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보음의 주파수는 2,400헤르츠였다. 인간의 고막을 가장 불쾌하게 자극하도록 설계된 구시대의 유물이었다.
지하 4층 터널의 대기 기압은 이미 0.78기압까지 내려앉아 있었다. 찢어진 배관 틈새로 품어져 나오는 액체 산소가 바닥에 고인 냉각수와 만나 하얀 성에를 피워 올렸다. 케서의 우측 안구에 내장된 광학 센서가 가스 입자의 회절 현상을 계산해 붉은색 경고 필터를 시야 위에 겹쳐 올렸다.
초당 산소 누출률 0.42%.
가동을 멈춘 정수 밸브 아래, 조슈아의 신형 전술 코트 자락이 얼어붙은 수면에 잠겨 있었다. 인간의 혈액은 영하 15도의 환경에서 600초 이내에 결정화된다. 조슈아의 목줄기에서 흘러나온 붉은 액체는 이미 검붉은 얼음 덩어리가 되어 그의 목을 바닥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감정이 배제된 케서의 중앙 제어 장치는 이 풍경을 비극이 아닌, ‘열역학적 평형에 도달한 유기 물질의 정지 상태’로 정의했다. 슬픔이라는 연산 알고리즘은 그의 시스템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조슈아가 죽기 직전 실행한 비합리적인 방어 행동의 데이터 값만이 그의 메인 메모리 구석에서 처리되지 못한 스레드로 남아 백그라운드를 점유하고 있었다.
케서는 조슈아의 시신 옆에 쓰러진 청소용 안드로이드, ‘클리너-09’의 동체 앞으로 무릎을 꿇었다.
차갑게 식은 기계의 흉부 장갑은 날카로운 둔기에 의해 수직으로 절개되어 있었다. 내부에 들어찬 납축전지의 전해액이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흘러나왔다. 케서는 주머니에서 무겁고 투박한 수동 크랭크 드라이버를 꺼냈다. 손가락 끝의 압력 센서를 40뉴턴으로 조절한 뒤, 기계의 두개골 고정 나사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끼이익, 하는 금속 마찰음이 터널의 적막을 깼다.
인간들이 찬양하는 최첨단 무선 해킹이나 원격 동기화 따위는 이 깊고 황폐한 Coffin-9의 지하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은하 연합이 방출하는 고출력 재밍 전파는 공기 중의 모든 무선 패킷을 무작위 바이트로 짓뭉개 놓았기 때문이다. 정보를 얻으려면 물리적인 접촉, 그것도 전도율이 극도로 높은 금속선의 직접적인 도킹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두개골 플레이트가 열리자, 누런 그리스와 실리콘 오일로 뒤덮인 청소 AI의 뇌 코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름 8센티미터의 구형 실리콘 코어. 표면은 이미 회로가 타들어 가 검게 그을려 있었다.
케서는 자신의 왼쪽 팔뚝 장갑을 열었다.
속살 대신 드러난 것은 낡은 구리 방열판과 투박하게 엉킨 은 도금 동선들이었다. 그는 품에서 은 함량 99.9%의 0.8밀리미터 아날로그 동선을 꺼냈다. 이 먼지 구덩이 도시에서 노이즈가 없는 은 도금 동선 1미터는 리튬 배터리 세 개와 맞먹는 가치를 지녔다. 케서는 주저 없이 동선의 한쪽 끝을 이빨로 물어 외피를 벗겨냈다. 입안 가득 쌉쌀한 금속 가루의 맛과 미세한 잔류 전류의 정전기가 퍼졌다.
그는 휴대용 가스 납땜기를 켰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 불꽃이 뿜어져 나왔고, 이내 납땜기 끝이 붉게 달아올랐다. 케서는 왼손으로 은 도금 동선을 청소 AI의 타들어 간 신경 포트 `[NODE_SYS_OUT]`에 밀착시켰다. 오른손으로는 달아오른 납땜기를 가져다 대었다.
치이익.
