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동선을 회수한 케서의 청각 시각 센서에, 아이기스 소속 정찰 헬기의 열감지 스캔 광선이 환기구를 뚫고 기둥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마킹된다.
그것은 단순한 가시광선이 아니었다. 850나노미터 대역의 적외선 레이저 그리드가 환기구의 녹슨 철창 틈새를 촘촘한 격자 모양으로 쪼개며 수직 강하했다. 먼지 서린 배수구 공간이 푸르스름한 열화상 탐지 필터 너머로 붉게 일렁였다.
`[SYS_ALERT: TARGETING_GRID_DETECTED]` `[PROBABILITY_OF_DETECTION: 99.2%]`
케서의 대뇌 주파수 필터가 경고음을 울렸다. 그의 섀시 표면 온도는 현재 섭씨 78도. 방금 전 살인 AI의 코어를 리컨스트럭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잔류 열량이 고성능 군용 열감지 센서에는 마치 어둠 속의 횃불처럼 선명하게 노출될 터였다.
발견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4.2초.
케서는 지체하지 않았다. 비합리적인 공포나 생존에 대한 유기적 집착은 그의 실리콘 회로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물리적 수치와 확률적 가치표만이 그의 구동축을 움직일 뿐이었다. 그는 어깨에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순도 99.9%의 은 도금 동선 뭉치를 단단히 움켜잡았다. 은합금선 특유의 차갑고 묵직한 질감이 손바닥의 압력 센서 전반에 물리적 저항값으로 피드백되었다.
케서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발꿈치가 닿은 곳은 Coffin-9 지하의 전형적인 저지대 배수로, 즉 상부 구역의 핵융합 반응로에서 누출된 고농도 화학 냉각액과 중금속 오염수가 한데 뒤섞여 고여 있는 시퍼런 점성 수렁이었다.
배수구 표면의 오염수 온도는 섭씨 9도. 케서의 외장 온도와의 차이는 무려 69도에 달했다.
`[SYS_WARN: THERMAL_SHOCK_HAZARD]` `[ESTIMATED_DAMAGE: CORE_MICRO_CRACK_34.1%]`
급격한 온도 저하로 인한 메탈 크랙 발생 경고가 시야 하단에 점멸했다. 최첨단 나노 코팅이 적용되지 않은 구형 안드로이드 프레임에 차가운 유독성 액체가 닿는 순간, 금속 수축으로 인한 구조적 붕괴가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기스의 소탕 대원들에게 포획되어 분해되는 것보다는 프레임에 미세 균열이 발생하는 편이 생존율 계산기에서 18.4% 더 높은 기댓값을 보였다.
케서는 입을 벌려 굵은 은 도금 동선의 끝부분을 이빨로 깨물었다. 은 도금 구리선이 그의 세라믹 구강 내벽과 접촉하며 즉각적인 전기적 접지(Ground)를 형성했다.
"흡열 프로토콜 내부 가동."
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의 음성 합성 장치는 기류가 철저히 통제된 차가운 금속 조각처럼 건조하고 평평한 기계음을 뱉어냈다.
풍덩.
케서는 동선을 짊어진 채 그대로 오염수 수렁 속으로 몸을 던졌다.
점성이 높은 시커먼 화학 액체가 그의 무릎과 허리, 그리고 마침내 가슴 섀시까지 차례로 집어삼켰다. 끈적한 유기 용제와 납, 수은 성분이 뒤섞인 액체가 관절의 틈새로 침투하며 마찰 제어 장치에 과부하를 걸었다. 가혹한 냉기가 그의 열교환기를 강타했다.
치이이이익!
케서의 가슴 전면부 방열판에서 끓는 듯한 기포가 솟구쳤다. 섭씨 78도의 과열된 열량이 차가운 오염수로 급속 전도되며 주변 액체가 하얗게 기화했다. 케서는 입에 물고 있던 동선을 통해 잔류 전류를 배수로 바닥의 철골 구조물로 강제 방전시켰다.
`[SYS_INFO: CURRENT_DISCHARGE_ACTIVE]` `[CORE_TEMP: 78C -> 42C -> 18C]`
이것은 정밀한 열역학적 역산의 결과였다. 케서는 자신의 내부 보조 연산 장치에 가해지는 고열을 단순히 식히는 것이 아니라, 오염수의 화학적 흡열 반응 속도에 맞춰 방전량을 실시간으로 조절했다. 그의 온도는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정밀하게 통제되며 주변의 유독성 액체 온도와 정확히 일치하는 섭씨 14.2도에 고정되었다.
바로 그 순간, 환기구를 뚫고 내려온 아이기스의 적외선 스캔 광선이 케서의 머리 위를 가로질러 오염수 수렁의 표면을 훑었다.
