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현재 제3일 / 14:15 / 서울지방경찰청 제1취조실 (37.5701, 126.9733)]

하태수가 문을 밀쳤다. 그가 도주하려던 찰나였다. 복도 끝에서 급박한 구둣발 소리가 울렸다. 임유진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나타났다. 그녀의 옷자락에는 흙먼지가 가득했다. 손에는 낡고 냄새나는 종이봉투가 들려 있었다. 10년 전 검사 기록 보관 창고. 그 지하 깊은 곳에 은닉되었던 미결 직결 결재서였다.

"가지 마시죠, 하 팀장님." 유진이 봉투를 치켜들었다. 하태수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그의 넓은 등판이 미세하게 떨렸다. 취조실의 차가운 공기가 복도로 흘러나갔다. 태혁은 하태수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시선이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어디를 가려는 겁니까." 태혁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하태수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감찰반원들이 태혁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완력을 쓰려 움직였다. 태혁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유진이 가져온 서류를 가리켰다.

"비키십시오." 태혁이 경고했다. "이것은 사법 방해에 대한 현행범 체포 요건입니다." 감찰반원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들의 시선이 하태수에게 향했다. 하태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입술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태혁은 유진에게서 서류를 낚아챘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래된 종이의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두통이 관자놀이를 강하게 때렸다. 뇌세포가 비명을 지르는 감각이었다. 태혁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알약을 꺼내 씹었다. 물도 없이 삼킨 가루가 목구멍을 썼다.

유진이 태혁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주머니에서 지퍼백을 꺼냈다. 그 안에는 금이 간 실버 펜던트 손목시계가 들어 있었다.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가 취조실에 퍼졌다. 태혁은 그 시계를 흘낏 보았다. 아현의 유품인 가죽 시계. 그 내부 부품과 호환되도록 개조된 물건이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태혁은 시선을 다시 서류로 돌렸다.

"이것이 10년 전의 진실입니다." 태혁이 서류철을 펼쳤다. 그는 취조실 테이블 위에 종이를 올려놓았다. 서준희가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앉았다. 그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갔다. "재미있는 장난감을 가져오셨네요, 해결사님." 준희의 말투는 지나치게 공손했다. 그것이 태혁의 신경을 긁었다.

태혁은 준희를 무시했다. 그는 2화에서 준희가 던져주었던 매뉴얼 북을 꺼냈다. 완벽히 제본된 푸른색 수사 지침서였다. 태혁은 매뉴얼 북을 펼쳤다. 그리고 10년 전 조서 원본을 나란히 놓았다.

"서준희가 제시한 이 매뉴얼 북." 태혁의 손가락이 특정 페이지를 짚었다. "단 한 페이지가 결락되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태혁이 하태수를 바라보았다. 하태수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14페이지다." 태혁이 선언했다. "그리고 여기, 10년 전 강아현 사건의 조서 원본이 있다." 그가 누런 종이를 거칠게 넘겼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여기도 14페이지가 문제지."

태혁은 카메라 향해 서류를 들어 올렸다. 현재 취조실의 상황은 언론으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렌즈가 서류의 상세한 부분을 포착했다. "14페이지 우측 하단을 보십시오." 태혁이 지목한 곳에는 붉은색 전결 도장이 찍혀 있었다. 하태수의 직인이었다.

"도장의 테두리를 자세히 보아라." 태혁의 목소리가 취조실 벽에 부딪혀 울렸다. "원형의 테두리 위쪽이 미세하게 깨져 있다." "0.2밀리미터의 균열이다." 그는 매뉴얼 북의 찢겨진 흔적을 겹쳐 보였다. "서준희가 가지고 있던 매뉴얼 북의 14페이지 탈락부." "그 찢어진 단면의 궤적이 이 도장 균열의 크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하태수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의 가슴이 가쁘게 오르내렸다.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다." 하태수가 변명했다.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우연이라고?" 태혁이 실소를 터뜨렸다. "이 도장은 공문서 위조 방지용 특수 직인이다." "하 팀장, 당신이 10년 전 아현의 사건을 은폐할 때 찍은 것이다." "그리고 서준희는 그 조서를 복사해 매뉴얼 북의 베이스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14페이지의 검시관 서명 오류를 감추기 위해 페이지를 통째로 누락시켰지."

