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구구구구—!
머리 위를 짓누르는 압도적인 중압감.
안대에 가려진 시야 너머로, 공기를 찢는 파공음이 고막을 사정없이 때렸다.
단순한 C급 보스가 아니다. 보랏빛 거미줄에 뒤엉킨 채 강하하는 놈의 정체는 변종 오크 챔피언.
놈이 휘두르는 거대한 대검이 지한의 정수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떨어져 내렸다.
수백 미터 밖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의 진동까지 포착하는 초감각. 지한의 뇌리에 보스 몬스터의 움직임이 3차원 입체 그래픽처럼 선명하게 그려졌다.
"크르르르아아악!"
귀를 찢는 포효와 함께 대검이 허공을 갈랐다.
지한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날아오는 죽음을 보지 못한 사람처럼, 그저 꼿꼿이 서 있을 뿐이었다.
실시간 중계 화면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비명을 질렀다. 서은하가 쥔 카메라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 미친! 피하라고! 강지한 뭐 해! - 어버버하다가 대가리 깨지겠네! - 역시 퇴물새끼 뽀록이었냐? 눈 가린 게 독이 됐네! - 으아악 눈 감아라 다들 피 튄다!
찰나의 순간. 대검의 끝자락이 지한의 머리칼을 스치기 직전.
스윽.
지한이 고개를 단 3센티미터 옆으로 비틀었다. 동시에 바닥의 먼지가 급격하게 흩날리는 방향을 따라, 몸을 가볍게 뒤로 뉘었다.
콰아아아앙—!
지한이 방금 전까지 서 있던 대지가 처참하게 폭발했다. 거대한 돌덩이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먼지 폭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지한의 몸에는 단 한 조각의 먼지조차 앉지 않았다. 바람의 흐름을 읽고, 파편의 궤적을 미리 예측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해낸 덕분이었다.
"속도만 빨랐지, 궤적이 너무 뻔하잖아."
지한이 낮게 읊조리며 실소했다. 감각 +50의 버프는 상상을 초월했다.
공기의 밀도 변화. 오크 챔피언의 근육이 수축하고 이완하는 소리. 심지어 혈관을 타고 흐르는 탁한 마력의 흐름까지 전부 귀에 꽂혔다.
쿠웅! 쿠웅!
대검을 놓친 오크 챔피언이 대지를 짓밟으며 광분했다. 놈이 쥔 무기는 단순한 철덩어리가 아니었다. 마력이 깃든 거대한 해골 대검.
그때, 지한의 시야에 붉은색 시스템 창이 점멸했다.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새로운 미션을 제안합니다!]
[돌발 미션: 눈 먼 사신의 무기 파괴] - 내용: 눈을 가린 채, 보스 몬스터의 무기를 '스스로' 파괴하게 유도하여 처치하십시오. - 제한 시간: 5분 - 성공 보상: 전성기 마력 10% 복구 및 성좌들의 후원금 정산 - 실패 패널티: 스탯 영구 삭감 (-20) 및 마력 역류 유발
실시간 채팅창이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 ㅋㅋㅋ 미션 난이도 실화냐? - 보스 무기를 지 손으로 부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파괴하게 유도'하라고? - 트롤러 성좌 수준 보소 ㅋㅋㅋ 지한이 죽이려고 작정했네. - 저 대검 마력 전도율 존나 높아서 웬만한 충격으론 안 부서짐. 퇴물새끼 오늘 제삿날이네.
성좌들은 지한이 절망하기를 바랐다. 그의 고통과 비명이 곧 그들의 오락이었으니까.
특히 '심해의 트롤러'는 지한이 이 불가능한 조건에 절규하며 무릎 꿇기를 원했다.
하지만 지한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스스로 파괴하게 만든다라.'
어려울 것 없었다. 지한은 손에 쥔 [심연의 톱날]을 가볍게 털었다.
1단계 봉인이 해제된 단검이 웅웅거리며 기괴한 진동음을 내뿜고 있었다. 이 칼은 다름 아닌 '심해의 트롤러'가 지한을 조롱하기 위해 던져준 미끼였다.
