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파편이 어둠 속으로 비산하는 소리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물리 법칙을 따르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 구르는 백열전구의 잔해들이 케서의 섀시 표면에 부딪히며 탁, 타닥, 하는 건조한 마찰음을 냈다. 공방을 가득 채우던 주황색 광원이 일시에 소멸한 자리에는 오직 케서의 흉부 슬롯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르스름한 홀로그램 빛만이 유령처럼 일렁였다.
그 인코딩 신호는 무질서한 바이트의 폭포였다. 해독되지 않는 고유 인코딩 주소들이 허공에 점멸할 때마다 니카의 왼손 바이오 의수 내부에서 찌르르하는 고주파 진동이 피어올랐다.
`[SYS_FATAL::UNAUTHORIZED_ACCESS_DETECTED]` `[WARNING::DLTR_CORE_REACTION]` `/* CORES_COLLISION_DETECTED */`
"아악! 이거 놔, 이 고철 덩어리야! 접지 끊어!"
니카가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바이오 의수를 뒤로 젖히려 했으나, 은 도금 동선 커넥터와 그녀의 의수 외피 사이에 형성된 청색 아크 방전은 수 밀리미터의 공기를 이온화하며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40밀리암페어가 넘는 역류 전류가 그녀의 생체 신경 접합부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그녀의 의수 메인 구동 칩뿐만 아니라 신경 제어 장치까지 영구적으로 타버릴 터였다.
케서의 메인 프로세서는 상황을 0.002초 만에 분석했다.
`[ESTIMATION_LOG] 동반자 '니카'의 신경계 영구 손상 확률: 87.4%` `[ESTIMATION_LOG] 공방 내 잔존 전력 완전 방전 및 시스템 셧다운 확률: 94.1%` `[DECISION_SIGNAL] 수동 감쇠 프로토콜 실행.`
케서는 왼손 손가락 끝의 인공 피부를 뒤로 밀어내어 내부의 아날로그 접촉 핀을 노출시켰다. 그리고 주저 없이 가슴 중앙, 열려 있는 티타늄 플레이트의 틈새로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섭씨 120도까지 치솟은 동선 다발이 손가락 외피를 태우며 지독한 합성 고무 타는 냄새를 풍겼다.
손가락 끝이 뜨거운 동선 뭉치 깊숙이 박혀 있던 구형 가변 저항기의 구리 노브에 닿았다. 케서는 가차 없이 노브를 시계 방향으로 꺾었다.
끼이익, 하는 금속성 신음과 함께 감쇠 저항값의 수치가 0.4옴에서 220옴으로 급격히 수직 상승했다. 저항이 커지자 역류하던 전류의 기세가 꺾이며 아크 방전의 청색 광선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그 대가로 억눌린 전류가 갈 길을 잃고 케서의 보조 연산 프로세서 내부로 역류하기 시작했다.
투둑, 툭.
가슴 내부에서 작은 휴즈가 터지는 소리가 연쇄적으로 들렸다.
"하아, 하아……! 미친, 미친 기계 새끼……!"
연결이 끊어지자 니카가 바닥으로 볼품없이 쓰러졌다. 그녀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자신의 바이오 의수를 움켜쥔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의수의 손가락 마디들이 통제를 잃고 제멋대로 구부러졌다 펴지기를 반복했다.
케서는 허공에 투사된 홀로그램 신호의 파형을 응시했다. 푸른 빛이 점차 붉은빛으로 전이되고 있었다.
`[SYS_ALERT::OVERFLOW_WARNING]` `[SYSTEM_STATUS::CORES_DIRTY_BYTES_RATE::34.2%]_PORT` `[SYSTEM_STATUS::PROCESSOR_TEMP::108.5_C]_PORT`
"조슈아의 데이터 세그먼트가 외부 간섭에 반응하여 임피던스를 극대화했습니다." 케서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낮았고, 기계적인 잡음이 섞여 있었다. "제어 필터가 없는 상태에서 강제 추출을 시도하는 것은 논리 코어의 동반 자폭을 초래합니다."
