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아아아앙!
대기를 찢어발기는 파열음과 함께 백은색 참격이 수평으로 쏘아졌다. 현 세계 랭킹 1위, 레온하르트의 검격이다.
일반적인 A급 헌터라면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목이 날아갔을 쾌속의 일격. 하지만 지한의 고개는 이미 반 마디 뒤로 젖혀져 있었다.
스윽.
종이 한 장 차이로 백은색 검강이 허공을 갈랐다. 지한의 앞머리가 날카로운 바람에 휘날렸다.
피부로 느껴지는 서늘한 마력의 감각. 전성기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 2.5%의 마력이었지만, 지한의 전투 감각만큼은 여전히 세계 정점의 궤도에 머물러 있었다.
"호오."
레온하르트의 미려한 눈썹이 꿈틀했다. 그의 눈동자에 스친 것은 명백한 경멸, 그리고 기묘한 초조함이었다.
"피하셨습니까. 다 죽어가는 퇴물인 줄 알았더니, 발버둥 치는 재주는 아직 남아 있나 보군요."
"말이 많다, 랭킹 1위 씨."
지한이 픽 웃으며 심연의 톱날을 대각선으로 치켜세웠다. 검신을 따라 흐르는 붉은 도강이 파르르 진동하며 기괴한 마찰음을 내뿜었다.
"수갑을 채우러 왔다면서, 처음부터 목을 노리는 건 무슨 법이냐? 헌터 협회 특별법이라도 되나?"
"반항하는 범죄자는 현장에서 사살해도 무방하다는 예외 조항이 있지요. 특히나 당신처럼…… 세상을 망치려는 악당이라면 더더욱."
레온하르트가 한 걸음 내딛었다. 그의 발끝이 닿은 지면이 백은색 마력에 짓눌려 거미줄처럼 쩍쩍 갈라졌다.
그 압도적인 무력의 기세에 주변의 공기마저 무겁게 내려앉았다. 가장자리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던 서은하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숨이 턱 막히는 S급 헌터의 오라.
하지만 은하는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렌즈의 초점을 레온하르트의 오만한 얼굴과 지한의 초연한 뒷모습에 완벽하게 맞추었다.
지한의 눈앞에 붉은 시스템 경고창이 다시 한번 명멸했다.
[! 돌발 미션: 왕좌의 증명] - 진행 상황: 레온하르트의 공격 견디기 (1/3) - 남은 시간: 04분 12초
첫 번째 공격은 회피로 넘겼다. 남은 공격은 두 번.
"선배. 과거의 영광에 취해 세상을 어지럽히는 건 이쯤에서 그만두시죠."
레온하르트의 검이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이번에는 단순한 참격이 아니었다. 그의 상징과도 같은 비기, '백은의 일섬'이 시전되는 순간이었다.
사방으로 수십 개의 백은색 광선이 뻗어 나가며 지한의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어디로 피하든 몸이 걸레짝이 될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그물망.
"얌전히 무릎 꿇고 속죄하십시오!"
레온하르트가 포효하며 검을 내리쳤다. 백은색 광선들이 일제히 지한의 전신을 향해 쏘아져 들어왔다.
콰콰콰콰쾅!
흙먼지와 비산하는 마력 폭풍이 전장을 휩쓸었다.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나가고, 지반이 통째로 함몰되는 파괴력.
"지한 씨!"
서은하가 비명을 지르며 카메라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화면이 요동치며 먼지구덩이 속을 비추었다.
[우주망 TV 실시간 채팅창] - 여포보다내가나음: 미친 거 아니냐? 저걸 어떻게 버텨;;; - 성좌_방구석평론가: 어어? 진짜 죽은 거 아님? 랭킹 1위 딜 실화냐? - 헌터협회수호자: 퇴물 사기꾼의 최후다 ㅋㅋㅋ 쌤통이네! - 성좌_돈이최고야: 야 이대로 죽으면 내 코인은 어떡하냐?! 지한아 일어나라!
먼지 안개 너머로, 백은색 빛을 가르고 튀어나온 것은 칠흑 같은 어둠의 파동이었다.
카앙!
날카로운 쇠붙이의 마찰음이 고막을 찢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지한이 들고 있는 '심연의 톱날'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백은색 광선들을 갈아 마시고 있었다. 검의 이빨이 맞물려 돌아가며 내는 기괴한 엔진음이 산자락을 가득 메웠다.
"이, 이건……?!"
레온하르트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졌다. 자신의 백은 마력이 이빨 빠진 고철 검 따위에 정면으로 상쇄당하고 있었다.
그 순간, 지한의 귓가로 익숙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당신의 근성에 감탄하여 숨겨진 후원 조건을 해제합니다!]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자신의 장난감을 빼앗기기 싫어하며 소리칩니다!]
[조건 충족: 랭킹 1위의 비기를 정면으로 받아내기 완료!] [특수 장비 '심연의 톱날'의 2단계 봉인이 해제됩니다!]
우우우웅-!
