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가를 찢어발기는 이명은 단순한 감각의 교란이 아니었다. 그것은 뇌 세포망을 직접 자극하는 전기적 신호이자, 성령 교단이 대륙 전역에 구축해 놓은 마도 감지망과의 공명 현상이었다.
롤랑은 제 자리에 멈춰 섰다. 오른쪽 귀밑샘 부근에서부터 검붉은 마력 노이즈가 미세한 스파크를 일으키며 공기 중으로 번져 나가고 있었다. 붉은 불꽃이 타들어 가듯, 공기가 지직거리는 파열음이 고막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성당 첨탑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점차 간격을 좁히며 가쁘게 울렸다.
둥-! 둥-! 둥-!
이단 추적 장치, 즉 성령의 저울이 작동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대장간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야장 개릭이 겁에 질린 눈으로 롤랑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은 롤랑의 목덜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붉은 빛무리로 향해 있었다.
“서기장 나리... 귀, 귀에서 그 불길한 빛은 대체 무엇입니까? 저 종소리는 필시 정화 사제들이...”
개릭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평생을 불과 쇠를 다루며 살아온 거구의 사내였지만, 교단의 정결령과 이단 심판 앞에서는 한 마리 양과 다름없었다. 개릭의 아내와 아이들은 이미 서로를 껴안은 채 구석진 벽면에 달라붙어 신음하고 있었다.
롤랑은 침착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공학적 투시안의 활성화 시간이 120초를 초과했다. 방출된 마력 노이즈의 강도는 약 0.45밀리헤르츠. 성당 첨탑에 설치된 탐지석의 수신 반경은 약 500미터다. 바쟁이 물러난 직후이니, 가마터 주변을 순찰하던 정화관들이 이 방향으로 직선 지름을 그리며 좁혀 들어올 것이다.’
도망치는 것은 자멸이었다. 도망치는 행위 자체가 이단임을 자백하는 꼴이며, 동부 변경의 서기장이라는 합법적인 신분을 스스로 내려놓는 최악의 수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검붉은 마력 노이즈를 물리적으로 차단하고, 탐지 기구의 작동을 영구히 교란할 수 있는 즉각적인 차폐막이었다.
롤랑의 시선이 대장간 우측 구석에 위치한 슬래그 폐수 웅덩이로 향했다.
그곳은 수십 년간 철광석을 제련하고 남은 황, 탄소 찌꺼기, 규산염 슬러지, 그리고 대기 중의 습기가 섞여 고인 썩은 진흙탕이었다. 지독한 산성을 띠고 있어 영지민들도 감히 손을 대지 못하는 오물 구덩이였다.
‘황화수소와 탄소 콜로이드 입자. 그리고 강산성 수용액.’
롤랑의 뇌리에 현대 물리학과 화학의 공식들이 빠르게 교차했다. 마력 노이즈 역시 일종의 전자기적 혹은 파동적 성질을 지닌 에너지 전달 현상이다. 밀도가 극도로 높고 이황화탄소와 금속 이온이 포화 상태로 녹아 있는 슬러지 내부라면, 이 파동의 자유 공간 방출을 일시적으로 굴절시키고 감쇄시킬 수 있었다.
“개릭, 가만히 있어라.”
롤랑이 나지막하게 경고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한 걸음을 내딛더니, 그대로 슬래그 폐수 웅덩이 앞으로 몸을 숙였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검고 걸쭉한 오물 구덩이 속으로 깊숙이 처박았다.
“서, 서기장 나리!”
개릭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으나, 롤랑의 귀에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코와 입, 귀로 걸쭉하고 차가운 폐수가 밀려들었다. 코를 찌르는 지독한 달걀 썩는 냄새와 유황의 가스가 비강을 마비시켰다. 강산성 물질이 얼굴 피부와 두피를 바늘로 찌르듯 자극했다. 눈을 뜰 수 없었고, 숨이 막혀오는 극심한 고통이 전신을 지배했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머리가 검은 점토질 폐수 속으로 완전히 잠기자마자, 머릿속을 헤집던 이명이 기적처럼 감쇄하기 시작했다. 검붉은 마력 노이즈가 슬래그 내부의 풍부한 자유 전자가 섞인 금속 찌꺼기 층에 흡수되어 흩어졌다.
철컥, 철컥.
대장간 밖에서 무거운 철갑 장화를 신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가죽과 금속이 스치는 거친 소리, 그리고 손에 쥔 청동제 기구가 삐걱거리는 기계음이 고요한 가마터의 공기를 갈랐.
“성령의 인도가 이끄는 곳은 이곳이다.”
낮고 거만한 목소리가 대장간 문턱을 넘어왔다.
성령 교단 동부 지부 소속의 정화 사제 루시우스였다. 그의 뒤로 백색의 성의를 걸치고 철제 마스크를 쓴 세 명의 정화병들이 따르고 있었다. 루시우스의 손에는 정밀하게 세공된 청동제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지팡이 끝에 매달린 청동 저울의 바늘이 미친 듯이 회전하다가, 대장간 내부를 가리키며 멈춰 섰다.
