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사해! 당장 날려버리라고!"
오태식의 목대에 핏대가 푸르게 솟구쳤다. 침방울이 공중으로 튀며 영하 40도의 냉기에 순식간에 하얀 결정으로 변해 떨어졌다. 그의 손가락이 고마력 산성 대포의 방전식 격발 트리거를 짓눌렀다.
쿠우우웅—!
대공포 배출구만큼이나 거대하고 조잡한 포신 끝에서 녹색 마력 반응이 소용돌이쳤다. 강산성 액체 촉매가 내부 실린더에서 끓어오르는 금속성 마찰음이 낙원 빌딩의 밀폐된 대리석 로비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수십 명의 유민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바짝 엎드렸다. 공포로 마비된 그들의 안구에 녹색 광원이 기괴하게 반사되었다.
하지만 강태혁의 시선은 오태식의 광기 어린 안면 근육이 아닌, 허공에 띄워진 반투명 가상 제어 패널에 고정되어 있었다.
[시스템 알림: 임대 계약자 '오태식'의 일일 보증 한도 초과 감지.] [누적 연체 금액: 14,800 마일리지] [담보 평가 가치 대비 신용 등급: F (위험)]
태혁의 오른손 검지 끝이 가볍게 허공을 두드렸다. 마우스 클릭 음과 유사한 전자음이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임대차 계약서 제14조 2항."
태혁의 음성에는 고저가 없었다. 기계 장치의 기어 도는 소리처럼 건조하고 규칙적이었다.
"채무자의 신용 등급이 임계점 이하로 추락하거나, 제공된 담보물의 가치가 누적 연체 이자를 보전하지 못할 경우, 채권자는 즉각 채무자가 점유한 모든 임대 자산의 사용 권한을 영구 동결 및 강제 회수할 수 있습니다."
"뭐, 뭐라고……?"
오태식의 눈동자가 좌우로 잘게 흔들렸다.
파지직!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던 산성 대포의 마력 회로가 순간 차갑게 사그라들었다. 약동하던 녹색 광원은 0.1초 만에 회색빛 죽은 마력 입자로 분해되어 대기 중으로 흩어졌다. 격발 장치는 완전히 고정되어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압력 밸브의 지시 바늘이 무자비하게 제로(0)를 가리켰다.
"이, 이게 왜 안 움직여? 손가락에 힘을 줬는데! 야! 왜 충전이 안 돼?!"
오태식이 트리거를 미친 듯이 까딱거렸지만, 쇳소리만 텅 빌 뿐이었다.
[시스템 조치 수행] - 대상 품목: 고마력 산성 대포 (임대 일련번호: L-9902) - 조치 내용: 작동 권한 영구 잠금 및 소유권 즉시 귀속. - 귀속처: 낙원 빌딩 관리자 강태혁.
"기본적인 자산 관리 원칙입니다. 신용이 파산한 채무자에게 살상용 장비를 쥐여줄 만큼 낙원 빌딩의 재무 구조는 허투루 돌아가지 않습니다."
태혁의 무감각한 시선이 오태식의 떨리는 손을 관통했다.
"그 대포의 내부 마력 코어는 애초에 제 경영 장부에 등록된 원가 자재로 제작된 임대물입니다. 계약 불이행 시 시스템이 회수 권한을 발동하는 것은 당연한 인과입니다."
"이, 이 빌어먹을 장사꾼 새끼가……!"
오태식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세 명의 무장 부하들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허리춤에서 시퍼런 합금 나이프와 군용 스틸 소드를 동시에 뽑아 들었다.
스릉!
날카로운 마찰음이 로비의 공기를 벴다.
"우리가 맨손인 줄 알아? 대포가 안 되면 물리적으로 쑤셔주면 그만이야! 죽어라!"
부하 하나가 대리석 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칼날이 태혁의 목덜미를 향해 호선을 그리며 쇄도했다.
그러나 태혁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저 왼손으로 가상 장부의 다른 페이지를 슬라이드했을 뿐이다.
"낙원 빌딩 안전 조례 제8조."
태혁의 손끝이 가볍게 튕겨 나갔다.
"빌딩 내부에서 허가받지 않은 모든 물리적 위해 행위는 '불법 점거 및 사유 재산 침해' 행위로 간주합니다. 이 경우 시스템은 침해자의 소지품을 무조건적인 위약금 조로 즉시 가환수 조치합니다."
위잉—!
칼을 쥐고 돌진하던 부하의 손아귀에서 갑자기 백색의 강렬한 시스템 광막이 뿜어 나왔다. 그들이 쥐고 있던 스틸 소드와 합금 나이프, 심지어 가죽 방어구의 이음새까지 투명한 사슬에 묶인 것처럼 강하게 요동쳤다.
"어? 어어?! 내 손! 손이 안 펴져!"
"칼이…… 칼이 지멋대로 움직여!"
스르륵.