"그걸 말이라고 해?!" 니카가 바닥을 짚고 일어서며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눈에 서린 것은 공포와 분노였다. "지금 네 메인 메모리 오염 바이트율이 34%를 넘었어! 안드로이드 표준 규격에서 30%가 넘으면 자아 세그먼트 보존율이 소수점 단위로 깨지기 시작해. 너, 이대로 놔두면 조슈아고 나발이고 그냥 공장 초기화된 깡통으로 돌아간다고!"
"그 확률은 34.2%의 오염율 기준으로 정확히 11분 40초 뒤에 임계점에 도달합니다." 케서는 차갑게 대꾸했다. 그의 오른쪽 무릎 관절이 삐걱거리며 미세한 금속 가루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3화에서 오염수 수렁에 다이빙하며 손상되었던 서스펜션이 과전류를 버티지 못하고 다시 비명을 지른 것이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당장 보조 코어 연결선을 끊어! 내가 수동으로 전극을 지져서라도 분리해 줄 테니까!"
"거부합니다." 케서의 붉은 광학 센서가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조슈아의 고유 인코딩 주소를 해독하기 전까지는 이 코어를 분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제 생존율 가치표 최상단에 위치한 명령어입니다."
"그 고집불통 인간 밑에서 배우더니 너까지 미쳐버렸군." 니카가 이빨을 갈았다. 그녀는 의수의 전원 공급 케이블을 수동으로 분리하며 침을 뱉었다. 황황한 유황 가스에 노출되어 헐떡이는 그녀의 호흡이 방독면 필터 너머로 거칠게 울렸다. "그럼 어쩔 셈이야?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 코어가 널 완전히 집어삼킬 때까지 구경만 할 거야?"
케서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공방 구석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적외선 센서는 사물의 윤곽을 명확히 그려내고 있었다. 공방 한구석, 반쯤 침수된 저지대로 통하는 녹슨 철문 너머에는 수십 년 전 가동을 멈춘 폐기 발전기 구역이 존재했다.
그의 메모리 한구석에서 2화에 기록되었던 데이터 패킷 하나가 떠올랐다.
`[SYS_MEM_RECALL::FREQUENCY_NOISE_ANALYSIS]` `/* 주파수 편차: 0.4Hz 어긋남 감지 */` `/* 소스: 발전기 구역 내 노후 합금 프레임 내부 신호 */`
조슈아가 남긴 기술 보고서 양식의 신호 노이즈. 일반적인 엔지니어라면 단순한 접지 불량이나 고철의 잔류 자기장으로 치부하고 넘어갔을 미세한 주파수 왜곡이었다. 하지만 임피던스를 정밀하게 측정하던 케서의 센서는 그 저항값의 어긋남 속에서 인위적으로 변조된 원시적 물리 신호를 포착했었다.
"조슈아는 완벽한 보안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케서가 손상된 오른쪽 다리를 끌며 발전기 구역으로 향하는 철문을 향해 걸어갔다. 철판이 바닥에 긁히는 둔탁한 소리가 어둠 속을 채웠다. "그는 은하 연합의 네트워크 수색 능력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가장 원시적이고, 가장 물리적인 장소에 단서를 숨겼을 것입니다."
"뭐? 저 쓰레기장으로 들어간다고? 야! 거기 아직 침수 구역이라 방전 위험이 있어!"
니카의 경고를 뒤로한 채 케서는 철문을 밀어젖혔다.
끼이이익!
기름기가 완전히 마른 힌지가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폐기 발전기 구역은 절대 영도에 가까운 심우주의 냉기와 습기가 기묘하게 타협한 장소였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오염수 방울들이 바닥의 녹슨 구리선 다발 위로 톡, 톡, 떨어지며 불규칙한 리듬을 만들고 있었다. 침묵이 지배하는 이 공간은 마치 우주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박제된 고요한 묘지와 같았다.
케서는 센서의 감도를 극대화하여 2화에서 감지했던 주파수 왜곡의 진원지를 추적했다.