지한은 그 미끼를 가장 치명적인 무기로 바꿀 생각이었다.
이 진동. 그리고 오크 대검의 고유 진동수. 초감각으로 무장한 지한에게는 모든 사물의 '약점'이 소리로 들렸다.
지한이 단검을 가볍게 튕기며 입을 열었다.
"야, 돼지 새끼야. 그 큰 칼로 파리 한 마리 못 잡냐? 덩치값 좀 해라."
"크르라아아아!"
오크 챔피언이 격노하여 대검을 치켜들었다. 보랏빛 거미줄이 대검에 엉겨 붙으며 파괴적인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슈우우우웅—!
대검이 지한을 향해 가로로 휘둘러졌다. 공기를 찢는 굉음이 동굴을 울렸다.
지한은 피하지 않았다. 대신 [심연의 톱날]을 정면으로 내밀었다.
- 미쳤다! 맞받아치려고?! - 저 단검 부러진다에 내 전 재산 건다! - 멍청한 놈, 기어이 자살을 선택하는구나!
성좌들이 쾌재를 부르는 그 순간.
팅—!
단검과 대검이 맞부딪치는 가벼운 금속음이 울렸다. 우려했던 폭발은 없었다.
지한은 힘으로 맞선 것이 아니었다. [심연의 톱날]의 톱날 부분을 오크 대검의 '마력 흐름이 꼬이는 접점'에 정확히 맞물리게 만들었을 뿐이다.
동시에 단검의 기괴한 초고주파 진동이 오크의 대검 내부로 고스란히 흘러들어갔다.
지한의 예측은 정확했다. 거대한 무기일수록 내부의 마력 순환이 불균형하기 마련. 그 미세한 균열에 극도의 진동을 주입하자, 대검 내부의 마력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오크 챔피언은 그것도 모르고 지한을 짓누르기 위해 무지막지한 완력을 더했다.
"크어어어어!"
지한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잘 가라. 네 멍청함이 네 무기를 부순 거야."
쩍—!
순간, 오크 대검의 중앙부에 거미줄 같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
오크 챔피언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신이 힘을 주면 줄수록, 대검 내부에서 일어난 공명 현상이 무기를 스스로 찢어발기고 있었다.
콰아아앙—!
결국 버티지 못한 오크의 해골 대검이 수백 개의 파편으로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무기가 파괴되면서 발생한 마력의 역풍이 오크 챔피언의 안면을 그대로 강타했다.
"크아아아악!"
자신의 무기에 자신이 당한 꼴이었다. 오크 챔피언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돌발 미션: '눈 가린 사신의 무기 파괴' 성공!] [성좌들의 예측을 완벽하게 뒤엎었습니다!]
지한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대검이 깨진 틈을 타, 신형을 날려 오크 챔피언의 목덜미로 파고들었다.
안대를 쓴 채였지만, 놈의 숨통이 어디에 있는지 손바닥 보듯 훤했다.
서걱—!
[심연의 톱날]이 오크의 두꺼운 가죽을 두부 썰듯 베어 넘겼다.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거대한 육신이 힘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쿵—!
던전 내부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보스 몬스터 '변종 오크 챔피언' 처치 완료!] [던전 클리어 성공!]
[돌발 미션 클리어 보상이 지급됩니다.] [[전성기 마력 10% 복구] 시스템이 가동됩니다!]
화아아아악—!
지한의 전신을 감싸는 푸른 마력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끊어져 있던 마력 회로가 강제로 이어지며, 심장을 압박하던 타는 듯한 갈증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피를 토할 것 같던 유리몸에 묵직한 생명력이 가득 차올랐다.
동시에 시스템 알림음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피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쥐어뜯습니다!]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약속된 후원금 50,000코인을 강제 징수당합니다!] [성좌 '방구석 평론가'가 충격으로 키보드를 부숩니다! 5,000코인을 후원합니다!] [성좌 '전장의 지배자'가 껄껄 웃으며 30,000코인을 후원합니다!]
채팅창은 그야말로 초토화 상태였다.
