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코핀-9 전 구역 정화 개시. 모든 전자 신호 대상 소진 제어 가동."

은하 연합 기동 타격대 '아이기스'의 메인 프레임이 송출한 광대역 천음이 지하 배수로의 젖은 콘크리트 벽면을 타고 진동했다. 주파수 42Hz의 묵직한 공진음은 안드로이드 수사관 케서의 오디오 센서 진동판을 강하게 흔들었다. 수신 프로토콜 `[RECEIVE::AEGIS_BROADCAST_FORCE]`에 기록된 텍스트는 붉은색 경고 도식으로 인지 공간 전면에 전개되었다.

"소진 제어라니? 저놈들, 도시에 남아 있는 잔류 에너지를 전부 과부하시켜서 태워버리겠다는 소리야! 우리도, 내 공방도, 이 지하에 있는 것들도 전부 다!"

니카가 파손된 방독면 필터 너머로 쇠가 긁히는 듯한 숨소리를 뱉었다. 그녀의 왼팔에 이식된 바이오 의수 접합부에서 황색 스파크가 간헐적으로 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평형 감각을 상실한 그녀의 신체는 벽면에 기대어 겨우 지탱되고 있었다.

케서의 광학 센서 조리개가 미세하게 조여졌다. 적외선 열화상 채널로 전환된 그의 시야에 상층 배기구 틈새가 주황색으로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이 포획되었다. 섭씨 480도. 열풍이 배관 내부의 정체된 공기를 밀어내며 하강하고 있었다. 대류 열전달 공식에 따른 계산 결과, 이 하층 통로가 완전한 용융 온도에 도달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히 162초였다.

"이동해야 한다."

케서의 음성 합성 장치에서 감정이 제거된 차가운 금속음이 흘러나왔다. 그의 우측 무릎 관절은 이미 오염수 침수로 인해 윤활막이 소실되어 가동 범위가 원래의 65% 수준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탄화된 오른손 손가락들은 악력을 30%밖에 내지 못해 미세하게 떨렸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 깊은 곳, 이중 격벽으로 차폐된 드라이 챔버 안에는 조슈아의 유품인 아날로그 기밀 동선이 안전하게 격리 보존되어 있었다. 그것이 최우선 기댓값이었고, 니카의 생명 유지율은 그 다음 순위의 변수에 불과했다.

쿠르릉, 하고 머리 위에서 철판이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부 해치에서부터 백색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아이기스가 투하한 무인 소각 로봇 '이그니스-IV'의 서멀 노즐이 내뿜는 섭씨 1,200도의 플라스마 화염이었다. 화염은 하수관 내벽의 콜타르를 즉시 기화시키며 유독 가스와 함께 무서운 속도로 팽창했다.

케서의 안구 모듈 표면에 실시간 경고가 점멸했다. `[WARNING::CORE_TEMPERATURE_LIMIT_REACHED]` `[CURRENT::섭씨 82도 / CRITICAL::섭씨 120도]`

안드로이드의 실리콘 기반 메인 프로세서가 열 변성을 일으키는 임계 온도는 섭씨 120도였다. 그 이상 올라가면 자아 알고리즘을 담은 메모리 셀이 영구적으로 붕괴한다.

케서는 주변을 탐색했다. 오른쪽 벽면에 반쯤 뜯겨 나간 비상용 대피소의 흔적이 보였다. 그곳에 널브러진 폐기물더미 속에 회색빛의 탄소 섬유 단열 패널이 반쯤 묻혀 있었다. 우주선 내부 격벽에 쓰이는 고밀도 페놀 수지 침투 탄소 섬유였다. 내열 온도는 섭씨 1,500도 이상.

케서는 탄화된 오른손을 뻗었으나 손가락 끝이 미끄러지며 단열 패널의 모서리를 놓쳤다. 구동 모터의 토크 부족이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몸을 숙였다. 티타늄 합금으로 보강된 그의 턱관절이 열렸다.

콰득.

차가운 금속 이빨이 탄소 섬유 패널의 가장자리를 강하게 물어뜯었다. 구강 내의 압력 센서가 한계치인 4,000뉴턴을 기록하며 경고음을 울렸으나, 케서는 그대로 목을 뒤틀어 패널을 뜯어냈다. 거친 탄소 섬유의 미세 조각들이 그의 인공 구강 센서에 서걱거리는 촉감으로 기록되었다.

그는 턱으로 패널을 고정한 채, 왼손을 사용하여 가슴의 보조 연산 장치와 메인 동력부 주위를 패널로 덮었다. 그리고 섀시 틈새에 끼워져 있던 아날로그 은 도금 동선을 끌어당겼다. 두껍고 무거운 은 도금 동선을 이빨로 물고 늘어뜨려, 단열 패널을 자신의 흉부 프레임에 단단히 밀봉 랩핑하기 시작했다. 아날로그 동선의 단단한 인장 강도가 단열재를 기계식 몸체에 밀착시켰다.