그들의 손아귀를 강제로 벌린 무기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중력을 거스른 쇳덩이들은 분자 단위로 분해되듯 푸른빛 입자로 변하더니, 태혁의 머리 위에 생성된 가상 인벤토리 슬롯 안으로 빨려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환수 품목 등록 완료] - 군용 스틸 소드 (C급) 1점 - 합금 서바이벌 나이프 (D급) 2점 - 경량 가죽 흉갑 (D급) 3점 - 환수 자산 평가액: 총 3,200 마일리지 (오태식의 연체금에서 차감 적용)
칼을 쥐고 돌진하던 부하는 허공에서 맨손을 허우적거리다 대리석 바닥에 사정없이 안면을 처박았다. 쿵 하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그의 코뼈가 으스러지며 붉은 선혈이 바닥을 적셨다.
"이게…… 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짓거리야!"
오태식이 뒤로 주춤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려 셔츠를 적셨다. 자신이 가져온 무기와 부하들의 장비가 손짓 한 번에 전부 시스템의 영토 속으로 '압류'되어 버린 광경은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였다.
태혁은 안경테를 가볍게 밀어 올렸다.
"말도 안 되는 짓거리가 아니라, 지극히 합법적이고 투명한 채권 추심 절차입니다."
"강태혁 씨."
그때, 군중 속에서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보던 신지혜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낡은 가죽 표지의 장부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지혜는 태혁을 바라보며 단호하고 명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오태식 씨가 뒤에서 유출한 자원의 상세 내역을 확보했습니다. 지난 2화에서 제가 마스터 키 하위 장부를 정리하던 중 발견했던 '대여 로그'의 이상 징후, 그것의 종착지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지혜가 장부를 펼치자, 태혁의 시스템 패널이 이를 인식하고 로비 중앙 허공에 거대한 청색 홀로그램 화면을 투사했다.
스르륵—!
공중에 펼쳐진 것은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었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데이터 스트림이 정교하게 얽히며 오태식의 개인 단말기와 외부 세력 간에 오간 암호화 메시지들이 실시간으로 복구되어 나열되었다.
[송신자: 오태식] [수신자: 블랙 하이에나 (마석두)] [내용: 낙원 빌딩 내부 방어 결계의 마력 공급 주기 확인 완료. 틈새가 발생하는 환기구 좌표와 진입 경로를 송신함. 산성 대포만 밀반입해 주면 내부에서 유민들을 선동해 결계를 완전히 내리겠음. 성공 시 낙원 빌딩 식량 창고의 70%를 상납하고, 남은 유민들은 광산 노예로 제공할 것을 약속함.]
로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몇 초의 정적 후, 바닥에 엎드려 있던 유민들의 눈빛이 경악과 배신감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어깨가 분노로 잘게 떨렸다.
"오태식…… 이 개자식이?!"
"우리를 전부 광산 노예로 팔아넘기려고 했다고?!"
"우리가 얼어 죽지 않게 식량을 나눠준 건 강 사장님인데, 저놈은 우리 목숨을 담보로 사기를 치고 있었어!"
유민들의 웅성거림은 순식간에 거대한 분노의 파도로 변했다. 한서윤이 허리춤의 대검 자루를 움켜잡으며 이빨을 갈았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 서린 살기가 오태식의 목덜미를 꿰뚫을 듯 매서웠다.
"태혁, 저 쓰레기를 당장 베어버려도 되지? 계약 위반 정도가 아니라 이건 살인 모의잖아."
"폭력은 비효율적인 수단입니다."
태혁이 서윤의 앞을 손으로 가로막았다.
"물리적 처벌은 자원의 소모를 야기합니다. 그보다 훨씬 정교하고 비용이 들지 않는 규격화된 소멸 공식이 존재합니다."
태혁의 시선이 오태식에게 닿았다.
"오태식 씨. 당신의 배신 행위로 인해 낙원 빌딩의 안전 신용도가 대폭 하락했습니다. 이에 따른 '신용 훼손 위약금' 및 '내부 보안 침해 소송 대리 비용'이 청구됩니다."
[경고: 채무자 '오태식'의 파산 절차 개시] - 청구 금액: 50,000 마일리지 (보안 침해 및 배신 가중 처벌 적용) - 현재 보유 자산 평가액: -14,800 마일리지 - 가용 자산 부족으로 인한 '강제 도산 조항' 자동 가동.
"사, 사기 치지 마! 난 그딴 돈 없어! 배째! 배째라고 이 악마 같은 장사꾼 새끼야!"
오태식이 완전히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그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뒤집혔다. 무기와 동료를 모두 잃고, 유민들의 차가운 시선 속에 고립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뿐이었다.
"너만…… 너만 죽이면 이 빌딩도 끝이야!"
오태식이 품 안에서 숨겨두었던 마지막 단검을 꺼내 들며 태혁을 향해 무모하게 돌진했다. 그의 발걸음이 대리석 바닥을 짓이기듯 쿵쿵 울렸다.
태혁은 도망치지 않았다.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은 채, 주머니에 손을 넣은 무심한 자세 그대로 서 있을 뿐이었다.
"경고했습니다. 이 빌딩 안의 규칙은 제가 정의합니다."
