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릉, 하고 천장이 우는 소리는 찰나였다.
머리 위에서 수십 개의 햇살을 반사하며 빛나던 거대한 크리스털 조명이 나사가 풀린 시계태엽처럼 비틀거리더니, 이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수직으로 낙하했다. 날카로운 유리 파편들이 허공을 가르며 지안의 정수리를 향해 쏟아져 내리던 그 극적인 순간, 시야를 가로막은 것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밀려든 단단한 온기였다.
"지안아!"
도진이 망설임 없이 격자 선을 넘어 몸을 날렸다. 그녀를 덮쳐 누르는 그의 움직임에는 단 한 뼘의 주저함도 없었다.
쾅! 콰과광!
귀를 찢는 파열음과 함께 사방으로 크리스털 조각들이 비산했다. 둔중한 충격음이 아틀리에의 대리석 바닥을 뒤흔들었고, 지안은 도진의 넓은 품 안으로 파묻혔다. 단단한 팔이 그녀의 머리와 목덜미를 감싸 안아 단 한 조각의 유리 파편도 닿지 않게 단단히 봉인했다.
사방이 암전된 듯한 어둠 속에서, 지안의 코끝을 찌른 것은 비릿한 피비린내가 아니었다.
지독할 정도로 달콤한, 흐드러지게 피어난 아카시아 꽃향기였다.
그것은 도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수호의 오라였다. 유리 파편이 그의 등을 찢고 살을 파고드는 잔혹한 물리적 통증이 발생한 순간, 그 고통이 지안에게 공감각으로 전이되기 전에 도진이 스스로의 생명력을 연소시켜 향기로 비틀어 버린 결과물이었다. 사방을 가득 채운 아카시아 단내가 콧물과 눈물을 자아낼 만큼 진동했다. 바닥에 흩어진 투명한 파편들은 마치 한겨울에 얼어붙은 호수의 얼음 조각처럼 차갑게 반짝이며 뒹굴었다.
지안은 도진의 품속에서 숨을 들이켜며 파르르 떨었다. 온몸의 감각이 비정상적으로 예민해진 그녀에게는 이 향기가 단순한 꽃내음이 아니라, 도진이 흘리는 투명한 피눈물처럼 느껴졌다.
"하아…… 윽……."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도진의 신음은 젖어 있었다.
지안은 본능적으로 그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무접촉 생활 수칙 3계명 따위는 머릿속에서 하얗게 지워진 지 오래였다. 손가락 끝이 그의 얇은 셔츠 너머로 닿는 순간, 지안은 온몸을 관통하는 거대한 이질감에 숨을 멈췄다.
두근. 두그근. 둑, 두두두둑.
그의 가슴 밑바닥에서 요동치는 박동은 정상적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불규칙하기 짝이 없는 심장 소리는 마치 톱니바퀴가 어긋난 기계 장치처럼 삐걱거리며 요동치고 있었다. 타들어 가는 듯한 열기가 그의 피부를 타고 지안의 손가락 끝으로 전해졌다. 그것은 소멸의 박동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과거 천재 의사 한세아가 자신에게 나직하게 속삭였던 경고가 지안의 귓가를 스쳤다.
―지안아, 너를 구할 때마다 도진이 지불하는 대가가 뭔지 알아? 단순한 반사 통증이 아니야. 그의 심장은 네 고통을 흡수할 때마다 스스로를 갉아먹어. 네가 느끼는 아카시아 향기가 짙어질수록, 도진의 심장 박동은 불규칙해지고 수명은 모래시계처럼 빠르게 쏟아져 내린다고. 이 계약은 상생이 아니라, 한쪽의 생명을 나누어 갖는 가혹한 잠식 공식이야.
그 경고는 진짜였다.
손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도진의 심장은 당장이라도 터져 버릴 것처럼 불안정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지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그녀는 도진의 가슴을 밀쳐내려 힘을 주었지만, 도진은 오히려 그녀를 더 꽉 끌어안았다.
"움직이지 마…… 아직 파편이 떨어지고 있어."
"놔, 놓으라고! 서도진, 너 이러다 진짜 죽어! 심장이…… 네 심장이 지금 이상하단 말이야!"