루시우스는 오만한 시선으로 대장간 내부를 훑었다. 그의 시선이 구석에 주저앉아 덜덜 떨고 있는 개릭의 가족들을 지나, 폐수 웅덩이에 머리를 처박고 허우적거리는 롤랑에게 멈췄다.
“이곳에서 극심한 오염의 파동이 감지되었다. 야장이여, 방금 전 이곳에서 비정상적인 마력의 흔적을 보지 못했는가?”
루시우스의 질문은 차가웠다.
롤랑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폐수 웅덩이에서 머리를 확 치켜들었다.
“커헉! 퉤, 퉤!”
검은 진흙과 유황 찌꺼기가 롤랑의 얼굴과 서기복 가슴팍으로 무섭게 흘러내렸다. 롤랑은 미친 듯이 기침을 해대며, 바닥을 기어 나와 개릭의 발치까지 굴러갔다. 그의 얼굴은 검은 오물로 뒤덮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강산성 액체 때문에 붉게 짓무른 피부가 군데군데 드러나 있었다.
“사, 사제님! 살려주십시오! 가마의 배수관이 막혀, 서기장인 제가 직접 찌꺼기를 확인하려다가 그만...”
롤랑은 이빨을 덜덜 떨며 비굴한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오직 생존을 위한 기만이었다.
루시우스는 롤랑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지독한 유황과 석탄 석유계 악취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손에 쥔 청동 저울의 바늘이 롤랑의 머리 근처로 다가가자, 지독한 가스와 산성 증기 때문에 마도 장치의 내부 기어가 삐걱거리며 오작동을 일으켰다. 침식 신호를 감지해야 할 탐지석이 고농도의 유황 연기에 노출되자 검게 변색되며 작동을 멈춘 것이었다.
“더럽군. 이 비천한 오물이 성령의 저울을 더럽히는구나.”
루시우스는 코를 감싸 쥐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이곳은 불량한 잡돌과 황이 가득한 가마터다.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독한 가스가 가끔 탐지석의 감각을 마비시키지. 이단자의 마력이 아니라, 그저 썩은 광재의 악취일 뿐이다.”
옆에 서 있던 정화병이 지팡이를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루시우스는 롤랑의 더러운 몰골을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본 후, 지팡이를 거두었다.
“오스벨트의 쓰레기 같은 황무지년들이 만드는 철이 제대로 될 리가 없지. 정화를 방해한 죄를 묻고 싶으나, 그 더러운 몰골을 보니 성령의 자비를 베푸는 것이 낫겠구나. 가마를 정비할 때 발생하는 가스는 즉각 배출해라. 다음번에도 이딴 오작동이 발생하면, 그 주둥이를 불로 씻어낼 것이다.”
“감사합니다, 사제님! 성령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롤랑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굴종의 대사를 뱉었다.
루시우스와 정화병들은 대장간 바닥에 침을 한 번 뱉고는,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려 나갔다. 그들의 무거운 발소리가 멀어지고, 성당의 경고 종소리마저 잦아들 때까지 대장간 안에는 오직 롤랑의 거친 숨소리만이 감돌았다.
“나리... 서기장 나리...!”
개릭이 허겁지겁 다가와 롤랑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는 대장간 한구석에 있던 깨끗한 공업용 용수를 양동이째 들고 와 롤랑의 머리에 부었다. 검은 슬래그 찌꺼기가 씻겨 내려가며 롤랑의 붉게 충혈된 눈과 단단하게 다문 입술이 다시 드러났다.
롤랑은 수건을 받아 얼굴을 닦아냈다. 그의 안색은 창백했지만, 눈빛만큼은 그 어떤 강철보다도 차갑고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으니 되었다.”
롤랑의 목소리에는 방금 전의 비굴함이나 떨림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철저하게 계산된 연극이 끝난 후의 건조한 행정가의 어조였다.
개릭은 롤랑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거친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제 평생 많은 영주와 관리들을 보았습니다만... 자신을 채찍질하는 시늉이라도 하며 아랫사람을 구하려 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나리께서는 이 가마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저희 가족의 목숨을 위해 그 독한 오물통에 머리를 넣으셨습니다.”
개릭의 눈에 뜨거운 기운이 돌았다.
“이 개릭, 비록 글자는 모르는 미천한 야장이나, 쇠의 단단함과 사람의 의리는 구분할 줄 압니다. 이제부터 이 대장간과 가마는 오롯이 서기장 나리의 것입니다. 나리가 죽으라 하시면 죽는시늉이라도 하겠으며, 나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망치를 두드릴 것입니다.”
그는 품 안에서 낡았지만 묵직한 구리 인장을 꺼내 롤랑의 손바닥에 쥐여주었다. 대장간의 소유권과 지 지휘권을 양도하겠다는 야장 가문의 오래된 서약이었다.
롤랑은 손바닥에 닿는 구리 인장의 감각을 느끼며 조용히 수긍했다.
그가 바란 것은 감상적인 충성이 아니었다. 실질적인 통제권이었다. 이제 개릭의 대장간은 성령 교단의 눈을 피해 새로운 기술을 실험하고 축적할 수 있는 롤랑만의 비밀 기지가 된 셈이었다.
