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X. 10. 14. 23:51 / 서울지방경찰청 제1취조실 (37.5702, 126.9718)]
"10년 전 강아현을 부검하고 소장을 날조했던 그 검시 부서의 총책임자가 누군지 아나? 바로 너잖아, 위대한 해결사님."
서준희의 음성이 취조실의 콘크리트 벽면에 부딪혀 굴절되었다. 스피커 너머 본청 수사국장의 숨소리가 거칠게 섞여 들었다. "강태혁 경정, 대답해. 사실인가?" 질문이 날아왔다. 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왼쪽 다리 대퇴사두근이 비정상적으로 뒤틀렸다. 근육이 가죽끈처럼 팽팽하게 조여들며 뼈를 압박했다. 마비였다. 뇌의 우반구 신경 세포가 사멸해 갈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편마비 증상. 그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턱뼈가 맞물리는 소리가 귓속을 울렸다. 입안에서 비린 철경이 돌았다. 서준희는 턱을 비스듬히 꺾은 채 태혁의 반응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오른쪽만 미세하게 상승해 있었다. 대칭이 무너진 미소. 그것은 먹잇감을 구석에 몰아넣은 맹수의 안면 근육 운동이었다.
태혁은 테이블을 짚은 왼손에 힘을 주었다. 오른손은 이미 감각이 소실되어 책상 위에 무력하게 놓여 있었다. "서준희." 태혁의 목소리가 탁하게 갈라졌다. "네 혀끝이 가리키는 방향이 틀렸다." "내가 틀렸다고?" "조서 12페이지." 태혁은 굳어가는 뇌신경을 억지로 쥐어짜며 기억의 텍스트를 불러냈다. "넌 방금 강아현의 부검 조서 일자를 '14일'이라 말했다. 부검의의 날조를 내가 묵인했다고 진술하면서 말이지." "그랬지. 날짜가 선명하게 박혀 있더군." "거짓말이다." 태혁의 눈동자가 서준희의 안면 신경을 훑었다. "10년 전 강아현 사건의 부검 조서 원본 기재 일자는 '15일'이다. 14일은 부검이 실시되기 전이다. 넌 아현의 조서를 일부러 왜곡해서 읊었다. 내가 내 기억의 오류에 빠져 자멸하기를 바라면서." 서준희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0.1초의 짧은 지체. "단어의 순서도 틀렸어." 태혁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넌 '소장을 날조했다'고 했다. 하지만 10년 전 형사소송법 서식상 검시 부서가 작성하는 서류의 공식 명칭은 '사체검안서' 혹은 '부검감정서'다. 소장이라는 단어는 쓰이지 않는다. 넌 존재하지도 않는 가짜 서류를 들어 나를 모함하고 있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온도가 내려간 것처럼 취조실 내부의 한기가 살죽을 파고들었다. 태혁의 시야가 급격히 흐려졌다. 눈앞의 서준희가 두 명으로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두통이 관자놀이를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찾아왔다. 대뇌 피질의 괴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현에 대한 기억의 영토가 빠르게 침식당하는 신호였다. 태혁은 심문대 밑으로 왼손을 내렸다. 바지 주머니 속, 차가운 유리 앰플이 만져졌다. 임유진이 취조실 진입 전 그의 손바닥에 쥐여주었던 시야 확장제였다. 동공을 강제로 확장시키고 뇌의 혈류량을 일시적으로 폭증시키는 불법 도핑 약물. 대가로 뇌신경의 파괴 속도는 수배로 빨라질 터였다. 태혁은 테이블 아래에서 앰플의 목을 꺾었다. 사각, 하는 미세한 유리 파편 음이 취조실의 보일러 가동음에 묻혔다. 그는 고개를 뒤로 젖히는 척하며 액체 약물을 양쪽 눈에 흘려 넣었다.
화끈거리는 열감이 망막을 타고 대뇌 후두엽으로 직격했다. 눈앞이 번쩍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릿속 깊은 곳에 존재하던 하나의 방이 통째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현과의 마지막 식사 기억이었다. 좁은 임대아파트의 흔들리는 식탁. 보글보글 끓던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 "오빠, 밥 먹어." 아현이 숟가락을 놓으며 웃던 얼굴. 그녀의 목소리. 그 따뜻했던 공기의 질감이 거대한 백색 광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태혁의 손가락이 바르르 떨렸다. 찌개 냄새가 사라졌다. 아현의 웃음소리가 소멸했다. 그가 목숨보다 아끼던 동생과의 마지막 일상이 흔적도 없이 포맷되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차가운 텍스트와 수사 매뉴얼만이 남았다. 그 비장한 대가를 치른 순간, 태혁의 눈가에서 붉은 피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투명하게 깨어났다. 공감각적 개안이 폭발한 것이다.
