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202X년 10월 14일 14:18.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 129, 서울지방경찰청 제1취조실. 북위 37°32'41", 동경 126°56'52"]

형광등이 미세하게 떨렸다. 웅웅거리는 진동음이 방을 채웠다. 벽면의 모니터가 붉게 깜빡였다. [속보] 자막이 선명했다. 조금 전까지의 정적이 깨졌다. 하태수의 시선이 화면에 고정되었다. 그의 굳은 얼굴이 붉은빛을 받았다. 구겨진 영장이 그의 손에서 떨어졌다. 바닥으로 툭 떨어져 굴렀다.

"세 번째 시신이라니."

하태수가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의 어깨가 팽팽하게 긴장했다. 이중 거울 너머의 서준희를 보았다. 서준희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그의 입꼬리가 둥글게 휘어졌다. 이빨이 하얗게 드러났다. 그것은 소리 없는 포효였다. 태혁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가슴뼈 안쪽이 무겁게 압박받았다.

"14시 14분."

태혁이 혼잣말을 뱉었다. 그의 눈동자가 모니터를 응시했다. 금이 간 실버 펜던트 손목시계. 바늘이 가리킨 숫자는 명확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아현의 사건 조서. 그곳에서 사라진 14페이지. 서준희는 알고 있었다. 그는 태혁의 상처를 정확히 찔렀다. 머릿속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관자놀이 부근의 혈관이 꿈틀거렸다.

"강태혁."

하태수가 몸을 돌렸다. 그의 눈빛에 다시 독기가 올랐다. "네놈의 매뉴얼 그대로다." 그는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너와 저놈이 짜고 친 연극이 아니라면 설명이 안 돼." 태혁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책상 위 조서를 끌어당겼다. 종이 모서리가 손끝을 긁었다. 차가운 감각이 이성을 붙잡았다. 그는 자제력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호흡을 깊게 들이쉬었다. 차가운 공기가 기도를 타고 내려갔다.

"이건 내 수사다."

태혁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음성은 기계처럼 건조했다. "감찰팀은 개입할 명분이 없다." "명분?" 하태수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시신이 또 나왔다. 내 구역에서." "그렇기에 내가 취조한다." 태혁이 의자를 뒤로 밀었다. 철제 다리가 바닥을 긁었다. 날카로운 마찰음이 밀실에 퍼졌다. "현장 지휘는 임 형사에게 넘긴다." 태혁이 무전기 스위치를 올렸다. 치직거리는 소음이 방안을 흔들었다. 유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선배님. 대기 중입니다.

"동천동으로 가."

태혁이 명령했다. "세 번째 유기 현장이다." - 알겠습니다. 즉시 이동합니다. 송신이 끊겼다. 정적이 다시 방을 지배했다. 하태수는 태혁을 쏘아보았다. 그의 눈에 계산기가 돌아갔다. 조직의 리스크. 그리고 자신의 승진. 그는 혀를 차며 뒤로 물러섰다. "두 시간 주지." 하태수가 문고리를 잡았다. "그 안에 자백을 받아내." 문이 무겁게 닫혔다. 철컥하는 잠금장치 소리가 울렸다. 취조실에는 이제 두 사람뿐이었다. 태혁과 서준희.

*

서준희가 손목을 움직였다. 수갑이 쇠사슬 소리를 냈다. 찰랑거리는 소리가 차가웠다. 그는 태혁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깊은 늪 같았다. "강 형사님." 서준희가 입을 열었다. 말투는 극도로 정중했다. 어조에는 예의가 바르게 묻어났다. "뉴스를 보았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군요." 태혁은 조서의 첫 장을 넘겼다. 사각거리는 소리만 방을 채웠다. "동천동 폐가." 태혁이 단어를 내뱉었다. "세 번째 시신이 발견된 장소다." "네, 그렇더군요." "너는 오늘 새벽 어디에 있었지?" 서준희가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그의 머리카락이 이마를 덮었다. "저는 그곳에 간 적이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지리도 전혀 모르는 곳입니다." "거짓말." 태혁이 펜을 내려놓았다. 탁 하는 소리가 묵직했다. "네 동선은 이미 파악 중이다." 서준희가 가볍게 웃었다. 그는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철제 책상에 수갑 찬 손을 올렸다. 그의 손끝에 종이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그가 그것을 태혁 쪽으로 밀었다. 하얀색 영수증이었다.

