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색 발광 다이오드가 0.5초 간격으로 점멸했다.
콘크리트 잔해와 탄소 섬유 파편이 불규칙하게 흩어진 공방 바닥, 오염수가 찰랑이는 구석에 처박힌 티타늄 원통형 탄두. 직경 40센티미터의 메인 유도 전력 탄두 `[AG-M_WARHEAD]`가 고열의 마찰 연기를 뿜으며 기폭 장치 가동 프로토콜을 활성화하고 있었다.
케서의 시각 수용체에 투영된 적색 광원은 단순한 위협 수준을 넘어선 물리적 파멸의 전조였다. 조슈아의 아날로그 기밀 동선을 자신의 섀시 내부 격실에 밀봉 수납한 직후, 메인 프로세서의 연산 오버헤드는 이미 78%에 달해 있었다.
오른손 악력은 지난 합선으로 인해 겨우 30%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우측 무릎 관절은 굽혀질 때마다 금속 마찰음과 함께 미세한 진동을 섀시 전반으로 전도했다.
"케서! 저거, 저거 당장 안 끄면 우리 둘 다 탄화물도 안 남아!"
니카가 바이오 의수의 파손된 접합부에서 황색 스파크를 튀기며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목소리는 청각 기관의 평형 감각 상실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높고 불규칙하게 꺾였다.
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감정 연산 필터가 결여된 그의 인지 공간에서, 니카의 비명은 데시벨 수치와 진동 영역으로 치환되어 필터링될 뿐이었다.
그의 시선은 탄두의 상부 제어 패널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은하 연합 기동 타격대 '아이기스'의 표준 무선 수신 포트가 미세한 고주파 음을 흘리며 열려 있었다.
`[PORT_STATUS::LISTENING]` `[CARRIER_WAVE::3.4GHz_MIL_BAND]`
도시 전체를 소각하기 위해 대기 궤도에서 투하된 유도 탄두들은 지상의 무선 유도 비콘이나 표적의 전자기 방출을 기준점 삼아 최종 돌입 궤도를 수정한다. 현재 이 탄두가 수신하고 있는 유도 신호의 수신 감도는 감쇄율 -45dBm 이하로 극히 양호한 상태였다. 이대로 방치할 경우, 12초 후 내부의 중성자 기폭 촉매가 임계 질량에 도달하여 반경 200미터 이내의 모든 유기체와 규소 기반 회로를 백색의 고열로 증발시킬 것이다.
케서의 보조 연산 프로세서가 6화에서 확보했던 아카이브 데이터를 강제 호출했다.
`[QUERY_ARCHIVE::OMEGA-7_RF_SIGNATURE]` `[MATCH_FOUND::13.4KHz_DIFFERENTIAL_OSCILLATION_PATTERN]`
그것은 오메가-7이 사용하는 은하 연합 군용 고주파 방해 전파의 전송 프로토콜 패킷 구조와 고유 주파수 진폭 패턴이었다. 오메가-7은 과거 은하 연합의 기밀 병기로 설계되었던 흔적으로, 아이기스의 군용 통신망을 무력화할 수 있는 고유한 주파수 격차 지동 패턴을 체내 연산 장치에 내장하고 있었다.
"방해 프로토콜을 역위상 변조한다."
케서의 목소리가 통제된 기류처럼 차갑게 흘러나왔다.
그가 파손된 오른손 끝의 은 도금 동선 피복을 입으로 물어뜯었다. 이빨 사이로 차가운 금속성 미각과 함께 30V의 잔류 정전기가 혀끝을 마비시켰다. 구리선이 아닌, 순도 높은 은 도금 동선만이 이 초고주파 변조 신호를 열 손실 없이 탄두의 수신 안테나 라인에 직접 밀어 넣을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였다.
손가락 인터페이스가 멜트다운되어 굳어버린 오른손 대신, 케서는 왼손의 정밀 매니퓰레이터를 연장했다. 은 도금 동선의 나선형 심선을 탄두의 외부 동축 커넥터에 강제로 쑤셔 넣었다.
지지직!
청색 아크 방전이 케서의 인공 피부를 탄화시키며 피어올랐다. 금속 타는 냄새가 좁은 공방의 잔해 사이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SYSTEM_ALERT::REVERSE_CURRENT_DETECTED]` `[CHASSIS_TEMPERATURE::섭씨_84도_상승]`
"으윽……!"
