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통쾌함도 잠시, 경차를 탄 정우 일행이 김복순의 국밥집 거리에 도달하자마자, 가죽 재킷을 입은 험악한 가설 용역 무리 수십 명이 붉은색 강제 명도 딱지를 대문에 갈겨 붙이고 있었습니다.
후두둑, 하고 보닛을 때리는 빗소리가 유난히 사납게 고막을 파고들었습니다. 깨진 아스팔트 틈새로 고인 흙탕물이 구두 끝을 적셨습니다. 거친 사내들의 고함과 둔탁한 쇠파이프 소리가 골목의 낮게 가라앉은 공기를 사정없이 찢어발겼습니다.
"다 밀어버려! 안에서 빗장을 걸어 잠갔으면 문짝 통째로 뜯어내면 될 거 아냐!"
샛노란 안전모를 삐딱하게 쓴 사내가 이빨 사이에 낀 이쑤시개를 뱉어내며 소리쳤습니다. 용역업체의 팀장인 듯한 사내의 손에는 성인 팔뚝만 한 쇠파이프가 들려 있었습니다. 철문을 내리칠 때마다 쾅, 쾅, 하는 굉음이 울렸고, 그 진동은 정우의 발밑을 타고 올라와 심장을 흔들었습니다.
[경고: 극심한 다중 정서적 스트레스로 인해 MP 역류 위험 감지.] [현재 보유 MP: 45 -> 40 (지속 하락 중……)]
가슴이 콱 막히는 압박감이 폐부를 짓눌렀습니다. 정우는 거칠게 몰아쉬는 숨을 억누르며 차 문을 열어젖혔습니다. 가쁜 숨결이 차가운 빗속에서 하얀 김이 되어 흩어졌습니다.
"정우야! 위험해, 혼리가 저 새끼들 장난 아니라고!"
운전대를 잡은 윤성호가 다급하게 정우의 옷자락을 붙잡았지만, 정우는 그 손을 단호히 뿌리쳤습니다. 조수석의 민소희는 이미 휴대폰 카메라를 켠 채 차 밖으로 뛰쳐나간 뒤였습니다.
"그 손 놓으시죠."
정우의 목소리는 빗소리 사이로 차갑고 예리하게 꽂혔습니다.
쇠파이프를 치켜들던 용역 팀장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습니다. 가죽 재킷을 비집고 나온 두꺼운 목덜미에 붉은 흉터가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사내는 정우의 깡마른 체구와 젖은 머리칼을 훑어보고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새끼는 또 뭐야? 이 바닥에서 다치기 싫으면 저리 꺼져, 기생오라비 같은 게."
"지금 하시는 행위, 형법 제366조 재물손괴죄 및 제319조 주거침입죄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우는 품 안에서 빗물에 젖지 않도록 비닐에 겹겹이 싸 두었던 검은색 장부 사본을 꺼내 들었습니다. 사본의 겉장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은 낡은 필체로 '임대 원장'이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박혀 있었습니다.
"이 토지와 건물은 당신들이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법적 보호 대상입니다."
용역 팀장의 눈썹이 꿈틀했습니다. 그가 쇠파이프 끝으로 정우의 턱밑을 가리키며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법? 웃기고 자빠졌네. 우린 태진 미디어에서 정당하게 소유권 이전 가처분 집행 권원 받아서 나온 거야. 이 할망구가 남의 땅 무단 점유하고 안 비행기 타니까 법대로 명도 집행하는 거라고! 비켜, 안 그러면 너부터 대가리 깨진다."
험악한 사내들이 정우의 주위를 겹겹이 에워쌌습니다. 가죽 재킷에서 풍기는 비린내와 담배 찌든 내가 코를 찔렀습니다. 정우의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 요동쳤습니다. 목구멍이 좁아지는 과호흡의 전조가 다시금 머리를 들었습니다. 손끝이 딱딱하게 굳어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정우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눈을 부릅뜨고 시야에 띄워진 황금빛 장부를 똑바로 응시했습니다.
[마음의 경영 장부 - 인물: 용역 팀장 마칠성] [정서적 결손액: 2,400,000원 (불법 집행에 대한 미필적 고의 및 불안감)] [은폐 부채: 본사로부터 불법 강제 철거를 진행할 시 민형사상 책임을 독단으로 지겠다는 독소 조항이 담린 하도급 계약서에 서명함.] [치유 솔루션 비용: 0원 (인과관계 팩트 폭격으로 즉각 해결 가능)]
정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습니다. 차가운 이성이 공포를 압도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칠성 씨."