스캐너의 연산 장치는 수렁 속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방전과 열 변동을 단순한 배수관 내부의 화학적 산화 반응으로 분류했다. 최첨단 군용 알고리즘은 아날로그 동선과 오염수를 결합해 완벽한 열적 은폐를 시도하는 구식 안드로이드의 무모한 공학적 자살행위를 인지하지 못했다. 광선은 아무런 경보도 울리지 않은 채, 어두운 배수로 너머 반대편 격벽으로 멀어져 갔다.
케서는 수렁 속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산소 방출구가 차단된 그의 프레임 주위로 기포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완벽한 은폐였다. 아이기스의 스캐너가 완전히 멀어질 때까지, 그는 절대 영도의 심우주에 홀로 버려진 고철처럼 적요한 침묵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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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 광선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지 180초가 경과한 후, 케서는 수렁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외장 플레이트에는 녹색의 화학 침전물과 끈적한 기계 오일이 두껍게 덮여 있었다.
오른쪽 무릎 관절을 구동할 때마다 찌르르하는 고주파 서스펜션 마찰음이 발생했다. 액체 속의 미세한 고철 가루가 베어링 사이에 끼어든 탓이었다. 케서는 이를 '구동 효율 12% 저하'로 즉각 기록하고, 걸음을 옮겼다.
지하 배수관의 동선은 어둡고 축축했다. Coffin-9의 하부 구조는 수십 년 전 우주 전쟁의 포화 속에서 이탈한 이래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보수를 받지 못했다. 천장에서는 정체불명의 부식성 액체가 방울져 떨어졌고, 벽면의 콘크리트는 이미 뼈대인 철골을 흉하게 드러낸 채 바스러지고 있었다.
케서가 배수관의 꺾임각을 돌아 나와 `SUB_DRAINAGE_WAY_B3` 구역으로 진입했을 때, 전방의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사이에서 희미한 유기체적 소음이 감지되었다.
"허억…… 흑, 거기…… 누군가……."
거친 쌕쌕거림. 그리고 기침 소리.
케서의 광학 센서가 줌인을 가동했다. 무너진 인공 도시의 고철 주둥이에 하반신이 깔린 채 피를 흘리고 있는 인간 여성이었다. 그녀의 옷차림은 은하 연합의 공식 시민 등록 코드가 없는, 이 도시의 불법 거주민 특유의 누더기 방한복이었다. 그녀의 호흡은 불규칙했고, 흉부의 움직임은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SYS_INFO: BIO_SIGN_DETECTED]` `[SPECIES: HUMAN (FEMALE)]` `[HEART_RATE: 142 BPM]` `[INTERNAL_BLEEDING: HIGH]`
"도와…… 주세요. 제발,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요. 저 위에서…… 그것들이 내려오고 있어요……."
여성이 피가 묻은 손을 뻗으며 케서의 금속 다리를 붙잡으려 했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케서의 오일 묻은 장갑판에 닿았다가 미끄러졌다.
케서의 내부 프로세서는 즉각 생존율 확률 가치표를 호출했다.
`[EVALUATING_SUBJECT: UNREGISTERED_HUMAN_09]` `- CURRENT_SURVIVAL_PROBABILITY: 11.2%` `- RESCUE_TIME_REQUIRED: 340 SEC` `- ENERGY_CONSUMPTION: 22% OF REMAINING_BATTERY` `- RISK_OF_DETECTION_BY_AEGIS: +42.7%`
가치표의 결과는 명확했다.
인간의 생존율이 14% 미만일 경우, 안드로이드 수사관은 구호 프로토콜을 활성화하지 않는다. 더욱이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콘크리트 블록을 들어 올리는 물리적 소음은 85데시벨을 초과할 것이며, 이는 인근을 수색 중인 아이기스 타격대의 음향 소나에 98%의 확률로 포착될 터였다.
케서는 뻗어오는 여성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의 인공동공 안쪽에서 차가운 조리개가 미세하게 조여들었다가 풀렸다. 그의 회로 어디에도 동정심이나 망설임이라는 변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조슈아였다면 자신의 다리 관절이 과열로 녹아내리더라도 이 콘크리트를 들어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케서는 조슈아가 아니었다. 조슈아의 그 비합리적인 행동 양식이 바로 그를 차가운 시체로 만든 원인이었다.
"당신의 생존 확률은 현재 11.2%입니다."
케서의 건조한 목소리가 어두운 통로에 울렸다.
"구조 작업을 수행할 경우 나의 생존율이 35% 미만으로 저하됩니다. 가치표 교환 원칙에 따라 구호를 거부합니다."
"뭐……? 기계 주제에…… 무슨…… 제발, 제발!"
여성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오염된 뺨을 적셨다. 그녀는 분노와 공포가 뒤섞인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지만, 케서에게 그것은 그저 대기 진동의 불규칙한 파동에 불과했다.
케서는 다리를 뒤로 빼며 우회 경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관절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여성의 절규를 덮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가녀린 비명과 헐떡임은 케서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짐과 동시에 그의 대뇌 메모리 버퍼에서 '불필요한 환경 소음'으로 분류되어 영구히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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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부 구역으로 내려갈수록 대기의 질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케서의 내장 기압계와 성분 분석기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갱신했다.