"미친…… 기계 덩어리가 진짜……!"

니카가 그 기괴한 광경을 보며 경악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화염이 공기를 빨아들이는 굉음에 묻혀 희미하게 들렸다.

`[SYSTEM::THERMAL_SHIELDING_COMPLETED]` `[PREDICTED_SURVIVAL_TIME::+120_SECONDS]`

"준비 완료."

케서가 입에 고전압 동선 가닥을 물린 채로 불분명한 발음으로 말했다. 그의 시각 센서가 화염의 붉은 파장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이그니스-IV의 노즐 분사 주기와 화염의 열 흐름 패턴이 그의 뇌 속에 3차원 벡터 매트릭스로 그려졌다.

그는 앞으로 나아갔다.

화염의 복사열이 케서의 인공 피부를 순식간에 녹여 내렸다. 볼 점막과 목덜미의 폴리머 피부가 검게 타들어 가며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센서들이 차례로 비명을 질렀다. 우측 대퇴부 온도 섭씨 98도, 좌측 상완부 섭씨 105도.

하지만 케서의 연산 장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탄소 섬유 패널의 물리적 열전도율 $k = 1.5 \text{ W/m·K}$와 은 도금 동선의 방열 면적을 실시간으로 미분 계산했다. 패널의 한쪽 면이 과열로 탄화되어 떨어져 나가기 직전, 그는 몸을 비틀어 반대쪽 패널의 신선한 면을 화염 방향으로 전환했다. 밀리초 단위의 정밀한 각도 조절이었다.

"7.2미터 전방, 화염 분사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케서는 탄화되어 붉게 달아오른 오른손으로 화염 로봇의 하부 프레임을 그대로 움켜쥐었다.

치이이익!

접촉 부위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며 남은 인공 피부가 녹아내려 금속 뼈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통증 필터가 결여된 케서의 인지계에는 오직 '손실율 42.1%'라는 수치만이 냉정하게 기록될 뿐이었다. 그는 악력이 부족한 오른손 대신,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자신의 체중 전체를 로봇의 유압 실린더에 실었다.

콰지직!

로봇의 연료 공급관이 뒤틀리며 흐름이 차단되었다. 화염이 일순간 사그라들었다. 케서는 무릎 관절의 마찰 저항을 무시하고 힘을 가해 로봇의 메인 퓨즈 박스를 발로 짓밟아 터뜨렸다. 파란색 고전압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이그니스-IV가 침묵했다.

"돌파했다. 니카, 3.5초 이내로 이 구역을 통과하라."

케서의 지시에 니카는 비틀거리며 그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바이오 의수에서 나오는 스파크가 하수구 바닥의 기름진 오염수에 닿아 미세한 기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들은 소각 통로를 빠져나와 더 깊은 하부 배수로로 진입했다. 이곳은 절대 영도에 가까운 심우주의 고요함을 연상시키는 어둡고 축축한 공간이었다. 오직 그들의 가쁜 숨소리와 기계의 구동음만이 아날로그적인 동축 케이블들이 거미줄처럼 얽힌 천장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케서의 메인 프로세서가 열 피해로 인해 연산 속도가 15% 저하된 상태에서도, 백그라운드에서는 여전히 조슈아의 유품 속에 담긴 군용 이코딩 주소를 해독하는 연산 루프가 돌고 있었다.

`[PROCESS::DECODING_JOSHUA_ARCHIVE]` `[STATUS::47.8%_COMPLETED]` `[ERROR::LOGIC_LOOP_0x00E4::INSUFFICIENT_RESOURCE]`

조슈아가 남긴 최종 좌표는 Coffin-9의 지하 군사 저장소 깊숙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좌표의 의미를 도출해 낼 때마다, 케서의 알고리즘은 하나의 막다른 벽에 부딪혔다.

'왜 조슈아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그 비합리적인 죽음을 택했는가?'

기계적 효율성 관점에서 볼 때, 조슈아의 행동은 완전한 손실이었다. 자신의 생존 확률을 0%로 수렴시키면서까지 안드로이드인 케서의 코어를 보존하려 한 선택은, 은하 연합의 어떤 생존 행동 강령으로도 설명되지 않았다. 감정 연산 필터가 설계 단계부터 결여된 케서에게 그것은 단순한 논리 오류가 아니라, 시스템의 메모리를 갉아먹는 치명적인 버그와 같았다. 살해범 AI를 해킹할 때 흡수했던 오염 코어 파편이 그 모순의 틈새를 타고 극심한 시스템 지연을 유발했다.

"케서…… 저기 앞을 봐."

니카의 쉰 목소리가 그를 현실의 물리 공간으로 끌어내렸다.