정우가 사내의 이름을 정확히 부르자, 용역 팀장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네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
"태진 미디어 강도윤 팀장이 당신한테 이 건물 부수면 얼마 주기로 했습니까? 삼천? 오천? 그런데 그거 알고 계십니까? 당신이 오늘 서명한 하도급 계약서 제12조 4항, '을의 과실 및 위법 행위로 발생한 모든 민형사상의 책임은 을이 전적으로 지며, 갑은 면책된다'는 독소 조항 말입니다."
정우의 칼날 같은 딕션이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를 뚫고 마칠성의 귀에 박혔습니다. 마칠성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습니다.
"그, 그걸 네가 어떻게……."
"당신들이 들이밀고 있는 소유권 이전 가처분 신청의 기반이 된 채권은 이미 소멸시효가 지났습니다. 아니, 애초에 성립조차 되지 않는 허위 채권입니다."
정우는 비닐을 벗겨내고 검은색 부기 장부 사본의 핵심 페이지를 펼쳐 마칠성의 코앞에 들이밀었습니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1993년 태진개발이 이 땅의 원래 소유주였던 김복순 여사의 부군과 맺은 명의 수탁 계약서 원본의 이중 부기 장부입니다. 여기 적힌 수탁 조건과 특약 사항을 보시죠."
정우의 손가락끝이 붉은색 잉크로 정밀하게 대조되어 복사된 문구를 가리켰습니다.
"‘본 토지는 제3자의 무단 양도가 금지되며, 실소유주 김복순의 서면 동의가 없을 경우 어떠한 명의 이전 및 저당권 설정도 원천 무효로 한다.’"
빗방울이 장부의 코팅된 종이 위를 흘러내렸습니다. 정우의 목소리는 점점 더 단단해졌습니다.
"태진 미디어가 전신인 태진개발의 장부를 조작해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 이중 부기 장부 원본이 법원에 제출되는 순간 가처분 결정은 즉시 무효화됩니다. 그리고 그 무효한 결정을 바탕으로 폭력을 행사한 당신들은? 단순 집행이 아니라, '특수공동재물손괴' 및 '공동상해 미수'로 실형을 살게 될 겁니다. 태진 미디어는 쏙 빠져나가고, 당신 혼자 독박을 쓰고 감방에 처박힌다는 소리입니다."
마칠성의 손에 들린 쇠파이프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회계 장부가 굴러가며 손실을 계산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형님, 이 새끼 말 진짜 같은데요? 장부 저거 진짜 옛날 태진개발 직인 찍혀 있습니다."
옆에 서 있던 덩치 큰 부하가 마칠성의 귓가에 대고 다급하게 속삭였습니다.
정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쐐기를 박았습니다.
"여기를 똑바로 보십시오. 당신들이 건드린 이 땅은 단순한 흙 더미가 아닙니다. 혜성시 중심 상권의 마지막 보루이자, 수십 년간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해 온 합법적 사유지입니다. 당신들이 이 문짝 하나라도 더 부수는 순간, 저는 이 장부 원본과 함께 당신들의 불법 집행 영상을 법원과 방송국 전파로 동시에 쏘아 올릴 겁니다."
"이, 이 빌어먹을…… 강도윤이가 분명히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고 했는데!"
마칠성이 이가 갈리는 소리를 내며 욕설을 뱉었습니다.
그때, 저 멀리 골목 어귀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습니다. 붉고 파란 경광등 불빛이 골목길의 젖은 벽면을 어지럽게 비추었습니다.
"경찰이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주위의 상가 건물 문들이 하나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나쁜 놈들아! 복순이 할매한테 무슨 짓거리들이야!"
"당장 여기서 꺼져라! 우리 골목에서 깡패 짓이냐!"
머리가 희끗희끗한 세탁소 주인아저씨가 다듬이 방망이를 들고 뛰어나왔고, 옆집 미용실 원장도 분홍색 가운을 걸친 채 분노한 얼굴로 우산을 휘두르며 합류했습니다. 정우의 뒤쪽에서는 윤성호가 자신의 스위스제 하이엔드 스마트폰을 높이 치켜들고 있었습니다. 최고급 카메라 렌즈가 용역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정밀하게 포착하고 있었습니다.
"야! 이거 최고급 보안 녹음이랑 초고화질 촬영 다 되고 있어! 실시간으로 본사 클라우드에 백업되는 앱이니까 뺏을 생각도 마라! 다 찍혔어, 이 새끼들아!"
