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현재 제2일 16시 42분 | 서울지방경찰청 제1취조실 (37.5183, 126.9142)]

수신기가 울렸다. 유진의 목소리였다. 비명이 섞여 있었다. "선배님의 7년 전 고문사 조서 위조본이 묻혀 있습니다!" 취조실이 얼어붙었다. 공기가 차가웠다. 유리창에 성에가 꼈다. 하태수가 문을 열었다. 그의 구두 굽 소리가 울렸다. 또각. 또각. 그는 굳은 표정이었다. 눈빛은 칼날 같았다. 하태수가 무전기를 빼앗았다. 그가 채널을 돌렸다. 전체 수사망 채널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방송을 탔다. "전 수사본부에 알린다." 그가 태혁을 노려보았다. "피의자 강태혁의 혐의를 추가한다." "자해 공갈식 증거 위조 혐의다." "현 시간부로 긴급 체포를 집행한다." 수사관들이 움직였다. 철제 의자가 끌렸다. 끼이익. 소음이 고막을 찔렀다. 준희가 소리 없이 웃었다. 그의 어깨가 흔들렸다. 그는 승리를 확신했다. 태혁의 맥박이 빨라졌다. 분노가 아니었다. 이성적인 계산이었다. 두통이 머리를 짓눌렀다. 관자놀이가 뛰었다. 쿵. 쿵. 뇌세포가 비명을 질렀다.

하태수가 다가왔다. 그의 손에 태블릿이 들려 있었다. 화면이 켜졌다. 스캔본이 나타났다. 유진이 현장에서 보낸 파일이었다. 7년 전 고문사 사건 조서였다. 피의자 김민우의 사망 기록. 그 밑에 찍힌 태혁의 서명. 잉크가 번져 있었다. 조서는 완벽해 보였다. 태혁의 분석 스타일이었다. 자구의 배치. 여백의 크기. 문장의 호흡까지 일치했다. 준희가 설계한 덫이었다. 그는 태혁을 너무 잘 알았다. 태혁의 영혼을 복사한 듯했다. "네놈이 묻어둔 거다." 하태수가 단언했다. "과거의 치부를 숨기려 했겠지." "그리고 이제 와서 발견한 척했다." "언론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 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화면을 응시했다. 눈을 가늘게 떴다. 시야가 흐려졌다. 색상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뇌 신경이 뜨거워졌다. 온도가 급상승했다.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귓가에 이명이 들렸다. 삐이이-. 그리고 냄새가 났다. 탄내였다. 그 뒤를 따르는 향기. 달콤하고 이질적이었다. 복숭아꽃 향기였다. 태혁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이 향기를 알고 있었다. 10년 전의 그 밤이었다. 동생 아현이 방에 갇혀 있었다. 불길이 집을 삼켰다. 마당에 서 있던 밤 복숭아나무. 그 꽃잎이 불타며 나던 향기. 그리고 방화 흔적의 잔상. 그것이 뇌리를 스쳤다. 공감각적 개안이었다. 거짓의 선율이 울렸다. 서준희의 알리바이가 우는 소리였다. 태혁은 냄새의 출처를 쫓았다. 기억 속의 냄새가 아니었다. 물리적인 실체였다. 솔벤트의 냄새였다. 폐가 지하실에 있던 드럼통. 그 안의 공업용 솔벤트. 그것이 복숭아꽃 향을 풍겼다. 그 성분은 특수 화학 물질이었다. 방화용 촉진제였다. 10년 전 그놈이 쓰던 물질. 서준희는 그것을 남겨두었다. 자신의 정체를 과시하듯. 태혁의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다.

기억의 파편이 흩어졌다. 머릿속의 방이 무너졌다. 한 구석이 하얗게 변했다. 초여름의 기억이었다. 매미 소리가 들렸다. 붉은색 대관람차였다. 어린 아현이 서 있었다.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오빠, 이것 봐." 그녀의 얼굴이 흐려졌다. 이목구비가 녹아내렸다. 노이즈가 화면을 덮었다. 치이익. 아현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의 목소리가 무음으로 바뀌었다. 기억이 지워지고 있었다. 괴사하는 대뇌 피질. 태혁은 이빨을 악물었다. 입술이 터졌다. 비명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는 그것을 삼켰다. 붉은 피가 턱을 타고 흘렀다. 그는 지지 않아야 했다.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눈앞의 악마를 잡아야 했다. 그것이 그의 존재 이유였다.

