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늘끝이 목덜미를 스치기 직전, 발목을 타고 올라온 온기가 지안의 척추를 세차게 두드렸다.
지익, 지이익!
반쯤 열린 아틀리에 문틈 사이로 붉은 빛이 명멸했다. 시스템 모니터가 비명을 지르듯 뱉어내는 경고음이 복도의 적막을 찢어발겼다. 강진우의 주사기는 지안의 살갗을 뚫기 직전, 허공에서 멈췄다. 도진의 손가락 끝이 지안의 발목에 닿은 그 찰나, 공기 중에 흩어져 있던 피비린내가 일순간에 거두어졌다. 흐려져 가던 도진의 눈동자에 푸른 불꽃 같은 생기가 돌아왔다.
"이 쥐새끼가 끝까지……."
강진우가 이를 갈며 주사기를 쥔 손목에 힘을 주었다.
연화 그룹이 보낸 승현의 사냥개는 지안의 앞길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외출을 감행했던 지안의 발걸음을 돌려세우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목덜미를 겨눈 그의 손길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승현의 차가운 지시사항이 담긴 태블릿의 불빛이 강진우의 비열한 미소를 비추고 있었다. 지안의 온몸을 옥죄던 공포는 물리적인 무게감을 가지고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러나 그 지옥 같은 압박감은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그 더러운 손 치워."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복도의 시멘트 벽면을 타고 잔인하게 울렸다.
도진의 손끝이 지안의 발목을 강하게 움켜쥐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류가 강진우의 손목을 쳐냈다. 도진은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던 방금 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의 흰 셔츠 등 뒤로 흐르던 핏물은 여전히 붉었으나, 지안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만큼은 서늘한 빙판처럼 굳어 있었다.
강진우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품 안에서 소형 주파수 발생기를 꺼내 들었다. 검은색 본체 위에 달린 전원 버튼을 누르자, 귀를 찢는 듯한 고주파 음이 좁은 복도를 가득 채웠다.
키이이이잉―!
인위적으로 가공된 통증 주파수였다. 채씨 가문의 공감각 저주를 극대화하기 위해 연화 제약 설비에서 특수 제작된 파동이 지안의 고막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아아악……!"
지안은 양손으로 귀를 감싸 안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머릿속에서 수천 개의 유리파편이 동시에 깨져나가는 듯한 고통이 몰아쳤다. 입안 가득 쇠맛이 도는 비린 가래가 끓어올랐고, 눈앞이 온통 붉은색 낙인으로 가득 찼다. 겨울 서리 속에 던져진 여린 잎사귀처럼, 지안의 몸이 잘게 떨렸다.
"아파? 조금만 참아봐. 이 주파수가 뇌하수체를 직접 자극하면, 네 그 잘난 저주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예쁘게 쌓이거든."
강진우가 킥킥거리며 주파수 세기를 한 단계 더 올리려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퍼억!
도진의 주먹이 강진우의 안면을 정확하게 강타했다. 둔중한 파열음과 함께 강진우의 고개가 사정없이 꺾였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주파수 발생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이 났다. 찢어지는 듯한 기계음이 멈추자마자, 도진의 가차 없는 손길이 강진우의 덜미를 낚아챘다.
"컥……!"
도진은 강진우의 멱살을 움켜쥔 채, 그대로 그를 콘크리트 벽면에 처박아 버렸다. 쿠웅! 소리와 함께 벽면에 미세한 균열이 가며 먼지가 흘러내렸다. 강진우의 척추가 부러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복도를 메웠다.
도진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분노도, 증오도 배제된 냉혹한 살수(殺手)의 눈빛이었다. 그는 벽에 처박힌 강진우의 목을 서서히 조여 가며, 다른 한 손으로 그의 오른쪽 어깨 관절을 움켜쥐었다.
"누구 허락을 받고 손을 대."
"끄으윽…… 이, 괴물 같은……."
"네가 보고서를 올릴 승현이에게 전해라."
도진의 손가락에 서서히 힘이 들어갔다. 우두둑, 뼈가 어긋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지안의 귀에 선명하게 꽂혔다. 강진우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하며 두 다리가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한 번만 더 내 눈앞에 알짱거리면, 그땐 네 사지를 하나씩 정밀 해체해 주겠다고."