"고속도로 통행료 영수증입니다."

준희가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켰다. "새벽 2시 15분." 그의 손톱이 영수증 숫자를 짚었다. "저는 서울 톨게이트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태혁이 영수증을 내려다보았다. 인쇄된 글자는 선명했다. 차량 번호와 시간. 그리고 영수증의 질감. 모두 진짜였다. "남쪽으로 내려가던 길이었습니다." 준희의 음성이 부드럽게 감겼다. "비가 아주 세차게 내리더군요."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는 그저 고속도로에서 비를 피했을 뿐입니다."

쿵.

태혁의 뇌 속에서 무언가 터졌다. 거대한 망치가 두개골을 때린 듯했다. 눈앞이 하얗게 번쩍였다. 귀에서 삐 소리가 지속해서 울렸다. 공감각적 개안의 발동이었다. 뇌세포가 비명을 질렀다. 오른쪽 관자놀이에 강한 압박이 가해졌다. 기억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걷던 동네 어귀의 골목길 풍경이 사라졌다.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허얘졌다. 태혁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입안에서 비릿한 피맛이 났다. 신경의 소멸을 대가로 얻은 시야. 그것이 눈앞에 펼쳐졌다.

시야가 흐려지며 연무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검은 연기였다. 동시에 콧속을 찌르는 이질적인 냄새. 차가운 취조실 공기 사이로 그것이 스며들었다. 탄내 섞인 복숭아꽃 향기. 달콤하면서도 매캐한 향이었다. 1화에서 느꼈던 그 기묘한 향취. 단순한 환각이 아니었다. 이것은 현장의 냄새였다. 시각적 잔상이 뇌신경으로 직접 주입되었다. 빗물에 젖은 흙바닥. 그 위로 떨어지는 밤 복숭아나무의 잎사귀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검은색 철제 드럼통. 드럼통 표면에는 붉은색 경고 표시가 있었다. [인화성 물질]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투명한 액체. 그 액체가 타들어 갈 때 풍기는 냄새였다. 방화용 촉진제. 복숭아꽃 향을 첨가한 공업용 솔벤트제였다.

태혁의 눈동자가 준희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준희의 입가에 걸린 미소 너머로, 그 드럼통의 잔상이 겹쳐 보였다. 알리바이는 조작되었다. 그의 뇌세포가 파괴되며 진실을 뱉어냈다.

"고속도로에 없었어."

태혁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으나, 힘이 실려 있었다. 서준희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굳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이패스 단말기 복제." 태혁이 영수증을 짚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갔다. "네 차량의 식별 신호만 톨게이트를 통과하게 만들었지." "증거가 있습니까?" "너는 동천동에 있었다." 태혁이 상체를 숙였다. 두 사람의 거리가 한 뼘으로 좁혀졌다. 취조실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듯했다. "세 번째 폐가 안마당." 준희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곳 북동쪽 구석에 밤 복숭아나무가 있지." 태혁의 목소리가 준희의 귓가를 때렸다. "그 아래 검은색 드럼통이 묻혀 있어." 준희가 침을 삼켰다. 그의 목목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그 안에는 방화용 촉진제가 들어있다." 태혁이 말을 이어갔다. "복숭아꽃 향이 나는 공업용 솔벤트." 준희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의 완벽한 타임라인에 균열이 생겼다. 정교하게 짜 맞춘 나사 하나가 빠진 형국이었다. "그 냄새가 네 옷깃에 남아 있어." 태혁이 쐐기를 박았다. "네가 아무리 씻어내도, 그 미세한 화학 잔류물은 사라지지 않아."