지이잉. 취조실 내부의 소음 주파수가 변환되었다. 서준희의 입에서 흘러나온 거짓말들이 공기 중에 붉은색 파동의 궤적으로 시각화되었다.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냄새가 느껴졌다. 탄내 섞인 복숭아꽃 향기. 달콤하면서도 역한, 타버린 단내가 취조실 안을 가득 채웠다. 태혁의 뇌신경이 그 향기의 실체를 분석해 냈다. 1화에서 그를 괴롭혔던 그 이질적인 냄새의 정체. "복숭아꽃 향기." 태혁이 중얼거렸다. "아니, 이건 꽃향기가 아니다." 그의 시야에 10년 전 아현이 사망했던 밤 복숭아나무 아래의 가파른 언덕이 환영으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잔상 위로 흐릿한 살인마의 움직임이 겹쳤다. 탄내의 정체는 방화 촉진제였다. "메틸에틸케톤." 태혁의 입에서 차가운 화학 물질명이 튀어나왔다. "목재와 플라스틱을 순식간에 녹이는 강력한 인화성 용제. 그리고 그 악취를 가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혼합된 저가형 복숭아 향 탈취제." 서준희의 눈동자가 좌우로 격렬하게 흔들렸다. "서준희. 넌 10년 전 사건 당일, 현장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화학 공장에 근무 중이었다는 알리바이를 제시했다. 하지만 그 공장에서 유출된 방화 촉진제와 복숭아 향 탈취제 성분이 네 진술서의 서명란 안쪽 미세 섬유 조직에서 검출되었다." 태혁은 테이블 위의 조서를 손가락으로 내리찍었다. "알리바이는 조작되었다. 넌 그 시각에 공장에 없었다. 아현이 죽어가던 그 밤 복숭아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환영 속에서 살인마가 불을 지르는 손이 보였다. 외과적 수술 흔적이 선명한 손목. 왼손 검지가 기형적으로 짧은 형태. 그것은 서준희의 손이 아니었다. 하태수의 손이었다. "날짜 조작의 배후." 태혁의 목소리에 쇳소리가 섞였다. "하태수가 널 돕고, 네가 하태수의 뒤를 봐주는 상호 공모 관계. 그 증거가 바로 이 조서의 위조 서명이다."
태혁은 오른손의 마비를 이겨내듯, 왼손으로 조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들어 올려 이중 거울을 향해 들이밀었다. "이 조서의 결재란을 봐라." 그의 손끝이 가리킨 곳은 '강태혁'이라는 세 글자 서명이었다. "내 서명은 언제나 일정한 필압과 주파수를 가진다. 강박증적인 성격상, 난 서명을 할 때 펜을 떼지 않고 단 한 번에 긋는다. 펜 끝의 눌림 깊이는 정확히 0.3밀리미터다." 그는 조서를 찢어 발기듯 빛에 비추었다. "하지만 여기 적힌 서명은 펜이 세 번 끊겼다. 잉크의 번짐 정도가 불규칙하다. 누군가 내 서명을 밑에 대고 베껴 그린 흔적이다. 법의학적 서명의 미세 흔들림 구조가 내 실제 필적과 일치하지 않는다." 취조실 밖 관찰실이 술렁이는 소리가 방음벽을 넘어 미세하게 전해졌다. "내가 작성한 조서가 아니다." 태혁의 선언이 쐐기를 박았다. "서준희와 하태수가 내 명의를 도용해 가짜 조서를 만들고, 진짜 14페이지를 폐기한 것이다."
서준희의 얼굴에서 예의 바른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호흡이 거칠어지며 의자가 뒤로 밀렸다. Clack. 철제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강태혁 경정..." 서준희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 순간, 이중 거울 너머 관찰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태수 감찰팀장이 자리를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상황의 역전을 직감한 하태수가 도주를 시도하려는 것이었다.
쾅! 취조실의 무거운 철제 문이 거칠게 열렸다. 문을 밀치고 들어온 것은 하태수가 아니었다. 임유진이었다. 그녀는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단정한 제복 셔츠는 군데군데 찢겨 있었고, 얼굴에는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그녀의 오른손에 들린 것은 빛바랜 황색 서류철이었다. "강 경정님!" 유진이 소리쳤다. 그녀의 손에 들린 서류 표지에는 붉은색 도장으로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10년 전 검사 기록 보관소 - 영구 보존 문서] 그리고 그 문서의 하단에는 은닉되어 있었던 진짜 '미결 직결 결재서'가 붙어 있었다. 하태수의 실제 서명과 서준희의 지문이 붉은 인묵 위에 겹쳐진 채로. "찾았어요." 유진이 서류를 테이블 위로 던지며 하태수가 서 있던 취조실 밖 복도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하태수 팀장. 어디 가십니까?" 복도 끝에서 구두 굽 소리가 다급하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구두 굽 소리가 멈췄다. 복도 끝 회색 벽 모퉁이. 하태수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어깨가 미세하게 들썩였다. 거친 호흡음이 정적을 깼다.
