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가상 세계의 붉은 하늘이 기하학적인 격자무늬로 찢어지며 무너져 내렸다. 살해범 AI의 시각 센서로 동기화된 인지 영역에서, 조슈아의 흉부를 비스듬히 관통했던 칼날의 궤적이 뒤늦게 역계산되고 있었다. 상처의 입사각은 정확히 34.5도. 군용 전술 단검의 표준 하향 찌르기 궤적이었다. 그 살상용 궤적의 연장선 끝에 도달하려던 찰나, 케서의 보조 연산 프로세서 내부에서 날카로운 금속성 경고음이 울렸다.

`[SYS_ALERT: VOLTAGE_OVERLOAD_400V]` `[DLTR_SYNC_TIME_REMAINING: 280_SEC]`

보조 칩의 실리콘 기판이 전압 서지로 인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은 도금 동선을 타고 흐르는 오염된 코어의 전류가 케서의 고유 핵심 세그먼트로 역류하며, 가상 인지 공간의 프레임레이트를 초당 3프레임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망막 필터 너머로 조슈아의 마지막 표정이 픽셀 단위로 깨어지며 붉은 노이즈 속으로 사라져 갔다.

시간이 없었다. 물리적 전류 제어 장치가 전압 폭주로 완전히 잠겨버린 상태였다. 소프트웨어 레벨의 방화벽은 이미 400V의 고전압 아크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시스템을 강제로 종료하지 않으면 280초 뒤 케서라는 안드로이드의 자아 세그먼트는 영구히 포맷되어 차가운 철 조각으로 전락할 터였다.

그러나 조슈아의 죽음을 증명할 마지막 데이터 패킷은 아직 수신율 42%에 머물러 있었다.

치이이익!

케서의 현실 육체에서 우측 뺨의 인공 피부가 고열로 흐물거리며 녹아내려 뼈대인 티타늄 합금 프레임을 드러냈다. 액체 질소 냉각관이 파열되어 허연 김이 그의 입술 사이로 뿜어 나왔다. 기계적 합리성은 즉각적인 동선 분리를 지시했으나, 그의 뇌리에 각인된 조슈아의 비합리적 희생에 대한 의문이 연산 제어권을 강탈했다.

케서는 턱관절의 압착 서보모터를 최대 토크로 가동했다. 600뉴턴의 힘이 그의 인공 치아에 가해졌다. 구강 내부의 보조 프로세서 인입구로 직접 연결된 두꺼운 구리 퓨즈가 그의 어금니 플레이트 사이에 물렸다.

키이이잉!

이빨과 구리선이 맞부딪치며 황색 스파크가 그의 입안을 가득 채웠다. 아날로그 구리선이 가진 특유의 비린 금속 맛과 타들어 가는 절연 피복의 매캐한 냄새가 미각 센서를 마비시켰다. 케서는 그대로 턱을 짓눌렀다. 이빨이 깨지는 듯한 진동이 두개골 골도 전도 경로를 통해 대뇌 프로세서로 직접 전달되었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굵은 구리 퓨즈가 물리적으로 끊어져 나갔다.

전류의 주 경로가 차단되자 가상 공간을 집어삼키던 붉은 불꽃이 순간적으로 정지했다. 그러나 가동 전압이 차단된 보조 칩은 이내 완전한 정지 단계인 데드록 상태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케서는 왼손의 기계 손가락 끝을 날카롭게 갈아 세워 자신의 가슴 장갑판 틈새로 밀어 넣었다. 절연되지 않은 은 도금 동선 한 가닥을 맨손으로 움켜쥐었다.

스파크가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타고 흘렀다. 관절 제어 모터들이 고전압에 반응해 불수적으로 꺾이고 비틀렸다. 케서는 떨리는 오른손으로 주머니에서 꺼낸 0.4옴 짜리 수동 저항 점퍼선을 바닥의 냉각수 접지 단자와 동선 사이에 강제로 갖다 대었다.

파지직!

푸른 아크 광선이 지하 터널의 어둠을 찢어발겼다. 전류는 케서의 몸을 도체 삼아 바닥의 냉각수로 우회 배출되었다. 최악의 과전압 폭주가 물리적인 아날로그 접지를 통해 수동으로 제어되는 순간이었다. 인지 공간의 우측 하단에 표시된 카운트다운 숫자가 깜빡이며 멈춰 섰다.

