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라.”
롤랑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흙먼지 자욱한 대장간의 적막을 깼다.
손에 쥔 양피지 서한에는 백작의 붉은 밀랍 직인이 피처럼 붉게 번져 있었다. 3주 안에 최고급 중장 철검 200자루를 납품하라는 명령. 기한을 어길 시 서기직 파면과 대장간 몰수, 그리고 반역죄.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요구였다.
개릭은 달아오른 화로 옆에 그대로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거친 가죽 앞치마를 두른 그의 두꺼운 어깨가 잘게 떨렸다.
“이건 불가능하오, 서기장 나리. 아무리 날고 기는 장인이라도 혼자서 검 한 자루를 제대로 단조하려면 사흘은 꼬박 매달려야 하오. 불순물을 거르고, 담금질을 하고, 날을 세우는 것까지 말이오. 그런데 3주에 200자루라니…… 백작 놈이 우릴 단체로 목 매달 작정을 한 게 분명하오!”
리디아 역시 차가운 눈빛으로 롤랑의 옆얼굴을 응시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가죽 장갑을 초조하게 두드렸다.
“백작의 세무 대리인 바쟁이 동부 변경의 동태를 보고한 결과겠지요. 롤랑, 이건 단순한 세금 압박이 아닙니다. 법적으로 우리를 완전히 말살하려는 올가미예요. 제가 가문의 사병들을 동원해 백작령의 행정관들과 협상을 벌여 볼 수도 있습니다만, 시간은 길어야 사흘 정도밖에 벌지 못할 겁니다.”
롤랑은 대답 대신 품에서 먹줄과 자를 꺼냈다. 그의 시선은 이미 대장간 한구석, 반쯤 허물어진 낡은 가마 바닥을 향해 있었다.
“협상은 필요 없습니다, 리디아.”
롤랑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가마 앞에 섰다.
그의 눈동자가 깊은 심연처럼 가라앉았다. 보이지 않는 물리적 법칙의 세계가 그의 시야 위로 겹쳐지기 시작했다.
**[공학적 투시안 가동.]**
뇌리를 찌르는 날카로운 이명이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귀끝에서 삐― 하는 고주파 소음이 들려오며 머릿속 세포들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성황청의 이단 추적 마도구가 감지할 수 있는 특이 마력 노이즈가 대장간의 공기 중으로 미세하게 방출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롤랑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통증을 억눌렀다.
투시안의 푸른빛 격자무늬가 낡은 가마 바닥을 훑었다.
가마의 내화 벽돌은 점토와 흑연의 배합 비율이 완전히 붕괴해 있었다. 특정 지점에 열이 과도하게 쏠려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붉은색 경고 수치가 허공에 떠올랐다. 이 가마로는 섭씨 1,200도 이상의 고온을 버틸 수 없었다. 철을 완전히 녹여 불순물을 분리하는 도가니(Crucible) 공정은커녕, 조악한 선철을 데우는 것조차 한계였다.
“개릭. 이 가마의 바닥은 점토에 비해 흑연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 이대로 불을 지피면 열 팽창율의 차이로 인해 사흘도 못 가 파열한다.”
롤랑이 가마 아래쪽의 특정 균열 부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무슨 소릴 하는 거요? 이 가마는 내 아버지가 평생 동안 길들여 온 가마요!”
“당신의 아버지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롤랑의 목소리에는 한 줌의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자연의 법칙은 경외나 전통을 봐주지 않습니다. 오직 정확한 수치로만 답할 뿐이지요. 개릭, 당장 망치를 들어 저 바닥을 뜯어내십시오. 내 내화 점토와 흑연의 배합 비율을 다시 지정해 주겠습니다. 3주 안에 200자루를 만들기 위해선, 먼저 도구부터 규격화해야 합니다.”
개릭은 롤랑의 확신에 찬 눈빛에 압도당한 듯, 침을 꿀꺽 삼키며 커다란 메를 치켜들었다.
육중한 철퇴가 가마 바닥을 내리치자, 케케묵은 가마의 잔해와 흙먼지가 대장간 사방으로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
다음 날 아침.
오스벨트 변방의 조그만 대장간 마당에는 인근에서 불러 모은 서너 명의 견습 대장장이들과 십여 명의 유민 일꾼들이 모여 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패배감과 두려움이 짙게 깔려 있었다. 백작의 징벌적 납품 명령은 이미 영지 전체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다.