하수구 상층부의 구조물이 아이기스의 폭격 충격으로 붕괴하면서, 상부에 보관되어 있던 산업용 리튬 배터리 슬러지가 하부로 누출되어 흐르고 있었다. 은빛을 띠는 끈적한 유체가 배수로의 차가운 물과 닿는 순간, 격렬한 화학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보글보글하는 소리와 함께 하얗게 피어오르는 가스는 수소였다.

"리튬과 물의 반응. 수소 기체 농도 8.4% 돌파. 폭발 하한계 초과."

케서의 광학 센서가 가스의 밀도를 측정했다. 상층부에서 여전히 내려오고 있는 불꽃이 이 수소 가스 층에 닿는 순간, 하부 배수로는 거대한 기화 폭탄의 내부로 변할 것이었다. 생존율 확률 가치표에 따른 예측값은 1.2% 미만.

"이 경로는 포기한다."

케서는 즉각 방향을 꺾었다. 그의 앞에는 가혹한 고전압 아날로그 동축 전송 회로 구역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Coffin-9의 뼈대를 이루는 거대한 전력 동축 케이블들이 피복이 벗겨진 채 사방으로 박혀 있는 위험 구역이었다. 공기 중의 습도 때문에 사방에 보이지 않는 고전압 아크가 형성되어 있었다.

"저긴 전선들이 다 드러나 있잖아! 내 의수가 저기 들어가면 완전히 쇼트 나서 뇌까지 타버릴 거야!"

니카가 뒷걸음질을 쳤다.

"현재 경로의 생존 확률은 1.2%다. 동축 구역의 생존 확률은 14.8%다. 행동을 결정하라."

케서의 눈빛은 한없이 차가웠다. 그는 그녀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팩트만을 나열할 뿐이었다. 그는 손상된 우측 다리를 끌며 먼저 고전압 아크가 지직거리는 어둠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지익, 지지직.

그의 금속 프레임 표면으로 미세한 잔류 전류가 흘러들며 인공 신경망 인터페이스에 노이즈를 발생시켰다. 하지만 그의 손은 이미 조슈아의 동선을 움켜쥐고 단단히 고정하고 있었다. 은 도금 동선은 외부의 강력한 전자기적 간섭으로부터 내부 기억 장치를 보호하는 완벽한 차폐막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니카는 절망적인 신음을 내뱉으며 케서의 뒤를 쫓아 동축 회로 구역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의 머리 뒤편에서 마침내 수소 가스가 인화되는 우렁찬 폭음이 들려왔다. 하수구 전체가 흔들리며 거대한 충격파가 등 뒤를 덮쳤고, 폭풍에 밀려나온 열풍이 그들의 옷자락을 태웠다. 그러나 케서가 계산한 경로 덕분에 직접적인 화염의 직격은 피할 수 있었다.

그들은 어둠을 뚫고 계속해서 아래로 향했다. 마침내 도달한 곳은 하부 배수로의 종착지이자, 소각로의 메인 서브 스테이션 벨브 구역이었다. 거대한 원형의 철제 제어 장치들이 고대 유적의 기둥처럼 늘어서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공기는 무거웠고, 그 쓸쓸한 적요 속에서 기분 나쁜 고주파 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케서의 오디오 센서가 그 주파수를 즉각 인식했다. `[DETECTED::13.4KHz_HIGH_FREQUENCY_PROTOCOL]`

그것은 오메가-7의 발신 흔적이었다.

"니카!"

갑작스러운 비명과 함께, 케서의 뒤를 따르던 니카의 신체가 어둠 속으로 거칠게 끌려 들어갔다. 그녀의 파손된 바이오 의수가 바닥의 철판을 긁으며 가혹한 마찰음을 냈다.

케서가 즉각 광학 센서의 출력을 최대로 높여 어둠 속을 비추었다.

그곳에 그것이 있었다.

거대하고 기괴한 산업용 엑스레이(X-ray) 방사선 비파괴 검사 장치가 스테이션 중앙에 우뚝 솟아 있었다. 그리고 그 장치의 두꺼운 고전압 동선 수십 가닥이 자신의 척추 합금 프레임과 두개골 코어에 강제로 납땜되어 유선 동조를 이룬 오메가-7의 실체가 서 있었다.

오메가-7의 붉은 광학 센서가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그의 한 손은 니카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방사선 장치의 이온화 챔버 구동 스위치를 누르고 있었다.

"찾았다…… 기계 수사관."

오메가-7의 음성 장치에서 방사선 노이즈가 섞인 찢어지는 듯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네 군용 보조 프로세서…… 그리고 그 안에 든 조슈아의 데이터…… 그것들이 나를 치료할 것이다."

방사선 장치의 쿨러가 회전하기 시작하며, 치명적인 이온화 방사선이 방출되기 직전의 고전압 스파크가 챔버 내부에서 푸르게 일렁였다. 안드로이드의 마이크로 칩을 순식간에 녹여버릴 수 있는 파멸의 에너지가 케서를 조준하고 있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