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8시 50분.
서울 외곽에 위치한 아차산 C급 게이트 입구는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황색 경고 띠가 겹겹이 둘러쳐진 통제선 너머로, 보랏빛 마력이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포탈이 일렁였다. 그 주위를 단단히 에워싼 세계 헌터 협회(WHA) 소속 경비대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그 엄숙하고 삼엄한 분위기 한가운데.
기이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행색의 남자가 서 있었다.
무릎이 툭 튀어나오고 먼지가 뽀얗게 앉은 회색 츄리닝 바지. 깃이 다 늘어난 면 티셔츠 위로 대충 걸친 낡은 후드 집업. 그리고 발끝에서 덜렁거리는 삼선 슬리퍼까지.
강지한이었다.
그는 한 손으로 소형 카메라가 달린 셀카봉을 높이 치켜든 채, 렌즈를 나른한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허리춤에는 낡은 가죽 칼집에 담긴 기괴한 톱날 단검 하나만이 덜렁거렸다.
"약속한 시간이다."
지한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가 화면을 가볍게 터치하자, 굳게 닫혀 있던 '우주망 TV'의 라이브 스트리밍 채널이 활짝 열렸다.
[우주망 TV 라이브 스트리밍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동시 접속자 수: 1,500명 돌파!] [현재 동시 접속자 수: 4,800명 돌파!]
어제 던진 폭탄선언의 여파는 상상 이상이었다. 방송이 켜지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시청자들이 폭포수처럼 밀려 들어왔다.
—와, 진짜 켰네? 이 퇴물 새끼 멘탈 하나는 인정한다. —근데 복장이 저게 뭐냐? 동네 슈퍼마켓 가냐? —츄리닝에 슬리퍼 ㅋㅋㅋㅋㅋ 자살 쇼를 아주 정성스럽게 준비했네. —뒤에 보이는 거 아차산 C급 게이트 맞지? 저기 저번 주에 D급 헌터 5인 파티도 겨우 깬 곳이다. 마력 3짜리가 맨몸으로 간다고? —주작치기 딱 좋은 날씨네. 안으로 들어가면 홀로그램이라도 틀 거냐?
채팅창은 순식간에 비아냥과 의혹으로 도배되었다.
하지만 지한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주작인지 아닌지는 네놈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될 테니까, 팝콘이나 들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어라."
[실시간 시청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현재 시청자 수: 8,900명 돌파!] [마력 역류 제한 시간이 연장됩니다.] [현재 신체 동조율: 1.2%]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시원한 마력이 혈관을 따라 퍼져 나갔다. 방송이 커지고 시청자들의 트래픽이 쌓일수록, 그를 옥죄던 심장의 통증이 가라앉았다.
이 악마적인 시스템은 지한에게 있어 유일한 구원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지한이 게이트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거기 멈춰!"
철컥이는 무거운 쇠붙이 소리와 함께, 중무장한 헌터 세 명이 지한의 앞을 가로막았다.
번쩍이는 플레이트 아머와 마력 보호막이 내포된 대검으로 무장한 이들이었다. 가슴팍에 달린 D급 헌터 휘장이 아침 햇살을 받아 둔탁하게 빛났다.
"강지한 씨 맞지?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가장 덩치가 큰 대머리 헌터가 인상을 찌푸리며 지한을 쏘아보았다. 그의 시선이 지한의 츄리닝과 슬리퍼를 훑고 지나가자, 노골적인 경멸이 서렸다.
"여기는 통제 구역입니다. 라이선스도 정지당한 퇴물 헌터가 사기 방송을 찍으려고 기어 들어갈 곳이 아니란 말입니다. 당장 꺼지세요."
"비켜라."
지한이 짧게 내뱉었다.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너 마력 측정기 수치 3 나왔다며? 일반인보다 못한 몸뚱이로 저기 들어가는 순간 오크 몽둥이에 대가리가 깨져서 고기반찬이 될 텐데, 어디서 고집을 부려?"
대머리 헌터가 비아냥거리며 지한의 어깨를 강하게 밀치려 손을 뻗었다.
그 손끝에는 묵직한 마력이 가미되어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어깨뼈가 으스러질 정도의 악력이었다.
하지만 지한의 눈에 그 움직임은 마치 물속을 기어가는 달팽이처럼 느려 터져 보였다.
지한은 어깨를 가볍게 뒤로 젖혔다.
동시에 바람처럼 뻗어 나간 손가락이 대머리 헌터의 오른쪽 손목 관절을 정확하게 낚아챘다.
"어……?"
대머리 헌터의 눈동자가 당황으로 흔들리는 찰나.
지한은 그의 손목을 안쪽으로 꺾으며 무게중심을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툭.
스치듯 가벼운 발걸음 하나가 그의 디딤발을 걸었다.
철퍼덕!
"크헉?!"
거구의 헌터가 차가운 흙바닥에 안면을 사정없이 처박았다. 무거운 갑옷이 부딪치는 요란한 쇳소리가 야산 초입에 울려 퍼졌다.
"이, 이 새끼가?!"