태혁의 신체 표면으로부터 정확히 10cm 바깥 공간.
그곳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완벽한 물리 반사 역장이 상시 전개되어 있었다.
오태식이 단검을 쥔 손을 뻗어 태혁의 목덜미를 찌르려 한 순간.
깡—!
강철과 강철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듯한 고주파의 금속음이 로비 전체를 찢었다. 단검의 끝부분이 태혁의 목전 10cm 허공에 닿는 순간, 공기 중에 기하학적인 육각형의 푸른 장벽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100% 반사 결계의 물리 법칙이 작동했다.
오태식이 내지른 돌진의 가속도와 단검을 쥐고 내리누른 모든 운동에너지가, 단 1%의 유실도 없이 역방향으로 굴절되어 그의 신체로 고스란히 되돌아갔다.
뿌드드드득!
"끄아아아아아아악!"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오태식의 손가락뼈였다. 검을 쥐고 있던 다섯 손가락의 마디뼈가 도미노처럼 차례대로 으스러지며 살가죽을 뚫고 하얗게 골절된 파편을 드러냈다. 충격파는 멈추지 않고 그의 손목뼈를 타고 올라가 요골과 척골을 비틀어 짜듯 파괴했다.
우득, 우드득!
뼈가 가루가 되며 근육 조직이 내부에서 파열되는 해부학적인 파괴의 소음이 로비에 적나라하게 울려 펴졌다. 오태식의 오른팔이 기괴한 각도로 꺾이며 허공에서 덜렁거렸다. 단검은 바닥으로 떨어져 튕겼고, 오태식은 자신의 으스러진 팔을 움켜잡으며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아아악! 내 팔! 내 팔이! 끄으으윽!"
그가 흘린 땀과 피가 차가운 바닥을 적셨다. 태혁은 그 처참한 광경을 내려다보면서도 눈썹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오직 태블릿의 수치 변화만을 응시할 뿐이었다.
"자신이 가한 물리력이 그대로 자신에게 반사되는 역학적 메커니즘입니다. 제게 분노를 표출하는 행위 자체가 스스로를 파괴하는 비효율적인 선택임을 왜 인지하지 못하는지 의문이군요."
태혁이 건조하게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시스템 강제 도산 집행 완료] - 채무자 '오태식'의 보유 스킬 '유통망 감지(D급)' 강제 압류 및 낙원 빌딩 자산 등록 완료. - 채무자의 남은 생명력을 연체 이자로 환수합니다.
오태식의 몸에서 스멀스멀 뿜어져 나오던 마력의 기운이 완전히 소멸했다. 그의 피부는 급격히 탄력을 잃고 주름지며 늙어갔다. 시스템의 무자비한 법적 멸망 공식은 그의 신체적 가치마저 잔인하게 담보로 몰수해 가고 있었다.
"사, 살려줘……."
오태식이 부들부들 떨리는 왼손으로 태혁의 구두 끝자락을 잡으려 기어왔다. 그의 눈에 서린 것은 이제 분노가 아닌, 완전한 파멸의 공포였다.
"태혁 씨…… 강 사장님…… 내가 잘못했어. 제발 목숨만은…… 내 생명력까지 다 가져가면 난 밖에서 얼어 죽어……."
"계약서의 서명은 장난이 아닙니다."
태혁이 차갑게 발을 뒤로 뺐다. 그의 구두 굽이 대리석 바닥을 가볍게 때렸다.
"하지만 당신에게 아직 마지막 잔존 가치가 남아 있다면, 임시 유예 조치를 고려해 볼 의향은 있습니다. 블랙 하이에나의 마석두. 그 자의 다음 계획은 무엇입니까?"
오태식은 숨을 헐떡이며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려 눈을 가렸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마, 마석두가…… 그 미친 인간이 이미 움직였어! 낙원 빌딩의 결계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걸 알자마자…… 아예 이 빌딩을 고사시키겠다고 했어!"
태혁의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좁아졌다.
"구체적인 방식을 요구합니다."
"다리야! 한강을 가로질러 이 빌딩으로 통하는 모든 물자 운송 대교를…… 전부 폭파해서 끊어버리기로 합의했어! 외부에서 들여오는 원자재든 식량이든, 단 한 톨도 이 빌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너희를 이 안에서 굶겨 죽이고 말려 죽이겠다는 거야!"
오태식의 절규가 로비의 높은 천장에 부딪쳐 서늘하게 메아리쳤다.
로비에 모여 있던 유민들의 안색이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렸다. 한강 도심 전체가 영하 40도로 얼어붙은 이 아포칼립스에서 물자 공급망이 완전히 차단된다는 것은, 곧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선고나 다름없었다.
태혁은 가만히 고개를 들어 유리창 너머, 끝없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둠을 응시했다.
적자 요인을 뿌리 뽑으려던 그의 계획 앞에, 마석두라는 거대한 외부의 벽이 공급망 전면 차단이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던져온 것이다.
태혁의 태블릿 화면 위로 새로운 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이 나지막하게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