성호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쳐흘렀습니다. 평소의 안하무인하던 태도가 혜성 청춘 FM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에 든든한 아군으로 거듭난 순간이었습니다.
순찰차 두 대가 국밥집 앞에 급제동하며 멈춰 섰습니다. 차에서 내린 경찰들이 경봉을 쥐고 용역 무리를 압박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모두 장비 내려놓으세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마칠성은 정우와 장부, 그리고 다가오는 경찰들을 번갈아 보더니, 결국 이가 부러질 듯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철수해."
"형님?"
"철수하라고, 이 새끼들아! 독박 쓰기 싫으면 연장 챙겨!"
마칠성이 쇠파이프를 바닥에 내던지며 빗속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험악하던 가죽 재킷 무리가 썰물 빠지듯 허겁지겁 트럭으로 도망쳐 올라탔습니다. 트럭이 시커먼 매연과 흙탕물을 뿜으며 골목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정우는 참았던 호흡을 길게 내뱉었습니다.
턱, 하고 무릎에 힘이 풀리려는 찰나, 국밥집의 미닫이문이 드르륵 열렸습니다.
"정우야…… 소희야……."
김복순 할머니가 젖은 앞치마에 투박한 손을 문지르며 걸어 나왔습니다. 주름진 눈가에 고인 것은 빗물만이 아니었습니다. 할머니는 사르르 떨리는 정우의 차가운 손을 두 손으로 꼭 쥐었습니다. 따뜻하고 진한 국밥 삶는 냄새가 할머니의 손끝에서 묻어 나와 정우의 굳은 몸을 녹여 내렸습니다.
"고맙다, 아가. 이 늙은이 때문에 네가 몸을 상했구나. 참말로 고맙다……."
그 순간, 정우의 눈앞에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시스템 안내: 청취자 및 지역 주민의 진심 어린 공감 에너지 흡수 완료.] [공감 주파수 도달율: 89% 돌파.] [긍정적 뇌파 피드백 수집 중……] [MP 충전 시작: 40 -> 75 -> 110 -> 150!] [특수 이벤트 발생: 이웃들과의 강력한 연대로 인해 한정우의 정서적 한계치가 일시적으로 확장됩니다.] [보유 MP 최대 한도 증가: 100 -> 150 (일시 레벨업 완료!)]
가슴을 옥죄던 과호흡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머릿속이 맑아지고, 온몸에 따뜻한 온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정우는 자신을 둘러싸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네 상인들과, 눈물을 훔치는 민소희, 그리고 어깨를 으쓱하며 씩 웃는 윤성호를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이 주파수가 가진 힘이자, 이 작은 방송국이 존재해야 하는 진짜 이유였습니다.
"할머니,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이 땅은 누구도 쉽게 못 가져갑니다."
정우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주민들이 정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혜성 청춘 FM의 전파가 이 작은 골목길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승리의 여운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따르릉-.
민소희의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전화를 받은 소희의 얼굴이 눈에 띄게 하얗게 질려갔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장님? 예? 대출이라뇨?"
통화를 마친 소희가 사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정우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녀의 눈동자에 거대한 공포가 서려 있었습니다.
"정우 씨…… 강도윤이 움직였어요."
"무슨 일입니까?"
"태진 미디어에서 혜성시의 모든 농협 지점과 새마을금고, 그리고 식자재 도매업체들에 연락을 돌렸대요. 우리 방송국에 로컬 광고를 주거나 후원하는 모든 중소 상인들…… 국밥집 할머니는 물론이고 세탁소, 미용실 사장님들까지 전부 포함해서, 이번 달 만기 예정인 한도 대출 연장을 전면 불허하라고 압박했대요. 납품 대금 결제 기한도 일주일 안으로 단축하겠다고 통보가 왔답니다……."
정우의 눈빛이 급격히 차가워졌습니다.
무력으로 국밥집을 뺏는 데 실패하자, 강도윤은 아예 혜성시 전체의 경제적 목줄을 죄어 정우와 방송국을 완전히 고립시키려는 비열한 행정 보복을 개시한 것이었습니다.
가로등 불빛이 빗방울에 번지며 차가운 어둠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이웃들의 얼굴에 다시금 짙은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정우는 손에 쥔 장부를 더 꽉 움켜쥐었습니다. 이제 물러설 곳이 없는 진짜 전면전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