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짙은 새벽 협곡 끝, 가문 문양을 가린 채 가쁜 호흡으로 진입해오는 기마 대형의 군마 방울 소리가 허공을 찢고 고고히 메아리쳤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밤공기 사이로 쇠사슬이 부딪치는 둔탁한 마찰음이 섞여 들었다. 가도 바닥에 깔린 자갈들이 군마의 거대한 말굽 아래에서 짓눌리며 비명을 질렀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기사들의 안면 슬릿은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동자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롤랑 에르하르트는 협곡의 좁은 옹벽틀에 몸을 밀착한 채 오른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의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공학적 투시안을 발동하기 직전,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신경의 과부하가 예고 없이 들이닥쳤기 때문이었다. 귓가에서 높은 주파수의 이명이 삐 소리를 내며 고막을 찔렀다. 성황청의 마도구가 감지할 수 있는 특이 마력 노이즈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고 있음을 알리는 뇌의 경고 신호였다.
그러나 롤랑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가도 바닥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직접 박아둔 나무못과 노끈의 경계를 정밀하게 계측했다.
"적들의 진입 속도는 시속 12킬로미터 내외. 협곡의 만곡부를 도는 순간 감속이 일어난다."
롤랑의 입술 사이로 건조한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옆에 서 있던 리디아 폰 보이스트가 품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두꺼운 양가죽 문서를 한 번 더 움켜쥐었다. 그것은 먼지 쌓인 가문의 비밀 문서고 깊은 곳에서 그녀가 직접 발굴해 낸 고문서였다.
"롤랑, 준비는 끝났습니다. '842년 조인된 동부 오스벨트 자치 면책 특권 세칙'의 원본이 여기에 있습니다. 성황청의 오래된 세칙에 따르면, 허가받지 않은 영주 연합군이 자치령의 경계를 무단 침범할 경우, 영지민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물리적 자위권을 행사할 권리가 전적으로 보장됩니다. 저들이 먼저 이 나무못 선을 넘는 순간, 우리가 쏘아 올릴 모든 탄환은 신법과 세속법 모두에서 면책을 받습니다."
리디아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녀는 이 차가운 학살의 현장을 철저한 법리적 테두리 안으로 밀어 넣기 위해 수일 밤을 지새우며 법률 조항을 정리했다. 과거 세무 기지의 폭압 속에서 피 흘리던 가문의 명예를 법치의 이름으로 되찾겠다는 결연함이 그녀의 눈동자에 서려 있었다.
적들이 바로 이 시간, 가장 험준하고 좁은 진마 가도를 기습 루트로 선택해 들어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롤랑의 시선이 적 기병대의 선두를 향했다.
영주 세무 관리인 헤르만의 아내는 탐욕스러웠고, 자치령에서 생산되는 고순도 탄산나트륨 기반의 자스민 향 비누 세트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매달 무상으로 헌납되던 그 사치스러운 향료의 대가는 실로 달콤했다. 헤르만은 아내의 사치벽을 감당하기 위해 결국 영주 가문을 배반했고, 백작군의 군사 행동 계획서와 야간 기습 경로를 롤랑에게 통째로 넘겨주었다.
적들은 자신들이 완벽한 기습을 감행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사실은 롤랑이 정교하게 짜놓은 기하학적 덫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것에 불과했다.
"야장 개릭."
롤랑이 나지막이 불렀다.
"예, 서기장 나리."
어둠 속에서 거구의 사내가 화승총의 노리쇠를 만지며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거친 기색 대신 기묘한 엄숙함이 깃들어 있었다.
개릭이 쥐고 있는 화승총의 견고한 총열은 과거 주조 가마의 붕괴 위기를 극복했기에 존재할 수 있었다. 롤랑은 개릭의 낡은 도가니 바닥에서 점토와 흑연의 비율이 불균형하게 편중되어 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파열 직전에 이르렀던 상태를 투시안으로 잡아냈었다. 그리고 가마 벽면에 점토 64퍼센트, 흑연 36퍼센트라는 최적의 배합 공식을 적어두었다.
그 보강 공식이 없었다면 도가니는 진작에 폭발하여 쇳물과 함께 사라졌을 것이며, 지금 포수들이 들고 있는 강철 총열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터였다. 개릭은 가마 벽면에 적혀 있던 그 기적 같은 숫자들을 떠올릴 때마다, 눈앞의 젊은 서기장을 단순한 학자가 아닌 철의 규칙을 지배하는 거인으로 우러러보게 되었다.