“우린 다 죽었습니다. 3주에 200자루라니, 성령 교단의 성기사들도 그런 기적은 못 부릴 겁니다.”
한 젊은 일꾼이 바닥에 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롤랑은 그들 앞에 섰다. 그의 손에는 여러 개의 황동제 막대기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일정한 길이와 두께로 정밀하게 깎여진 마모 측정 막대기(Gauge)였다.
“오늘부터 이 대장간에 ‘장인’은 없습니다.”
롤랑의 선언에 개릭이 미간을 찌푸렸고, 일꾼들은 서로의 얼굴을 두리번거렸다.
“장인이 없으면 검은 누가 만든단 말이오?”
개릭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당신들이 만듭니다. 하지만 혼자서 검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일은 이제 없을 겁니다.”
롤랑은 황동 막대기를 일꾼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이것은 규격 측정용 자입니다. 오늘부터 작업은 세 단계로 분업화됩니다. 첫 번째 조는 원철을 가열하여 일정한 두께로 늘리는 작업만 반복합니다. 두 번째 조는 이 측정 막대기에 맞춰 검날의 형태를 잡는 단조 작업만 합니다. 마지막 조는 숫돌과 가죽을 이용해 오직 연마와 조립만을 담당합니다.”
일꾼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그런 식으로 검을 만들면 칼날의 무게중심도 맞지 않고, 쇠의 결이 망가집니다! 검은 장인의 혼을 담아 사흘 밤낮을 두드려야…….”
한 늙은 대장장이가 반발하며 나섰다. 중세의 도제식 가내수공업에 젖어 있는 그들에게 분업화라는 현대적 개념은 신성모독이나 다름없었다.
롤랑은 늙은 대장장이의 앞으로 걸어가 그의 거친 손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 손에 황동 막대기를 쥐여 주었다.
“당신의 혼이 담긴 검은 하루에 몇 자루나 나옵니까?”
“……사흘에 한 자루요.”
“이 측정 막대기의 오차 범위는 1밀리미터 이하입니다. 이 막대기 틈새로 검날이 매끄럽게 통과하지 못하면 그 검은 즉시 폐기됩니다. 반대로 너무 얇아도 폐기합니다. 당신들의 손재주와 감각이 아니라, 이 막대기의 규격이 검을 만듭니다. 감정이 배제된 기계적인 반복만이 속도를 낳습니다.”
롤랑의 목소리는 차가운 얼음송곳 같았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전설에 나오는 명검 한 자루가 아니라, 백작의 목을 조를 수 있는 동일한 성능의 규격화된 철검 200자루입니다. 내 말에 따르지 않겠다면 지금 당장 이 대장간에서 나가십시오. 단, 백작의 군사들이 들이닥칠 때 도망칠 곳이 있다면 말입니다.”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롤랑의 냉혹한 현실 감각과 압도적인 계획 성 설계 앞에서, 해묵은 장인 정신은 설 자리를 잃었다.
작업이 시작되었다.
대장간은 이전과 전혀 다른 리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쇠를 달구는 화로 앞에는 오직 불길을 지키는 인부들만 배치되었고, 그들이 달궈진 철판을 넘겨주면 다음 조가 기계적으로 메질을 해댔다.
“더 빠르게 두드리십시오! 측정 막대기를 대보고 오차가 생기면 처음부터 다시 합니다!”
롤랑의 독려 하에, 쇠를 두드리는 둔탁한 타격음이 일정한 박자로 대장간을 가득 채웠다.
***
작업 사흘째가 되자, 현장에는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자욱한 쇳가루와 가마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독한 연기, 그리고 마구간 바닥에서 긁어모은 먼지 속에서 인부들의 손발이 성할 날이 없었다. 시뻘건 쇳물에 데이고, 날카로운 철편에 베인 상처들이 오염된 환경 속에서 곪아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롤랑, 큰일입니다.”
리디아가 장부를 들고 롤랑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단정한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벌써 세 명의 인부가 손의 상처가 부어올라 고열로 누웠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내일 교대 작업에 구멍이 생깁니다. 이 가난한 영지에는 상처를 치료할 약초조차 부족해요.”
인부들은 상처에 대장간의 기름때를 바르거나 성령의 기도를 올리며 버티고 있었다. 중세의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가벼운 찰과상은 곧 파상풍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었다.
