으로 썰매를 끌고 사라졌다. 한서윤은 피가 흐를 정도로 아랫입술을 깨물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 * *
낙원 빌딩 1층 로비의 대형 모니터 앞.
"이게 무슨 짓입니까, 태혁 씨!"
로비로 복귀하자마자 한서윤이 검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소리쳤다. 그녀의 가죽 갑옷 위에 맺힌 서리가 분노의 열기로 녹아내려 뚝뚝 떨어졌다. 뒤이어 장부를 정리하던 신지혜 역시 안절부절못하는 걸음걸이로 태혁에게 다가왔다.
"태혁 씨, 서윤 씨 말이 맞아요. 이번 난방기 50대는 제작 원가만 해도 1,500골드에 달하는 고부가가치 상품입니다. 게다가 마석두 세력에게 유통망 주도권을 빼앗기면, 향후 빌딩의 외부 자원 조달 금리가 급격히 상승할 위험이 있습니다. 장부의 적자 폭을 메우기 힘들어질 수도 있어요!"
두 여인의 격앙된 반응에도 강태혁의 눈동자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책상 위에 3D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주변 지형도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 손가락이 기계적인 박자로 데스크를 두드렸다. 탁, 탁, 탁.
"감정 과잉은 인지 능력을 저하시키는 독소다."
태혁이 낮고 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서윤아. 네가 현장에서 곽철두를 베고 물건을 지켰다면, 너는 최소 세 군데의 자상을 입었을 것이고 대원 두 명은 영구적인 마력 불구가 되었을 거다. 치료비와 신체 손실 보전 비용, 그리고 파손된 난방기 재조립 비용을 합산하면 총액 4,200골드의 손실이 발생한다. 반면, 물건을 순순히 넘겨주고 기지로 유인하는 비용은 '0'이다."
"유인이라니요? 그들이 이미 물건을 가지고 그들의 요새로 들어갔습니다!"
한서윤이 항변했다. 하지만 태혁은 입꼬리를 미미하게 올렸다. 그것은 인간적인 감정의 발로가 아닌, 완벽한 수치적 승리를 확신한 포식자의 기하학적인 미소였다.
"지혜 씨. 오태식의 사후 정산 장부 정리는 끝났습니까?"
"예? 아, 네. 지하 노역장으로 이송된 오태식의 잔여 자산을 압류하는 과정에서… 아주 기묘한 데이터를 발견했습니다."
신지혜가 급히 품 안에서 빛이 바랜 푸른색 가죽 수첩과 마이크로 칩 하나를 꺼내 놓았다. 그것은 지난 2화에서 신지혜가 빌딩 내부를 정리하던 중 발견했던, 낙원 빌딩 마스터 키에 숨겨져 있던 '하위 장부 대여 로그'의 실체였다.
"이것이 오태식이 사용한 백도어의 물리적 증거입니다. 오태식은 이 하위 장부를 통해 빌딩 내부의 특수 마도 구리선과 고농축 냉매 수용체를 오랜 기간 무단으로 유출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유출된 자재들의 최종 수신처 IP와 마력 파동 좌표를 추적한 결과…."
"이번에 난방기를 탈취해 간 블랙 하이에나의 '남서쪽 제3 전방 기지'로 귀결되더군요."
태혁이 신지혜의 말을 가로채며 결론을 내렸다.
"정확합니다. 오태식이 빼돌린 자재들 덕분에 마석두는 자신들의 기지에 불법적인 마력 증폭기를 설치할 수 있었던 겁니다."
"복선은 이미 회수할 시점이 되었지."
태혁이 마이크로 칩을 데스크의 슬롯에 밀어 넣었다. 찰깍,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 붉은색 경고 창이 팝업되었다.
[시스템 경보: 낙원 빌딩 하위 장부 대여 로그 분석 완료.] [추적 결과: 불법 유출 자산 2,400골드 상당의 마도 원자재가 남서쪽 1.2km 전방 기지에 무단 적용 중.] [연동 확인: 탈취된 낙원-I형 난방기 50대, 해당 기지 내 불법 증폭 장치와 마력 회로 물리적 접촉 개시.]
태혁이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마석두와 그의 멍청한 돌격대장은 모르는 모양이군. 낙원 빌딩에서 생산된 모든 완제품은 내 '경영 장부'의 소유권 하부에 귀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의 눈앞에 정교한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펼쳐졌다.
[경영 장부 조항 제8조: 원물 소유 상표권(Trademark Ownership) 및 무단 도용 방지 조항] - 낙원 빌딩 소유의 라이선스가 부여되지 않은 미승인 사용자가 제품을 가동할 시, 소유주는 원격으로 제품의 제어권을 강제 회수하거나 폐기할 권리를 가진다.
"도둑맞은 대포나 상품을 되찾기 위해 피를 흘리며 칼부림을 벌이는 건 미개한 야만인들이나 하는 짓이다."