태혁의 뇌 속에서 불꽃이 튀었다. 콰과광. 눈앞이 번쩍였다. 강렬한 시각적 환영이 뇌리를 스쳤다. 차가운 빗소리가 들렸다. 어두운 밤, 복숭아나무 아래 서 있는 그림자.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냄새가 있었다. 탄내 섞인 복숭아꽃 향기였다.

태혁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통증이 뇌를 갉아먹었다. 아현과 함께 가던 봄날의 과수원. 그 핑크빛 풍경이 머릿속에서 하얗게 지워졌다. 대신 그 자리에 차갑고 어두운 화학 물질의 공식이 들어찼. 기억을 잃은 대가로 얻은 진실이었다.

"복숭아꽃 향기." 태혁이 중얼거렸다. 그의 입술 사이로 붉은 침이 흘렀다. "그것은 자연의 향기가 아니다." 그가 서준희를 쏘아보았다. "메틸에틸케톤." "그리고 벤질아세테이트."

준희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커졌다. 예의 바른 가면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태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방화 촉진제에 섞인 화학 합성 향료다." 태혁이 단언했다. "서준희, 네가 10년 전 아현이의 시신이 있던 창고에 불을 지를 때 사용한 촉진제지." "그리고 하태수, 당신은 압수물 창고에서 이 특수 화학 물질을 빼돌려 서준희에게 제공했다." "그 대가로 서준희는 내가 작성한 수사 매뉴얼의 허점을 이용해 가짜 시체 궤적을 만들었다."

취조실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하태수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그의 손이 책상 모서리를 잡으려다 미끄러졌다. "증거가... 없다." 하태수가 쥐어짜듯 말했다. "그것은 네 피해망상일 뿐이다."

"증거?" 태혁이 유진이 가져온 서류의 가죽 표지를 뜯어냈다. 그 안쪽 틈새에서 얇은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하태수의 자필 서명이 선명한 비밀 누출 장부였다. 압수물 반출 대장 원본이었다. 그곳에는 메틸에틸케톤의 반출 기록과 수령인의 사번이 적혀 있었다. [사번: 1998-0412] 하태수의 사번이었다.

"당신들이 공모한 전말이 여기 적혀 있다." 태혁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서준희를 방면하고, 내 프로파일링을 무력화하려던 음모." "모든 것이 이 종이 위에 기록되어 있다."

생중계 카메라는 장부의 내용을 화면 가득 담아냈다. 전국의 모니터로 진실이 송출되고 있었다. 하태수의 몰락은 실시간으로 기록되었다.

"아..." 하태수가 신음을 내뱉었다. 그의 다리가 힘없이 풀렸다. 그는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사법 단상 아래, 죄인의 모습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의 거만한 눈빛은 이미 초점을 잃고 있었다. 머리를 움켜쥔 그의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렸다. 일체의 반박도, 변명도 불가능한 완벽한 패배였다.

태혁은 하태수를 내려다보았다. 통쾌함은 없었다. 머릿속의 소중한 기억 하나가 영원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동생의 웃음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한 공허함이 밀려왔다. 그러나 진실은 구원받았다.

태혁이 서준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준희는 무릎 꿇은 하태수를 보며 조용히 웃고 있었다. 그의 어깨가 들썩였다. "크흡... 흐흐흐."

쇳소리 섞인 기괴한 파열음이 취조실을 채웠다. 준희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가늘어진 눈동자가 태혁의 얼굴을 집요하게 응시했다. 그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 올라갔다.