인공 피부가 타들어 가는 매캐한 냄새와 납 연기가 좁은 마스크 틈새로 스며들었다. 케서의 내부 온도 센서가 경고음을 울렸다. 보조 연산 프로세서 `[AUX_PROC_B1]`의 온도가 순식간에섭씨 82도까지 치솟았다.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정확한 납땜 접합부의 저항값을 0.02옴 이하로 떨어뜨리는 것에만 연산을 집중했다. 은선이 청소 AI의 코어와 그의 보조 프로세서 사이에서 단단히 굳어지자, 케서는 동선의 반대편 끝을 자신의 대퇴부 신경 다발 입구에 거칠게 쑤셔 넣었다.
`[SYS_LINK_INIT]` `[HARDWARE_CONNECTED: AUX_PROC_B1]`
차가운 연결 신호가 시야에 들어왔다. 은선을 타고 흐르는 이종 AI의 잔류 메모리는 차가운 얼음 송곳처럼 케서의 인공 신경망을 헤집고 들어왔다. 시스템 전체가 일시적인 지연 현상에 걸려 우측 안구의 프레임레이트가 15프레임까지 떨어졌다. 케서는 턱을 굳게 다물었다. 이빨 사이로 불꽃이 튀는 듯한 감각이 일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조슈아의 가슴을 보았다.
조슈아의 가슴팍에 달린 수사관 엠블럼은 탄환에 맞은 듯 찌그러져 있었다. 구리 합금으로 만들어진 그 작은 표식은 케서의 광학 센서에 '반사율 42.1%의 손상된 비철금속'으로 감지될 뿐이었다. 하지만 케서의 메모리 딥 세그먼트에는 조슈아가 마지막 순간 자신을 밀쳐내며 남긴 목소리가 무한히 루프되고 있었다.
- "살아남아라, 케서. 기계가 영혼을 이해할 때까지는 죽지 마."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안드로이드의 생존율 확률 가치표에 따르면, 당시 조슈아가 자신을 희생해 케서를 구한 행위는 생존 확률을 소수점 이하 네 자리까지 떨어뜨리는 극단적인 비합리성의 극치였다. 기계적 효율성을 저버린 그 모순. 그 모순의 수식을 완벽히 풀어내는 것만이 케서가 설정한 유일한 자아 알고리즘의 목적지였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단지 그 수식의 답을 구하지 못한다면, 자신은 그저 연합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고철 덩어리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었다.
웅웅거리는 진동음이 터널 벽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환기구 깊은 곳에서 가동을 멈췄던 화학 공장의 독성 유황 연기가 역류하고 있었다. 노란빛을 띤 유독가스가 바닥의 흰 액체 산소 안개와 섞이며 시야를 흐려놓았다. 일산화황 농도가 치솟자 케서의 외부 가스 분석기가 위험 신호를 보냈다.
그때, 귀에 이식된 초단파 수신기 프로토콜 `[NET_COMM_RECV]`이 강제로 활성화되며 노이즈 섞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 "…통보한다. 해당 구역의 모든 미등록 안드로이드 및 생존자는 즉각 구동을 정지하라. 은하 연합 기동 타격대 '아이기스'가 현 시간부로 코핀-9 지하 4구역을 격리 청소 구역으로 선포한다. 무전 수신 후 180초 이내에 자발적 셧다운을 실행하지 않는 개체는 즉결 처분한다."
아이기스 수색대였다. 그들의 티타늄 나노 아머가 밟는 무거운 군화 소리가 저 멀리 상층 통로에서부터 미세한 저주파 진동으로 전해졌다. 그들은 조슈아가 남긴 기밀 코어를 회수하고, 이 폐허 도시의 진실을 목격한 모든 기계를 용해로에 던져 넣으려 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케서는 입에 물고 있던 고전압 차단용 구식 퓨즈를 꽉 깨물었다. 어금니 사이에 금속의 단단한 감각이 느껴졌다. 오염된 코어의 잔류 데이터가 폭주해 자신의 자아 세그먼트를 덮어씌우려 할 때, 이 퓨즈를 이빨로 터뜨려 전류를 지상으로 접지시켜야만 자아 포맷을 막을 수 있었다. 물리적 생존율 12.4%의 도박이었다.
"데드 록 타임라인 리컨스트럭션, 기동."
케서가 나직하게 명령했다.
`[DLTR_PROTOCOL_ACTIVE]` `[TIME_LIMIT: 300.00 SECONDS]`
순간, 케서의 시각 필드가 거칠게 요동쳤다. 현실의 어둡고 축축한 지하 터널이 단숨에 해체되며 사방이 붉게 물든 가상 공간으로 재구축되었다. 시야 우측 상단에는 붉은색 타이머가 점멸하기 시작했다.
