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탄진이 폐부 깊숙이 박혀 들어왔다.
묵직한 이취와 함께 가죽이 타들어 가는 노린내가 콧등을 찔렀다. 바닥은 축축하고 단단한 진흙이었다. 머리를 짓누르는 이명 속에서, 사내의 의식은 비선형적인 시간의 왜곡을 뚫고 낯선 육신의 감각기관 속으로 안착했다. 가슴을 짓누르는 거친 모직 옷감의 감촉과 손끝에 닿는 차가운 쇠기름의 감각이 극도로 선명했다.
생전의 마지막 기억은 가스 크로마토그래피 장비의 차가운 금속 계기판과 연구실을 집어삼키던 거대한 폭발음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펼쳐진 것은 현대적인 학술원의 백색 벽면이 아니었다.
사방은 검게 그을린 목조 기둥과 흙으로 대충 이겨 바른 요(窯)가 들어선 조악한 대장간이었다. 공기 중에 부유하는 석탄 가루와 유황 냄새는 이곳이 고온의 열처리를 다루는 극히 원시적인 주조 현장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서기장 나리! 정신이 드십니까? 이보시오, 서기장 나리!”
뺨을 때리는 거친 손길에 고개를 돌렸다. 낡은 가죽 앞치마를 두른 거구의 사내가 땀과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굳은살이 흉터처럼 박힌 손과 어깨의 골격으로 보아, 평생 쇠망치를 휘두른 야장임이 틀림없었다. 그의 이름은 개릭 아이언피스트였다.
그리고 그 순간, 롤랑의 뇌리에 낯선 법률 조항들과 수치적 정보들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롤랑 에르하르트.
이곳은 신성 제국의 동부 변경인 오스벨트였고, 자신은 영지를 다스리는 발루아 백작 가문에 소속된 하급 행정관이자 서기장이었다. 동시에 이곳은 성령 교단이 제정한 절대 교리, 즉 기계적 장치와 화학적 결합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정결령’이 만인을 지배하는 미신의 시대였다.
“정신을 차려 보았자 소용없는 일이다, 에르하르트 서기장.”
대장간의 입구를 가로막고 선 무리가 있었다. 은색 도금이 벗겨진 흉갑을 입은 사병들 사이로, 정밀하게 재단된 감청색 외투를 걸친 중년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발루아 백작의 세무 대리인이자 동부 변경의 징세관인 피에르 바쟁이었다. 그의 구두 끝에는 오물과 말똥이 묻어 있었으나, 그의 손가락에서 빛나는 가문 인장 반지는 기고만장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바쟁은 구두 굽으로 대장간 바닥에 굴러다니는 철검의 파편을 툭툭 찼다.
“백작 가문의 무기고에 납품되어야 할 검 삼십 자루가 전부 이 모양이다. 연철에 불순물이 가득하여 첫 번째 타격에 검날이 바스러졌지. 개릭, 네놈이 백작령의 납세 의무를 모독하고 고의로 군령을 훼손한 죄는 명백하다. 서기장, 대장을 펼쳐라. 오늘부로 아이언피스트 대장간은 영구 폐쇄되며, 도편수 개릭과 그 일가는 광장 교수대에 매달릴 것이다.”
“징세관 나리! 살려주십시오! 이번 광석은 동부 광산에서 넘어온 연철 자체에 잡돌이 너무 많았습니다!”
개릭이 바닥에 머리를 짓찧으며 울부짖었다. 그 뒤편에서는 그의 아내와 어린 아들이 밧줄에 묶인 채 사병들의 거친 손길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었다.
중세의 제철법은 잔인할 정도로 불완전했다.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없는 목탄 가마와 불순물이 가득한 사철은 검의 내부를 공동(Void)과 불균일한 탄소 분포로 가득 채우기 마련이었다. 무기질의 인장 강도와 항복 강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의 야장들은 그저 신의 자비를 구하며 망치를 두드릴 뿐이었다.
피에르 바쟁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품에서 가죽 채찍을 꺼내 들었다.
“광석의 탓이라 변명하는가? 그것은 성령의 정화가 부족한 네놈의 신앙심 탓이다. 서기장 에르하르트, 무엇을 하고 있나? 어서 영지 법률에 따른 처형 집행서에 서명하고 인장을 찍어라. 네놈도 이 미천한 야장 놈들과 함께 광산 노역소로 끌려가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롤랑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지와 검댕이 묻은 서기 서관의 옷자락을 털어내며, 그는 바닥에 떨어진 부러진 검의 파편을 노려보았다.
공학자로서의 본능이 그의 시신경을 자극했다.
‘보여라.’
그의 내면에서 나직한 갈망이 일자, 시야가 급격히 반전하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던 주변의 소음이 물속에 잠긴 듯 아득해졌다. 눈앞의 공간이 미세한 격자 형태의 3차원 좌표계로 분할되기 시작했다. 대상 물질의 성분 구조와 물리적 한계치를 시각적으로 분석하는 능력, 즉 ‘공학적 투시안’이었다.