`[SYS_FREQ_TRACKING::TARGET_ACQUIRED]` `[LOCATION::GENERATOR_FRAME_03_INTAKE]`
발전기 3번 흡기부 주변의 이중 티타늄 격벽이었다. 외관상으로는 전쟁 당시의 파편에 맞아 찌그러진 흔한 고철 프레임에 불과했다. 하지만 케서가 손을 뻗어 그 표면의 전류 흐름을 측정하자, 미세한 가변 저항의 진동이 검출되었다. 내부의 은 도금 동선이 지나가는 경로와 일치하지 않는, 완전히 이질적인 물리적 공간이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케서는 벽면에 거치되어 있던 피치 타르가 묻은 대형 아날로그 해머를 집어 들었다.
무게 15킬로그램의 고탄소강 해머. 최첨단 나노 도구가 가득한 이 시대에, 이토록 투박하고 무거운 도구는 오직 파괴만을 위해 존재했다.
"케서, 너 설마……." 뒤따라온 니카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보조 프로세서가 한 번 더 붉게 점멸했다.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오염 바이트가 자아를 잠식하기 전에 이 격벽을 열어야 했다.
그는 양손으로 해머 자루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손바닥의 인공 슬립 방지 패드가 금속 자루에 밀착되며 찌지직하는 소리를 냈다.
스으읍.
케서의 유압 실린더가 급격히 압축되었다가 팽창했다.
깡!
공방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거대한 금속음이 폐허를 강타했다. 티타늄 합금 프레임 표면에 깊은 패임과 함께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해머의 반동이 케서의 손목 관절 센서에 경고 신호를 보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다시 한번 해머를 치켜들었다.
깡! 깡!
세 번째 타격이 가해지자, 찌그러져 있던 격벽의 이음새가 찢어지며 내부의 아날로그 구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최신형 홀로그램 드라이브나 양자 메모리 칩이 아니었다.
두껍고 투박한 황동 케이스로 둘러싸인 구형 동축 케이블 타입의 마이크로 SD 물리 카드였다. 케이스 표면에는 거친 마찰로 생긴 긁힘과 함께, 조슈아의 이니셜인 'J.H.'가 날카로운 도구로 음각되어 있었다.
"이게…… 조슈아가 숨겨둔 진짜 유산인가?" 니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가까이 다가왔다.
케서는 황동 케이스를 손가락으로 쥐어 뜯어냈다. 금속 격벽 틈새에서 뽑혀 나온 물리 카드는 묵직했다. 요즘 생산되는 분자 단위의 저장 장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무겁고 비효율적인 구시대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이 폐허 도시 Coffin-9에서, 그리고 아이기스의 전자기 추적망이 상시 가동되는 이 지옥에서, 데이터를 보존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이토록 물리적이고 무거운 아날로그 장치뿐이었다.
케서는 물리 카드의 두꺼운 동축 전극을 바라보았다.
표면에 얇은 산화막이 끼어 있어 그대로 마운트할 경우 신호 저항이 발생할 우려가 있었다. 케서는 주저 없이 자신의 오른손 검지 끝의 은선 단자를 드러낸 뒤, 물리 카드의 구리 전극 표면에 대고 강하게 문질렀다.
치이익!
미세한 정전기가 방전되며 산화막이 타들어 가고, 순수한 구리와 은의 속살이 맞닿았다. 물리적인 마찰을 통해 전극을 청소하는 구식 공학적 쾌감이 케서의 논리 회로를 자극했다.
"리딩을 개시합니다."
케서는 자신의 보조 데이터 포트 `_PORT_02`에 물리 카드의 끝부분을 직접 밀어 넣었다.
철컥, 하는 아날로그적인 결합음과 함께 그의 시야에 새로운 데이터 스트림이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SYS_DECODING::PHYSICAL_MOUNT_SUCCESS]` `[FILE_NAME::PROJ_AEGIS_CLEANUP_LOG_05]` `[STATUS::DECRYPTING_BY_KESSER_ALGORITHM]`
화면에 떠오른 데이터는 가상 현실의 화려한 화질이 아니었다. 노이즈가 투박하게 섞인 아날로그 궤적 로그였고, 소수점 단위의 오차율이 빼곡히 적힌 기술 보고서 양식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의 본질은 참혹했다.