- 와 미친 ㅋㅋㅋㅋ 공명 현상 이용한 거냐? - 눈 가리고 보스 무기 약점을 찾아서 진동으로 깨부쉈다고? - 이게 씨발 퇴물 헌터의 대처 능력이라고? 미쳤다 진짜 ㅋㅋㅋ - 트롤러 성좌 통장 털리는 소리 여기까지 들리네 ㅋㅋㅋㅋ 개꿀잼! - 오늘부터 지한이 형 팬 한다 ㅋㅋㅋ 갓지한!
지한은 안대를 스윽 벗어던졌다. 눈부신 빛 속에서, 그의 검은 눈동자가 매섭게 빛났다. 그는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까딱였다.
"거 봐. 내가 뭐랬어."
지한의 목소리에는 서늘한 조소가 담겨 있었다.
"돈 벌기 참 쉽네. 다음에도 그딴 허접한 미션이나 들고 와라, 성좌 놈들아."
시청자 수와 코인 정산 판이 실시간으로 요동쳤다.
[실시간 동시 접속자 수: 52,000명 돌파!] [누적 획득 코인: 112,000 코인!]
전성기 마력의 일부가 몸에 안착하자, 지한은 비로소 숨을 크게 내쉬었다. 영구 복구된 마력은 단 1.5%에 불과했지만, 체감되는 변화는 컸다. 마력 역류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조금은 멀어졌다.
하지만 안심할 틈은 없었다.
쿠르르르릉—!
갑자기 동굴 천장에서 거대한 바위들이 낙하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몬스터 처치로 인한 던전 붕괴가 아니었다. 게이트 자체의 마력 흐름이 뒤틀리며 공간 자체가 뜯겨 나가고 있었다.
"지한 씨! 위험해요! 게이트가 붕괴하고 있어요!"
저 멀리서 카메라를 들고 버티던 서은하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얼굴은 흙먼지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쯧, 귀찮게 됐군."
지한은 서은하를 향해 신형을 날리려 했다. 탈출로가 곧 막힐 터였다.
바로 그 순간.
지한의 등 뒤로, 서늘하다 못해 척추를 얼려버릴 듯한 기괴한 냉기가 엄습했다. +50으로 극대화된 그의 감각이 미친 듯이 경고음을 울려댔다.
삐이이이익—!
머리가 깨질 듯한 이명이 고막을 강타했다. 지한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너져 내리는 보랏빛 흙먼지 장막 너머. 공간의 균열 속에서, 인간의 형상을 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소리 없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그림자의 손에는 붉게 타오르는 마력의 칼날이 쥐어져 있었다. 그것은 몬스터가 아니었다. 지한을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 보내진 '누군가'의 자객이었다.
그림자가 지한을 향해 소리 없이 도약했다. 탈출구가 무너지는 와중, 피할 곳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죽음의 칼날이 그의 목덜미를 겨냥했다.
***
[이번 화 획득 보상 요약] - 영구 복구된 마력: +1.5% (누적: 2.5%) - 해금된 스탯: 감각 +50 (일시 해금, 남은 시간: 09분 45초) - 획득 코인: 32,000 코인 - 실시간 동시 접속자 수: 52,000명 돌파 (폭발적인 인지도 상승!) - 장비 상태: [심연의 톱날] 봉인 1단계 해제 (공격력 및 마력 전도율 대폭 상승)
붉은 칼날이 대기를 가르는 찰나.
지한의 발끝이 지면을 기척 없이 밀어냈다. 마치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그의 신형이 뒤쪽으로 쏘아져 나갔다.
깡—!
날카로운 마찰음이 고막을 찔렀다. [심연의 톱날]이 붉은 궤적을 그리며 솟구쳐, 습격자의 대검을 비스듬히 흘려보냈다.
"이 힘은……?"
검은 후드 너머로 당혹에 찬 음성이 흘러나왔다. 퇴물이라 불리던 남자의 손목에서 흘러나오는 악력은 결코 마력이 고갈된 자의 것이 아니었다.
지한은 대답 대신 실소했다.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지만, 머릿속은 얼음물처럼 차갑게 식어 내렸다.
이 살기의 기운. 과거 자신을 배신했던 신성 길드의 사냥개들이 풍기던 썩은 마석의 냄새와 정확히 일치했다.