"총열의 압력 한계치는 평당 4천 파운드다. 장약의 양은 정확히 지시한 대로만 투입했겠지?"
"머리카락 한 올 오차도 없이 저울로 달아 넣었습니다. 백 번을 연사해도 터지지 않을 단단한 강철 튜브입니다. 나리가 알려주신 도가니 배합 공식 덕분이지요."
개릭이 이빨을 드러내며 조용히 웃었다.
안개가 더욱 짙어지며 전방의 시야가 극도로 좁아졌다. 그러나 롤랑에게는 시야의 한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두 눈이 푸른빛으로 미세하게 발하기 시작했다. 공학적 투시안이 가동되는 순간이었다.
척수에서부터 차가운 소름이 돋아나고, 이명이 뇌리를 헤집었으나 롤랑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시각적 공간 위에 주황색의 가상 점근선들이 그려졌다. 좁은 가도 좌우의 암벽 인장 강도, 공기 중의 습도 수치, 그리고 가도 바닥에 박아둔 가이드 못들이 3차원 좌표계로 변환되어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 수치들의 중심에, 돌격해오는 기병들의 물리적 궤적이 붉은 선으로 겹쳐졌다.
*히히힝!*
마침내 선두 기병이 안개를 찢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발루아 백작이 자랑하는 정예 철갑 기병대였다. 말의 가슴팍까지 두꺼운 철판으로 무장한 군마들이 협곡의 좁은 가이드 못 라인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돌진해 들어왔다. 대지를 흔드는 말발굽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이 커졌다.
기병들의 선두가 롤랑이 박아둔 첫 번째 가이드 못의 점근선에 맞닿았다. 물리적 거리는 정확히 마흔 걸음.
롤랑의 오른손이 단호하게 내리쳐졌다.
"제1열, 안전 방출!"
*타다다닥!*
어둠 속에서 불꽃 도화선이 불꽃을 튀기며 타들어 갔다.
찰나의 정적을 깨고, 스무 정의 수제 화승총이 일제히 총구를 열었다.
*콰아아앙!*
협곡 전체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눈을 부실 정도로 강렬한 섬광이 안개를 뚫고 번개처럼 내뿜어졌다. 질산 초석이 연소하며 발생시킨 매캐한 백색 연기가 순식간에 가도를 가득 메웠다. 그 연기 속에서, 초속 300미터가 넘는 속도로 가속된 납탄들이 연쇄 비격 분출을 시작했다.
공기가 찢어지는 파열음이 협곡을 가득 채웠다.
롤랑의 투시안은 날아가는 납탄들의 운동 에너지를 실시간으로 추적했다.
과거 10화에서 투시안을 통해 이미 적 기병단이 지닌 방패의 주조 결합 마찰력과 철모 안면 슬릿의 구조적 응력 한계를 완벽하게 분석해 둔 상태였다. 그들의 방패는 외견상 단단해 보였지만, 단조 과정에서 탄소 함량이 불균일하여 특정 충격 각도에서 유독 취약한 균열점을 가지고 있었다.
정밀하게 통제된 각도로 날아간 납탄들이 정확히 그 결함 지점들에 내리꽂혔다.
*파지직! 깡!*
엄청난 강철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납탄이 방패에 충돌하는 순간, 내재되어 있던 결함 응력이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폭발하듯 사방으로 갈라졌다. 두꺼운 철판으로 만들어진 방패가 마치 마른 장작처럼 반으로 쪼개져 나갔다.
뒤이어 날아간 탄환들은 기사들의 투구 전면, 슬릿의 틈새와 접합부를 정확하게 타격했다.
물리적 관통 에너지가 중력과 인장의 한계를 초과하자, 기사들의 머리를 보호하던 철모가 찌그러지며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두개골이 바스러지는 둔탁한 파열음이 사방에서 전해졌다.
"아아악!"
"이, 이게 무슨 힘이냐!"