"임 형사." 하태수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공무집행방해다." "보존 기한 만료 문서입니다." 유진이 서류를 흔들었다. "폐기 대상이었죠." "그래서?" 하태수가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얼굴은 석고상처럼 굳어 있었다. "법적 효력이 없는 종이 쪼가리다." "서명란을 보십시오." 유진의 목소리가 단단했다. "당신의 친필 무인이 찍혀 있습니다."
태혁은 절뚝이며 걸었다. 왼쪽 다리가 통나무처럼 무거웠다. 바닥을 쓸며 전진했다. 시야의 가장자리가 검게 타들어 갔다. 망막에 맺힌 붉은 파동이 꿈틀거렸다. 공감각적 개안의 부작용. 뇌세포의 괴사가 가속화되고 있었다. 그는 유진의 손에서 서류를 낚아챘다. 바스락. 종이의 건조한 마찰음. 태혁의 시선이 문서 하단으로 향했다. 붉은 인장. 하태수의 직인. 그리고 그 옆에 찍힌 서준희의 지문. 두 흔적이 겹쳐진 경계면. 그곳에 이상한 균열이 보였다.
태혁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의 눈에 빛의 궤적이 다시 그려졌다. 선명한 청색 선. 그것은 진실의 모순을 가리키는 이정표였다. "하태수." 태혁이 서류를 들어 올렸다. "이 결재서의 작성 시간." "10년 전 10월 14일 22시." "그게 왜?" 하태수의 눈동자가 수축했다. "아현이 납치된 시각은 당일 23시다." 태혁의 음성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사건이 발생하기도 전에 결재서가 만들어졌다." "..." "넌 서준희가 범행을 저지르기도 전에." 태혁이 하태수의 멱살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오른손이 허공을 맴돌았다. 감각이 없어 궤적이 어긋났다. 그는 왼손으로 하태수의 셔츠깃을 움켜쥐었다. "이미 무죄 방면 결재를 끝내 두었다." 하태수의 뺨 근육이 경련했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것은 단순한 사후 조작이 아니다." 태혁이 짓씹듯 말했다. "사전 기획이다." "넌 서준희가 아현을 죽일 것을 알고 있었다."
복도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취조실 안에서 서준희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 "아하하하!" 쇳소리 섞인 기괴한 파열음. 준희가 테이블을 치며 폭소했다. "역시 위대한 해결사님." 그가 문틀에 기대어 태혁을 바라보았다. "보이나요, 하 팀장님?" "입 닥쳐, 서준희!" 하태수가 처음으로 평정을 잃고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당신들의 완벽한 설계." 태혁의 머릿속에 날카로운 고통이 몰려왔. 콰과광. 뇌 깊은 곳에서 얼음산이 무너지는 충격. 아현과의 또 다른 기억이 지워졌다. 동생의 생일 선물로 사주었던 빨간 구두. 그 구두를 신고 좋아하던 아현의 발걸음. 그 기억이 하얀 모래가 되어 흩어졌다. 태혁은 신음을 삼켰다. 눈가에서 흐른 피가 턱 끝을 타고 바닥에 떨어졌다. 뚝. 뚝.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붉은 점이 찍혔다.
"태혁 씨!" 유진이 그를 부축하려 손을 뻗었다. 태혁은 그녀를 밀쳐냈다. 그는 하태수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가 서류의 뒷장을 거칠게 넘겼다. 정밀 결재 내역서. 그곳에 기재된 최종 승인권자의 코드. 태혁의 동공이 극도로 확장되었다. 그의 뇌세포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코드를 해독했다. [승인자 사번: 1998-0412] 태혁의 호흡이 멎었다. 그 번호는 하태수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10년 전 특별수사본부의 총책임자. 그리고 현재. 태혁의 등 뒤에 서 있는 인물의 사번이었다.
지직. 스피커에서 다시 잡음이 일었다. 본청 수사국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태혁 경정." 그의 음성이 이전과 달리 극도로 낮아져 있었다. "그 서류를 즉시 파기해라." "수사국장님?" 유진이 스피커를 올려다보았다. "이건 직무 명령이다." 수사국장의 통보가 비정하게 울렸다. "강태혁, 네가 보고 있는 그 사번." "누구의 것인지 정말 모르는 건가?"
태혁의 손가락이 굳어졌다. 서류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각. 종이가 펼쳐지며 10년 전의 진실이 그 민낯을 드러냈다. 서준희가 입꼬리를 비틀며 속삭였다. "말했잖아요, 해결사님." "당신이 모든 것을 시작했다고."
뇌의 마지막 기억 보관소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아현의 이름마저 흐릿해지는 암흑 속에서. 태혁은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10년 동안 쫓았던 적의 진짜 얼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