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앙!
협회 사옥의 거대한 유리문이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정문 계단을 밟는 순간, 발밑의 대지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궁!
고막을 찢는 굉음과 함께 광장 한복판의 아스팔트가 쩍 하고 갈라졌다.
단순한 지진이 아니었다.
갈라진 틈새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유독한 보랏빛 안개.
도준혁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심어둔 인공 폭주 장치가 기어이 가동된 것이다.
"꺄아아아악!"
"괴, 괴물이다! 대피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던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붕괴하는 지면 너머로 흉포한 붉은 안광들이 우후죽죽 솟아올랐다.
가장 먼저 틈새를 비집고 나온 것은 날카로운 등갑을 지닌 S급 마수, '심연의 가시 바위 괴수' 무리였다.
수십 마리의 괴수들이 침을 흘리며 도망치는 시민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 아비규환의 중심에서, 나는 품 안에 넣어두었던 기이한 장치를 느꼈다.
바지 주머니 속에서 미친 듯이 공명하며 징징 울리는 기계장치.
8화에서 수렁의 림보 몬스터 사체에서 회수했던 '전장 진폭 무선 제어 기동 스위치'였다.
이 스위치가 도준혁의 인공 폭주 장치가 뿜어내는 파동에 반응해 붉은 빛을 깜빡이고 있었다.
놈의 폭주 실드를 해제할 열쇠가 바로 내 주머니 속에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 날뛰는 맹수들부터 치워야 했다.
"지한 씨! 이쪽이에요!"
뒤편에서 카메라를 움켜쥔 서은하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그녀의 눈동자는 공포로 떨리고 있었지만, 렌즈를 쥔 손끝만큼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묵직한 검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스으으으읍.
검신 전체가 기괴한 톱날 형태로 이루어진 불길한 대검.
1화에서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나를 조롱하기 위해 던져주었던 마력 봉인 해제용 검인 [심연의 톱날]이었다.
그동안 이빨이 빠진 채 방치되어 있던 그 검이, 지금 내 손안에서 터져 나가는 마력과 동조하며 붉은 폭풍을 일으켰다.
위이이이이잉!
공기를 찢는 고주파의 진동음이 광장 전체를 울렸다.
"전부 뒤로 물러서."
내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광장에 내동댕이쳐진 시민들의 귀에 가닿았다.
신형 보법을 밟으며 신형을 날렸다.
스파앗!
찰나의 순간, 내 신형이 괴수 무리의 선두와 시민들 사이의 공간을 정확히 가로막았다.
괴수 한 마리가 침을 튀기며 내 머리 위로 거대한 앞발을 내리찍었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그저 [심연의 톱날]을 수평으로 크게 휘둘렀을 뿐이다.
서걱!
콰아아앙!
기괴하게 회전하는 톱날의 진동이 괴수의 앞발을 스치기도 전에, 공간을 통째로 갈아버렸다.
단 한 번의 휘두름에 세 마리의 괴수가 상하반신이 분리된 채 바닥으로 처박혔다.
검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아스팔트를 적셨다.
"어, 어어……?"
도망치던 시민들이 넋을 잃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들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은, 한때 퇴물이라 손가락질당하던 전 세계 1위의 뒷모습이었다.
"찍고 있지, 서 기자?"
내가 검 끝의 피를 털어내며 묻자, 은하가 거칠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전 세계 라이브 송출 중이에요. 화질은 최고조입니다!"
은하는 광각 스피드 렌즈를 빠르게 조절하며 대전투의 구도를 역동적으로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카메라 앵글 속에서, 홀로 괴수 대군을 가로막은 나의 모습은 그 자체로 거대한 신화였다.
동시에 은하가 자유로운 한 손으로 스마트 기기를 조작했다.
"지금이다. 협회의 민낯을 똑똑히 봐라, 이 쓰레기들아!"
그녀가 화면 구석에 띄워 올린 것은, 지난날 목숨을 걸고 입수했던 헌터 협회 원년 멤버들의 마이크로 비밀 장부 파일이었다.