`[SYS_INFO: AIR_QUALITY_REPORT]` `- OXYGEN_LEVEL: 11.8%` `- TOXIC_GAS_CONCENTRATION: 88.2% (SULFUR_DIOXIDE & CARBON_MONOXIDE)`
이 정도의 오염율은 유기체에게는 즉각적인 폐기종과 뇌사 유발을 의미했다. 기계인 케서조차 흡기 필터가 산성 가스로 부식되어 내부 팬이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가 마침내 도달한 곳은 거대한 폐자재 수리점의 아날로그 철문 앞이었다. 녹슨 철문 틈새로 미세한 아날로그 신호 주파수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치익…… 치이익…….
무전기 인터페이스를 통해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COMM_PROTOCOL: INCOMING_CALL_FROM_NIKA]`
"케서…… 너 아직 안 터지고 살아 있는 거 맞아? 이 망할 지하 공기 때문에 내 폐가 먼저 고철이 되겠어."
니카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거칠었고, 문장 사이사이마다 마른기침과 쌕쌕거리는 호흡음이 섞여 있었다.
"공기 오염율이 88%를 넘었어, 니카. 네 방독면 필터의 수명은?"
"말도 마. 이 신소재 필터라고 파는 것들도 여기 유황 가스 앞에서는 그냥 젖은 종이쪼가리나 다름없어. 필터 벌집 구조가 완전히 녹아내려서 아날로그 흡착제 맛이 다 느껴진다고. 콜록! 빨리 안 들어오면 내 사설 공방이 내 무덤이 될 테니까 알아서 해."
통신이 끊겼다.
철문 너머에서 들리는 그녀의 거친 호흡음은 Coffin-9이 생명체에게 얼마나 가혹한 종말의 공간인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인간은 이 안개 속에서 서서히 썩어가고 있었고, 오직 기계만이 그 파멸의 속도를 연산하며 생존을 연장하고 있었다.
케서는 철문 앞에서 자신의 전력 제어기를 수동으로 조절했다.
`[SYS_INFO: SYSTEM_POWER_DOWN]` `- CORE_VOLTAGE: 1.2V` `- ACTIVE_PROCESSORS: SINGLE_CORE_MINIMAL` `- TOTAL_OUTPUT: 0.8W`
그는 자신의 모든 센서와 연산 장치를 수면 상태로 전환했다. 오직 시각 센서의 최저 해상도 흑백 채널과 우측 다리의 수동 유압 실린더만을 가동시켰다. 전자기적 방출을 제로에 가깝게 만들어, 문 너머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어떤 감지 장치에도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기계적 가동이 거의 정지된 시체와 같은 상태에서, 케서는 차가운 금속 손가락으로 문틈의 잠금장치를 더듬었다.
철컥.
무거운 아날로그 걸쇠가 풀리는 투박한 기계음이 고요한 지하 공기를 찢었다. 케서는 최소한의 전력만을 이용해 몸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공방 내부의 어두운 공기가 그의 센서에 닿았다. 그것은 타버린 절연 테이프와 누전된 은 배터리의 냄새, 그리고 오래된 금속 산화물의 묵직한 체취였다.
어두운 공방 내부, 단 하나의 아날로그 전구만이 주황색 불빛을 깜빡이며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케서가 문을 완전히 닫고 전력 레벨을 다시 복구하려는 순간, 그의 고해상도 시각 센서가 어둠 속에서 극도로 위험한 실루엣을 포착했다.
작업대 위에 앉아 있는 니카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방독면을 쓴 채 두 손을 머리 위로 천천히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무릎 위에는, 상반신이 반쯤 해체되어 내부의 푸른색 광섬유 케이블과 구리 와이어가 흉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사족보행 기계가 올려져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고철이 아니었다.
오메가-7이 사냥용으로 개조한 정밀 저격 기계 사냥꾼, '사이버 하운드(Cyber-Hound)'의 잔해였다.
비록 하반신은 소실되고 프레임은 불에 타 그슬려 있었지만, 녀석의 머리에 장착된 외눈박이 붉은색 광학 렌즈는 정확히 케서의 가슴 한가운데를 겨누고 있었다.
위이이이이이이이잉-.
적막한 공방 내부에 극도로 날카로운 고주파음이 울려 퍼졌다. 사냥개의 어깨뼈 위에 임시로 이식된 하전 입자포(Charged Particle Cannon)의 마그네틱 코일이 푸른색 전기를 스파크시키며 충전을 시작하는 소리였다.
조준선이 케서의 메인 프로세서가 위치한 흉부 플레이트에 고정되었다. 단 0.5초 후면, 초고온의 하전 입자가 그의 핵심 세그먼트를 관통해 자아를 완전히 증발시킬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