수십 년 동안 전장의 지배자로 군림하며 가난한 영지민들을 짓밟고 세금을 가죽째 뜯어내던 귀족 기사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입은 강철 갑옷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방벽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 오만한 믿음은 단 하루 동안 머스킷 안전 훈련을 마친 하층 농민들의 손가락 하나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비누를 배급받고 소금으로 연명하던 농민들이 쏜 조잡한 납탄 한 발이, 평생을 무예로 닦아온 귀족 기사의 심장을 가차 없이 꿰뚫었다.
압도적인 신분 전복의 현장이었다.
말들이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 주저앉았고, 쇠사슬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낙마하여 가도 바닥을 뒹굴었다. 뒤따르던 기병들은 아군의 시신과 뒹구는 군마의 사체에 걸려 차례로 넘어졌다. 좁은 협곡은 순식간에 철과 피가 뒤엉킨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재장전!"
개릭의 우렁찬 외침에 따라, 첫 번째 줄의 포수들이 신속하게 좌측 암벽 뒤로 물러섰다. 그 빈 공간을 메우며 두 번째 줄의 농민들이 일제히 앞으로 전진하여 화승총의 총구를 겨누었다.
기하학적인 교대 사격의 순환이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제2열, 방출!"
*콰아앙!*
또 한 차례의 굉음이 협곡을 청소하듯 쓸고 지나갔다.
선두에서 살아남아 우왕좌왕하던 기사들의 가슴팍에 다시 한번 납탄 세례가 내리꽂혔다. 강철 마갑을 두른 군마들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고, 그 위에 타고 있던 기사들은 무거운 갑옷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진흙 바닥으로 처박혔다.
"괴물들이다! 이건 악마의 불이다!"
후방에 있던 기병들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눈에는 안개 속에서 붉은 불꽃을 뿜어내는 농민 포수들의 대열이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사신들의 군대처럼 보였다.
철저하게 계산된 화력의 격차 앞에서, 그들이 평생 쌓아온 기사도의 긍지와 용맹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살아남은 기병들은 말머리를 돌려 무질서하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좁은 협곡 입구에서 서로엉켜 비명을 지르며 퇴각하는 그들의 등 뒤로, 롤랑은 더 이상 사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사격 중지."
롤랑이 차갑게 명령했다.
화승총의 총구에서 피어오른 매캐한 유황 연기가 협곡 전체를 자욱하게 뒤덮었다.
이때 롤랑의 머릿속에 과거 가마 정제 과정에서 발견했던 사실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고농도의 유황 가스가 방출되는 구역에서는 성황청의 마력 감지기 노이즈가 교란되어 먹통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협곡을 가득 메운 이 지독한 유황 연기는, 단순히 화약의 잔여물이 아니라 성황청 심문단의 추적을 차단해 주는 완벽한 가림막이 되어주고 있었다. 롤랑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모든 것이 그의 공리주의적 계산 범주 안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농민들은 승리의 기쁨에 겨워 서로를 얼싸안으려 했다. 자신들이 그 강력한 백작의 기사들을 단숨에 물리쳤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상기된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롤랑의 시선은 도망치는 기병들의 등 뒤가 아닌, 협곡 너머의 높은 능선 위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투시안이 가리키는 시각적 경고 수치들이 갑자기 붉은빛으로 깜빡이기 시작했다. 뇌를 찌르는 이명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증폭되었다.
"전원, 지면에 밀착해라!"
롤랑이 평소의 냉정함을 잃고 거칠게 소리쳤다.
그 순간, 협곡 능선 뒤 언덕 위에서 짙은 안개를 차갑게 가르며 기괴한 보라색 광채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세속 영주들의 조잡한 무기가 아니었다.
칼렌 대주교가 이끄는 성령 교단의 무장 심문 기사단이 마침내 관문을 돌파하여 도착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도 언덕 위에 거대하게 거치해 둔, 고대 신성 무구의 복원판이자 대형 마력 유산 포대인 '성령의 손길'이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포신의 전면에 새겨진 신성 룬 문자들이 자색 광채를 내뿜으며 공기 중의 마력을 급속도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 가공할 에너지가 오스벨트 기지의 정중앙을 정밀하게 조준하고 있었다. 롤랑의 투시안에 비친 포대의 열역학적 수치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한 번의 방출로 협곡 전체를 기화시켜 버릴 수 있는 파괴적인 신성의 빛이, 롤랑과 오스벨트 군대를 향해 서서히 총구를 겨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