도진은 그대로 힘을 주어 강진우를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바닥을 구른 강진우는 어깨를 감싸 안은 채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신음했다. 그의 입가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도진의 눈빛에서 진짜 죽음을 읽은 강진우는, 부러진 어깨를 움켜쥐고 기어 기어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복도 바닥에 그의 비열한 흔적이 길게 늘어졌다.
도진은 도망치는 사냥개의 뒷모습을 쫓지 않았다. 그의 모든 감각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 거친 숨을 내쉬는 지안에게로 향해 있었다.
"지안아."
도진이 무릎을 꿇으며 지안을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
그의 단단한 팔이 지안의 등 뒤와 무릎 밑을 받쳐 들었다. 닿는 순간, 지안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던 날카로운 통증 파편들이 거짓말처럼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뇌를 찌르던 이명은 부드러운 아카시아 꽃향기로 치환되었고, 얼어붙었던 전신의 혈관에 따스한 온기가 돌았다. 마치 겨울 끝자락에 찾아온 봄볕이 잔설을 녹이듯, 고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다.
이것이 그들의 잔혹한 구원이었다. 도진의 접촉만이 지안을 고통의 심연에서 건져 올릴 수 있는 유일한 열쇠였다.
"……도진아."
지안은 그의 셔츠 깃을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꽉 움켜쥐었다.
그의 품은 한없이 따뜻했고,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고동은 지안의 불안한 심장을 진정시켜 주었다. 밀어내야 한다는 방어기제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의 온기에 기대고 싶다는 나약함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지안은 도진의 어깨에 이마를 묻으며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지안을 안아 들고 아틀리에 안으로 걸음을 옮기던 도진의 몸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하고 솟아오르는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한 둔탁한 진동이 지안의 뺨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도진아? 왜 그래……?"
지안이 황급히 고개를 들려 하자, 도진은 그녀의 뒤통수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제 가슴팍으로 더욱 밀착시켰다.
"아무것도 아니야. 조금만 이러고 있자."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다정했으나, 끝음이 미세하게 갈라져 있었다.
도진은 아틀리에 문을 발로 밀어 닫고 거실 소파에 지안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지안의 몸에서 손을 떼는 순간, 도진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목줄기가 터질 듯 팽팽하게 당겨졌고,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거친 숨결이 새어 나왔다.
도진은 지안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잽싸게 몸을 돌려 등 뒤로 오른손을 감추었다. 그리고 왼손으로 코트 안쪽 주머니를 뒤적여 무언가를 꺼내려 했다. 그의 움직임은 비정상적으로 빠르고 다급했다.
지안은 본능적으로 그의 행동을 주시했다.
도진이 코트 안쪽 깊숙한 곳으로 급히 밀어 넣으려던 것은, 실크 재질의 하얀 손수건이었다. 평소 그가 즐겨 쓰던, 모퉁이에 옅은 아카시아 문양이 새겨진 정갈한 손수건.
하지만 지안의 시선이 닿은 그 짧은 찰나, 손수건의 상태는 전혀 정갈하지 않았다.
하얀 실크 천 위로, 잉크가 번지듯 붉은 핏빛 얼룩이 선명하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방금 막 토해낸 것이 분명한, 검붉고 걸쭉한 혈흔이었다. 도진은 그것을 보이지 않게 손아귀에 꽉 쥐어 짜내며 코트 주머니 속으로 강제로 쑤셔 넣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저 피는…… 누구의 것이지?'
지안의 가슴속에서 차가운 의혹의 가시가 돋아났다.
도진의 등 뒤에 남은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라고 하기에는, 손수건에 묻은 혈흔의 위치와 형태가 너무나도 노골적이었다. 그것은 입에서 뿜어져 나온 각혈의 흔적이었다.
머릿속에서 세아의 경고가 웅웅거리며 되살아났다.