롤랑은 가만히 턱을 괴었다.
백성들의 고통에 대한 연민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 슈퍼컴퓨터는 오직 생산 인원의 손실로 인한 공정 지연이라는 숫자를 계산하고 있었다.
“리디아. 가마 구석에 모아둔 폐유지와 동물성 지방을 가져오십시오.”
“가축 기름을요? 그걸로 무엇을 하려고요?”
“그리고 소금 정제 가마에서 나온 탄산나트륨 찌꺼기와 거친 소금을 준비하십시오.”
롤랑은 대장간 뒷마당에 커다란 무쇠 솥을 걸었다.
그는 버려진 동물성 유지에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했다. 기름이 녹아내리자, 탄산나트륨과 소금을 정밀한 비율로 투입했다.
**[공학적 투시안 가동.]**
시야에 비친 솥 안의 화학 반응이 수치로 전환되었다. 비누화 반응(Saponification)의 진행도가 실시간으로 표시되었다. 롤랑은 온도를 조절하며 솥 안의 혼합물을 저었다. 극심한 이명이 다시 한번 그의 두뇌를 자려 밟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기름과 염기성 물질이 결합하여 굳어지기 시작했다. 롤랑은 그것을 사각 틀에 부어 식힌 뒤, 거칠고 투박한 회색 고체 덩어리들로 잘라냈다.
수 세기 동안 귀족들의 전유물이자 성령 교단의 사치스러운 성물로만 여겨졌던 ‘비누’의 조잡한 초기 형태였다.
“이것을 모든 인부들에게 배급하십시오.”
롤랑이 비누 덩어리를 리디아에게 건넸다.
“이것으로 교대 작업이 끝날 때마다 손과 상처를 흐르는 물에 씻어내게 하십시오. 상처가 곪는 것은 악마의 저주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오염 물질 때문입니다. 이 세정제가 그것을 씻어내 줄 겁니다.”
리디아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회색 비누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이 귀한 것을 일꾼들에게 무상으로 준단 말입니까? 이건 귀족들이나 쓰는…….”
“이것은 사치품이 아니라 노동력을 보존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롤랑의 대답은 건조했다.
“일꾼 한 명이 쓰러져 대체 인력을 구하고 교육하는 비용이 이 비누 한 덩어리의 가치보다 수십 배는 더 큽니다. 나는 단지 가장 효율적인 계산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리디아는 롤랑의 얼음처럼 차가운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에 소름이 돋았지만, 그의 말이 지극히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비누가 배급되고 이틀이 지나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상처가 짓무르고 진물이 흐르던 인부들의 손이 눈에 띄게 깨끗해졌고, 더 이상 고열로 쓰러지는 결근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인부들은 투박한 회색 비누를 신성한 물건처럼 소중히 다루며, 롤랑을 향해 경외심이 가득 찬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서기장 나리가 우리에게 신비한 성물을 내려주셨다!”
대장간 내부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들은 이제 단순한 강제 노동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강력한 지배자의 명령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있었다.
***
하지만 진짜 문제는 가마의 효율이었다.
기존의 가마로는 강철을 주조하기 위한 고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웠다. 쇳물이 충분히 끓어오르지 않아 탄소 함량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도가니 공정이 지연되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대장간에는 오직 롤랑과 개릭 두 사람만이 남았다.
롤랑은 검댕이 잔뜩 묻은 손으로 대장간의 거친 흙벽 앞에 섰다. 그는 숯덩이를 들고 벽면에 기하학적 도형과 선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보쇼, 서기장 나리. 벽에다 무슨 낙서를 그리시는 거요? 우린 당장 철을 더 뜨겁게 달구어야 하오.”
개릭이 땀을 닦으며 불평했다.
“이것은 가마 내부의 열 대류를 제어하기 위한 설계도입니다.”
롤랑은 벽면에 원과 삼각형, 그리고 알 수 없는 기호들을 그려 넣었다. 문맹인 대장장이들과 일꾼들도 한눈에 보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복잡한 유체역학 공식을 단순한 도해식 기하 부호로 변환한 것이었다.
“이 삼각형 부호가 있는 곳의 연소실 노즐을 15도 아래로 비트십시오. 그리고 원형 부호가 있는 가마 상부의 구멍을 반쯤 막으십시오. 그러면 내부의 열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소용돌이치며 가마 바닥으로 집중됩니다.”