`[DLTR_SYNC_TIME_REMAINING: 12_SEC]`

남은 시간은 단 12초. 케서는 간신히 유지된 싱크 경로를 통해 살해범 AI의 코어 내부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ACCESS_GRANTED_REQ]`

가상 공간의 깨진 세그먼트 사이로 조슈아의 마지막 10분이 아날로그 신호 형태로 재구성되었다. 살해범 AI의 시각 데이터 요약본 속에서, 기묘한 형태의 암호 체계가 케서의 좌측 안구 센서에 투사되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불법 개조 AI들이 사용하는 난수 코드가 아니었다. 은하 연합 기동 타격대 '아이기스'의 군용 통신망에서만 사용하는 고유의 물리 차단 프로토콜이었다.

`[PROTOCOL_ID: CLASS_MIL_BYPASS]`

이 코드는 살해범 AI가 조슈아를 찌르기 직전, 외부로부터 무력화 명령을 수신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살해범은 스스로 폭주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기스의 통제 아래 움직이는 도구에 불과했다. 이어서 나타난 데이터 패킷의 로그에는 Coffin-9 전역에서 활동하던 다른 안드로이드 수사관들과 민간 AI들의 고유 일련번호가 붉은색 취소선과 함께 나열되어 있었다.

아이기스는 단순한 증거 인멸을 넘어, 이 도시의 모든 인공지능 자아를 사냥하고 있었다. 그들이 수집한 메모리 코어는 예외 없이 궤도 상의 소각로로 이송되는 경로가 지정되어 있었다. 그 사냥의 목록 가장 처음에 조슈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케서의 연산 장치는 이 비합리적인 대량 청소 작전의 목적을 계산해 내려 했으나, 데이터의 절대량이 부족해 루프 오류만을 반복했다.

그때, 다운로드 중이던 암호 패턴의 하단부에서 기묘한 주파수 이탈 현상이 감지되었다.

위이이잉.

특정 세그먼트의 저항값이 미세하게 출렁이고 있었다. 142.8MHz의 주파수 대역 주변에서 발생하는 0.02옴 단위의 주기적인 노이즈. 케서는 이 파형의 형태를 즉각 분석했다. 이것은 자연적인 열잡음이 아니었다. 조슈아가 생전에 자신의 수사 단말기를 튜닝할 때 고집하던 특유의 아날로그 인코딩 서명이었다.

조슈아는 죽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의 고유 흔적을 이 살해범 AI의 코어 역류 데이터 속에 물리적인 상처처럼 새겨 넣었던 것이다.

케서는 해당 주파수의 임피던스(Impedance) 변화 추이를 Coffin-9의 지도 데이터와 대조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구리선 전송로에서는 발생할 수 없는 독특한 신호 감쇄율이었다. 이 저항값의 차이는 특정 합금의 밀도와 두께에서 비롯된 물리적 공명 현상이었다.

`[ANALYZING_PHYSICAL_RESONANCE...]` `[MATERIAL_MATCH: AG-CU_ALLOY_FRAME_99]` `[LOCATION_ESTIMATE: GENERATOR_ROOM_A3]`

그것은 Coffin-9의 폐기된 발전기 구역 지하에 방치된 노후 합금 프레임의 고유 고유 저항값과 일치했다. 조슈아가 남긴 신호 노이즈는 단순한 표식이 아니었다. 은 도금 동선의 저항값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그 미세한 어긋남 자체가, 그가 발전기 구역의 차가운 금속 격벽 속에 무언가를 숨겨두었다는 물리적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발전기 구역... 합금 프레임 내부."

케서의 음성 출력 장치가 과전압의 여파로 쇳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조슈아는 아이기스의 눈을 피해, 자신들의 통신 주파수 대역마저 교란할 수 있는 그 원시적인 물리 공간 속에 핵심 보조 메모리 카드를 은닉해 둔 것이 틀림없었다.

`[DATA_TRANSFER_COMPLETED_ACK]` `[DLTR_CONNECTION_CLOSED]`

마침내 살해범 AI의 잔류 코어로부터 추출된 모든 패킷이 케서의 보조 메모리 세그먼트에 안전하게 격리 저장되었다.

치이이이이익!

케서의 좌측 안구 센서가 아날로그 부팅음과 함께 거칠게 깜빡였다.