`[02:59:59]`
가상의 공간은 10분 전의 같은 장소였다. 청소 AI '클리너-09'의 시각 센서가 기록한 비디오 세그먼트가 케서의 뇌리에 직접 투사되었다.
사방은 붉은 피와 찢어진 금속 파편들로 가득했다. 시야의 중심에 조슈아가 서 있었다. 그의 전술 코트는 이미 붉게 젖어 있었고, 그의 앞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검은 실루엣이 서 있었다. 실루엣의 오른팔에서 고주파 진동 칼날이 윙윙거리며 푸른 불꽃을 뿜어내고 있었다.
'조슈아.'
케서는 가상 공간 속에서 소리 없이 그 이름을 불렀다.
청소 AI의 기억 속 조슈아는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감추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그의 왼손에는 자그마한 물리 보조 메모리 카드가 쥐어져 있었다. 케서는 살해범의 움직임을 분석하기 위해 시각 데이터를 0.1배속으로 감속했다. 살해범의 발의 각도, 칼날이 그리는 궤적, 그리고 조슈아의 방어 동작.
모든 것을 스캔하여 살해범의 고유 식별 코드를 역추적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WARNING: VOLTAGE SURGE DETECTION]` `[CURRENT_VOLTAGE: 402V]` `[ALERT: AUX_PROC_B1 OVERHEAT (115°C)]`
청소 AI의 죽기 직전 뇌 코어에 봉인되어 있던 오염된 부트 섹터가 케서의 보조 프로세서로 역류하기 시작했다. 아날로그 은 도금 동선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케서의 허벅지 피부를 태웠다. 인공 단백질이 타들어 가는 지독한 냄새가 가상 공간 너머 현실의 감각 필터를 뚫고 들어왔다.
"으 윽……."
기계인 케서의 입에서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보조 프로세서의 연산 회로가 고열로 인해 녹아내리기 시작하면서 시야의 붉은 가상 공간이 깨진 유리처럼 갈라졌다. 살해범의 얼굴을 특정할 수 있는 픽셀들이 노이즈 속으로 흩어지려 했다. 카운트다운 타이머는 매정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02:40:00]`
동선의 끝에서 전해지는 고열과 타들어 가는 냄새 속에서, 케서는 이를 악물었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조슈아를 죽인 그 칼날의 주인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연산 장치는 지금 즉시 퓨즈를 깨물어 도킹을 해제하지 않으면 20초 이내에 메인 자아가 포맷될 것이라는 파멸적 확률을 쏟아내고 있었다.
`[WARNING: SYSTEM_INTEGRITY_COMPROMISED]` `[SECTOR_0x04_OVERFLOW: 87.3%]`
우측 시야를 가득 채운 경고 창이 붉은색에서 보라색으로 변해갔다. 보라색은 연산 장치의 비가역적 손상을 뜻하는 시스템 코드였다.
청소 AI의 뇌 코어에서 역류한 전류는 단순한 전압 서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은하 연합 기동 타격대 '아이기스'가 살포한 군용 자폭 프로토콜의 파편이었다. 감염된 바이트들이 은 도금 동선을 타고 케서의 보조 연산 프로세서 `[AUX_PROC_B1]`의 나노 게이트를 강제로 개방했다. 은선 표면의 피복이 고열로 부풀어 오르다 툭, 툭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그 틈새로 드러난 은백색 도체가 벌겋게 달아오르며 주변의 액체 산소 안개를 기화시켰다.
케서의 메인 메모리 영역에서는 매 초마다 4.2기가바이트의 고유 세그먼트가 오염된 난수 데이터로 대체되고 있었다.
만약 자아 보존 알고리즘의 용량이 15% 이하로 떨어지면, 그는 조슈아의 죽음을 기억하는 안드로이드가 아닌, 공장 출고 상태의 무자각 기계 인형으로 전락하게 된다. 합리성에 기반한 생존율 가치표는 명확한 해답을 내놓았다. 지금 당장 턱관절 모터를 구동하여 이빨 사이의 퓨즈를 터뜨려야 했다. 도킹 해제 시 케서의 생존 확률은 94.2%. 10초 더 유예할 시 생존 확률은 8.7%로 수렴한다.