지안의 목소리가 갈라지며 흔들렸다. 눈물이 차올라 시야가 흐려지는 와중에도 도진의 얼굴을 확인하려 바둥거렸다.
하지만 도진은 그저 낮게 웃을 뿐이었다. 그의 입술 사이로 붉은 핏방울이 한 방울 흘러내려 지안의 하얀 뺨 위로 툭, 떨어졌다. 뺨에 닿은 피는 뜨거웠지만, 지안이 느끼는 감각은 그저 따스한 봄날의 햇살 같은 온기뿐이었다. 도진이 자신의 고통을 모조리 치환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온몸이 유리 조각에 찔리고 찢기는 지독한 통증마저, 그녀에게는 오직 달콤한 아카시아 향기와 부드러운 온기로만 변조되어 전달되고 있었다.
이 지독하고 잔인한 헌신.
"난 괜찮아."
도진이 떨리는 손을 들어 지안의 뺨을 매만졌다. 그의 손가락 끝에 묻어 있던 붉은 피가 지안의 하얀 살결 위에 붉은 매화꽃처럼 번졌다.
"네가 아프지 않다면, 나는 아무래도 좋아."
"바보 같은 소리 좀 하지 마! 내가 안 아프면 뭐 해? 네가 이렇게 부서지고 있는데!"
지안은 그의 셔츠 자락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 그의 가슴속에서 느껴지는 소멸의 박동이 그녀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 같았다.
도진은 지안의 눈물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닦아내며, 속삭이듯 말을 이어갔다. 그의 목소리는 안개처럼 흐릿했고, 숨결에서는 여전히 아카시아 향이 짙게 배어 나왔다.
"지안아…… 한 세대 전의 우리 가문 기록을 본 적이 있어. 공감각적 낙인은 단순한 저주가 아니야. 치유 계약 역시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지. 우리 선조들도 이 감각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누군가와 계약을 맺었어. 그리고 그 끝은 항상…… 한 사람의 완전한 소멸이었지."
도진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그 안에는 슬픔보다 더 깊은, 어떠한 결연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계약을 통해 고통을 넘겨주었지만, 받아들인 자는 결국 심장이 타들어 가 죽었어. 가문의 규칙은 절대적이야. 하지만 난…… 그 결말을 바꿀 거야. 내 심장이 멈추는 한이 있더라도, 네가 이 저주에서 풀려날 수만 있다면."
"서도진!"
지안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도진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듯, 천천히 눈꺼풀을 닫았다. 그의 몸이 서서히 밑으로 기울어지며 지안의 어깨 위로 툭, 쓰러졌다. 그의 등 뒤로 흐른 피가 대리석 바닥을 붉게 적시고 있었다. 깨진 크리스털 파편들 사이로 붉은 피와 투명한 유리 조각들이 뒤섞여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안은 쓰러진 도진을 안아 들려 했지만, 그녀의 약한 힘으로는 무리였다. 심장에 가해지는 반사 통증의 여파로 도진의 호흡은 심하게 가빠져 있었고,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정말로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녀를 엄습했다.
'약을…… 해독 제제를 가져와야 해.'
세아가 아틀리에 지하 비상 보관함에 넣어두었다던 심장 안정제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약을 가지러 가기 위해서는 아틀리에의 결계를 벗어나 외부 약품실로 향해야 했다.
지안은 떨리는 손으로 도진을 거실 소파 곁에 조심스럽게 뉘어놓았다. 그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입술은 군데군데 찢어져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기다려. 금방 올 테니까…… 제발 버텨줘."
지안은 소매 끝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며 일어섰다. 그녀의 발걸음은 다급했다.
아틀리에의 이중 보안 현관문은 아까 전 스스로 잠금이 해제된 상태 그대로 반쯤 열려 있었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시스템을 해킹해 문을 열고, 천장의 조명을 떨어뜨린 것이 분명했다. 채승현. 그 냉혹한 사촌 오빠의 짓이 틀림없었다.
지안은 주먹을 꽉 쥐었다. 더 이상 도진의 뒤에 숨어 구원받기만 하는 나약한 존재로 남을 수는 없었다. 그가 자신을 위해 생명을 갉아먹어 가며 방패가 되어주었다면, 이제는 자신이 그 방패를 나누어 들어야 했다.
