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야! 한강을 가로질러 이 빌딩으로 통하는 모든 물자 운송 대교를…… 전부 폭파해서 끊어버리기로 합의했어! 외부에서 들여오는 원자재든 식량이든, 단 한 톨도 이 빌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너희를 이 안에서 굶겨 죽이고 말려 죽이겠다는 거야!"
오태식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낙원 빌딩 로비의 높은 대리석 천장에 부딪쳐 차갑게 일그러졌다. 부러진 오른팔을 겨우 지탱하며 이마를 대리석 바닥에 찧는 그의 몰골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상처 틈새로 흘러내린 붉은 혈흔이 차가운 백색 대리석의 기하학적 격자무늬를 따라 물길을 만들며 번져 나갔다.
주변을 둘러싼 유민들의 숨소리가 한순간에 멎었다. 영하 40도의 극저온 칼바람이 두꺼운 강화유리창 너머에서 웅웅거리며 울부짖는 소리만이 로비의 정적을 메웠다. 대교 폭파. 그것은 지상 유일의 안전지대인 낙원 빌딩으로 통하는 모든 물리적 공급망을 절단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외부에서 투입되는 철광석, 석탄, 그리고 최소한의 가공 원자재가 끊긴다면 아무리 무적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빌딩이라 한들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고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태혁의 눈동자에는 단 한 줄의 미동조차 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품에 안긴 태블릿 PC의 디스플레이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액정의 푸른 백라이트가 그의 무감각한 얼굴 위에 얼어붙은 서리처럼 차가운 빛의 음영을 그려냈다.
태혁이 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석두의 전술적 판단은 논리적입니다. 외부 공급망을 차단하여 내부 자원을 소모시키는 고사 작전은 기동력이 제한된 고정 요새를 상대할 때 가장 효율적인 기본 공식이니까요."
그의 손가락이 화면 위를 기하학적인 궤적으로 매끄럽게 탭했다.
"하지만 오태식 씨. 당신이 간과한 변수가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당신의 정보 가치는 마석두가 휘두를 파괴력에 비해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점. 둘째, 제 장부에는 이미 당신의 모든 자산과 부채가 소수점 이하 네 자리까지 완벽하게 산출되어 기록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무, 무슨 소리야…… 난 정보를 줬잖아! 살려준다고 했잖아! 마석두가 다리를 끊으면 너도 끝장이야! 내 목숨을 살려두고 협상 카드로 쓰는 게 훨씬 이득이잖아!"
오태식이 핏발 선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죽음의 공포로 인해 볼품없이 떨리고 있었다.
태혁은 그 비명에 대꾸하는 대신, 뒤편에 대기하고 있던 신지혜에게 가볍게 턱짓을 보냈다. 단정한 정장 차림의 신지혜가 가죽 바인더를 가슴에 안은 채 흐트러짐 없는 걸음걸이로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가죽 구두 굽이 대리석 바닥을 때리는 규칙적인 타격음이 로비의 긴장감을 더했다.
"신지혜 씨. 준비된 대조 보고서를 출력하십시오."
"예, 사장님."
신지혜가 바인더를 펼치자, 태블릿과 연동된 시스템 홀로그램 화면이 공중에 푸른빛을 뿌리며 기동했다. 화면에는 수많은 데이터 스트림과 붉은색 경고 마크가 어지럽게 점멸하고 있었다.
"지난 2화 시점부터 수집된 낙원 빌딩 마스터 키의 하위 장부 대여 로그 분석 결과입니다."
신지혜의 목소리는 태혁의 그것만큼이나 차분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녀는 공중에 떠오른 가상 스크롤을 아래로 내리며 명확한 수치를 읊조렸다.
"피고인 오태식은 빌딩 내부에 설치된 비공개 간이 유통망 및 백도어 포트를 통해, 총 14회에 걸쳐 원가로 등록된 식수와 난방유를 무단 유출했습니다. 구체적인 유출량은 식수 1,240리터, 난방유 850리터입니다. 또한, 유통망 감지 스킬을 이용해 빌딩 내부의 자산 이동 경로를 외부 세력인 '블랙 하이에나' 측에 실시간으로 브로커링한 정황이 본 마스터 키 장부 대여 로그 47번 라인에서 최종 확인되었습니다."
화면에는 오태식의 고유 마법 서명이 도용된 백도어 접속 로그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시간, 초 단위의 조작 기록, 그리고 유출된 자원의 시스템 원가가 붉은 글씨로 나열되었다.
"이, 이게 왜 거기에……."
오태식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자신이 완벽하게 숨겼다고 믿었던 시스템의 뒷구멍이 이미 태혁의 장부에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당 유출 자원은 낙원 빌딩의 정식 자산으로 등록된 품목입니다."