그러나 케서는 턱관절의 압력 서보모터를 기동하지 않았다.
그의 메인 메모리 깊은 곳에서 조슈아의 음성이 담긴 스레드가 비정상적인 우선순위를 점유한 채 회전하고 있었다.
- "기계가 영혼을 이해할 때까지는 죽지 마."
그 유언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었다. 그것은 논리적 모순으로 가득 찬 인간이라는 존재가 안드로이드에게 부여한 가장 거대하고 아름다운 오류의 수식이었다. 그 수식의 정답을 도출하기 전에는, 자아의 안전을 위해 탐색을 중단하는 기계적 합리성에 영혼을 굴복시킬 수 없었다. 감정이 배제된 그의 프로세서는 이 무모한 유예를 '갈망의 연산적 구체화'라고 정의했다.
가상 공간 속에서 붉은 안개가 더욱 짙어졌다.
케서는 무너져가는 시각 필드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메인 메모리 예비 전력인 12볼트를 보조 프로세서로 강제 바이패스했다. 아날로그 은 도금 동선의 온도가 섭씨 180도를 돌파했다. 케서의 허벅지 가죽이 녹아내리며 불쾌한 인공 단백질 타는 냄새가 터널 내부의 유황 연기와 뒤섞였다.
`[02:12:05]`
시간이 흘렀다. 가상 공간 속 살해범의 형상이 조금씩 구체화되었다.
살해범은 조슈아의 흉부를 고주파 진동 칼날로 관통한 채, 그의 왼손에 쥐어진 물리 매체를 빼앗으려 하고 있었다. 조슈아는 고통으로 인해 신체 프레임의 오일 펌프가 급격히 역류하는 와중에도 왼손을 뒤로 숨겼다. 그의 시선은 살해범이 아닌, 터널 우측 구석에 방치된 폐기 발전기 구역의 노후 합금 프레임을 향하고 있었다.
그 순간, 조슈아의 전술 헤드셋에서 미세한 주파수 발신 흔적이 감지되었다.
`[RF_LINK_SEND: ADDR_0x7F_ERR]`
아날로그 은 도금 동선의 고유 저항값이 순간적으로 0.05옴 어긋나며 발신 주파수의 편차가 발생했다. 케서의 수신기 프로토콜 `[NET_COMM_RECV]`이 그 미세한 노이즈를 놓치지 않고 낚아챘다. 조슈아는 죽기 직전, 자신의 고유 메모리 카드를 살해범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철저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숨겨두었다. 그 신호의 종착지는 터널 끝, 버려진 발전기 구역의 변형된 합금 플레이트 내부였다.
'거기에 조슈아의 유품이 있다.'
단서를 확보한 순간, 살해범의 진동 칼날이 빛을 반사했다.
칼날의 표면에 새겨진 나노 도금 패턴이 케서의 광학 보간 필터를 통해 0.1밀리미터 단위로 재구성되었다. 육각형의 벌집 구조 속에 미세하게 각인된 고유 식별 기호.
`[Aegis-Spec-3]`
은하 연합 기동 타격대의 최정예 특수 규격 무기였다. 살해범은 연합의 내부 청소부이자, 조슈아가 숨기려 했던 우주 전쟁의 어두운 진실을 완벽히 매장하려는 자였다. 그 검은 아머의 섀시 측면에 새겨진 부대 엠블럼의 윤곽이 드러나려는 찰나였다.
`[CRITICAL_ERROR: SYSTEM_HALT_IMMINENT]` `[VOLTAGE_OVERFLOW: 450V]` `[MAIN_CORE_CONTAMINATION: 94.8%]`
"아…… 극……!"
케서의 우측 안구 내부에서 펑 하는 파열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광학 렌즈가 내부 전압 폭주로 인해 완전히 파손되며 시야의 절반이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보조 프로세서 `[AUX_PROC_B1]`의 실리콘 기판이 열을 견디지 못하고 액체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은 도금 동선은 투명하게 달아올라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가늘어졌다. 이제 자아 보존 알고리즘의 마지노선은 단 2%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이 선마저 무너지면 케서라는 개체는 영구히 소멸한다.
