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오스벨트의 척박한 대장간 마당에 전령의 비명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리디아 폰 보이스트의 손에 들려 있던 양피지 장부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그녀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백작령의 기마병들이 국경 세관을 넘어와 소금과 비누 수송대를 도륙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약탈을 넘어선 선전포고였다.

"놈들이…… 기어이 선을 넘었군."

개릭 아이언피스트가 거친 숨을 내쉬며 망치를 바닥에 내던졌다. 쇳소리가 날카롭게 마당을 울렸다. 그의 두꺼운 팔뚝에 핏대가 굵게 솟아올랐다. 당장이라도 철검을 들고 국경으로 달려갈 기세였다.

그러나 롤랑 에르하르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손가락 끝에 묻은 검은 화약 가루에 고정되어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가루를 조금씩 쓸어 가고 있었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계산식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고정되어 있었다.

"서기장님, 당장 경비대를 소집해야 합니다. 국경의 염민들과 수송 대원들이 무참히 죽었습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영지민들의 신뢰는 완전히 무너집니다."

리디아가 롤랑의 소매를 붙잡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행정가로서 그녀는 이 사태가 가져올 경제적 고사와 민심의 이탈을 즉각적으로 계산해 낸 것이었다.

롤랑은 천천히 손가락을 털어내며 리디아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얼어붙은 호수처럼 고요했다.

"경비대를 소집해 기병을 쫓는 것은 무의미한 에너지 소모다. 우리에게는 그들을 추적할 군마도, 정면에서 기동력을 압도할 무력도 없다. 적이 원하는 전장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공리는 없다."

"그럼 이대로 놈들이 우리 영토를 유린하도록 두고 보자는 말씀이십니까?"

개릭이 이빨을 갈며 으르렁거렸다.

"방법을 바꾸는 것이다."

롤랑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그는 대장간 한구석에 쌓여 있는 나무 상자들과 자갈더미를 가리켰다. 그리고 방금 제립화에 성공한 검은 화약 항아리들을 응시했다.

"적은 수송대를 약탈하고 얻은 전리품을 싣고 반드시 동일한 국경 계곡 도로를 통해 회군할 것이다. 그 길목은 폭이 좁고 양옆이 가파른 도랑 형태의 병목 지대다. 기병의 속도가 강제로 제한되는 유일한 장소지."

롤랑은 품에서 연필을 꺼내 가죽 수첩에 빠르게 도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손끝이 움직일 때마다 기하학적인 선과 수치들이 종이 위에 새겨졌다. 그것은 무기라기보다는 정밀한 토목 설계도에 가까웠다.

"나무 상자 내부에 제립 화약을 채우고, 그 위에 강도가 높은 자갈과 무쇠 파편을 빽빽하게 얹는다. 상부에는 가벼운 압력에도 마찰 불꽃을 일으킬 수 있는 황산과 염소산칼륨 혼합물의 자갈 뇌관선을 배치한다. 이것이 땅 밑에 묻힐 도랑 상자 지뢰다."

개릭과 리디아는 롤랑이 그리는 도면을 이해하지 못해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롤랑의 목소리에 담긴 기계적인 확신이 그들의 의구심을 억눌렀다.

출발을 서두르기 전, 롤랑은 대장간 내부를 흧어보았다. 그의 시선이 개릭이 사용하는 오래된 주조 가마에 닿았다.

오른쪽 관자놀이 부근에서 둔탁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롤랑은 가볍게 눈을 감았다가 뜨며 '공학적 투시안'을 발동시켰다.

시야가 변했다. 세상의 색이 바래고, 오직 물질의 밀도와 열역학적 수치들만이 삼차원 렌더링 화면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가마의 벽면을 타고 흐르는 열 응력의 분포가 붉고 푸른 색조로 나뉘어 표시되었다.

[경고: 특이 마력 노이즈 방출율 42% 돌파. 뇌 신경 세포 과부하 감지.]

이명 소리가 귓가를 찌르는 듯 날카롭게 울려 퍼졌으나, 롤랑은 이빨을 악물며 투시를 유지했다. 가마 바닥의 특정 지점에 붉은색 경고 표시가 깜빡이고 있었다. 점토와 흑연의 배합비가 극단적으로 편중되어 내부 인장 강도가 한계치에 도달한 상태였다.

'흑연 37%, 점토 63%. 열팽창 계수의 불일치로 인한 미세 균열 발생.'

이대로 가마를 세 번 더 가동한다면, 다음 주조 때 고열의 쇳물이 가마 바닥을 뚫고 나와 대장간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 것이 자명했다.

롤랑은 투시안을 끄고 바닥에 뒹굴던 석탄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가마의 낡은 진흙 벽면에 거칠게 공식을 적어 내려갔다.

[C(흑연) : Clay(점토) = 1 : 1.25 / 보강 두께: 2.5인치]

"개릭."

롤랑이 석탄을 던지며 말했다.

"우리가 국경으로 떠난 사이, 이 공식대로 가마 바닥을 즉시 재보수해라. 점토의 비율이 너무 높아 열을 견디지 못하고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 수치대로 배합비를 맞추지 않으면, 세 번째 주조 때 이 가마는 폭발한다. 내 말을 가볍게 듣지 마라."