“노즐을 비튼다고 불길이 달라진단 말이오? 불은 그저 위로 솟구칠 뿐인데…….”
“시험해 보면 알겠지요.”
개릭은 반신반의하며 긴 집게를 들고 가마 안쪽의 점토 노즐을 롤랑이 그린 각도대로 조심스럽게 비틀었다.
그 순간, 가마 내부에서 *웅―* 하는 묵직한 공명음이 울려 퍼졌다.
항상 위로만 치솟아 굴뚝으로 빠져나가던 붉은 화염이, 가마 안쪽에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도가니 용기 주위를 휘감기 시작했다. 불길의 색이 붉은색에서 점차 밝은 황색으로, 그리고 마침내 순백색에 가까운 고온의 빛깔로 변해갔다.
“이, 이럴 수가……!”
개릭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평생 동안 불을 다뤄온 그였지만, 단지 노즐의 각도를 조금 비틀고 구멍을 조절한 것만으로 불길이 이토록 흉포하게 맹렬해지는 것은 처음 보았다. 화로 근처의 공기가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과학은 신비가 아닙니다, 개릭.”
롤랑은 차가운 눈으로 끓어오르는 도가니를 응시했다.
“열의 흐름을 통제하고 기압의 차이를 이용하면, 땔감을 절반만 쓰고도 세 배 이상의 온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신들이 ‘장인의 감각’이라 부르던 것은, 단지 정량화되지 못한 물리 법칙의 파편일 뿐입니다.”
수작업의 신비와 장인 정신을 외치던 개릭은, 눈앞에 펼쳐진 압도적인 과학적 지배력 앞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롤랑이 제시한 단순한 기하학 부호들은, 그 어떤 마법보다도 확실하고 강력하게 대장간의 불길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대장간의 생산 속도는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하루에 겨우 대여섯 자루에 불과하던 검날 생산량이, 분업화와 개량된 가마의 고온 덕분에 하루에 수십 자루씩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검날들은 황동 측정 막대기의 규격에 맞추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정한 두께와 무게로 찍혀 나왔다.
***
기한을 일주일 남겨둔 어느 날 밤.
대장간의 마당에는 이미 규격화된 최고급 중장 철검 180여 자루가 정연하게 쌓여 있었다. 백작의 독수를 무력화시키고, 오스벨트의 독자적인 기술 자치령을 세우기 위한 첫 번째 성취가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롤랑은 마지막 20자루를 채우기 위해 가마의 온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가마 상부에 수동으로 작동하는 강제 환기 기구(송풍기 개량형)를 장착했다. 피스톤을 누를 때마다 거대한 공기 흐름이 가마 내부로 주입되며, 도가니 안의 쇳물이 마침내 완벽한 액체 상태로 끓어올랐다.
불순물이 완전히 타버린, 순도 높은 탄소강의 탄생 직전이었다.
개릭은 흥분한 얼굴로 송풍기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서기장 나리! 이대로라면 내일 아침이면 200자루를 모두 채울 수 있소! 백작 놈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단 말이오!”
롤랑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가마를 향해 투시안을 켰다.
**[공학적 투시안 가동.]**
머리를 깨부수는 듯한 통증과 함께, 푸른빛 격자가 가마 내부를 투영했다.
그리고 롤랑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가마 하부.
2화에서 그가 지적했던, 점토와 흑연의 배합 비율이 어긋나 균열 경고가 떴던 바로 그 지점이었다.
비록 보강 조치를 취했으나, 강제 송풍기로 인해 한계치를 초과한 고온과 압력이 누적되자 그 미세한 틈새가 다시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허공에 떠오른 경고 수치가 치명적인 붉은색으로 깜빡이며 급격히 상승했다.
*쩌적――*
대장간의 소음 속에서, 뼈가 부러지는 듯한 날카롭고 미세한 열 균열음이 가마 밑바닥에서 가냘프게 울려 퍼졌다.
개릭은 눈치채지 못했으나, 롤랑의 투시안은 똑똑히 보고 있었다.
가마 하부의 내화 벽돌이 가해지는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붕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만약 이 균열이 터져 나간다면, 섭씨 1,400도가 넘는 끓는 쇳물이 대장간 바닥으로 쏟아져 내려 모든 것을 집어삼킬 터였다.
완성을 눈앞에 둔 순간, 파멸의 전조가 가마 밑바닥에서 소리 없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