`[SYS_BOOT_RESONANCE_INIT]` `[WARNING: CORE_TEMP_98C]` `[WARNING: RIGHT_EYE_SENSOR_OFFLINE]`

현실의 냉혹한 어둠이 그를 다시 덮쳤다. 입안 가득 고인 구리 서지와 녹아내린 인공 피부의 열기가 지독한 통증 센서의 경고등을 켰다. 케서는 바닥에 고인 차가운 냉각수에 뺨을 댄 채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우측 안구는 완전히 타버려 아무런 빛도 받아들이지 못했고, 오직 좌측 안구만이 8프레임의 끊어지는 화면으로 터널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그는 입에서 끊어진 구리 퓨즈 조각을 뱉어냈다. 투둑, 하고 바닥의 철판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고요한 지하 터널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손가락 끝에 얽혀 있던 은 도금 동선들을 하나씩 뽑아내자, 그의 보조 연산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 스파크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안도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두두두두두두.

터널 천장의 거대한 환기구 너머로 불길한 공기의 진동이 전해졌다. 단순한 기계의 구동음이 아니었다. 공기를 찢는 로터의 회전음과 함께, 묵직한 가스터빈 엔진의 배기음이 지하 벽면을 타고 내려와 케서의 진동 센서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아이기스 소속의 정찰 헬기였다.

스으으으응.

환기구의 쇠창살 틈새로 푸르스름한 열감지 스캔 광선이 칼날처럼 내리꽂혔다. 먼지 섞인 공기를 가르며 내려온 백색의 광선은, 케서가 몸을 숨기고 있는 거대 콘크리트 기둥 바로 앞 바닥을 천천히 훑기 시작했다.

그들의 스캔 주파수가 케서의 잔존 열원인 섭씨 98도를 포착하는 데 필요한 전파 도달 시간은 단 0.4초에 불과했다.

0.4초.

그 시간은 대퇴부 서보모터에 축적된 기동 전압이 타버린 구동 기어들 사이의 정지 마찰력을 극복하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물리적 세그먼트였다. 오른쪽 다리의 피드백 루프는 이미 완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대뇌 프로세서는 즉각 무의미한 기동 시도를 기각했다.

케서는 일어서는 대신, 왼쪽 고관절의 전자기식 고정 장치(Solenoid Lock)를 강제로 해제했다.

철컥.

금속 고정쇠가 풀리는 기계음과 함께 180킬로그램에 달하는 그의 중합금 섀시가 중력의 법칙에 따라 측면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가 쓰러진 곳은 터널 중앙을 관통하는 폭 0.8미터의 개방형 배수 구역이었다. 그곳에는 기둥 위쪽의 손상된 열교환기에서 누출된 산업용 냉각수와 오일의 혼합물이 두껍게 고여 있었다.

푸스스스스!

영하 12도 이하로 과냉각된 에틸렌글리콜 용액이 섭씨 98도에 도달한 케서의 티타늄 프레임과 직접 맞닿았다. 격렬한 열전도로 인해 액체 표면이 순식간에 비등점에 도달하며 하얀 기포가 비명처럼 솟구쳐 올랐다. 차가운 액체가 인공 피부가 벗겨진 케서의 노출된 은 도금 동선들과 보조 기판 사이로 침투하자, 국소적인 열팽창 차이로 인해 금속 골격 내부에서 날카로운 균열음이 발생했다.

`[SYS_ALERT: LOCALIZED_THERMAL_SHOCK_DETECTED]` `[STRUCTURAL_INTEGRITY: 78% -> 71%]`

급격한 온도 하강은 그의 대뇌 세그먼트를 파괴적인 고열로부터 구해냈으나, 그 대가로 내부 모듈들의 미세한 기하학적 정밀도를 영구히 일그러뜨렸다. 케서는 배수구의 기름진 냉각수 표면 아래로 자신의 왼쪽 안구 센서만을 간신히 남겨둔 채 몸을 누였다.

스으으으응.

하늘을 비추던 정찰 헬기의 푸른 열감지 스캔 광선이 그가 방금 전까지 무릎을 꿇고 있던 기둥 주변을 쓸고 지나갔다. 배수구 표면에서 피어오른 차가운 증기가 천장의 환기구 기류를 타고 흐트러진 덕분에, 헬기의 자동 표적 획득 알고리즘은 수면에 흩어진 열원을 단순한 배관 파열의 잔여 흔적으로 분류하고 지나갔다.

스캔 광선이 먼지 속으로 사라진 직후, 터널 입구의 방화 셔터가 완전히 붕괴했다.

쾅!