[ 실시간 제보: 헌터 협회 비자금 및 게이트 조작 원본 장부 공개 ]
화면 상단에 붉은색 글씨로 박힌 타이틀과 함께, 도준혁과 협회 수뇌부들이 마석 카르텔을 유통하고 인공 폭주를 획책한 증거 문서들이 실시간으로 스크롤되었다.
시청자들의 채팅창이 미친 듯이 폭발했다.
- ??? 저 장부 진짜냐??? - 도준혁이 여태껏 우리를 속인 거라고? 서울 폭발도 저놈들 짓이었어? - 와, 강지한이 범인이 아니었네! 협회가 주작질한 거였다니!! - 지한이 형 오해해서 미안해ㅠㅠㅠㅠㅠㅠ - 후원금 드립니다! 제발 서울을 구해줘요!!!
띠링! 띠링! 띠링!
[ 대한민국 정부 및 민간 재단에서 '지구 여론 방어 지원금' 150억 원을 송금하였습니다! ] [ 해외 헌터 연합에서 특별 방어 후원금 2,000만 달러를 결제하였습니다! ] [ 실시간 후원금이 폭증하여 마력 복구율이 급상승합니다! ]
[ 마력 복구율: 72% 돌파! ]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마력이 들끓어 올랐다.
피가 거꾸로 솟구치던 유리몸의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전성기의 초월적인 감각이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깨웠다.
하지만 성좌 놈들은 이 영웅적인 구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내가 더 처참하게 구르고 피를 흘리기를 원했다.
띠링!
[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광소를 터트리며 억까 미션을 투척합니다! ]
[ 돌발 미션: 60초의 단두대 ] - 성공 조건: 광장 중앙 균열에서 기어 나오는 대형 보스 몬스터 '심연의 포식자 카이락(S급)'의 목을 1분(60초) 이내에 참수할 것. - 성공 보상: 스탯 [민첩] +30 영구 상승, 전성기 권능 [뇌신보(Thunder Step)] 완벽 해금! - 실패 패널티: 심장 마력 역류 발생, 스탯 전체 50% 영구 삭감 (퇴물 확정).
- 성좌 '심해의 트롤러': ㅋㅋㅋ 1분? 저 덩치를 무슨 수로 1분 만에 잡냐? 서울이랑 같이 폭사해라 퇴물 놈아! 후원금 5억 개 걸어준다! - 성좌 '방구석의 지배자': 오, 이건 진짜 불가능이다. 은퇴 라이프는 무슨, 오늘이 제삿날이다 지한아!
크아아아아아아아!
대지가 갈라진 틈새 속에서, 높이 1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지네 형상의 마수 카이락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 개의 강철 같은 다리가 땅을 긁을 때마다 스파크가 튀었고, 놈의 아가리에서는 산성 침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제한 시간은 단 60초.
일반적인 S급 공격대라도 최소 한 시간은 공략해야 할 괴수였다.
"성좌 놈들, 여전히 대가리가 나쁘군."
나는 가볍게 실소를 터트렸다.
그들이 원하는 처절한 사투 따위는 보여줄 생각이 없다.
내 손에 쥐인 것은 [심연의 톱날].
그리고 내 주머니 속의 기동 스위치가 놈의 코어 마력과 동조하며 약점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서 기자, 렌즈 흔들리지 않게 꽉 잡아."
"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신형이 지면에서 사라졌다.
파아아앗!
단 한 걸음 만에 30미터의 거리를 좁히는 기적적인 보법.
대기를 찢는 마찰음과 함께 내 몸이 푸른 잔상을 남기며 카이락의 거대한 몸체를 타고 단숨에 치고 올라갔다.
"미친, 속도가 왜 저래?!"
카메라를 보던 시청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카이락이 본능적인 위협을 느끼고 수십 개의 강철 다리를 휘둘렀으나, 내 눈에는 그 움직임이 멈춰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허공을 밟고 꺾어 들어가는 2단 도약.
남은 시간 42초.
놈의 거대한 머리통이 내 시야를 가득 메웠다.
"갈려 나가라."