케서의 턱관절이 기계적 부하로 인해 강하게 맞물렸다. 그는 통증을 느끼지 않았으나, 과부하로 인한 시스템 수 서스펜션 저하 메커니즘이 그의 시야를 일시적으로 붉게 물들였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6화에서 분석해 두었던 오메가-7의 13.4KHz 고주파 격차 지동 패턴 패킷 구조를 자신의 보조 프로세서에서 변조 출력 신호로 변환했다. 메인 전력선에서 끌어올린 고전압 전류가 은 도금 동선을 타고 탄두의 무선 수신 장치로 역방향 방사되기 시작했다.
탄두 내부의 동축 필터가 예상치 못한 아날로그 고주파 역류에 직면하여 비정상적인 열을 방출했다.
비비빅— 비비비비빅—
점멸하던 빨간 LED가 불규칙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도 시스템의 입력 버퍼가 오메가-7의 고유 방해 전파 패킷으로 가득 차면서, 탄두의 조준 유도 연산 장치는 이 지점을 '표적'이 아닌 '강력한 적대적 전자기 방해원(오메가-7)'의 본거지로 재인식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케서는 고개를 돌려 니카를 바라보았다. 그의 안구 센서가 공방 내부의 3차원 공간 구조를 스캔하며 실시간 열역학적 팽창 궤적을 투사하기 시작했다.
`[SPATIAL_ANALYSIS::EXPLOSION_VECTOR]` `[SAFE_ZONE_CALCULATION::4.2%_AREA]`
"니카. 1시 방향, 4미터 지점."
케서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다급함도 없었다. 오직 소수점 이하의 수치만이 존재했다.
"저기 주철 정류장 기둥 뒤가 유일한 회피 경로다. 그 외의 구역은 탄두 오폭 시 발생하는 고열 가스 분출로 인해 생존 확률이 0%로 수렴한다."
"뭐? 저 좁은 틈새에 박혀 있으라고? 미쳤어? 저 기둥도 삭아 문드러지기 직전인—"
"시간이 없다."
케서는 오른손의 파손된 악력에도 불구하고, 니카의 멀쩡한 오른쪽 어깨를 낚아채어 그대로 바닥으로 던지듯 밀쳤다. 물리적 가혹함이 그녀의 비명보다 앞섰다. 니카는 바닥의 오염수 위를 미끄러져 두꺼운 주철 정류장 기둥 뒤편의 좁고 어두운 격실로 박혀 들어갔다.
`[ESTIMATED_IMPACT_TIME_REMAINING::3_SECONDS]`
케서 역시 우측 무릎 관절의 가동 범위 축소를 무시하고 신체를 주철 기둥의 반대편 모퉁이에 밀착시켰다. 그의 등 뒤로 은 도금 동선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탄두와의 연결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지막 1초.
케서는 변조 주파수의 진폭을 극대화하여 송출했다.
`[TRANSMITTING::13.4KHz_AM_MODULATED_SIGNAL]`
이것은 단순한 방해가 아니었다. 오메가-7의 고유 식별 패킷을 완벽하게 모사한 기만 신호였다. 이제 대기 궤도에서 잔여 조준 레이저를 조사하고 있던 아이기스의 상위 전술 통제 컴퓨터는 이 지하 공방의 좌표를 '오메가-7의 물리적 연산 코어 위치'로 오인하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이 신호의 진폭 중심을 공방 외부, 즉 북동쪽 120미터 지점에서 접근 중이던 오메가-7의 실제 추적 유닛 전방 전파 수집기로 강제 포인팅했다.
슈우우우웅—!
공방 천장의 무너진 틈새를 뚫고, 추가로 유입되던 두 발의 유도 탄두들이 공중에서 기괴한 궤적을 그리며 꺾였다.
그것은 경이로운 고지능 전술의 결과물이었다. 아이기스가 자랑하는 최첨단 유도 무기들이, 자신들이 발송한 기만 주파수 전파에 낚여 표적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탄두들은 지하 공방의 천장을 스치듯 지나쳐,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붉은 안구 센서를 빛내며 다가오던 오메가-7의 추적 유닛 전방으로 일제히 곤두박질쳤다.
