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202X-10-24 15:10, 서울지방경찰청 제1취조실 (37.5635, 126.9753)]

"강아현이 왜 죽었을까?"

서준희의 붉은 입술이 열렸다. 목소리는 뱀처럼 낮았다. 축축한 점성이 느껴졌다.

"네 완벽한 프로파일이 그 년을 죽인 거야."

귓가를 찢는 소음. 서준희의 검지 손톱이 철제 책상을 긁어 내렸다. 끼이이익. 금속의 비명이 좁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태혁의 척추가 뻣뻣하게 굳었다. 폐부의 공기가 단숨에 빠져나갔다. 호흡이 멈췄다. 체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손끝에 감각이 사라졌다. 아현. 그 이름이 10년의 침묵을 깨고 솟구쳤다.

머릿속에서 이질적인 진동이 일었다. 관자놀이가 깨질 듯 요동쳤다. 눈앞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논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평정은 얇은 유리판이었다. 서준희의 한마디에 산산조각이 났다. 태혁의 주먹이 단단히 쥐어졌다. 손톱이 손바닥 살을 파고들었다. 핏방울이 맺혀 책상 위로 떨어졌다.

"닥쳐."

태혁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본능적인 살의가 튀어나왔다. 서준희는 미소를 지었다. 예의 바른 가면에 깃든 악마의 얼굴이었다. 그는 태혁의 붕괴를 즐기고 있었다.

쾅!

철제 문이 거칠게 열렸다. 차가운 복도의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구두굽 소리가 정적을 밟았다. 하태수였다. 그의 뒤로 감찰반원 두 명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거기까지 하지."

하태수의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다. 감정이 배제된 기계의 음성이었다. 그의 시선이 태혁의 떨리는 손끝에 머물렀다. 이어서 서준희의 뒤틀린 미소를 훑었다.

"취조 방향이 본질을 벗어났다, 강 경정."

하태수가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서류 봉투를 툭 내려놓았다. 그의 눈빛에는 확신이 차 있었다. 태혁을 공범으로 옭아매려는 사냥꾼의 눈이었다.

태혁은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차가운 공기가 허파를 채웠다. 뜨겁게 달아오르던 머리가 빠르게 식어 내렸다. 자제력을 잃는 것은 적이 바라는 바였다. 서준희의 페이스에 휘말려서는 안 되었다. 태혁은 쥐었던 주먹을 천천히 폈다. 손바닥의 피를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벗어난 적 없습니다."

태혁의 말투가 본래의 건조함을 되찾았다. 그의 시선이 하태수의 명패를 향했다.

"피의자의 도발은 흔한 방어기제입니다. 감찰팀장님이 직접 참관실에서 내려오실 만큼, 수사본부의 보안이 허술한 줄은 몰랐군요."

하태수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아졌다. 태혁은 턱을 치켜올렸다. 흔들림 없는 오만이 다시 그의 얼굴을 덮었다. 서준희를 노려보던 눈동자가 이제 하태수를 관통했다.

"10분간 휴식을 요청합니다."

태혁이 서류를 정리하며 말했다. 단호한 어조였다.

"조서 자구의 모순을 재검토해야겠습니다. 절차법 제244조에 따른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및 신문 조율 시간입니다. 거부하시겠습니까, 하 팀장님?"

하태수는 시계를 보았다. 오후 3시 15분. 그는 고개를 까딱였다.

"딱 10분이다. 감시 카메라는 계속 작동한다."

하태수가 서준희를 가리켰다. 감찰반원들이 서준희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서준희는 순순히 몸을 일으켰다. 그가 나가기 전, 태혁을 향해 눈인사를 건넸다. 여전히 기괴한 여유가 넘쳤다.

문이 닫혔다. 취조실 안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강태혁. 그리고 참관실에서 급히 건너온 임유진.

유진이 문을 등지고 섰다. CCTV 카메라의 사각지대를 몸으로 가로막았다. 그녀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선배, 제정신이에요?"