개릭은 벽면에 적힌 기묘한 숫자와 문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롤랑이 언제 가마 내부를 확인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롤랑의 눈빛에 서린 차가운 확신을 본 개릭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소. 내 당장 아이들을 시켜 흙을 다시 이겨 놓겠소."

"좋다. 마차에 화약과 상자들을 실어라. 시간이 없다."

롤랑의 지시에 따라 장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오스벨트 동부 경계선으로 향하는 길은 황량했다. 사방으로 뻗은 구릉지대 너머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롤랑의 옷자락을 흔들었다. 수송 마차는 덜컹거리며 좁은 계곡 도로로 진입했다.

롤랑은 마차에서 내려 도로의 지형을 살폈다. 도로는 양옆이 높은 흙벽으로 막힌 천연의 도랑 형태였다. 기병들이 대열을 정비하지 못하고 일렬로 통과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사각지대였다.

"이곳이다."

롤랑은 장인들에게 삽을 쥐여주며 흙길의 중심부를 가리켰다.

"깊이 1.5피트, 가로 3피트의 구덩이를 오 미터 간격으로 세 군데 뚫어라. 흙을 파낸 뒤 상자를 묻고, 그 위에 얇은 판자와 자갈을 얹어 위장한다. 인장선은 도로 양끝의 수풀로 연결해라."

장인들이 흙을 파내는 동안, 롤랑은 고개를 들어 고원 지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다시 한번 미세하게 붉은빛을 띠었다. 투시안의 범위를 넓히자, 먼 고원 너머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푸른색 마력의 흔적이 포착되었다.

성령 교단의 이단 심판관들이 사용하는 추적 마도구의 탐지 파동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밀려왔다. 관자놀이를 흐르는 식은땀이 턱끝으로 떨어졌다. 교단의 탐지망은 롤랑이 공학적 투시안을 사용할 때마다 방출하는 마력 노이즈를 집요하게 쫓고 있었다. 이대로 능력을 계속 사용한다면 성황청의 사냥개들에게 위치를 노출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때, 롤랑의 시선이 도로 옆에 위치한 '중합 유황 급속 훈증 가마 지대'에 머물렀다. 소금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보건 비누를 정제하기 위해 세워진 간이 가마들이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투시 화면 속에서 기묘한 현상이 포착되었다.

가마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농도의 아황산가스와 중합 유황 입자들이 공기 중에 가득 차 있는 영역으로 진입하자, 교단의 푸른색 탐지 파동이 거칠게 굴절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유황 가스의 높은 밀도와 특정 원소 배열이 마력 노이즈를 흡수하고 교란하는 물리적 차폐막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력의 파동 역시 물리적인 매질의 영향을 받는다. 유황 가마의 영향권 안에서는 내 마력 노이즈가 완전히 필터링되어 소멸하는군.'

롤랑은 머릿속으로 유황 훈증의 유효 범위를 계산했다. 가마를 중심으로 반경 300미터 이내. 그곳은 교단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완벽한 '악마의 사각지대'였다.

"서기장님! 매설이 완료되었습니다!"

장인의 외침에 롤랑은 투시안을 껐다. 이명이 가라앉으며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지만, 입꼬리는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교단의 추적을 따돌릴 확실한 물리적 방책을 확보한 것이다.

"모두 수풀 뒤와 유황 가마 가림막 뒤로 숨어라. 인장선을 잡고 신호가 떨어질 때까지 대기한다."

롤랑의 명령에 따라 모두가 숨을 죽였다. 계곡 사이로 오직 바람 소리만이 쓸쓸하게 울려 퍼졌다.

***

두 시간의 기다림 끝에, 대지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둥. 둥. 둥.

일정한 박자의 말발굽 소리가 지면을 타고 전해졌다. 사방으로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저 멀리 계곡 입구로 백작 직속의 약탈 기마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모습은 참혹하면서도 오만했다. 말안장에는 빼앗은 소금 자루와 곡물 부대가 가득 실려 있었고, 일부 기병들의 창끝에는 피 묻은 세관원들의 옷가지가 걸려 있었다. 대열의 후미에는 체인에 묶인 채 끌려오는 가난한 오스벨트의 염민들이 보였다. 그들은 발이 찢어져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고 있었다.

선두에 선 기병대장은 무거운 철제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의 갑옷 표면에는 백작 가문을 상징하는 사자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흐흥, 버려진 땅의 쥐새끼들이 제법 맛좋은 소금을 모아두었더군. 백작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대장장이들과 염민들을 가축처럼 부리며 비웃는 목소리가 계곡 벽에 부딪혀 메아리쳤다. 그들은 자신들의 발밑에 무엇이 묻혀 있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좁은 도랑 길로 거침없이 진입했다.

기병대의 대열이 완벽하게 매설 구역 안으로 들어섰다. 선두의 군마가 첫 번째 지뢰가 묻힌 흙판을 밟는 순간이었다.

롤랑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당겨라."