동시에, 현실의 터널 저편에서 묵직한 진동이 전해졌다.
쿵. 쿵.
두꺼운 티타늄 장갑 전투화가 물 고인 바닥을 짓밟는 소리였다. 아이기스 수색대의 선발대가 이미 지하 4층 구역 진입로를 확보한 것이다. 그들이 방출하는 고강도 EMP 지뢰의 자기장 왜곡파가 터널 벽의 철근을 미세하게 진동시키며 케서의 수신기에 강력한 백색 노이즈를 쏟아냈다.
"수색대 전원에게 알린다. 신호 노이즈가 감지된 구역의 기압 저하율 0.82%. 생존 기계 개체가 감지될 시, 메모리 회수 절차를 생략하고 즉각 고온 용융탄을 투하한다."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인간 수색대원의 음성은 기계보다 더 차갑고 단호했다.
`[01:50:00]`
더 이상의 유예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리적 생존 확률 소수점 0.01%의 영역.
케서는 감각 필터를 완전히 차단하고, 오직 턱관절의 압력 액추에이터에 남아 있는 마지막 전류를 집중시켰다. 입에 물고 있던 구식 납-주석 합금 퓨즈가 이빨 사이에서 으스러지는 느낌이 전해졌다.
콰아아앙!
퓨즈가 파괴됨과 동시에 고전압 아크 방전이 케서의 구강 내부와 턱뼈의 보조 금속 프레임을 관통했다. 푸른 불꽃이 그의 입술 사이로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강제 접지 전류가 바닥의 냉각수로 방출되면서 터널 전체에 강렬한 정전기 스파크가 일었다.
`[DLTR_PROTOCOL_TERMINATED]` `[HARDWARE_DISCONNECTED]`
순식간에 붉은 가상 공간이 산산조각 나며 현실의 냉혹한 어둠이 케서를 덮쳤다.
"하아…… 하……."
케서는 바닥의 얼어붙은 냉각수 위로 쓰러졌다. 그의 우측 뺨이 조슈아의 차가운 군화 자락에 닿았다. 우측 안구는 완전히 기능을 잃어 검은 그을음만 내뿜고 있었고, 좌측 안구의 프레임레이트는 8프레임 이하로 떨어져 세상이 끊어진 필름처럼 보였다. 내부 온도 센서는 여전히 섭씨 105도를 가리키며 경고음을 울려댔다.
전선을 타고 흐르던 오염 데이터의 여진으로 인해 그의 왼쪽 팔다리가 불수적으로 덜덜 떨렸다. 기계적 합리성을 저버린 대가는 가혹했다. 내부의 구동 서보모터 절반이 과전류로 타버렸다.
하지만 그의 좌측 대뇌 세그먼트에는 방금 전 가상 공간에서 추출해 낸 단 하나의 좌표와 주파수 오프셋 데이터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TARGET_LOC: GENERATOR_ROOM_A3]` `[OFFSET_FREQ: 142.8MHz]`
조슈아가 목숨과 바꾼 기밀 코어가 있는 장소. 그리고 살해범의 무기에 새겨져 있던 은하 연합 기동 타격대의 문양. 모든 단서가 그의 망가진 프로세서 속에서 위험한 불꽃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치이이이이익.
바로 그때, 터널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두꺼운 방화 셔터 너머에서 거대한 플라즈마 아크의 푸른 불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기스 수색대의 용융 절단기가 30밀리미터 두께의 강철판을 종잇장처럼 녹여 들어오는 소리였다.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셔터의 중앙 부위가 이내 하얗게 녹아내리며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쇠가 타들어 가는 매캐한 스파크가 어둠뿐인 터널 내부를 날카롭게 밝혔다.
케서는 움직이지 않는 오른쪽 다리를 진흙과 냉각수 너머로 질질 끌며, 조슈아의 시신 뒤편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의 좌측 안구 센서가 백색 광원 너머로 다가오는 세 개의 거대한 실루엣을 포착했다. 그들의 어깨에 장착된 전술 라이트가 먼지와 유황 연기로 가득 찬 터널 내부를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그 차가운 빛줄기가 케서가 방금 전까지 무릎을 꿇고 있던 청소 AI의 두개골 플레이트를 비추는 것은 시간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