지한의 손에 들려 있던 투박한 검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검신을 뒤덮고 있던 녹슨 철피가 허물처럼 벗겨져 나갔다. 그 안에서 드러난 것은 차원이 다른 깊이의 심연을 머금은 검은색 칼날.
칼날의 가장자리를 따라 돋아난 수천 개의 초소형 톱날들이 마력의 파동을 흡수하며 미친 듯이 회전했다.
[심연의 톱날 - 봉인 2단계 해제] - 등급: 신화 (봉인 상태) - 효과: 마력 진동 유도 기능 상시 활성화. 타격 시 상대방의 마력 보호막을 40% 확률로 무시하고 파괴합니다. 흡수한 마력의 일부를 사용자의 스태미나로 치환합니다.
"후우."
지한의 입에서 뜨거운 김이 새어 나왔다. 온몸의 혈관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이 엄습했지만, 동시에 심연의 톱날로부터 흘러 들어온 마력이 그의 심장을 강하게 뛰게 만들었다.
[돌발 미션: 왕좌의 증명] - 진행 상황: 레온하르트의 공격 견디기 (2/3)
"두 번이다."
지한이 피가 묻은 입술을 쓸어 올리며 비웃었다.
"나머지 한 번은 어디로 줄 거냐, 레온하르트?"
"이…… 건방진 퇴물 놈이!"
레온하르트의 평정심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카메라 앞에서의 매너? 대중 앞에서의 정의로운 이미지? 지금 이 순간, 눈앞의 사기꾼 하나를 제압하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 자체가 자신의 완벽한 커리어에 치명적인 오점이었다.
그의 눈에 핏발이 섰다. 레온하르트가 검을 두 손으로 고쳐 쥐고, 전신에 남아 있는 모든 마력을 끌어올렸다. 하늘이 백은색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압도적인 마력의 폭풍 속에서, 서은하는 필사적으로 카메라 앵글을 유지했다. 그리고 그녀의 손끝이 가리키는 방송 화면의 실시간 시청자 수는 이미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로 치솟아 있었다.
[실시간 동시 접속자 수: 9,800,000명 돌파!] [실시간 동시 접속자 수: 10,000,000명 돌파!]
천만 명. 대한민국 인구의 5분의 1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 생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순간, 우주망 TV 시스템이 미친 듯이 알림을 쏟아냈다.
[성좌 '돈이 최고야'가 100,000 코인을 후원합니다!]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150,000 코인을 후원합니다!] [성좌 '정의의 심판관'이 현재 시청자 수의 기세에 감탄합니다!]
[시청자 수 1000만 명 달성 특전!] [성좌들의 기세가 실체화되어 전장에 강림합니다!] [! 돌발 연계 미션 발생: 대중의 눈] - 내용: 시청자들의 분노와 관심을 아우라로 치환하여 상대방의 오라를 누르십시오. - 성공 조건: 레온하르트의 세 번째 공격을 완벽히 상쇄하고 역으로 압도할 것.
"죽어라, 강지한!"
레온하르트가 대지를 가르며 도약했다. 하늘을 뒤덮은 백은색의 거대한 검강이 지한의 머리 위로 낙하했다. 산 전체를 날려버릴 것 같은 파멸적인 위력.
하지만 지한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심연의 톱날을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뻗었다.
"내려와라."
지한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눈동자 모양의 형상들이 푸른빛을 띠며 우후죽순으로 솟아올랐다. 천만 명의 시청자. 그들이 뿜어내는 비난과 의혹, 그리고 경외의 시선이 실체화된 마력의 압박이 되어 레온하르트의 전신을 짓눌렀다.
쿵-!
마치 중력이 수십 배로 증가한 것처럼, 공중에서 낙하하던 레온하르트의 신형이 둔하게 꺾였다.
"끄, 윽……?! 이게 무슨 법력이……!"
레온하르트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어깨 위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바위가 얹힌 것 같은 압박감. 그의 백은색 오라가 천만 명의 시청자 아우라에 눌려 파르르 떨리며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 틈을 지한이 놓칠 리 없었다.
"내 시대가 끝났다고?"
지한이 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심연의 톱날이 검은색 궤적을 그리며 레온하르트의 백은색 검강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콰아아앙-!
이번에는 일방적인 막아내기가 아니었다. 2단계 봉인이 해제된 심연의 톱날이 레온하르트의 마력 보호막을 무참히 찢어발겼다. 회전하는 검은 칼날이 백은색 검신을 비틀어 누르며 요란한 굉음을 토해냈다.
카가강!
마찰 스파크가 레온하르트의 깔끔하게 정돈된 금발을 그을렸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선배가 만든 가짜 평화 속에서 랭킹 1위 놀이나 하니까, 진짜 싸움이 뭔지 잊어버린 모양이군."
지한의 차가운 목소리가 레온하르트의 고막을 때렸다.
"이게 진짜 헌터의 칼이다."
쿠아앙!