태혁의 집게손가락이 마우스 왼쪽 버튼 위에 얹어졌다.
"진정한 상인은 본사 데스크에 앉아 클릭 한 번으로 도둑놈들을 파산시킨다."
[액션 프로토콜 시동: '무단 불법 배포 방지락(Anti-Tamper Lock)' 해제 및 '강제 자가 소각(Overload) 시퀀스' 작동.]
태혁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딸깍.
차가운 기계음이 적막한 로비를 울렸다.
* * *
남서쪽 1.2km 지점, 얼어붙은 폐공장을 개조해 만든 블랙 하이에나 제3 전방 기지.
"으하하하! 따뜻하다! 정말 미친 성능이군!"
기지 내부에는 후끈한 열기가 가득했다. 탈취해 온 낙원-I형 난방기 50대가 기지 중앙의 마력 증폭기에 직렬로 연결되어 붉은빛의 열풍을 거세게 뿜어내고 있었다. 영하 40도의 칼바람에 얼어 터질 것 같던 곽철두와 50여 명의 조직원은 가죽 갑옷을 벗어던지고 술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곽 대장님, 역시 대단하십니다! 빌딩의 그 애송이 녀석, 총구 몇 개 들이대니까 찍소리도 못하고 귀중한 난방기를 바치던데요?"
"쯧쯧, 상인 놈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이 아포칼립스에서는 물리력이 깡패지. 마석두 대장님께 이 물건들을 올리면 우리 입지는 독보적이 될 것이다!"
곽철두가 호기롭게 난방기 하나를 발로 툭 쳤다.
그 순간이었다.
윙- 윙- 윙-!
갑자기 난방기 전면의 인디케이터가 기분 나쁜 청백색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난방기 내부에서 흐르던 부드러운 마력의 흐름이 급격히 불규칙한 고주파 진동으로 변했다.
"응? 이게 왜 이러지? 야, 마도 기술자! 와서 이것 좀 봐라!"
곽철두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기술자가 다가오기도 전에, 기지에 설치된 모든 난방기에서 일제히 붉은색 경고 문자가 홀로그램으로 허공에 떠올랐다.
[경고: 비인증 라이선스 사용 감지.] [경고: 원물 소유 상표권 위반에 따른 불법 배포 방지 프로토콜 기동.] [경고: 3초 후 강제 자가 소각 시퀀스가 시작됩니다. (3... 2...)]
"이, 이게 뭐야? 소각이라니? 당장 꺼! 전원 코드 뽑아!"
곽철두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대원들이 급히 난방기의 마력 전도선을 끊으려 대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1... 소각을 집행합니다.]
화학적 연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순수한 마력 서킷의 과부하로 인한 초고온의 열핵 팽창이었다.
콰아아아아앙-!
50대의 난방기가 동시에 백색 섬광을 뿜어냈다. 기지 내부에 가득 차 있던 공기가 단 0.1초 만에 섭씨 2,000도 이상의 초고온 열풍으로 전이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폭발이 아니라, 사방의 열에너지를 극단적으로 압축했다가 방출하는 지옥의 가마솥과 같았다.
"끄아아아악!"
단명한 비명이 고열의 폭풍 속으로 묻혔다. 곽철두가 손을 뻗었으나, 그의 손가락 끝은 이미 흐물거리는 촛농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화염이 기지 벽면에 설치되어 있던 오태식의 불법 마도 증폭 장치와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증폭 장치에 내재되어 있던 마력 배터리들이 차례로 과부하를 일으키며 2차 대폭발을 유발했다.
퍼어억! 퍼억! 퍼어어엉!
기지 내부의 대원 50여 명은 비명을 지를 시간조차 없었다. 급격한 고온에 폐가 타들어 가고, 장기가 기화했다. 뼈와 살이 아스팔트처럼 녹아내려 바닥에 들러붙었다. 기지 전체가 거대한 소각로로 변해 타올랐다. 콘크리트 벽면이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유리처럼 흘러내렸다.
단 30초 만에, 블랙 하이에나의 철옹성 같던 제3 전방 기지는 붉은 재와 뼛가루만 남은 죽음의 구덩이로 화했다.
* * *
한 시간 뒤.
눈보라를 뚫고 연기 피어오르는 전방 기지 잔해에 도착한 한서윤과 대원들은 눈앞의 광경에 말을 잃었다.
그들이 목격한 것은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철저하게 통제되고 계산된 '청소'의 결과물이었다. 기지 내부의 적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인체 소각되어 재가 되어 있었다.
"이게… 태혁 씨가 말한 원격 제어…?"
한서윤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가 평생 연마해 온 검술과 무력은 이 압도적인 시스템의 권능 앞에서는 한낱 어린아이의 장난감에 불과해 보였다.
[수송 대장 한서윤. 감상을 멈추고 수거 작업을 개시하라.]