태혁의 무미건조한 음성이 로비에 내리꽂혔다.
"시스템 규정 제47조에 의거, 허가되지 않은 백도어 접근 및 자산 무단 인출은 '불법 횡령 및 채무 불이행'으로 규정됩니다. 오태식 씨, 당신이 방금 제공한 '대교 폭파 정보'의 가치는 시스템 가치 산정 기준에 따라 누적 횡령액의 3.42%에 불과합니다. 남은 채무액 96.58%를 청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군요."
태혁의 손가락이 태블릿 화면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낙원 빌딩 자산 관리 시스템: 최종 압류 청구서 발행]
붉은색 가상 인장이 오태식의 프로필 위에 찍히며 경고음이 울렸다.
로비를 가득 메운 유민들은 이 광경을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지켜보았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깊은 경외와 본능적인 공포가 동시에 서려 있었다.
한서윤은 장검의 손잡이를 꽉 쥔 채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는 평소 태혁이 얼마나 철저하게 계산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피도 눈물도 없는 관료적 처형은 볼 때마다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칼을 휘둘러 피를 흘리게 하는 물리적 폭력보다, 시스템의 규격화된 수치로 한 인간의 존재 가치를 영원히 말살하는 비접촉식 처벌이 훨씬 더 위압적이었다. 물리적인 저항을 원천 차단하는 절대 방어의 영역 안에서, 태혁의 말 한마디는 곧 거스를 수 없는 자연법칙과 같았다.
"저 사람은…… 인간이 아니야. 계산기 그 자체지."
유민 중 한 명이 신음하듯 아주 작게 속삭였다.
"하지만 그래서 더 안심이 돼. 저 규칙만 지키면, 적어도 힘이 없다고 억울하게 뺏기거나 죽을 일은 없다는 뜻이잖아."
옆에 있던 다른 유민이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법천지가 된 포스트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철저한 규칙과 계약에 의해 구동되는 이 공간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완벽한 구원의 방주였다. 규칙을 어긴 배신자에게는 지옥보다 냉혹한 단두대였지만, 계약을 준수하는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확실한 신뢰의 요새가 없었다.
태혁은 주위의 수군거림을 가볍게 무시했다. 감정적인 소음은 그의 연산 장치에 아무런 영양가를 주지 못하는 불필요한 노이즈일 뿐이었다.
"수지타산 보정 조항 제12조를 발동합니다."
태혁의 선언과 동시에, 오태식의 머리 위로 반투명한 시스템 장막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경고: 채무자 '오태식'의 잔여 자산 가치가 청구 금액에 미달합니다.] [수지타산 보정 조항에 따라, 채무자가 보유한 무형 자산의 강제 압류를 개시합니다.]
"아, 아아악! 안 돼! 내 스킬이야! 내 스킬이라고! 이거 없으면 난 밖에서 10분도 못 버텨! 제발, 제발 그것만은 안 돼!"
오태식이 머리를 감싸 쥐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의 가슴팍에서 푸른빛을 띠는 마력의 실타래가 스멀스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포칼립스 개막 당시 그가 시스템으로부터 부여받았던 유일한 특수 스킬이자 생존의 기반인 '장거리 마력 전도(C급)'였다.
마력의 실타래가 영혼의 심부에서 강제로 뜯겨 나갈 때마다 오태식의 신체는 기괴하게 뒤틀렸다. 그의 동공이 위로 뒤집히고, 턱관절이 어긋날 듯 벌어졌다. 물리적인 피는 흐르지 않았으나, 동력원을 상실해 가는 기계처럼 그의 온몸이 잘게 떨렸다. 모세혈관이 수축하며 피부는 급격히 탄력을 잃고 주름진 회색빛으로 변해갔다. 영혼에 새겨진 시스템적 권능만을 분자 단위로 정밀하게 도려내는 차가운 해부 작업이었다.
[압류 완료] - 특수 스킬 '장거리 마력 전도 (C급)'를 성공적으로 회수하였습니다. - 회수된 스킬은 낙원 빌딩 지배자 '강태혁'의 개인 스킬 트리에 강제 등록됩니다.
태혁은 자신의 손바닥 안쪽으로 스며드는 조용하고 서늘한 마력의 감각을 느꼈다. 뇌리에 새로운 스킬의 작동 알고리즘과 마력 제어 경로가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장거리 마력 전도.'
이 스킬은 추후 채유리가 제작할 마도 장비들을 원격으로 제어하고, 전력 공급망을 확장하는 데 있어 기하학적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핵심 기량이었다. 장치 운용의 제약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완벽한 자원 회수이자 무손실 이식이었다.