부러진 검날의 단면이 붉은색과 푸른색의 스펙트럼으로 번쩍였다.
[분석 대상: 연철 검 (파손품)] [탄소 함유량: 불균일 분포 (0.15% ~ 1.2% wt C)] [구조적 결함: 주조 기포(Gas Porosity) 다수 발견, 페라이트 및 시멘타이트 경계면의 급격한 응력 집중] [열역학적 한계치 초과율: 142%]
검의 내부 구조가 정밀한 3D 도면처럼 뇌리에 각인되었다.
동시에 머리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왔다. 관자놀이의 혈관이 터질 듯 팽창하며, 귀에서 ‘삐이이이-’ 하는 이명이 울렸다. 그것은 이단의 기술을 감시하는 성황청의 마력 감지망과 연동된 특이 마력 노이즈의 방출 현상, 이른바 ‘이단의 침식’이었다.
뇌가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롤랑은 표정을 굳건히 유지했다. 그는 물리학자였고, 과학은 감정이 아닌 사실을 다루는 학문이었다. 그는 머릿속에 울리는 경고음을 무시한 채, 바닥의 파편을 주워 올렸다.
“징세관 바쟁.”
롤랑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평탄했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일말의 동요가 없는 그 서늘한 음조에, 피에르 바쟁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서기장, 감히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가? 어서 서명이나-”
“개릭이 주조한 검이 부러진 것은 공정의 태만이 아닙니다. 백작령 동부 광산에서 채굴된 광석의 황과 인 함유량이 기준치를 초과했기 때문입니다. 철에 황이 섞이면 저온에서 쉽게 부러지는 청열취성(Blue Shortness)이 발생합니다. 이는 야장의 기술 문제가 아니라, 영지가 제공한 원자재의 결함입니다.”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청열... 뭐라구? 이단적인 궤변으로 죄인을 감싸려 드는구나!”
바쟁이 채찍을 소리 나게 휘두르며 소리쳤다. 사병들이 일제히 무기에 손을 올렸다.
그러나 롤랑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시선은 바쟁의 뒤에 서 있는 호위대장, 브란트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브란트는 백작이 하사했다는 명품 지휘검을 자랑스럽게 차고 있었다.
롤랑의 눈이 다시 한번 미세하게 빛났다. 투시안의 격자가 브란트의 검에 닿았다.
[분석 대상: 강철 지휘검 (하사품)] [결함 좌표: 가드 상단 4.2cm 지점] [내부 결함: 주조 과정에서 트랩된 산화물 슬래그 혼입(Slag Inclusion)] [피로 한계 수명: 잔여 충격 3회]
롤랑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것은 가학적인 확신이 담긴 냉소였다.
“제국의 명장들이 주조했다는 그 화려한 검 역시, 물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롤랑이 브란트의 검을 가리켰다.
“그 검은 외관만 화려할 뿐, 내부의 슬래그가 제대로 제거되지 않은 불량품입니다. 가드 상단 4cm 지점에 심각한 응력 집중이 발생해 있지요. 단 세 번의 강한 충격만으로도 그 명품 검은 이 가마의 쓰레기 철검처럼 박살 날 것입니다.”
“이 서기 놈이 미쳤구나!”
호위대장 브란트가 얼굴을 붉히며 검을 반쯤 뽑아 들었다.
“이 검은 백작님께서 사하의 유명한 대장간에서 은화 오십 닢을 주고 구매해 주신 명검이다! 어디서 감히 손가락질이냐!”
“믿지 못하겠다면 증명해 보이면 될 일입니다.”
롤랑은 대장대 위에 놓인 무거운 쇠망치를 집어 들었다. 가냘픈 서기장의 체구에는 어울리지 않는 묵직한 무게였으나, 그의 움직임에는 단호한 행정관의 엄격함이 깃들어 있었다.
“징세관 바쟁. 만약 저 검이 제 말대로 세 번의 타격 안에 부러진다면, 개릭의 죄 역시 원자재의 문제임이 입증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 역시 이들과 함께 교수대에 서겠습니다.”
대장간 내부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개릭은 놀란 눈으로 롤랑을 바라보았고, 피에르 바쟁은 롤랑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묘한 확신에 움찔했다. 그러나 바쟁은 이내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은화 오십 닢짜리 명검이 부러질 리 없다는 확신과, 이 오만한 서기장 놈을 합법적으로 죽일 기회라는 계산이 선 탓이었다.
“좋다. 브란트, 검을 뽑아라. 저 애송이 서기의 주둥이를 닥치게 만들고, 그 목을 벨 명분을 다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브란트가 검을 완전히 뽑아 들었다. 칼날이 대장간의 붉은 화광을 받아 차갑게 빛났다. 외견상으로는 단 하나의 흠집도 없는 무결한 강철의 형상이었다.