귓가에 들리는 태혁의 목소리는 여전히 기계처럼 차가웠다.
[기지 내부에 잔존하는 마석두 세력의 원자재 및 불법 증폭기 잔해, 그리고 그들이 보유하고 있던 마력 무기들을 전부 수거해라. 소유권 침해에 따른 합법적인 담보 압류 절차다. 수거물은 낙원 빌딩의 자산으로 정산된다.]
"…알겠습니다."
한서윤은 떨리는 손으로 검을 갈무리하고 대원들에게 손짓했다.
타버린 기지 구석에는 열기를 견뎌낸 특수 합금 무기들과 마력 소총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 무기들은 과거 블랙 하이에나가 암시장에서 구매했던 것들로, 태혁의 경영 장부가 지정한 독점 영혼 계약 담보물에 자동 연동되는 치명적인 결함이 존재했다. 태혁은 이 무기들의 고유 식별 번호를 확인하며 장부에 하나씩 담보 등록을 마쳤다. 마석두가 자신을 치기 위해 준비한 무기들이, 역설적이게도 태혁의 완벽한 자산으로 편입되는 순간이었다.
* * *
낙원 빌딩 최상층 집무실.
태혁의 눈앞에 투명한 시스템 홀로그램이 끊임없이 갱신되며 흑자 수치를 쏟아냈다.
[정산 완료: 블랙 하이에나 제3 전방 기지 무단 점유 자산 압류.] - 회수 자산: 특수 마도 합금 무기 45점, 마력 소총 30정, 정제 마도석 200kg. - 총 압류 가치: 8,500골드. - 제작 원가 대비 순수익률: +466.7%. - 현재 경영 장부 상태: [흑자(Surplus) - 절대 안전 등급 유지].
태혁은 체내에서 마력과 생명 에너지가 역류하듯 팽창하며 피로가 완전히 씻겨 내려가는 감각을 음미했다. 수명 소각의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난, 완벽한 통제 하의 안전이었다.
"태혁 씨."
신지혜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이전의 우려 대신, 경외를 넘어선 일종의 공포 섞인 충성심이 깃들어 있었다.
"이번 사건으로 블랙 하이에나의 남서쪽 전력 허브 포위망이 완전히 무력화되었습니다. 마석두의 자원 봉쇄 작전은 시작하기도 전에 치명적인 전력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제 지상의 생존자들 사이에서 낙원 빌딩의 물건을 건드리면 기지 통째로 증발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소문은 비용이 들지 않는 가장 훌륭한 마케팅 수단이지."
태혁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무심히 대꾸했다.
"공급망의 절대 독점은 단순히 물건을 많이 파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우리 물건을 훔치거나 독점을 방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파멸로 이어진다는 공식을 뇌리에 각인시켜야 비로소 완성되는 거다."
그때였다.
낙원 빌딩의 외부 경계 센서가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묵직한 신호음을 울렸다.
띡-. 띡-.
로비 화면에 빌딩 정문 앞의 실시간 영상이 송출되었다. 영하 40도의 눈보라 속에서, 단 한 명의 사내가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채 백기를 들고 서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블랙 하이에나를 상징하는 붉은 인장이 찍힌 거대한 외교 문서 함이 들려 있었다.
신지혜가 화면을 확인하고 숨을 들이켰다.
"태혁 씨… 저 자는 마석두의 직속 전령입니다. 무기를 버리고 휴전 깃발을 들고 있습니다."
화면 속 전령은 낙원 빌딩의 100% 물리 반사 결계선 바로 앞, 단 1cm도 침범하지 않은 정확한 경계선에 멈춰 서서 빌딩 위층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마이크를 통해 그의 목소리가 빌딩 내부로 전달되었다.
"낙원 빌딩의 지배자, 강태혁 대표님께 전합니다!"
전령의 목소리는 공포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블랙 하이에나의 수장, 마석두 대장님께서 전방 기지의 소멸을 인정하셨습니다. 더 이상의 소모적인 출혈을 방지하고자, 대장님께서 직접… 대표님과의 일대일 비접촉 종전 협상을 제안하셨습니다. 대표님께서 정하시는 시간과 방식에 전적으로 따르겠다고 하십니다."
집무실 내부가 침묵에 잠겼다.
한서윤과 신지혜의 시선이 일제히 태혁에게 쏠렸다. 아포칼립스의 잔혹한 약탈자 마석두가 먼저 굴복의 제스처를 취하며 협상을 요구해 온 것이다. 그러나 강태혁의 눈동자는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종전 협상이라."
태혁이 가만히 턱을 괴었다. 그의 시선은 전령이 들고 있는 문서 함이 아니라, 그 너머 어둠 속에 숨겨진 마석두의 진짜 수치적 의도를 읽으려는 듯 깊게 가라앉았다.
과연 이것은 순수한 항복 선언인가, 아니면 벼랑 끝에 몰린 맹수의 마지막 덫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