유진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저 자식, 선배 아킬레스건을 정확히 알고 있어요. 아현이 얘기는 왜 나오는 건데요? 하태수는 눈이 뒤집혀서 꼬투리 잡으려고 대기 중이고요."

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책상 위의 조서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머릿속에서 소리가 윙윙거렸다. 지워져 가는 우뇌의 기억 영역이 비명을 질렀다. 아현의 얼굴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붙잡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을 규명해야 했다.

"시간이 없어."

태혁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가져온 건?"

유진이 좌우를 살폈다. CCTV 카메라의 렌즈 각도를 확인했다. 그녀가 재킷 안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작은 플라스틱 지퍼백이 나타났다. 그 안에는 은색 금속체가 들어 있었다.

"감찰반 놈들이 압수하기 직전에 빼돌렸어요. 마포구 세 번째 피해자의 유류품 보관 상자 구석에 처박혀 있던 거예요."

유진이 지퍼백을 태혁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묵직한 금속의 무게가 전해졌다.

금이 간 실버 펜던트 손목시계였다.

유리 표면이 거미줄처럼 갈라져 있었다. 시침과 분침은 4시 14분에 멈춰 있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태혁의 손가락 끝을 자극했다.

순간, 태혁의 목구멍이 턱 막혔다. 뇌 내부에서 강한 전기 자극이 스파크를 일으켰다. 시각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취조실의 회색 벽이 무너져 내렸다. 어둠이 들이닥쳤다.

코끝을 찌르는 냄새가 났다. 탄내.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짙은 향기. 달콤하고 밤의 이슬을 머금은 듯한 복숭아꽃 향기였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태혁은 이를 악물었다. 신음을 흘리지 않기 위해 혀를 깨물었다. 비릿한 피맛이 입안에 퍼졌다.

'공감각적 개안.'

그의 뇌세포가 괴사하며 보여주는 잔혹한 환영이었다. 시야에 새로운 풍경이 겹쳐졌다. 사방이 먼지로 가득한 어두운 차고였다. 녹슨 드럼통이 뒹굴고 있었다. 바닥은 시멘트였다. 그 바닥 위에 어떤 액체가 흘러내려 있었다. 강한 산성 물질인 듯, 시멘트 표면을 부식시키며 타들어 간 흔적이었다.

태혁은 눈을 부릅떴다. 환영 속 차고 바닥의 산화 흔적. 그 뒤틀리고 기하학적인 균열의 형태. 그것은 지금 그의 손에 쥐어진 실버 펜던트 시계 유리의 균열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이것이다.'

서준희가 알리바이를 조작하기 위해 머물렀던 실제 장소. 그곳의 물리적 흔적이 시계 유리에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었다. 시계는 피해자의 것이 아니었다. 범행 현장에서 서준희가 떨어뜨렸거나, 일부러 남겨둔 표식이었다. 차고 바닥의 화학 물질. 그것이 시계 유리를 부식시키며 특유의 균열을 만들어냈다. 탄내 섞인 복숭아꽃 향기. 그것은 그 차고 구석에 방치된 방화용 촉진제의 냄새였다.

태혁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공감각적 개안이 멈췄다. 환영이 사라지고 다시 회색 취조실이 나타났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서 소중한 기억 하나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아현과 함께 가던 초등학교 운동장의 붉은 흙길. 그 길의 색깔이 무엇이었는지, 이제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대가치고는 너무도 가혹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진실의 꼬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선배? 괜찮아요?"

유진이 태혁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의 눈에 걱정이 가득했다. 태혁은 그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시간이 없었다.

"이 시계."

태혁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났다.

"서준희가 사용하던 은신처의 열쇠다."

"은신처요? 그게 어딘데요?"

태혁은 대답 대신 책상 위의 수사 매뉴얼 문서를 끌어당겼다. 볼펜을 쥐었다. CCTV 카메라는 그의 손끝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는 글을 쓰는 대신, 복잡한 통계 수식과 그래프를 그리기 시작했다. 감찰반이 보기에는 단순한 프로파일링 분석 행동으로 보일 터였다.