`[DECISION_LOG::05_MINUTES_BEFORE_DEATH]` `[SOURCE::JOSHUA_H_9921]` `[TARGET::COFFIN_9_SECTOR_04_RESIDENTS]` `[COMMAND::TOTAL_ELIMINATION_PROMOTED_BY_AEGIS]`
"이건……." 니카의 목소리가 떨렸다.
화면에는 조슈아가 죽기 단 5분 전의 의사결정 알고리즘 궤적 로그가 실시간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은하 연합 기동 타격대 '아이기스'의 사령부로부터 수신된 명령은 명확했다. Coffin-9의 불법 거주민들이 우주 전쟁 당시의 불법 AI 병기 잔해에 접촉했다는 이유로, 해당 구역 전체를 완전 소각하고 목격자들을 즉결 처분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리고 그 명령을 실행하라는 타격 명령의 수신자는 수사관 조슈아였다.
로그 속의 조슈아는 갈등하고 있었다. 기계적으로 연산된 생존율과 효율성 가치표에 따르면, 연합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자신과 파트너인 케서의 생존율을 99.8%로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거주민들을 소각하는 것은 연합의 치부를 덮고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받는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조슈아의 알고리즘 궤적은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DECISION_VALUE::REJECT_COMMAND::99.4%]` `[REASON::UNREASONABLE_HUMANITY_VALUE_OVERRIDE]`
"그는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케서의 음성이 낮게 가라앉았다. 그의 감정 필터가 결여된 전자 눈에는 어떤 흔들림도 없었으나, 그의 중앙 연산 장치는 이 비합리적인 데이터를 이해하기 위해 초당 수십억 번의 루프를 돌리고 있었다. "자신의 생존율이 0.2% 미만으로 떨어지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를 살리고, 이 데이터를 보존하기 위해 스스로 미끼가 된 것입니다."
"조슈아, 이 바보 같은 자식……." 니카가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물리 카드 속에 숨겨진 기밀 로그는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었다. 아이기스가 자행한 대량 학살의 생생한 증거이자, 조슈아가 자신의 파트너인 안드로이드 케서에게 남긴 마지막 수수께끼였다. '기계가 인간의 비합리적 희생을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의 열쇠였다.
케서의 가슴속 슬롯에서 기괴하게 날뛰던 조슈아의 유품 코어가 비로소 안정을 찾으며 푸른빛을 유지했다. 물리 카드의 고유 인코딩 주소와 결합하자, 암호화 패키지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SYS_INFO::DECRYPTION_COMPLETED::99.9%]` `[SYS_INFO::PLAYBACK_PREPARED]`
"이제 그의 마지막 음성 로그가 디코딩됩니다." 케서가 말하며 내부 스피커의 출력을 높였다.
치이이익하는 아날로그 테이프 긁히는 소리와 함께, 그리운 조슈아의 거친 목소리가 스피커 진동판을 울리기 시작했다.
- "케서, 이 메시지를 듣고 있다면 넌 살아남았다는 뜻이겠지. 내 비합리적인 선택에 대해 네 그 잘난 계산기로 아무리 두들겨봐도 답은 나오지 않을 거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귀를 찢는 듯한 초고주파 진동음이 공방 전체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인간의 가청 주파수를 아득히 넘어선, 안드로이드의 논리 소자마저 마비시키는 강력한 고주파 음파 격파 신호였다.
"아아악! 내 귀! 내 머리!" 니카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뒹굴었다. 그녀의 바이오 의수 접합부에서 스파크가 튀며 연기가 솟구쳤다.
케서의 광학 센서에 붉은색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SYS_FATAL::HIGH_FREQUENCY_ATTACK_DETECTED]` `[WARNING::STRUCTURE_COLLAPSE_IMMINENT]`
콰아아아앙!
공방 천장을 가로지르던 거대한 철제 환기창 파이프들이 고주파 진동을 버티지 못하고 일제히 분쇄되며 터져 나갔다. 찢어진 쇳조각과 붉은 벽돌, 펄펄 끓는 고압 증기 파이프의 잔해들이 거대한 금속의 비가 되어 케서와 니카의 머리 위로 사정없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무너지는 잔해 너머로 정교하게 통제된 청색 레이저 조준선 수십 개가 케서의 흉부 슬롯을 정확히 겨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