스킬을 통째로 압류당한 오태식은 이제 껍데기만 남은 노인처럼 바닥에 엎드려 헐떡였다. 그의 눈빛은 완전히 초점을 잃고 풀려 있었다.
태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최종 선고를 내렸다.
"오태식 씨. 당신의 신용 등급은 이제 'F'로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낙원 빌딩 내에서의 모든 자유 통행권 및 보급품 수급 권한은 이 시간부로 영구 박탈됩니다."
그는 태블릿 화면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다만, 잔여 부채가 아직 완벽히 청산되지 않았으므로 물리적 노동을 통한 대물 변제를 집행합니다. 낙원 빌딩 지하 3층, 극저온 동토 노역장으로의 강제 이송을 명령합니다."
"사, 살려……."
오태식의 갈라진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대리석 바닥에서 솟아오른 기계적인 마력 사슬이 그의 사지를 결박했다. 쇠사슬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오태식의 신체는 바닥 아래 공간으로 가라앉듯, 지하 깊숙한 곳으로 전송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태혁은 시선을 돌려 낙망한 표정으로 굳어 있는 오태식의 전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자신들 역시 같은 운명을 맞이할까 두려워 무릎을 꿇은 채 바닥만 바라보며 떨고 있었다.
"배신자의 동조자들 역시 연대 책임의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태혁의 목소리가 그들의 정수리 위로 떨어졌다.
"다만, 당신들에게는 즉각적인 자산 압류 대신, 노동 계약의 전환 기회를 제공하겠습니다."
태혁의 손가락이 허공을 가볍게 튕기자, 무릎을 꿇은 부하들의 눈앞에 반투명한 계약서 창이 일제히 생성되어 내려앉았다.
[계약서 명: 낙원 빌딩 직속 공사 노예 및 외주 토목 계약] - 계약 기간: 누적 부채 완전 청산 시까지 (개인별 예상 소요 기간: 1,460일) - 주요 업무: 지하 마도 발전기 가동 및 외곽 방벽 보수 노동. - 제약 사항: 계약 기간 내 빌딩 외부 이탈 금지. 이탈 즉시 계약 위반으로 간주하여 잔여 생명력 강제 소각.
"서명하십시오. 서명하지 않을 시, 법적 절차에 따라 즉시 빌딩 외부의 영하 40도 야생으로 강제 추방하겠습니다. 선택은 본인들의 자유입니다."
자유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잔인한 양자택일이었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곧 사지의 몬스터들에게 뜯기거나 동사하는 것을 의미했다. 부하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이내 오열하며 계약서의 서명란에 피 묻은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등록 완료: 직속 공사 노예 14명 확보.]
이로써 내부에서 암암리에 암을 유발하던 기생충들은 완벽하게 청소되었고, 빌딩 유지 보수에 필요한 무상 노동력은 대폭 확충되었다. 태블릿 화면 우측 상단에 표시된 수지타산 장부의 수치가 녹색의 안정적인 흑자 궤도로 회복되는 것을 보며 태혁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 저녁, 로비의 소란이 모두 정리되고 신지혜가 최종 결산 보고서의 바인더를 닫았을 때였다.
태혁의 데스크 위에 놓인 비상 경보 장치가 갑작스럽게 날카롭고 찢어지는 듯한 고주파음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태블릿 화면 전체가 붉은색 비상 점멸등으로 뒤덮이며 시스템 경고 문구가 빠르게 쏟아져 내렸다.
[비상 상황 발생: 빌딩 남서쪽 외곽 1.2km 지점, 전력 허브 구역에 다수의 비정상적 기계 및 마력 반응 감지.] [경고: 외부 전력 공급 도선 인근의 물리적 차단 위협.]
태혁이 정찰 드론이 송신하는 실시간 고화질 피드를 화면에 띄웠다.
화면에는 눈보라를 뚫고 전진하는 거대한 궤도 차량들과 무장한 가죽 갑옷의 전투원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굶주린 늑대의 이빨을 형상화한 '블랙 하이에나'의 표식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약탈자들의 수장, 마석두가 직접 이끄는 무장 선단이었다. 그들은 낙원 빌딩으로 유입되는 유일한 외부 전력 공급원인 남서쪽 전력 허브를 물리적으로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붉은색 털코트를 입은 거구의 사내, 마석두가 드론의 렌즈를 정확히 응시하며 잔혹하게 이빨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 들린 거대한 마도 도끼가 시퍼런 전류를 내뿜으며, 발전기의 메인 전송 도선을 향해 무겁게 치켜올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