"미쳤어?!"
뒤에 서 있던 두 명의 헌터가 경악하며 대검을 뽑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지한은 이미 그들의 사이를 바람처럼 통과한 뒤였다.
허공을 가르는 듯 가볍고 유려한 보법. 전성기 시절 그가 대륙을 종횡무진할 때 사용했던 무형의 보법, '신형보(神形步)'의 편린이었다.
"잡아! 저 자식 게이트로 들어간다!"
뒤에서 터져 나오는 경비대원들의 고함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지한은 보랏빛으로 일렁이는 소용돌이 속으로 거침없이 몸을 던졌다.
스우우우—!
시야가 번쩍이며 왜곡된 공간이 그의 신체를 집어삼켰다.
***
[C급 던전 '아차산 야산'에 입장하셨습니다.]
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전신을 감싸 안았다.
사방은 하늘을 가릴 정도로 거대하게 자라난 활엽수림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바닥에는 이끼와 썩은 나뭇잎들이 뒤엉켜 피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지한이 땅에 발을 딛자마자, 어둠 속에서 붉은 안광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구역질 나는 타액을 흘리며 조잡한 철도끼를 든 초록색 피부의 괴수들.
오크였다. 그 수는 대략 열 마리.
일반적인 D급 헌터 파티라면 당장 진형을 갖추고 방패를 앞세워야 할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채팅창은 이미 폭발 직전이었다.
—미친, 진짜 들어왔네?! —와, 주작이 아니었어? 뒤에 오크들 진짜 움직이는데? —야, 근데 지한아 진짜 츄리닝 입고 저걸 어떻게 잡냐? 몽둥이 한 대만 스쳐도 뼈 바스러질 텐데? —도망쳐 미친놈아! 진짜 죽는다고!
그때, 지한의 눈앞에 푸른빛 시스템 창이 날카로운 경고음과 함께 떠올랐다.
[성좌들의 시선이 당신에게 집중됩니다!]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가학적인 미션을 제안합니다!]
[성좌 '심해의 트롤러'의 돌발 미션: '장님의 검무'] - 상세: 눈을 완전히 가린 채(시야 차단 상태) 오크 10마리를 처치하십시오. - 제한 시간: 10분 - 미션 성공 보상: [심연의 톱날] 봉인 1단계 해제, [전성기 스탯: 감각 +50] 일시 해금. - 미션 실패 패널티: 영구적인 스탯 삭감 및 즉각적인 마력 역류로 인한 심정지.
"장님의 검무라."
지한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성좌 놈들의 비열하고 가학적인 취향은 여전했다. 어떻게든 자신이 처참하게 찢겨 죽는 꼴을 실시간으로 감상하며 즐기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지한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츄리닝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어제 편의점에서 미리 사 두었던 검은색 수면 안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자신의 두 눈 위에 안대를 대고 머리 뒤로 단단히 묶었다.
시야가 순식간에 완벽한 암흑으로 뒤덮였다.
채팅창은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 —아니, 미친놈아 그걸 왜 써?! —진짜 눈을 가렸다고? 도랏맨? —성좌 미션 떴냐? 와, 미션 내용 실화냐 ㅋㅋㅋ 눈 가리고 오크 10마리 처치? —이건 그냥 자살이잖아! 아무리 어그로라지만 진짜 뒤지려고 환장했네!
지한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하아—.
눈이 가려지자, 역설적으로 그의 다른 모든 감각이 날카롭게 깨어나기 시작했다.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오크들의 썩은 입 냄새. 축축한 흙바닥을 짓밟는 무거운 발자국 소리. 그리고 츄리닝 바지자락을 스치는 미세한 공기의 흐름까지.
모든 정보가 뇌리로 생생하게 인식되었다.
크르어어어!
가장 먼저 참지 못한 오크 한 마리가 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머리 위에서 육중한 도끼가 공기를 가르며 떨어지는 궤적이 지한의 머릿속에 3D 입체 영상처럼 선명하게 그려졌다.
지한은 반 보 뒤로 가볍게 물러섰다.
스윽.
도끼날이 그의 코끝을 단 1센티미터 차이로 스쳐 지나갔다.
서걱—!
허리춤에서 뽑혀 나온 '심연의 톱날'이 어둠 속에서 청홍색 궤적을 그리며 오크의 목덜미를 정확하게 그어버렸다.
스르릉, 툭.
단 한 번의 칼부림에 오크의 거대한 머리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오크 1/10 처치 완료!]
"다음."
지한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의 무심한 태도에 극도로 흥분한 오크 세 마리가 좌, 우, 정면에서 동시에 달려들었다.
바람을 가르는 세 방향의 살기.
지한은 몸을 낮추며 제자리에서 가볍게 회전했다. 츄리닝 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기묘한 잔상을 남겼다.
챙! 챙!
단검의 톱날이 오크들의 무딘 칼날을 미끄러지듯 받아내며 쳐냈다.
동시에 지한의 왼손 끝이 채찍처럼 뻗어 나가 오른쪽 오크의 명치를 강타했다.