[심연의 톱날]에 내 모든 마력을 주입했다.
검신을 감싸고 있던 붉은 기류가 거대한 톱날의 형상으로 팽창하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츠바바바바바바바바박!
공간 자체가 갈려 나가는 소름 끼치는 굉음이 광장을 지배했다.
나는 놈의 단단한 외피를 향해 그대로 검을 내리꽂았다.
콰그그그극!
강철보다 단단하다던 카이락의 두개골이, 회전하는 톱날 앞에 마치 두부처럼 으스러지며 갈려 나갔다.
단 1초의 저항도 허용하지 않는 압도적인 파괴력.
쩍!
거대한 칼날의 궤적이 놈의 목덜미를 관통하고 반대편으로 빠져나왔다.
스우우우우……
쿠우우우웅!
목이 잘려 나간 카이락의 거대한 동체가 힘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지며 먼지를 휘날렸다.
남은 시간 28초.
단 32초 만에 S급 보스를 단칼에 도륙해 버린 것이다.
광장은 기괴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도시가 멸망하고 내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길 기대하던 트롤 성좌들의 대화창이 얼어붙었다.
잠시 후, 시스템 알림이 고요를 깨뜨렸다.
띠링!
[ 돌발 미션: 60초의 단두대 성공! ] - 성공 보상: 스탯 [민첩] +30 영구 상승! - 전성기 권능: [뇌신보(Thunder Step)]가 완벽히 해금되었습니다!
[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뺨을 때리며 경악합니다! ] [ 성좌 ‘방구석의 지배자’가 뒷목을 잡고 쓰러지며 후원금 5억 포인트를 강제 정산합니다! ] [ 채널의 모든 성좌들이 당신의 압도적인 무력에 굴복하여 침묵합니다! ]
"꺼억. 꺼지기 싫으면 돈이나 더 내놔라, 변태 놈들아."
나는 가볍게 검을 털어내며 인벤토리에 수납했다.
"와아아아아아아!"
"강지한! 강지한!"
광장에 갇혀 있던 시민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 비친 나는 더 이상 음모에 휘말린 범죄자가 아니었다.
지구를 구원할 유일무이한 영웅의 귀환이었다.
그러나 나는 승취감에 젖을 시간조차 없었다.
주머니 속의 무선 제어 기동 스위치가 살을 태울 듯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으니까.
이 폭주의 진정한 배후가 다가오고 있었다.
두두두두두두두!
하늘을 찢는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상공에서 거대한 전투 헬기 한 대가 광장 지상으로 급강하했다.
헬기의 문이 열리고, 그 사이로 익숙한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말끔한 정장 차림에,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
세계 헌터 협회 수장, 도준혁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평소의 가식적인 평화주의자 같은 온정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강지한. 결국 여기까지 기어 올라왔군."
도준혁이 헬기에서 허공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의 발밑에 보랏빛 마력의 디딤돌이 생겨나며, 그는 중력을 무시한 채 천천히 광장 한복판으로 내려앉았다.
쿠우우우우웅!
그가 지면에 발을 딛는 순간, 방금 전 카이락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초월적인 SSS급의 마력이 폭풍처럼 광장을 덮쳤다.
숨이 턱 막히는 압도적인 중압감.
대피하던 시민들이 그 무시무시한 마력의 파동에 짓눌려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도준혁이 나를 보며 입꼬리를 기괴하게 비틀어 올렸다.
"내 장난감을 망쳐놓은 대가는 네 목숨으로 치러야겠지."
마침내, 이 더러운 전쟁의 종지부를 찍을 최후의 적이 내 눈앞에 섰다.
* * *
[ 이번 화 누적 정산 내역 및 스탯 변화 ] - 마력 복구율: 72% (급상승 중) - 영구 획득 스탯: [민첩] +30 - 전성기 권능 해금: [뇌신보(Thunder Step)] (활성화 완료) - 현재 동조율 상태: 55% - 실시간 시청자 수: 1억 2,000만 명 돌파 (우주망 TV 역대 최고 시청률 경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