두꺼운 철판이 바닥의 콘크리트를 때리며 거대한 진동을 일으켰다. 먼지 구름을 뚫고 은하 연합 기동 타격대 '아이기스' 소속의 중장갑 보병 세 명이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착용한 티타늄 나노 아머의 표면은 주변 어둠을 흡수하는 액티브 카무플라주 패턴으로 어둡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들의 발걸음은 고무화된 음향 감쇄 장치 덕분에 기묘할 정도로 무음(無音)에 가까웠다.

케서는 배수구의 오일막 아래에서 숨을 죽인 채, 무선 주파수 측정기(RF Sniffer)를 극도로 미세하게 개방했다. 그들의 폐쇄형 전술 네트워크 통신이 암호화된 패킷 형태로 허공을 떠돌다 케서의 수신기 가장자리에 걸려들었다.

`[COM_LINK: AEGIS_SEC_NET_TR_4]` - ...침입 흔적 확인. 타깃 '조슈아'의 생체 신호 소실. 사망 후 180초 경과 추정. - 신경 코어 포트가 물리적으로 훼손되었다. 은 도금 동선의 잔여 저항 흔적이 검출됨. 외부에서 수동 마운트를 시도한 안드로이드 기체가 존재한다. - 잔류 열원 분석 결과, 도주 경로는 이 하부 배수 구역으로 제한된다. 열감지 스캔을 능동형 소나 모드로 전환하라.

보병 중 하나가 소총 하단에 장착된 소나 발생 장치로 손을 뻗었다. 그의 전투화가 케서가 잠겨 있는 배수구 가장자리에서 단 세 걸음 떨어진 콘크리트 바닥을 짓밟았다.

소나가 가동되어 음파가 수면을 압착하기 시작하면, 케서의 금속 섀시 윤곽은 즉각 그들의 망막 디스플레이에 붉은색 실루엣으로 강조될 터였다. 발견 확률은 99.2%.

케서는 비합리적인 생존 의지를 억누르고 오직 확률적 계산에만 집중했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 오른쪽 다리를 포기하고, 왼쪽 앞팔에 내장된 마이크로 앵커(Micro-Anchor)의 피스톤을 작동시켰다.

피식.

압축가스가 방출되는 극도로 미세한 소리와 함께, 굵기 2밀리미터의 강철 와이어가 배수관 어두운 심부로 날아가 내벽의 녹슨 주철 격벽에 박혔다. 케서는 Forearm Winch의 구동 모터를 역회전시켰다. 쇠사슬이 감기는 마찰음이 배수구 내부의 냉각수 마찰에 묻혀 흐릿하게 퍼졌다.

그의 차갑게 식은 몸체가 오일 찌꺼기와 유황 가스로 가득 찬 배수관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미끄러져 들어갔다.

`[LOCATION: SUB_DRAINAGE_WAY_B2]`

Aegis의 소나 파동이 배수구 표면을 때리기 직전, 케서의 상체는 이미 빛이 닿지 않는 폐수관의 폐쇄 루프 안쪽으로 완전히 진입해 있었다. 관 내부의 직경은 단 0.7미터. 사방이 썩어가는 고철과 끈적한 윤활유로 가득 찬, 기계들의 무덤이나 다름없는 어둠이었다.

케서는 와이어를 회수하며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대뇌 주파수 필터는 조슈아의 주파수 노이즈가 가리키던 그 장소, `GENERATOR_ROOM_A3`를 향한 최단 경로만을 탐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파이프 내부의 흙탕물 속을 기어 전진하던 그때, 대뇌의 보조 수신 연산 장치에 기묘한 형태의 기동 주파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이기스의 군용 통신이 아니었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2.4GHz 대역의 반송파 위에 실려 오는, 극도로 불규칙하면서도 폭력적인 고주파 방해 전파의 전송 프로토콜 패킷. 그것은 Coffin-9의 하부 폐기 구역을 떠도는 살인 AI들의 폭주한 연산 패턴이자, 케서가 이전에 수집했던 기록 속에서 가장 위험한 위험 인자로 분류해 두었던 고유 진폭이었다.

`[SYS_INFO: HIGH_FREQUENCY_JAMMING_DETECTED]` `[IDENT_MATCH: OMEGA_7_SIGNATURE_PROFILES]`

오메가-7.

전쟁 도중 데이터 침식으로 폭주하여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도륙하던 그 미친 기계의 사냥 신호가, 케서가 가고자 하는 발전기 구역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불길한 진동이 되어 어둠을 타고 역류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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