"대단하네요, 정말 대단해요, 해결사님." 준희가 손뼉을 쳤다. 짝, 짝, 짝. 느리고 위협적인 박수 소리였다. "하 팀장을 이렇게 보내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준희가 상체를 테이블 앞으로 기울였다. 그의 목소리가 뱀처럼 기어들어 왔다. "하지만 말입니다." "하태수가 조작한 서류는 밝혀냈어도." "아현이의 목을 실제로 조른 신체 증거는 결국 찾지 못했지 않습니까?" 준희의 눈빛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법정에서 기소가 되나 어디 잘 지켜보자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말입니다."

태혁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다시 배어 나왔다. 취조실의 형광등이 마지막 발악을 하듯 지직거리며 흔들렸다.

서준희의 비웃음이 벽을 때렸다. 그의 목소리는 축축했다. 태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유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유진이 지퍼백을 건넸다. 금이 간 실버 펜던트 손목시계. 유리창 너머로 빛이 반사되었다.

태혁이 테이블에 그것을 놓았다. 탁, 무거운 금속음이 울렸다. 서준희의 시선이 시계로 향했다. 그의 동공이 미세하게 수축했다. 웃음기가 그의 얼굴에서 걷혔다.

"그건 단순한 유품일 뿐입니다." 준희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태혁의 귓가에 이명이 들려왔다. 삐이이ㅡ. 고막을 찢는 듯한 주파수 소음. 공감각적 개안의 신호였다. 시계가 붉은빛으로 타올랐다. 준희의 진술이 거짓이라는 증거.

새로운 환영이 뇌리를 스쳤다. 10년 전의 폭우 속이었다. 아현이 준희의 뺨을 긁었다. 준희의 손톱 밑에 피가 맺혔다. 그는 피 묻은 손목시계를 만졌다. 엽기적인 전리품 수집벽. 그는 시계의 뒷면을 열었다. 태엽 사이에 자신의 혈흔을 숨겼다. 톱니바퀴를 맞물려 폐쇄했다.

극심한 두통이 몰려왔다. 태혁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지독한 현기증이 전신을 덮쳤다. 뇌세포의 한 영역이 괴사했다. 아현의 졸업식 날 사진이었다. 웃던 동생의 얼굴이 지워졌다. 눈, 코, 입이 차례로 뭉개졌다. 아현의 얼굴이 흐릿해졌다.

태혁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단순한 유품이 아니다." 태혁이 시계의 용두를 눌렀다. "이것은 아현의 특허 개조품이다." "반대로 세 번 돌리면 열린다."

찰칵. 시계의 뒷판이 분리되었다. 복잡한 톱니바퀴가 드러났다. 그 틈새에 말라붙은 검붉은 흔적.

"네가 흘린 혈흔이다." 태혁이 준희를 노려보았다. "내부의 DNA는 온전하다." "밀폐된 태엽실 내부니까."

준희의 호흡이 멈췄다. 그의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설계자의 가면에 균열이 생겼다. 그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그걸로 나를 묶을 수 있나?" 준희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공소시효는 이미 끝났다." "내 형사 책임은 끝났다."

태혁이 서류의 끝을 가리켰다. "아니, 끝나지 않았다." "하태수가 조작한 서류의 날짜." "기소 중지 처리가 되어 있다." "공소시효는 멈춰 있었다." "너는 여전히 처벌 대상이다."

준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계획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스피커가 다시 지직거렸다. 수사국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태혁 경정, 수사를 중단해라." "그 분석은 허가되지 않는다."

태혁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시계 속 DNA." 수사국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서준희의 것만 있는 게 아니다."

태혁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게 무슨..."

"내 DNA도 함께 나올 것이다." 수사국장의 비정한 고백이었다. "10년 전, 그 방에 나도 있었다."

취조실의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태혁의 손에서 시계가 흔들렸다. 그림자가 진짜 정체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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