그는 수식의 행간 사이에 미세한 크기로 숫자를 적어 내려갔다.

[37.5512, 126.9124]

마포구 성산동의 폐차장 밀집 지역. 그곳에 서준희의 숨겨진 차고가 있었다.

"잘 들어."

태혁은 수식을 그리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입술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복도에서 구두 소리가 들렸다. 하태수와 감찰반원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시간은 1분도 남지 않았다.

"성산동 414번지. 폐차장 뒤편 파란 지붕 차고다. 그곳 바닥에 산화 흔적이 있어. 이 시계의 균열과 대조해라. 일치하면 서준희의 알리바이는 무너진다."

유진은 침을 삼켰다. 그녀는 태혁이 적은 숫자를 눈에 담았다.

"하지만 거긴 감찰반이 쫙 깔렸어요. 제가 움직이면 바로 미행이 붙을 거예요."

태혁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그는 오른손으로 볼펜을 돌렸다. 왼손으로는 수사 매뉴얼의 하단 페이지를 가볍게 튕겼다. 사각. 종이가 스치는 소리와 함께, 태혁의 손가락이 기민하게 움직였다. 서류 밑장 지환 기법. CCTV 카메라의 프레임 레이트 한계를 정밀하게 계산한 속도였다. 화면상으로는 그저 페이지를 넘기는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유진의 눈앞에는 이미 좌표가 적힌 수사 매뉴얼의 속지가 뜯겨 나와 있었다. 그 종이는 유진이 들고 있던 수색 보고서 서류첩 밑으로 순식간에 들어갔다. 완벽한 기만이었다. 감찰반 수십 명이 모니터실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었지만, 누구도 이 찰나의 움직임을 잡아내지 못했다.

"가라."

태혁이 명령했다.

"가서 증거를 확보해."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서류첩을 품에 안았다. 그녀의 눈빛에 단호함이 서렸다. 더 이상 망설임은 없었다.

철컥.

취조실 문이 열렸다. 하태수가 먼저 걸어 들어왔다. 그의 뒤로 서준희가 형사들에게 이끌려 들어왔다. 하태수의 시선이 태혁과 유진을 번갈아 보았다. 공기 중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려는 듯, 그의 콧망울이 실룩였다.

"시간 끝났다."

하태수가 차갑게 말했다.

"임 경위는 나가라. 외부인은 취조실 내부 통제 구역에서 벗어나도록."

유진은 가볍게 묵례했다. 그녀는 뒤를 돌아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의 발걸음은 빨랐다. 좌표를 손에 넣었으니, 이제 현장으로 달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서준희의 가면을 벗길 물리적 증거가 그곳에 있었다.

유진이 취조실 무거운 철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문을 열었다. 복도의 차가운 형광등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그녀가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유진의 앞길을 가로막는 거대한 그림자가 있었다. 하태수였다. 그는 언제 나갔는지 복도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하얀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유진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태수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구두 소리가 복도의 정적을 깨뜨렸다. 그가 손에 든 종이를 유진의 눈앞에서 가볍게 흔들었다. 붉은색 관인이 선명하게 찍힌 서류였다.

"임 경위, 어디 가나?"

하태수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갔다.

"강태혁 경정에 대한 긴급 구금 영장이다. 혐의는 연쇄살인 공모 및 기밀 유출. 그리고..."

하태수가 유진의 품에 안긴 서류첩을 지목했다.

"압수수색 영장도 함께 발부되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제1취조실 내의 모든 인원과 물품은 감찰팀의 통제를 받는다. 임 경위가 들고 있는 그 서류첩도 예외는 아니지."

복도 모퉁이에서 감찰반원 대여섯 명이 무리를 지어 나타났다. 그들이 유진의 사방을 포위하듯 좁혀왔다. 유진의 손이 서류첩을 꽉 쥐었다. 그녀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갔다.

취조실 안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태혁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최악의 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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