"유채린 그년이 보냈나? 아니면 도준혁인가?"
"……!"
습격자의 신형이 움찔했다. 정답이라는 뜻이었다.
지한의 초감각이 상대의 흔들리는 호흡을 집요하게 포착했다. 그는 곧바로 검은 단검을 비틀어 쥐며 전진했다.
서은하의 카메라가 그 경이로운 공방전을 실시간으로 포착하고 있었다. 시청자들은 이제 경악을 넘어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 미친, 저 새끼 몬스터가 아니잖아! - 헌터 슈트 입고 있는데? 이거 살인 의뢰 아님? - 방송 켜져 있는데 대놓고 킬러를 보냈다고?! - 와, 헌터 협회 개새끼들 진짜 선 넘네 ㅋㅋㅋ
[실시간 동시 접속자 수가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동시 접속자 수: 70,000명 돌파!]
"카메라 꺼라, 강지한!"
습격자가 낮게 으르렁거리며 품에서 둥근 기계 장치를 꺼내 들었다. 강력한 마력 파동을 방출해 무선 통신을 차단하는 전파 방해 장치였다.
지한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미안한데, 내 방송은 네까짓 기계로 꺼지는 싸구려가 아니라서."
파직! 팍!
방해 장치가 작동하는 순간, 서은하의 개인 장비들은 전부 먹통이 되었다. 하지만 공중에 떠 있는 시스템의 투명한 중계 카메라는 여전히 붉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우주망 TV의 시스템은 지구의 기술 따위로 간섭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뭐, 뭐라고……?"
습격자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흔들렸다. 그 빈틈을 지한은 놓치지 않았다.
스윽.
지한의 신형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전성기 스탯: 감각 +50]이 제공하는 사기적인 반사신경.
습격자가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지한은 이미 그의 품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있었다.
스으윽—!
"꺼져."
[심연의 톱날]이 습격자의 오른쪽 어깨관절을 정확히 관통했다. 동시에 단검 특유의 이질적인 진동이 뼈와 근육을 사정없이 으깨버렸다.
"끄아아아악!"
습격자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어깨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피가 회색 바닥을 더럽혔다.
지한은 자비 없이 그의 가슴을 짓밟았다. 뼛조각이 부서지는 둔탁한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누가 보냈는지 내 카메라에 대고 똑바로 말해라. 그럼 편하게 보내주지."
"크, 큭…… 으하하하!"
가슴을 짓밟힌 습격자가 피를 토하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 그의 손가락이 바닥에 떨어진 붉은색 기동 스위치를 움켜쥐었다.
그것은 단순한 방해 장치가 아니었다. 지한의 눈이 가늘어졌다.
"같이 죽는 거다, 강지한."
딸깍—!
불길한 기계음과 함께, 던전의 심장부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게이트의 붕괴 속도가 수십 배는 빨라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
천장 전체가 무너져 내리며 거대한 바위들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입구는 이미 수십 톤의 바위 더미로 완전히 봉쇄된 상태.
"지한 씨! 탈출구가…… 탈출구가 막혔어요!"
서은하의 절박한 비명이 무너지는 소음에 파묻혔다.
[경고! 게이트의 마력 밀도가 임계점을 초과했습니다!] [3분 뒤, 게이트가 완전히 소멸합니다!] [탈출하지 못할 경우, 아공간의 틈새로 추락하여 사망합니다!]
지한의 이마를 타고 차가운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감각 +50]의 버프 남은 시간은 단 5분.
퇴로가 완전히 차단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지한은 서서히 조여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응시했다.
***
[이번 화 획득 보상 요약] - 영구 복구된 마력: +1.5% (누적: 2.5%) - 해금된 스탯: 감각 +50 (일시 해금, 남은 시간: 05분 12초) - 획득 코인: 87,000 코인 (누적 코인: 167,000 코인) - 실시간 동시 접속자 수: 72,000명 돌파! (실시간 급상승 스트리머 1위 노출!) - 장비 상태: [심연의 톱날] 봉인 1단계 해제 (마력 진동 유도 기능 활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