태혁이 손을 뻗었다. 태블릿 화면을 짚었다. "하태수 팀장."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얼음처럼 차가웠다. "눈이 멀었군." 하태수의 눈썹이 꿈틀했다. "무슨 소리냐." "조서를 봐라." 태혁이 화면을 확대했다. 글자들의 테두리를 가리켰다. "7년 전의 조서라고 했나?" "그렇다. 국과수 보관용이지." "거짓말이다." 태혁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것은 24시간 이내에 제작되었다." 취조실 안의 온도가 내려갔다. 준희의 미소가 굳어졌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태혁은 조서의 자구를 뚫어지게 보았다. "첫째, 잉크의 부식도다." "7년 전 경찰청 프린터는 카본 기반이었다." "안료가 종이에 흡착되어 산화된다." "하지만 이 조서의 글자는 다르다." "미세한 유성 번짐이 보인다." "최신 피에조 방식의 염료다." "수분에 반응해 번지는 특수 잉크지." 하태수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걸로 증명이 된다고 보나?"

"둘째는 종이의 인위적 노화다." 태혁의 손가락이 화면을 쓸었다. "종이는 누렇게 삭았다." "산화 촉진제를 뿌린 흔적이다." "하지만 글자의 인쇄면은 깨끗하다." "종이를 먼저 부식시키고." "그 위에 인쇄를 한 것이다." "순서가 뒤바뀌었다." 태혁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의 눈빛이 살아났다. "셋째, 가장 결정적인 증거다." 그는 글자 하나를 지목했다. "서식의 폰트다." "7년 전 경찰청 표준은 신명조였다." "이 조서는 한컴신명조로 인쇄되었다." "자간의 오차가 0.02밀리미터 존재한다." "7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판형이다." 조용했다. 취조실 안에는 숨소리만 가득했다. 이중 유리 너머의 수사관들이 수군댔다. 그들의 신뢰가 흔들렸다. 태혁의 논리는 완벽했다. 수치적이고 정밀했다.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태혁은 준희를 보았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그의 시선이 준희의 깃칼에 닿았다. "이 조서에서 나는 냄새다." "종이에서 복숭아꽃 향이 난다." "지하실에 있던 솔벤트 성분이다." "잉크의 유성 염료와 반응했다." "청색광 변색을 일으키는 물질이지." "현장의 드럼통에 있던 바로 그 물질이다." 태혁이 서류를 내던졌다. 탁. 소리가 취조실을 울렸다. "너희가 짠 판이다." 태혁이 하태수를 응시했다. "서준희가 만들고." "하태수가 덮어씌운 판." 하태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억지 부리지 마라, 강태혁!" "감식반에 확인해라." 태혁이 차갑게 말했다. "10분이면 결과가 나온다." "내 말이 틀렸다면." "기꺼이 수갑을 차겠다." 그의 태도는 당당했다. 오만할 정도로 완벽했다. 하태수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시간이 흘렀다. 형광등이 깜빡였다. 치이익. 정적이 방을 지배했다. 하태수의 전화가 울렸다. 그가 수신 버튼을 눌렀다. 수화기 너머로 음성이 새어 나왔다. 감식반의 보고였다. "팀장님... 강 경정의 말이 맞습니다." "잉크는 최근 제품입니다." "종이도 인위적으로 훼손되었습니다." "7년 전 조서가 아닙니다." 하태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전화를 끊었다. 그의 패배였다. 완벽한 프레임이 깨졌다. 수사본부 내부의 여론이 뒤집혔다. 태혁의 반격이 성공했다. 그는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했다. 서류전에서의 완벽한 승리였다.