수풀 속에 숨어 있던 장인이 인장선을 힘껏 잡아당겼다.

찰나의 정적.

그리고 대지가 통째로 뒤집히는 듯한 거대한 폭음이 계곡 전체를 찢어발겼다.

쾅ㅡ!

눈을 멀게 할 듯한 백색의 광폭한 섬광과 함께, 땅 밑에서 시뻘건 불꽃의 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나무 상자 속에 빽빽하게 갇혀 있던 가스 압력이 한계를 넘어 폭발하며, 수천 개의 자갈과 무쇠 파편들을 탄환처럼 사방으로 뿜어내었다.

"히히힝ㅡ!"

군마들의 비명과 기병들의 비명이 폭음에 묻혀 뭉개졌다. 초속 수백 미터로 비산하는 날카로운 자갈돌들은 중장 기병의 말다리를 사정없이 으스러뜨렸고, 갑옷의 틈새를 뚫고 들어가 인체를 관통했다.

폭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연쇄적으로 매설된 두 번째, 세 번째 지뢰가 차례로 터져 나갔다.

쾅! 쾅!

지면이 솟구치며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흙돌풍이 계곡을 휩쓸었다. 일렬로 밀집해 있던 기병대는 한 치의 반격 기회도 얻지 못한 채 허공으로 날려 가거나, 비산하는 파편에 온몸이 짓겨나가며 바닥을 뒹굴었다.

화려한 마갑도, 단단한 철제 투구도 순수한 물리학적 팽창 에너지 앞에서는 한 장의 종이 장장에 불과했다. 도검이 부딪치는 금속음도, 기사들의 명예로운 외침도 없었다. 오직 압도적인 파괴와 죽음의 효율만이 현장을 지배했다.

매캐한 유황 연기와 흙먼지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도로 위에는 온전하게 서 있는 말도,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피와 살점이 뒤섞인 진흙탕 위에서 겨우 숨이 붙어 있는 몇몇 기병들이 신음을 뱉어낼 뿐이었다.

체인에 묶여 뒤따르던 염민들은 기적적으로 폭발 반경에서 벗어나 살아남았다. 그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지옥과도 같은 광경에 넋이 나간 채, 흙바닥에 주저앉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롤랑은 신의 대리인 혹은 악마의 화신 그 자체였다.

"이…… 이것이 정녕 인간의 힘이란 말인가……."

한 노인이 이빨을 부딪치며 롤랑의 발끝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롤랑은 천천히 걸어가 그들 앞에 섰다. 그의 구두 굽에 붉은 피가 묻어났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건조했다.

"일어나라."

롤랑의 목소리가 계곡에 차갑게 울렸다.

"이것은 기적도, 악마의 수작도 아니다. 가두어진 기체가 열을 받아 팽창하는 지히 극히 당연한 역학적 현상일 뿐이다. 너희를 구한 것은 신의 자비가 아니라, 화약의 물리학이다."

그는 염민들의 체인을 끊어주며 덧붙였다.

"생존을 원한다면 미신이 아닌 법칙을 믿어라. 그것이 너희가 이 땅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다."

염민들은 공포와 경외심이 뒤섞인 눈빛으로 롤랑을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영혼 깊은 곳에 '롤랑 에르하르트'라는 이름과 그가 가져온 기묘한 기술의 위력이 지워지지 않을 낙인처럼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리디아는 참혹한 전장을 둘러보며 침을 삼켰다. 단 한 명의 아군 피해도 없이, 백작의 정예 기병대를 완벽하게 소멸시킨 이 비정한 효율성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쓰러진 기병대장의 시신으로 다가가 품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가죽 갑옷을 들치고 내부 주머니를 뒤적이던 그녀의 손끝이 멈추었다.

"서기장님, 이것을 보십시오."

리디아가 꺼내 든 것은 피에 젖지 않은 두꺼운 가죽 주머니였다. 그 안에는 붉은 밀랍으로 단단히 봉인된 양피지 서한이 들어 있었다.

봉인 표면에 찍힌 문양을 확인하는 순간, 리디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사자 문양의 백작 인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숙한 십자가와 불꽃이 정교하게 교차된 문양이었다.

"이것은…… 동부 성회 성령 대주교 칼렌의 밀인입니다."

롤랑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리디아가 떨리는 손으로 봉인을 뜯고 서한을 펼쳤다. 서한에 적힌 글귀를 읽어 내려가는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오스벨트의 영구적 사교 단속을 위해, 백작의 군세와 협력하여 광산 지대의 대정화를 명하노라. 이단적 기술의 싹을 완전히 도려내고, 그 우두머리의 목을 제단에 바쳐라.'……"

서한의 끝에는 대주교 칼렌의 친필 서명이 묵직하게 박혀 있었다.

백작의 약탈은 단지 재물을 노린 탐욕이 아니었다. 그것은 성령 교단이 오스벨트를 완전히 말살하기 위해 기획한 조직적인 종교 재판이자 전쟁의 전초전이었다.

매캐한 유황 연기 사이로, 새로운 전쟁의 서막이 소리 없이 내려앉고 있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