*“지안아, 너를 치유하는 대가로 도진이가 받는 반사 통증은 단순한 고통으로 끝나지 않아. 접속 빈도가 늘어나고 감정이 깊어질수록, 그 애의 심장 세포가 타들어 가고 수명이 갉아먹혀. 이건 축복이 아니라 서서히 죽어가는 자살 계약이야.”*
세아의 퉁명스럽지만 뼈가 시리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지안은 도진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의 입술은 평소보다 핏기가 가셔 창백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지안을 바라보며 억지로 지어 보이는 그 다정한 미소 뒤에, 얼마나 거대한 고통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나를 살리기 위해, 너는 스스로를 죽이고 있는 걸까? 내가 아프지 않기 위해, 너는 매 순간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을 견디고 있는 걸까? 왜 내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거지?
점층적으로 불어나는 의문들이 지안의 목구멍을 턱턱 막아섰다.
"도진아, 너……."
지안이 도진의 코트 자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주머니 속에 숨겨진 그 붉은 실체를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 도진이 자신을 위해 얼마나 끔찍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그 가혹한 진실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러나 도진은 지안의 손길이 닿기 직전,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무접촉 생활 수칙 2계명. 일상적인 대화 시 최소 1.5미터의 거리를 유지한다. 그는 약속이라도 한 듯 정확하게 그 거리를 벌리며 차가운 유리 벽 너머로 비껴섰다.
"세아에게 연락해 두었어. 곧 올 거야."
도진은 평온을 가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방금 전 강진우를 반쯤 죽여 놓던 사나운 기색도, 각혈을 숨기려던 다급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지안의 안전만을 걱정하는 헌신적인 소꿉친구의 가면만이 덩그러니 쓰여 있었다.
"너 지금 몸이 어떤지 물었어."
지안이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도진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시선과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히며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침묵이 이어졌다. 도진은 지안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 밑에 짙게 드리워진 그늘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난 괜찮아. 네 통증을 가져왔으니, 내 몸은 자연스럽게 회복될 거야. 알잖아, 내 체질."
"거짓말."
지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손수건에 묻은 거, 피 맞지? 너 나 치유할 때마다 심장이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세아가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도진의 눈썹 끝이 아주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는 이내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세아가 또 쓸데없는 소리를 했나 보네. 의사들은 원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겁주길 좋아하잖아. 귀담아들을 필요 없어."
"서도진!"
"지안아."
도진이 그녀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그 목소리에 담긴 묵직한 무게감에 지안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네가 아프지 않은 것보다 중요한 건 없어. 내게 어떤 대가가 따르든, 난 기꺼이 치를 거야. 그러니까 넌…… 아무 걱정 하지 마."
그것은 맹목적이고도 지독한 사랑의 선언이었고, 동시에 지안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굴레였다. 그의 헌신이 깊어질수록, 지안의 마음속 죄책감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동등한 가치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구원은 결국 한쪽의 파멸로 끝날 뿐이었다. 지안은 더 이상 그의 일방적인 희생을 방관할 수 없었다.
도진이 몸을 돌려 아틀리에의 제어 패드 앞으로 걸어갔다. 시스템의 상태를 점검하려는 듯, 그의 손가락이 화면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지안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도진의 왼쪽 손목에 채워져 있는 은색 메탈 밴드로 시선이 향했다. 그것은 한세아가 두 사람의 생명력 상태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강제로 채워둔 계약 인터페이스 연동기였다.
평소에는 푸른빛을 띠며 안정적인 수치를 나타내던 그 연동기의 액정이, 순간적으로 기괴한 소리와 함께 붉은빛으로 거칠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삐비빅, 삐빅―!
지안의 시야에 도진의 연동기 화면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화면 위에 떠오른 홀로그램 메트릭 수치.
[Warning: 생명 에너지 잔존율 급감.] [Active Life Index: 12% -> 8%] [수명 메트릭 폭락 감지―]
붉게 점멸하는 숫자 '8'이 지안의 동공에 낙인처럼 박혔다. 도진의 남은 수명이 폭락하고 있었다. 지안을 안아 올리고 고통을 치환했던 그 짧은 접촉만으로, 그의 생명력 게이지가 파멸적인 수치까지 떨어져 내린 것이다.
지안의 숨이 턱 막혔다. 그녀의 눈동자가 극도로 커지며 도진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도진은 여전히 아무런 기색도 내지 않은 채, 패드 화면만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심장은 지금, 멈춰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