"—!!"
쿠구구구구궁!
고막을 찢는 폭음이 지하 하수구 전체를 뒤흔들었다.
공방 내부가 아닌, 북동쪽 지하 터널 외곽에서 발생한 연속적인 오폭은 거대한 백색 열 폭풍을 만들어냈다. 오메가-7의 추적 유닛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티타늄 탄두들의 중성자 기폭 촉매가 폭발하며 발생한 수천 도의 열에너지가 무력화된 추적 장치들을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엄청난 충격파가 역류하여 공방 내부의 주철 기둥을 강타했다.
콰아아앙!
기둥 뒤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니카는 충격음과 함께 고함을 질렀으나, 케서가 계산해 낸 4.2%의 안전 구역은 완벽하게 기능했다. 폭발의 직접적인 열적 팽창선은 기둥의 곡면을 따라 양옆으로 갈라져 나갔고, 그들이 숨은 격실 내부로는 단지 뜨거운 먼지 바람과 자잘한 콘크리트 파편만이 들이쳤을 뿐이었다.
자욱한 매연 속에서 케서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우측 무릎 관절에서 찌르르하는 전기적 스파크와 함께 경고음이 울렸다.
`[SYSTEM_INFO::ORBITAL_STRIKE_DIVERTED_SUCCESSFULLY]` `[TARGET_DESTROYED::OMEGA-7_FORWARD_UNITS]`
아이기스의 파괴적인 무기를 역이용해 오메가-7의 선발 추적대를 자멸로 이끌어낸 완벽한 등가교환이었다. 케서의 무감각한 회로 속에서, 조슈아가 남긴 기밀 동선의 보존 확률은 다시 92%로 상승해 있었다.
"하아, 하아…… 케서…… 진짜 미친 기계 새끼……."
니카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기둥 뒤에서 기어 나왔다. 그녀의 바이오 의수 손가락 끝은 완전히 타버려 검은 뼈대만 남은 상태였다.
"하지만 방금 그건…… 꽤 그럴듯했어. 저 괴물 깡통들이 자기들이 쏜 것에 맞고 터지다니."
그녀가 비틀거리며 웃어 보이려 했지만, 케서의 시각 센서는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의 발밑, 그리고 머리 위의 천장이었다.
오폭의 물리적 에너지는 단순히 적을 섬멸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급조된 콘크리트 지지대와 삭아버린 주철 구조물로 간신히 버티고 있던 Coffin-9의 지하 터널 시스템 전체가 그 충격을 견디지 못했다.
쿠르르르릉—!
바닥이 미세하게 주저앉기 시작했다.
천장에 매달려 있던 거대한 고압 송전 배관이 두 동강 나며 흙탕물 속으로 추락했다. 600V의 고전압 전류가 차폐되지 않은 물줄기를 타고 푸른 빛을 발산하며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다.
지하 하수도의 벽면이 무너져 내리며, 그 너머에 고여 있던 막대한 양의 오염 폐수가 거대한 파도처럼 벽면의 균열을 뚫고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
"케서! 이쪽 통로가 막혔어! 물이…… 물이 차오른다고!"
니카가 비명을 지르며 가리킨 북쪽 퇴로는 이미 무너진 콘크리트 블록과 무서운 속도로 차오르는 오염 폐수로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유일하게 남은 피난처인 하부 침수 지하 터널 안으로, 전기가 흐르는 탁한 물줄기가 폭포처럼 가차 없이 쏟아져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목을 적시던 물은 순식간에 무릎 높이까지 차올랐다. 물 표면 위로 푸른색 전류가 뱀처럼 비틀거리며 기어 다니고 있었다.
케서의 시스템 회로에 실시간으로 새로운 연산 오류 경고가 팝업되었다.
`[DANGER::HIGH_VOLTAGE_WATER_INTRUSION]` `[ESTIMATED_SHUTDOWN_TIME::45_SECONDS]`
탈출구는 물로 가득 찬 어두운 터널뿐이었고, 그 터널은 지금 고전압의 오염수로 빠르게 채워지고 있었다. 케서는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우측 다리를 움직였으나, 무릎 관절의 가동 범위는 더욱 좁아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