하지만 태혁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머릿속이 타들어 갔다. 코에서 피가 쉴 새 없이 흘렀다. 그는 손수건으로 코를 막았다. 붉은 얼룩이 번져갔다. 머릿속의 방들이 계속해서 소멸했다. 동생의 얼굴이 더는 기억나지 않았다. 아현의 이름은 안다. 하지만 그녀가 어떻게 웃었는지. 어떤 목소리로 자신을 불렀는지. 기억의 서랍이 텅 비어 있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그는 버텨야 했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준희가 천천히 상체를 숙였다. 그의 얼굴에 기이한 미소가 돋았다. 그의 눈빛은 뱀의 그것과 같았다. 그가 낮게 속삭였다. 목소리에 가시가 돋아 있었다. "벌써 많이 잊어먹었지, 강태혁?" 태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준희가 입꼬리를 더 올렸다. "네 머릿속에서 아현의 얼굴이 지워지는 맛이 어때?" 그의 목소리가 취조실의 차가운 정적 속으로 스며들었다. 태혁의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 그는 준희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의 시야는 이미 반쯤 암전되어 있었다. 다음 기억이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태혁의 손끝이 마르르 떨렸다. 귓가에서 기계음이 증폭되었다. 웅-. 눈앞의 준희가 일그러져 보였다. 아현의 얼굴이 지워진 자리. 그곳에는 거칠고 검은 공백뿐이었다. 가슴속 깊은 곳이 도려져 나갔다. 숨이 가빴다. 폐부가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성은 침착함을 명령했다. 그는 이빨을 더 세게 물었다. "네놈이 어떻게 그걸 알지?" 태혁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준희가 뒤로 기대앉았다. 철제 의자가 가벼운 비명을 질렀다. "프로파일러의 뇌는 특별하니까요." "스스로 파괴하는 괴물이지." 준희가 소리 없이 웃었다. 그의 손가락이 책상을 두드렸다. 톡. 톡. "그 위조 조서의 원본 서식 말입니다." 준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직접 타이핑했을 것 같습니까?"

태혁의 뇌리가 번쩍였다. 다시 한번 두통이 엄습했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깨졌다. 쩍. 뇌신경이 비명을 질렀다.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골든핑거의 발동이었다. 준희의 악의에 찬 진술. 그 안의 왜곡이 감각을 자극했다. 마비 증상이 전신을 덮쳤다. 오른팔이 돌처럼 굳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리고 환영이 들이쳤다. 시각적 환영이었다. 어두운 사무실이었다. 누군가의 손이 보였다. 비싼 금색 만년필을 쥔 손. 그 손이 서류를 넘겼다. 종이가 거칠게 넘어갔다. 사각. 사각. 서류의 상단에 찍힌 워터마크. '경찰청 감찰계 기밀'. 그리고 특정 페이지가 뜯겨 나갔다. 우두둑. 찢겨 나간 페이지의 번호가 보였다. 선명한 숫자 '14'였다.

태혁의 숨이 턱 막혔다. 그 손의 주인공이 보였다. 손목시계의 푸른 다이얼. 하태수의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기억의 소멸. 머릿속에서 무언가 떨어져 나갔다. 아현과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그녀가 건넸던 장갑의 색깔. 모든 것이 하얗게 지워졌다. 재가 되어 날아갔다. 태혁은 피눈물을 삼켰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의 시선이 하태수에게 꽂혔다. 하태수는 태블릿을 보며 초조해했다. "하태수 팀장." 태혁이 낮게 읊조렸다. "그 위조 조서의 원본 데이터." "네 컴퓨터에 있더군."

하태수의 몸이 굳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무슨 헛소리냐." "감찰계 전용 워터마크다." 태혁이 굳어버린 오른손을 억지로 움직였다. 손가락이 테이블을 쓸었다. "서준희가 사용한 서식의 하단." "미세하게 잘려 나간 워터마크 흔적이 있다." "감찰계 기밀 문서 포맷이다." 하태수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증거 없는 모함이다!" 하태수가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 방의 모든 감시 카메라는 꺼져 있다!" "네놈의 억지 주장은 기록되지 않아!" 하태수가 권력을 과시했다. 그는 취조실의 통제권을 쥐고 있었다.

하지만 태혁은 미소를 지었다. 핏빛 미소였다. 그의 입술 사이로 붉은 액체가 흘렀다. "꺼져 있다고?" 태혁이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유진과의 무전기였다. 그 무전기는 아직 켜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수사본부의 전 채널에 연결되어 있었다. 하태수가 직접 연결한 채널이었다. "전 수사본부에 알린다며." 태혁이 속삭였다. "네가 직접 마이크를 열었지."

하태수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가 자신의 무전기를 내려다보았다. 송신등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취조실 안의 대화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모든 수사관의 귀로 들어갔다. 하태수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덫에 걸린 것은 그였다. 서준희가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재밌네요, 강태혁." 준희가 속삭였다. "하지만 다음 조서도 버텨낼 수 있을까요?" 그가 품 안에서 노란 봉투를 꺼냈다. 그것은 10년 전 강아현 사건의 원본 조서였다. 태혁의 심장이 다시 한번 요동쳤다.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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