그녀는 어두운 복도로 발을 내디뎠다.
아틀리에가 위치한 펜트하우스의 복도는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평소라면 작동하고 있어야 할 복도의 센서등마저 모두 꺼져 있어, 짙은 어둠만이 사방을 지배하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겨울의 서늘한 공기가 지안의 뺨을 스쳤다.
지하 약품실로 연결되는 전용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갔을 때였다.
철컥, 하는 가벼운 마찰음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표시등이 붉게 점등되었다. 그리고 서서히 열리는 문 너머로, 어둠 속에서 푸른빛을 발하는 담배 불꽃이 보였다.
"어라, 이게 누구야."
비릿한 웃음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
큰 키에 가죽 재킷을 걸친 사내. 그의 목덜미에는 뱀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고, 눈동자는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잔인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강진우였다. 채승현이 거액의 배당금을 약속하고 고용한, 연화 제약의 더러운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사냥개.
강진우는 들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던져 구두 굽으로 짓이기며 지안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도련님이 얌전히 모셔오라고 하셨는데, 위에서 쥐새끼들이 아주 요란하게 사랑 놀음을 하고 있더라고."
그가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주파수 발생기처럼 생긴 기기를 꺼내 들었다. 기기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진동음이 공기를 타고 전해지자, 지안은 귀를 찢는 듯한 소음과 함께 가슴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공감각적 통증을 느끼며 바닥 주저앉았다.
"윽……!"
"아하, 역시 소문대로군. 이 기계가 내뿜는 미세 초음파가 네 신경을 아주 제대로 긁어놓지? 도진이 녀석이 없으면 넌 그냥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일 뿐이잖아, 채지안."
강진우가 비열하게 웃으며 지안의 턱 끝을 구두 끝으로 툭툭 쳤다.
"순순히 따라오시지. 네 사촌 오빠가 아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거든. 새로운 실험 기계가 아주 끝내주게 준비되어 있으니까."
압도적인 공포와 통증이 지안의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도진은 저 멀리 쓰러져 있고,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사냥개는 잔인한 이빨을 드러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지안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거칠게 흔들렸다.
초음파 기기가 뿜어내는 보이지 않는 파동은 지안의 고막을 뚫고 뇌하수체를 직접 타격했다.
입안 가득 쇠비린내가 고였다. 뼈마디가 얼어붙은 호수의 얼음판처럼 쩍쩍 갈라지는 날카로운 환청이 귓가를 어지럽혔다. 타인의 고통을 번역하던 가혹한 감각이, 이제는 기계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주파수를 타고 그녀의 신경계를 사정없이 유린하고 있었다.
지안은 바닥을 짚은 손끝을 바르르 떨었다. 손톱이 대리석 바닥을 긁으며 끼익, 소리를 냈지만 그 불쾌한 소음마저 뇌리를 찌르는 송곳이 되어 돌아왔다. 사방을 채우고 있던 도진의 아카시아 향기가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한겨울 서리꽃처럼 차갑고 버석거리는 말라죽은 갈대밭의 냄새였다. 온기가 사라진 자리는 지독하도록 시린 한기만이 감돌았다.
강진우는 지안의 고통스러운 신음을 음악이라도 감상하듯 즐기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이거 아주 물건이네. 연화 제약 연구소 놈들이 밤새워 만든 보람이 있어. 낙인자 전용 무력화 주파수라던가?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네 뇌는 지금 사지가 찢겨 나가는 고통을 느끼고 있을 테니까."
지안은 아래 입술을 피가 날 때까지 깨물었다. 비틀거리는 시야 너머로 강진우의 구두 앞코가 보였다.
왜 매번 도진이어야 했을까? 왜 항상 그가 제 심장을 태워 가며 나를 구해야만 했을까? 나를 위해 부서져 가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언제까지 방어기제라는 비겁한 성벽 뒤에 숨어 그 헌신을 외면해야 하는 걸까? 도진을 잃고 홀로 살아남는 삶에, 과연 단 한 줌의 온기라도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점층적으로 밀려드는 질문들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지안은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도진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내던졌다면, 이제는 자신이 그 모순적인 계약의 쇠사슬을 끊어내야 했다.
