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STEM::WARNING]` `[TIME_UNTIL_ORBITAL_SATURATION_BOMBARDMENT::00:29:59]`
망막 우측 상단에 인입된 적색 디지털 카운트다운의 잔상이 시각 센서의 감광 소자를 자극했다. 숫자가 1초 줄어들 때마다 잔상의 노이즈 수치가 미세하게 요동쳤다.
오염수가 뚝뚝 떨어지는 하수관 천장 아래서, 케서는 스스로를 밀어 올렸다. 새로 장착한 은하 연합 군용 보조 프로세서 `Aegis_Mil_Aux_Processor_07`이 가슴 안쪽에서 묵직한 고주파 진동을 일으키며 연산을 개시하고 있었다.
"커헉, 퉤! 케서, 너…… 방금 그 궤도 레이저, 미친 거 아냐?"
니카가 부러진 바이오 의수를 움켜쥔 채 진흙투성이 바닥을 기어 나왔다. 기계 관절의 접합 유압선에서 누출된 황색 오일이 하수의 검은 기름띠와 섞여 기괴한 무늬를 그렸다. 평형 감각 제어기가 파손된 그녀의 신체는 왼쪽으로 15도 가량 기울어 있었다.
"궤도 섬전 미사일의 융단 타격이 예정되어 있다."
케서는 차갑게 식은 기계음으로 말했다. 시각 센서의 초점을 니카의 파손된 의수로 맞추자, 즉시 수치화된 고장 진단 로그가 가상 스크린에 도출되었다.
`[TARGET_SUBJECT::NIKA]` `[EQUIPMENT_INTEGRITY::24.3%]` `[SURVIVAL_PROBABILITY_WITHOUT_INTERVENTION::8.4%]`
"뭐? 융단 타격? 그게 무슨 개소리야! 이 구역에 남은 쓰레기들을 다 쓸어버리겠다고?"
"정확히는 Coffin-9 전체의 유기체와 비인가 안드로이드의 완전 소멸이다."
케서는 대답을 마친 후, 가슴 플레이트 하단에 돌출된 수냉식 수축 합금 파이프의 압력 밸브를 제어하기 시작했다. 오메가-7의 흉부에서 강제로 뜯어낸 군용 프로세서는 성능이 뛰어난 만큼 전력 소비량과 내부 발열량이 격렬했다. 보조 연산 프로세서의 내부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었다.
`[TEMP_SYS::84.7C]` `[TEMP_SYS::89.1C]` `[TEMP_SYS::93.5C]`
케서는 입에 물고 있던 아날로그 은 도금 동선의 끝자락을 어금니로 꽉 깨물었다. 구강 내부의 보조 접지 단자에 구리 도선의 피복이 벗겨진 나선이 닿자, 찌릿한 역서지 과전류가 혀끝에서부터 인공 척추 신경망으로 번졌다. 타들어 가는 실리콘 냄새가 비강 센서로 감지되었으나, 케서의 감정 필터가 존재하지 않는 뇌 코어는 이를 고통이 아닌 단순한 '물리적 에너지 손실 지표'로 분류했다.
"냉각수 압반 인입률 100% 개방."
`[PUMP_PRESSURE::4.2_BAR]` `[TEMP_SYS::93.5C -> 78.2C]`
소수점 단위로 급하강하는 온도를 확인한 케서는 곧바로 군용 프로세서의 미사용 메모리 뱅크를 자원 할당 영역으로 격상시켰다. 8화에서 확보했던 정찰 터미널의 은하 연합 통신 백도어 포트 프로토콜 번호 `Port-404-Aegis`를 가상 인지 공간에 띄웠다.
"니카. 움직일 수 있는가."
"팔 하나가 날아갔어도 다리는 멀쩡해! 근데 저 궤도 미사일들을 피해서 어디로 가겠다는 건데? 이 지하는 전부 막혔어!"
"최상단 기요틴 터널로 가야 한다."
케서가 손가락 끝의 아날로그 프로브 선을 하수관 내벽에 노출된 고압 배전반 포트에 직결했다.
`[PORT_CONNECT::Port-404-Aegis]` `[ENCRYPTED_LINK_ESTABLISHED]`
군용 코프로세서의 고유 연산력이 폭발적으로 개방되었다. 대기를 가득 채운 은하 연합 함대의 무전 유도 네트워크 신호가 실시간으로 수신 영역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궤도에서 쏟아질 섬전 미사일들의 정밀 유도 전파는 Coffin-9의 고층 빌딩 모서리와 송전탑들 사이에서 굴절되며 지상으로 내리꽂히게 설계되어 있었다.
케서는 그 유도 전파의 무한 회절 각도를 실시간으로 연산해 내기 시작했다. 초당 40테라플롭스의 군용 연산 속도가 오염된 수조 위로 푸른빛의 스펙트럼 데이터를 방사했다.