서준희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그의 두 눈에 차가운 살기가 돌았다. 예의 바른 가면 뒤에 숨겨진 악마의 얼굴이었다. "과연..." 준희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대단하시군요, 강 형사님." 그의 목소리에서 온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나를 묶어둘 수 없습니다." "과연 그럴까." 태혁이 무전기를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송신 버튼을 강하게 누른다.

"임 형사."

- 네, 선배님. 현장 도착했습니다. 수신음 너머로 거센 빗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불어닥치는 소리도 섞여 있었다. "현장 안마당 북동쪽을 봐라." 태혁이 지시했다. "밤 복숭아나무가 있을 거다." - 밤 복숭아나무요? 잠시만요... 유진의 발걸음 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진흙을 밟는 둔탁한 소리였다. - 있습니다. 나무가 보입니다. "그 아래 흙을 파라." 태혁의 눈이 준희를 쏘아보았다. "검은색 드럼통이 나올 거다. 흘러나온 촉진제 성분을 수거해." - 알겠습니다. 바로 파헤치겠습니다.

취조실 안의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서준희는 태혁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태혁은 굴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타들어 가고 있었다. 아현의 얼굴이 조금 더 희미해졌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했던 말이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가슴이 아려왔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것이 그가 선택한 길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취조실의 벽시계 바늘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서걱, 서걱. 무전기 너머로 삽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빗소리와 뒤섞여 기묘한 불협화음을 만들었다. 준희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의 호흡이 불규칙해졌다. 그가 자랑하던 완벽한 조서의 빈틈. 그것이 완전히 노출되었다.

- 선배님!

유진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찢고 나왔다. 그녀의 음성은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찾았습니다! 검은색 드럼통입니다! "성분을 확인해." 태혁이 말했다. - 예, 현장 간이 키트로 반응을 보았습니다. 복숭아꽃 향의 공업용 솔벤트가 확실합니다!

태혁이 서류를 덮었다. 탁. 그 소리는 서준희의 알리바이가 박살 나는 소리였다. "끝났다, 서준희." 태혁이 선언했다. "네 가짜 알리바이는 이제 효력이 없다."

준희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워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준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기이한 빛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패배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더 깊은 함정을 파놓은 자의 여유였다.

"제가 정말 그것만 준비했을까요?"

준희가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낮았다. 태혁의 심장이 다시 한번 크게 고동쳤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바로 그때였다.

무전기 너머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쾅! 무언가 무거운 것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유진이 지하실로 통하는 바닥을 도끼로 깨부수는 소리였다. 물리적인 타격음이 무전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정적. 빗소리만이 빈 공간을 채웠다.

- 아...

유진의 신음이 들렸다.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송수신기를 타고 취조실 안으로 번졌다. 그녀의 목소리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 선배님... 이, 이게 뭐죠? "임 형사, 무슨 일이야?" 태혁이 무전기를 바짝 끌어당겼다. 그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마디가 하얗게 변했다. 유진의 비명 섞인 목소리가 취조실의 차가운 정적을 깨뜨렸다.

- 지하실 바닥 밑에... 상자가 있습니다. 그 안에... 그녀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 선배님의 7년 전 고문사 조서 위조본이 묻혀 있습니다! 선배님의 서명이 찍혀 있어요!

태혁의 뇌리가 번개를 맞은 듯 멈춰 섰다. 7년 전 고문사 사건. 그가 가장 숨기고 싶었던, 그의 수사 경력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던 그 사건의 위조 조서가 그곳에 있었다. 서준희가 취조실 안에서 소리 없이 웃기 시작했다. 그의 어깨가 들썩였다. 이중 유리 너머에서 하태수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또 다른 파멸이 태혁의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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