“좋다. 맹세는 접수했다. 그렇다면 즉시 조업을 재개한다.”
롤랑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는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은 얼굴로 대장간 중앙의 거대한 가마 앞으로 걸어갔다.
제철소의 진짜 개혁은 지금부터였다. 고강도 탄소강(Crucible Steel)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조악한 가마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했다.
롤랑은 다시 한번 눈에 힘을 주었다. 뇌리를 스치는 가벼운 통증과 함께, ‘공학적 투시안’이 가마의 구조를 3차원 투영 모델로 시각화하기 시작했다.
[대상 물질: 황토 및 점토 혼합 가마벽] [밀도 분포: 불균일율 34%] [탄소 및 흑연 배합비: 상부 8%, 하부 22% (편중도 심각)] [열팽창 한계치: 1,150℃] [붕괴 예상 시간: 조업 가동 후 72시간 이내 파열 확률 92.4%]
투시안이 제시하는 붉은색 경고 마크가 가마 바닥의 특정 지점에 집중적으로 표시되었다.
개릭이 사용하던 기존의 진흙 가마는 점토와 흑연의 배합 비율이 엉망이었다. 한쪽 벽면은 흑연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 점토층으로만 이루어져 있어, 고온의 열을 가하면 열팽창률의 차이로 인해 내부에서부터 균열이 발생해 폭발할 운명이었다.
만약 이 상태로 고탄소 제련을 시도했다면, 도가니가 깨지며 쇳물이 사방으로 비산해 대장간 전체가 불바다가 되었을 터였다.
롤랑은 주머니에서 서기용 깃펜과 양피지 조각을 꺼냈다.
그리고 투시안이 가리키는 결함 부위의 정확한 좌표와 함께, 이를 보강하기 위한 물리적 공식을 적어 내려갔다.
“개릭, 이 가마의 바닥 우측 삼분지 일 지점의 점토를 모두 긁어내라.”
롤랑의 단호한 명령에 개릭이 눈을 크게 떴다.
“예? 그곳은 가마의 중심을 받치는 기둥이 있는 곳입니다만...”
“그 기둥의 점토 배합이 잘못되었다. 탄소질 흑연의 비율이 부족하여 열을 받으면 무너진다. 내가 적어주는 비율대로 점토와 흑연 가루를 1대 4의 비율로 정밀하게 섞어 다시 메워라. 두께는 정확히 삼 촌(약 9cm)으로 균일하게 유지해야 한다.”
롤랑은 양피지를 개릭의 손에 쥐여주었다.
글을 모르는 개릭이었지만, 양피지에 그려진 구체적인 가마의 단면도와 빗금 친 보강 구역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개릭은 침을 꿀컥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기장 롤랑의 눈에는 자신들이 보지 못하는 ‘쇠와 흙의 숨결’이 보이는 것이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당장 가마 바닥을 뜯어내고 지시하신 대로 보강하겠습니다.”
개릭이 망치를 들고 가마 안쪽으로 몸을 집어넣으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대장간 마당 너머에서 거친 말발굽 소리가 다시 한번 정적을 깨뜨렸다. 이번에는 정화 사제들의 느린 걸음걸이가 아니었다. 잘 훈련된 군마들이 대지를 박차는 웅장하고 조직적인 진동이었다.
두두두두!
철갑을 두른 마갑이 부딪치는 쇳소리와 함께, 대장간 입구로 수십 명의 기병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방패에는 익숙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은색 바탕에 푸른 매가 날개를 편 문양. 동부 변경에서 가장 오래된 명문가이자, 최근 백작 세력의 압박으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보이스트’ 가문의 상징이었다.
기병들의 중심에서 한 필의 백마가 앞으로 나섰다.
말 위에 올라탄 여인은 날카롭고 이지적인 눈매를 지니고 있었다. 푸른빛이 도는 흑발을 단정하게 묶어 올린 그녀는, 가죽으로 덧댄 철제 흉갑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허리춤에는 장식이 배제된 극도로 실용적인 서기용 장부 주머니와 장검이 나란히 매달려 있었다.
보이스트 가문의 가신이자, 동부의 실무 행정을 총괄하는 리디아 폰 보이스트였다.
그녀는 말에서 가볍게 내려 대장간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예리한 눈동자가 슬래그 폐수로 엉망이 된 롤랑의 몰골과 가마 바닥을 뜯어내려던 개릭의 망치를 차례로 훑었다.
“롤랑 에르하르트 서기장.”
리디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갑고 공공연했다.
“동부 오스벨트 세무 장부와 원철 배급 대장에 기록되지 않은 불법적인 철기 공정이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고발이 접수되었다. 보이스트 가문의 행정 전권 대리인으로서, 이 시간부로 서기실의 세무 장부와 대장간의 모든 가마 조업권을 압수한다.”
그녀가 행정 명령서가 담긴 가죽 두루마리를 차갑게 치켜들었다.
롤랑의 눈빛이 미세하게 가라앉았다. 겨우 세무관 바쟁을 물리치고 가마를 장악하려던 찰나, 동부의 또 다른 지배 세력이 그의 목덜미를 겨누어 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