롤랑은 망치를 고쳐 잡았다. 이명이 더욱 커지며 부작용으로 안구 뒷부분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으나, 그는 오직 좌표만을 응시했다.
“첫 번째입니다.”
롤랑이 망치를 내리쳤다.
깡-!
날카로운 금속음이 대장간을 울렸다. 검날은 멀쩡했다. 브란트는 코웃음을 쳤다.
“겨우 그 정도 힘이냐? 역시 펜대나 굴리던 놈답군!”
“두 번째.”
롤랑은 대답 대신 망치를 다시 높이 치켜들었다. 이번에는 어깨의 회전력과 중력을 완벽히 실어, 투시안이 가리킨 붉은색 결함 지점을 정확히 때렸다.
깡-!
더욱 무겁고 둔탁한 소리가 퍼졌다. 검날의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것이 롤랑의 시야에는 실시간으로 보였다. 가드 상단 4.2cm 지점의 격자가 붉은색에서 위험을 뜻하는 자색으로 변했다.
브란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손끝으로 전해진 불길한 진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 이놈이...!”
“마지막입니다.”
롤랑은 마지막 삼격을 내리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브란트의 손에서 검을 낚아채듯 빼앗았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가 당황한 순간, 롤랑은 검을 거꾸로 쥐고 대장간 중앙에 놓인 단단한 참나무 탁자 모서리를 향해 가볍게 내리쳤다.
가볍게, 툭 치는 듯한 몸짓이었다.
쨍그랑-!
맑고 투명한 파열음과 함께, 은화 오십 닢짜리 명검의 상반신이 허공을 날아 바닥으로 떨어졌다. 부러진 단면은 정확히 가드 상단 4.2cm 지점이었다. 그 단면의 중심에는 거뭇거뭇한 모래 먼지와 불순물이 굳어 있는 슬래그 가 가득 차 있었다.
“어, 어찌 이런 일이...!”
브란트가 부러진 손잡이만을 쥔 채 멍하니 제자리에 굳어 버렸다.
대장간 안의 사병들과 개릭 일가 역시 숨을 죽였다. 눈앞에서 벌어진 현상은 중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적, 혹은 악마의 예언과도 같았다.
롤랑은 부러진 검날을 주워 피에르 바쟁의 구두 앞에 툭 던졌다.
“명장들이 제련했다는 검도 이 모양입니다. 하물며 잡돌이 가득한 오스벨트의 원철로 만든 검이 부러진 것이 어찌 야장의 죄이겠습니까? 징세관 바쟁, 만약 가마를 폐쇄하고 이들을 처형하신다면, 저는 서기장으로서 백작 가문의 광산 관리 소홀과 불량 원자재 강제 납품에 대한 특별 보고서를 작성하여 중앙 평의회에 제출할 것입니다.”
바쟁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중앙 평의회에 보고서가 올라가는 순간, 영지의 자원 관리 부실 책임은 오롯이 징세관인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었다. 게다가 롤랑의 논리는 완벽했고, 눈앞에 드러난 증거는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했다.
“이... 이단적인 놈... 기묘한 술수로 내 검을 망쳐놓고 무사할 줄 아느냐!”
바쟁이 겉으로는 소리를 질렀으나, 그의 눈동자는 이미 깊은 두려움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롤랑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압박했다.
“선택하십시오. 가마를 유지하고 정제된 철광석을 다시 배급하여 제대로 된 검을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부실 관리의 책임을 지고 저와 함께 백작님 앞에 서시겠습니까?”
바쟁은 이빨을 부득부득 갈았다. 그는 부러진 검날의 파편을 매섭게 노려본 후, 뒤를 돌았다.
“철수한다! ...서기장 에르하르트, 네놈의 그 오만한 주둥이가 언제까지 무사할지 두고 보겠다!”
바쟁과 그의 사병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대장간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긴장이 풀린 개릭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가족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개릭은 경외와 감사가 뒤섞인 눈빛으로 롤랑을 올려다보았다.
“서기장 나리... 진정 저희를 살려주신 겁니까? 어떻게 그 검의 결함을 그리도 정확히...”
그러나 롤랑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귓가에서 울리던 이명이 한계를 초과하여 고막을 찢어발기는 듯한 고통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단의 침식이 극에 달한 것이었다.
그 순간, 대장간 외부, 멀리 떨어진 성당의 첨탑에서 묵직한 경고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둥-! 둥-! 둥-!
이단 추적 장치가 작동했음을 알리는 불길한 종소리였다. 동시에 롤랑의 귀 밑바닥에서부터, 붉고 검은 미세한 마력의 스파크가 공기 중으로 뿜어져 나와 실시간으로 불길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