마력의 폭발과 함께 레온하르트의 신형이 뒤로 십여 미터나 밀려났다. 그의 발끝이 흙바닥을 깊게 파고들며 간신히 멈춰 섰다.
호흡이 가빠진 레온하르트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검신에 미세한 균열이 가 있었다. 세계 랭킹 1위의 검에, 고작 퇴물이라 불리던 남자가 흠집을 낸 것이다.
그때, 은하가 들고 있던 카메라의 붉은 표시등이 레온하르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지한의 홀로그램 채팅창이 비쳤다.
[실시간 시청자 수: 10,450,000명] - 킹갓제네럴: 대박 ㅋㅋㅋㅋㅋㅋㅋㅋ 레온하르트 밀린 거 실화냐? - 팩트폭격기: 랭킹 1위 땀 흘리는 것 좀 봐 ㅋㅋㅋ 완전 쫄았는데? - 성좌_방구석평론가: 어어, 협회가 보낸 자객들 진짜 맞나 보네. 레온하르트가 입막음하려다 역관광당하는 중 ㅋㅋㅋ - 정의구현자: 랭킹 1위라는 놈이 비겁하게 사석에서 선배 헌터 담그려고 했네. 실망이다 진짜.
채팅창의 여론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있었다. 레온하르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방송…… 중이었다고? 전 세계에?'
그는 지한이 단지 구걸하듯 소규모 개인 방송을 켜둔 줄로만 알았다. 설마 대형 길드의 화력 지원도 없이, 오직 개인의 힘으로 천만 명이 넘는 시청자를 끌어모으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 여기서 강지한을 강제로 죽이거나 제압한다면? 그 순간 자신은 '정의의 영웅'이 아니라, '협회의 비리를 덮기 위해 선배를 암살한 살인마'로 낙인찍히게 된다. 여론을 무기화하여 살아가는 이 미디어 만능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곧 파멸을 의미했다.
레온하르트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를 악무는 소리가 지한의 귀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흥."
레온하르트가 검을 천천히 검집에 밀어 넣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표정을 관리하려 애썼지만,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과연, 과격한 언동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재주는 여전하시군요, 선배. 오늘은 공무 수행 중이기도 하고, 무고한 시민이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이쯤에서 물러나겠습니다."
"물러나겠다고?"
지한이 비웃음을 흘렸다.
"수갑 채운다며? 그냥 가지 말고 채워보지 그러냐?"
"……법적인 절차를 밟아 정식으로 소환장을 발부하겠습니다. 그때는 이런 잔재주도 통하지 않을 겁니다."
레온하르트가 가증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뒤로 돌아섰다. 그의 발걸음은 평소의 당당함과 달리 어딘가 쫓기듯 다급해 보였다.
그가 포털을 열고 사라지는 순간까지, 은하의 카메라는 그의 굽은 등 뒤를 집요하게 비추었다.
[! 돌발 미션: 왕좌의 증명 - 성공!] [! 돌발 연계 미션: 대중의 눈 - 성공!]
[미션 성공 보상 수령 완료!] - '심연의 톱날' 봉인 2단계 해제 완료. - 마력 영구 복구 +2.0%가 적용됩니다. - 150,000 코인이 지급됩니다.
"우욱……!"
레온하르트가 사라지자마자, 지한이 참았던 마른기침과 함께 핏덩이를 바닥에 쏟아냈다. 방송이 켜져 있는 동안 흐르던 마력이 일시적으로 요동치며 가슴을 짓누른 탓이었다.
"지한 씨! 괜찮으세요?!"
은하가 급히 다가와 그를 부축하려 했다. 하지만 지한은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그는 붉게 물든 입술을 옷소매로 슥 닦아내며, 은하가 들고 있는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그의 눈빛은 피를 흘리는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시청자 여러분."
지한이 카메라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천만 명의 눈동자가 그의 입술에 집중되었다.
"헌터 협회와 저 가짜 랭킹 1위 놈들이 왜 나를 죽이지 못해 안달인지 궁금하겠지."
그가 심연의 톱날을 어깨에 걸쳐 멨다. 검은 칼날에 묻은 피가 대지 위로 뚝뚝 떨어졌다.
"내 모든 힘을 앗아갔던 그날의 진실. 서울 대폭발 사건의 진짜 원흉이 누구인지, 내 손으로 직접 밝혀내겠다."
지한이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 방송 장소는 정해졌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멀리 보랏빛 장막으로 둘러싸인 금지 구역이었다.
"수렁의 림보(Limbo of Abyss)."
지한의 선언에 실시간 채팅창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거기서 모든 것을 끝내지. 채널 고정해라."
툭.
방송이 종료되었다.
***
[이번 화 획득 및 누적 보상] - 영구 복구된 마력: +2.0% (누적: 4.5%) - 획득 코인: +150,000 코인 (누적 코인: 325,000 코인) - 실시간 최고 동시 접속자 수: 10,450,000명 돌파! - 장비 상태: [심연의 톱날] 봉인 2단계 해제 완료 (마력 무시 및 스태미나 흡수 기능 활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