지안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침묵을 지켰다. 당장이라도 비명을 지르고 싶은 통증이 전신을 감쌌지만, 눈을 질끈 감고 호흡을 골랐다. 강진우는 그녀가 완전히 무력화되었다고 판단했는지, 기기의 출력을 유지한 채 그녀의 머리채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스슥.
지안의 시선이 바닥에 흩어진 크리스털 조각 중 가장 날카롭게 각이 진 파편 하나에 머물렀다.
손가락 끝에 닿는 유리의 감촉은 소름 끼치도록 차가웠다. 지안은 온 힘을 쥐어짜 짜릿한 통증이 몰려오는 손아귀 힘으로 그 파편을 움켜쥐었다. 살갗이 베이며 붉은 피가 흘러내렸지만, 지금의 그녀에게 그 정도의 통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얌전히 가자니까, 응?"
강진우의 손이 지안의 어깨에 닿는 찰나였다.
지안은 번개처럼 고개를 치켜들며 움켜쥔 유리 파편을 강진우의 드러난 발목을 향해 사정없이 그어버렸다.
서걱!
"아악!"
강진우의 비명이 고요한 복도를 찢었다. 아킬레스건 부근을 깊숙이 베인 그가 중심을 잃고 뒤로 비틀거렸다. 그의 발목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피가 복도 바닥에 흩뿌려졌다.
공감각적 저주가 즉각적으로 발동했다. 지안의 입안에 비릿한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발목 부분이 불에 달군 인하로 지지는 듯한 극심한 작열감이 덮쳐왔다. 하지만 그녀는 구역질을 참아내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주저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도진을 살릴 안정제를 찾아야 했다.
"이 독한 년이……!"
강진우가 잇새로 욕설을 뱉으며 품 안에서 작은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주사기 안에는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액체가 일렁이고 있었다. 연화 제약이 개발한 신경 마비제였다.
그가 절뚝거리며 지안의 덜미를 거칠게 낚아챘다. 지안은 버둥거렸지만, 초음파 기기의 여파와 방금 전 전이된 통증 때문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바닥으로 내팽개쳐진 그녀의 위로 강진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그때였다.
"지안…… 아……."
멀리서 들려오는 나직한 목소리.
아틀리에의 반쯤 열린 문틀을 붙잡고, 피투성이가 된 도진이 서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흰 셔츠는 이미 등 뒤에서 흘러내린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 붉은 발자국이 새겨졌다.
도진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흐려져 있었지만, 오직 지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박동은 이제 소리조차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지안은 환청처럼 그의 심장이 툭, 툭 끊어지며 멈춰가는 소리를 들었다.
'안 돼…… 오지 마…….'
도진이 한 걸음만 더 다가와 자신과 접촉한다면, 그의 심장은 이 가혹한 등가교환의 법칙을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멈춰 버릴 것이 분명했다. 한세아가 경고했던 계약의 이면이 뇌리를 스쳤다. 서로의 생명력을 잠식하는 이 잔혹한 굴레에서 도진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가 자신을 치유하게 두어서는 안 되었다.
"오지 마! 서도진, 제발 오지 마!"
지안은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그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려 강진우의 구두 위로 떨어졌다.
도진은 그녀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이 허공을 휘저으며 지안을 향해 다가왔다. 그 무모하고도 지독한 사랑이 지안의 심장을 찢어발겼다.
"시끄럽군."
강진우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주사기를 치켜들었다. 푸른 액체가 담긴 바늘 끝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지안은 도진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이 지옥 같은 굴레를 끊어내기 위해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녀는 도진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오히려 강진우가 쥔 주사기를 향해 자신의 목덜미를 내밀었다. 스스로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어서라도 도진의 접촉을 막아야 했다.
"서도진, 사랑해…… 그러니까 제발……."
강진우의 손에 들린 주사기 바늘이 지안의 하얀 목덜미를 향해 사정없이 내리꽂히는 그 찰나의 순간, 도진의 손가락 끝이 지안의 발목에 닿았다.
지익!
아틀리에의 홈 네트워크 모니터가 다시 한번 기기묘묘한 소리를 내며 붉은 낙인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실험체 2호, 생명력 역방향 흐름 감지.] [경고: 시스템 과부하. 계약의 강제 해제 수치에 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