퍽!
"커흑!"
숨이 막힌 오크가 비틀거리는 찰나, 지한은 톱날 검을 역수로 쥐고 놈의 가슴팍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
푸학!
검을 뽑아냄과 동시에 몸을 반바퀴 돌려, 왼쪽에서 덤벼들던 놈의 발목을 베어 넘겼다. 쓰러진 오크의 미간으로 톱날 검이 주저 없이 내리꽂혔다.
[오크 2/10 처치 완료!] [오크 3/10 처치 완료!] [오크 4/10 처치 완료!]
그것은 전투라기보다 우아하고 잔혹한 무용(舞踊)에 가까웠다.
눈을 가린 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의 공격을 회피하고 정확하게 치명상을 입히는 모습.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조종당하는 인형처럼, 지한의 신체는 완벽한 효율성만을 추구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채팅창은 이제 경악을 넘어 공포에 젖어 들었다.
—와……. —내가 지금 영화를 보고 있는 거냐? —저게 마력 3짜리의 움직임이라고? 말도 안 돼! —눈을 가렸는데 어떻게 다 피해? 진짜 핵 쓰는 거 아니냐? —지한 형님 ㄷㄷㄷ 퇴물이 아니라 진짜 괴물이었네!
[실시간 시청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현재 동시 접속자 수: 52,000명 돌파!] [성좌 '방구석 평론가'가 경악을 금치 못하며 2,000코인을 후원합니다!] [성좌 '피비린내를 좋아하는 매니아'가 광분하며 5,000코인을 후원합니다!]
지한의 입꼬리가 길게 찢어졌다.
귓가를 때리는 후원 알림음과 함께, 그의 전신을 타고 흐르는 마력이 급격하게 팽창했다.
스탯 해금의 전율이 척수를 타고 뇌리를 관통했다.
"겨우 이 정도냐, 성좌 놈들아."
지한은 멈추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춤을 추듯, 남은 오크들을 향해 거침없이 신형을 날렸다.
서석! 서걱! 콰직!
살점이 찢기고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안개 자욱한 숲속을 가득 채웠다.
눈을 가린 사신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오크들의 목숨이 추풍낙엽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침내, 마지막 오크의 심장을 관통한 지한이 검을 부드럽게 회수했다.
툭.
바닥에 쓰러진 마지막 시체를 끝으로, 사방에는 오직 지한의 가쁜 숨소리만이 남았다.
[오크 10/10 처치 완료!] [돌발 미션 '장님의 검무'를 완벽하게 클리어하셨습니다!] [성공 보상이 즉각 지급됩니다.]
[[심연의 톱날]의 봉인이 1단계 해제되었습니다!] [[전성기 스탯: 감각 +50]이 10분간 활성화됩니다!]
웅웅웅웅—!
지한이 쥐고 있던 검에서 검붉은 마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단검의 투박했던 톱날들이 더욱 날카롭고 흉포한 형태로 변모하며 진동했다.
동시에 지한의 감각이 우주적 규모로 확장되는 기괴한 감각이 찾아왔다.
안개 속을 흐르는 미세한 기류의 변화. 수백 미터 밖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의 진동. 땅바닥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벌레들의 움직임까지.
사방의 모든 정보가 그의 뇌리로 다이렉트로 내리꽂혔다.
성좌들의 열광적인 도네이션이 시야의 시스템 창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입을 찢으며 만족해합니다! 15,000코인을 후원합니다!] [성좌 '전장의 지배자'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당신을 주시합니다! 10,000코인을 후원합니다!]
시청자들의 경악과 찬사가 채팅창을 완전히 도배하기 바로 그 순간.
지한의 극대화된 감각 영역에, 상식을 벗어난 무지막지한 크기의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쿠구구구구—!
천장이 흔들리는 진동이 대지를 타고 전해졌다.
단순한 오크 무리가 아니었다. 이 던전의 진짜 지배자.
캬아아아악—!
고막을 찢어발길 듯한 기괴하고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던전 내부의 모든 안개를 일시에 걷어냈다.
동시에 지한의 바로 머리 위, 거대한 활엽수림의 천장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며 보랏빛 거미줄에 뒤엉킨 거대한 형체가 맹렬한 속도로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C급 던전의 상식을 초월한 크기.
그것은 차원의 틈새를 넘어 흘러들어온 기괴한 변종 보스 몬스터였다.
지한은 미처 눈에 감은 안대를 벗을 새도 없이,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압도적인 살기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검은 장막 너머로, 거대한 죽음의 그림자가 그를 덮쳐왔다.
***
[이번 화 획득 보상 요약] - 영구 복구된 마력: +1.5% (누적: 2.5%) - 해금된 스탯: 감각 +50 (일시 해금, 남은 시간: 09분 45초) - 획득 코인: 32,000 코인 - 실시간 동시 접속자 수: 52,000명 돌파 (폭발적인 인지도 상승!) - 장비 상태: [심연의 톱날] 봉인 1단계 해제 (공격력 및 마력 전도율 대폭 상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