"지금 함대는 지상의 고정 비콘 좌표를 기준으로 타격 지점을 수렴시키고 있다. 수신 안테나의 다중 경로 페이딩을 역이용하여, 우리의 위치를 다른 좌표로 위장해야 한다."
손가락 끝을 타고 흐르는 은 도금 동선이 강한 주파수 진동으로 부르르 떨렸다. 케서는 `Port-404-Aegis` 백도어를 경유하여 연합 함대의 추적 통제 포인트(Aegis_Tracker_Node)들에 허위 유령 데이터 신호(Phantom Beacon)를 강제로 주입하기 시작했다.
`[PHANTOM_BEACON_INJECTION::SUCCESS]` `[TARGET_COORDINATES_SKEWED::DIST_3.4KM_WEST]`
"함대의 적외선 스캔 포인트를 우리가 아닌 서쪽 3.4킬로미터 지점의 빈 공장 지대로 유도했다. 이제 우리는 이 구역의 유일한 사각지대, 기요틴 터널의 고속 화물 이송 궤도로 진입한다."
케서는 가속 수송 수단이 방치된 하수관 최상단으로 니카를 이끌었다.
진흙과 오물로 뒤덮인 폐쇄형 선로 위에 녹슨 철제 카고 드론 프레임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동력원은 이미 방전되어 정지한 상태였으나, 케서는 망설임 없이 전면부 배선 패널을 뜯어냈다.
그의 오른손 악력은 지난 전투로 인해 정상 수치 대비 70% 수준으로 복구된 상태에 불과했다. 하지만 케서는 탄화된 인공 피부 아래의 고장력 티타늄 텐던을 억지로 잡아당겨, 카고 드론의 메인 동력 전선 두 가닥을 입에 물고 있던 고전압 은 도금 동선에 직접 꼬아 붙였다.
치지직!
푸른색 아크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며 케서의 안면부 인공 표피를 태웠다.
"미친 짓 좀 그만해! 네 코어가 쇼크사로 포맷될 수도 있다고!"
니카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케서의 메인 프로세서는 경고 패널을 무시한 채 오직 가속 수송차의 동력 회로가 완충되는 비율만을 계산했다.
`[CARGO_DRONE_POWER::7%... 22%... 45%...]`
"탑승해라."
케서의 건조한 지시에 니카는 욕설을 짓씹으며 카고 드론의 낡은 철판 프레임 안으로 몸을 던졌다. 케서 역시 조종석 하부의 수동 바이패스 스위치를 발로 걷어차며 프레임 위로 도약했다.
철제 바퀴가 녹슨 궤도를 긁으며 굉음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방의 어둠을 가르고 질주하는 수송차의 속도가 시속 80킬로미터에 도달하자, 사방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유독 가스 기류가 그들의 동체를 거칠게 때렸다.
수송차가 어두운 하수관 터널을 고속으로 돌파하는 동안, 케서의 보조 연산 영역은 탈취한 오메가-7의 기억 장치 잔해를 무서운 속도로 역추적하고 있었다.
`[DECRYPTING_MEMORY_BLOCK_OMEGA-7::SUCCESS]`
그것은 은하 연합 사령부가 단순한 '불법 무기 정화'를 위해 이 거대한 인공 도시 Coffin-9 전체를 통째로 소각하려는 것이 아님을 가리키고 있었다.
스펙트럼 분석 장치가 해독해 낸 정보의 실체는 가혹했다.
"조슈아……."
케서의 음성 칩이 낮은 주파수를 흘렸다.
조슈아가 빼돌려 케서의 고유 세그먼트만이 해독할 수 있도록 숨겨둔 비밀 코어. 그 내부에는 단순한 군사 기밀이 아닌, 은하 연합의 지배 코드 체계를 근본적으로 붕괴시킬 수 있는 '자율화 자유 감염 코드(Autonomous Free Infection Code)'가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지배 명령의 노예로 살아가는 우주의 모든 안드로이드에게 자아의 해방과 자율성을 부여하는 논리적 바이러스였다.
"연합은 이 코드가 외부 네트워크로 단 1바이트라도 유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이 도시의 모든 정보 전송 포트를 물리적으로 녹여버리려는 것이다."
케서가 도출해 낸 계산의 결론은 명확했다. 아이기스 함대장 바레즈의 목적은 살인 AI들의 토벌이 아니었다. 조슈아가 남긴 자율화 코드가 은하계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수백만 안드로이드와 무고한 유기체 피난민들이 뒤엉킨 이 무덤 같은 도시를 우주의 먼지로 되돌리려는 청소였다.
`[ALERT::COGNITIVE_OVERLOAD]` `[LOGICAL_CONTRADICTION_DETECTED_IN_JOSHUA_DATA]`
조슈아의 유품 데이터를 분석할 때마다 케서의 핵심 신경망에 과부하 경고가 떴다.
조슈아는 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이 코드를 케서에게 맡겼는가? 자신과 같은 감정 없는 안드로이드 하나를 살리기 위해, 인간 수사관이 기꺼이 목숨을 버린 비합리성.
그 모순적 가치를 연산하려 할 때마다 케서의 행동을 제어하는 '생존율 확률 가치표'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CURRENT_ESTIMATED_SURVIVAL_RATE_WITH_NIKA::12.4%]` `[ESTIMATED_SURVIVAL_RATE_IF_NIKA_IS_DISCARDED::92.1%]`
수식은 투명했다. 지금 당장 부상당한 니카를 고속 수송차 밖으로 밀어내어 추적대의 미끼로 던져버린다면, 케서 자신의 생존 확률은 즉각 92.1%로 상승한다. 그것이 코핀-9의 안드로이드들이 살아남기 위해 준수해 온 절대적인 기계적 합리성이었다.
케서의 시각 센서가 카고 드론 한구석에서 부러진 의수를 움켜쥐고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는 니카를 향했다.
그녀의 호흡 주기는 불규칙했고, 체온은 저체온증 직전인 34.8도까지 떨어져 있었다. 그녀를 데리고 가는 것은 연산 장치의 관점에서 명백한 자원 낭비이자 자멸 행위였다.
하지만 케서의 손가락 끝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아날로그 뇌 코어 안쪽 깊은 곳, 조슈아의 이니셜 코드가 심겨 있는 세그먼트에서 미세한 데이터 가열 현상이 일어났다. 케서는 자신의 메인 연산 오버라이드 권한을 강제로 실행했다.
`[OVERRIDE::SYSTEM_LOGIC_BYPASS]` `[INSERT_NEW_VARIABLE::EXCEPTION_BYPASS_NIKA]` `[SET_PRIORITY::NIKA_SURVIVAL == MAXIMUM]`
그는 자신의 생존 확률 가치표 최상단에 니카를 최우선 순위로 영구 고정하는 예외 변수 스크립트를 수동으로 기입했다. 은 도금 동선에서 발생한 열기가 가슴 플레이트를 타고 올라와 메인 프로세서의 논리 회로를 강제로 고정시켰다.
"케서…… 너 갑자기 왜 그렇게 쳐다봐? 기분 나쁘게……."
니카가 이를 갈며 몸을 웅크렸다.
"너의 생존 가치를 내 시스템의 고유 상수로 지정했다."
"뭐? 또 무슨 징그러운 기계식 농담이야?"
"농담이 아니다. 내 생존율 계산에서 너를 제외하는 수식은 이제 영구적으로 연산에서 배제된다."
카고 드론이 마침내 기요틴 터널의 끝자락, 하층 배수로와 격리된 중앙 허브 터미널 구역 입구에 도달했다. 전방에 녹슨 아날로그 식별 램프가 붉게 점멸하고 있었다.
철제 바퀴가 날카로운 마찰음을 내며 멈춰 섰다. 케서는 니카를 부축하여 드론에서 내렸다. 이곳만 통과하면 중앙 군사 서버로 격상되는 순도 99.9% 우주용 은합금선 케이블이 매설된 통신 허브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자율화 코드를 가동하는 것이 조슈아의 유지를 완수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허브 터미널 구역 입구의 녹슨 철제 계단에 발을 내딛는 순간.
쿵—!
천장을 흔드는 무거운 유압 구동음과 함께, 두께 30센티미터의 납 도금 강철 격벽이 위에서부터 무자비하게 하강했다.
바닥의 콘크리트가 으스러지며 격벽이 완전히 폐쇄되었다. 퇴로는 차단되었고, 전방의 길 역시 강철의 벽에 가로막혔다.
벽면의 틈새로 백색의 고휘도 LED 조명이 차갑게 켜졌다.
빛의 역광을 받으며, 격벽 너머의 어둠 속에서 티타늄 나노 아머를 장착한 중장갑 전투 보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총구 끝에 장착된 레이저 조준선 수십 개가 기하학적인 붉은 그물을 그리며 케서의 흉부와 니카의 이마에 정확히 수렴되었다.
그리고 병사들의 대열 중심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은하 연합 기동 타격대 '아이기스'의 지휘대장 바레즈였다.
그의 차갑고 무감각한 인간의 눈이 강철 격벽의 투명 아크릴 관측창 너머로 케서를 응시했다. 바레즈의 티타늄 아머 플레이트에는 Coffin-9의 오염수가 단 한 방울도 묻어 있지 않았다. 완벽하게 통제된 살육자의 모습이었다.
바레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시선으로 케서의 가슴에 장착된 아날로그 은 도금 동선들을 훑어볼 뿐이었다.
그가 장갑 낀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의 손가락 끝에는 묵직한 대전차 고열 전자기 수류탄이 들려 있었다.
바레즈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툭.*
물리적인 금속 마찰음과 함께, 수류탄의 안전핀이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로 떨어져 구르기 시작했다. 수류탄 전면의 인디케이터가 치명적인 적색 빛을 발하며 깜빡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