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르륵.
유채린의 육신이 미세한 빛의 입자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자신이 쌓아 올린 가짜 성녀의 명성과 위선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비참한 종말이었다.
그녀가 완전히 소멸하기 직전, 품 안에서 툭 하고 떨어진 구형 무전기 하나가 바닥을 뒹굴었다.
치익, 치이이익!
거친 노이즈가 고요해진 수렁의 림보를 찢고 흘러나왔다.
이어 수화기 너머에서 이빨을 거칠게 가는 듯한 극도의 살기가 벼려진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지한……! 네놈이 감히 내 계획을……!]
헌터 협회장 도준혁이었다.
평소의 온화하고 평화주의자 같던 가면은 흔적도 없이 조각나 있었다.
당장이라도 무전기를 뚫고 나와 내 목을 뜯어발길 기세로 씩씩대는 숨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한쪽 귀를 새끼손가락으로 들이밀며 가볍게 비벼 파냈다.
"어우, 도 회장님. 목소리가 왜 그렇게 떨리십니까? 늙어서 벌써 사지마비라도 오셨나 봐요."
[네놈이 정녕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유채린을 죽인 것으로 끝날 줄 알았더냐! 협회의 권력이 어떤 것인지 똑똑히 뼈에 새겨 주마!]
"권력? 아, 그 마석 암시장 이권 개입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산 썩은 동아줄 말입니까?"
[뭐, 뭐라고……?]
도준혁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나는 품 안에서 묵직한 검은색 마이크로칩 하나를 꺼내 들었다.
기자 서은하가 목숨을 걸고 입수해 내게 건넸던, 헌터 협회 원년 멤버들의 피비린내 나는 비리가 담긴 마이크로 비밀 장부 파일이었다.
"서 기자, 준비됐지?"
내 부름에 카메라를 들고 있던 서은하가 장난기 가득하지만 날 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지한 씨. 이 순간만을 위해서 제 모든 인디 기자 네트워크와 다크웹 채널을 대기시켜 놨거든요."
그녀의 손가락이 태블릿 PC의 전송 버튼을 가볍게 두드렸다.
[ 헌터 협회 핵심 비리 장부 전량 해방 완료! ]
그 순간, 허공에 떠 있는 우주망 TV의 실시간 채팅창이 미친 듯한 속도로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 ?????? 이거 진짜 장부임?? - 와 미친 헌터 협회장이 마석 밀수를 직접 주도했다고?? - 유채린 배신 폭로되자마자 도준혁 비리까지 터지네 ㅋㅋㅋ 오늘 제삿날이냐?? - 실시간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부터 10위까지 도준혁으로 도배됨 대박 ㅋㅋㅋㅋㅋ - 킹지한 갓지한!!! 아주 뿌리까지 뽑아버리는구나!!!
[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당신의 집요하고 잔인한 폭로 방식에 기열을 올리며 1,000,000 코인을 후원합니다! ]
[ 성좌 ‘전장의 지배자’가 위선자들의 파멸을 보며 크게 만족합니다! ]
무전기 너머로 도준혁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 이 쓰레기 같은 년놈들이 감히……! 당장 그 유포를 멈추지 못해?! 내 지시 한 번이면 서울 전체가 게이트 폭발로 쓸려 나갈 수 있다!]
"지시해 봐, 늙은이 삼룡아. 네가 누르는 제어 스위치보다 내 검이 네 목덜미를 따는 게 더 빠를 테니까."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의 자루를 꽉 쥐었다.
서걱.
검집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기운이 대기를 쩍쩍 갈라놓았다.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은밀하게 후원했던, 마력 봉인의 족쇄를 부수기 위해 사용했던 기이한 검.
[심연의 톱날]이 림보의 폭주 마력을 남김없이 집어삼키고 마침내 완전히 진화한 형태였다.
[ 장비 정보 ] - 명칭: [심연의 마검: 레비아탄] - 등급: 신화 (Mythic) - 속성: 공간 파괴, 마력 포식 - 특수 효과: 공간을 참식하여 적의 방어력을 100% 무시하고 영혼을 손상시킵니다.
검을 가볍게 휘두르자, 림보의 잔재였던 왜곡된 공간이 종잇장처럼 잘려 나갔다.
이것이 우주망 TV 라이브 화면에 고스란히 송출되자, 성좌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날뛰기 시작했다.
- 오오오! 심연의 톱날이 드디어 진화했다! - 마검 레비아탄?? 등급 실화냐?? 미쳤다 진짜 ㅋㅋㅋ - 트롤러 형님 지갑 털어서 신화급 무기 뽑아내는 지한이 성님 클라스 ㄷㄷㄷ
[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자신의 장난감이 우주의 재앙급 마검으로 진화한 것에 경탄하며 기괴한 춤을 춥니다! ]
[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새로운 미션을 등록했습니다! ]
띡!
[ 돌발 미션: 도준혁의 뺨아리를 생중계로 우스꽝스럽게 후려쳐라! ] - 성공 조건: 헌터 협회장 도준혁을 전 세계 시청자 앞에서 가장 굴욕적인 방식으로 처단할 것. - 성공 보상: [신화급 마력 방어구 상자] 및 10,000,000 코인. - 실패 패널티: 전성기 스탯 복구율 20% 삭감.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성좌 이 변태 같은 놈들, 내 구미에 딱 맞는 제안을 할 줄 안다.
"낙찰."
나는 무전기를 향해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들었지, 도 회장님? 당신 대가리가 우주망 TV 최고가 낙찰 상품이 됐어."
[이 개새끼가……! 감히 나를 놀잇감 취급해?! 내가 지금 당장 협회 총전력을 동원해 네놈을 사지분해 해 주마!]
투둑!
전화는 끊겼지만, 내 입가에는 깊은 호선이 그려졌다.
"서 기자, 카메라 단단히 고정해."
"걱정 마세요. 4K 울트라 HD 화질로 협회장의 찌질한 얼굴을 전 세계에 박아버릴 테니까요."
서은하가 카메라 렌즈를 닦으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보랏빛 장막이 걷힌 림보 던전의 출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콰아아앙!
서울 강남의 한복판, 거대하게 솟아오른 헌터 협회 본사 사옥 정문이 단 한 번의 검격에 박살 나며 날아갔다.
유리 파편과 콘크리트 잔해가 대리석 바닥을 쓸며 사방으로 튀었다.
"강지한이다! 강지한이 나타났다!"
"협회 경비대! 당장 포메이션을 구축해라!"
사옥 로비에 대기하고 있던 수백 명의 정예 헌터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손끝은 사시나무 떨듯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미 유채린의 처참한 최후와 협회의 더러운 민낯을 실시간 라이브로 목격한 이들이었다.
게다가 내 손에 쥐어진 [심연의 마검: 레비아탄]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포식의 마력은 그들의 전의를 꺾기에 충분했다.
"비켜라."
나는 단 세 글자만을 내뱉었을 뿐이다.
그러나 로비를 가득 채운 백여 명의 헌터들이 일제히 침을 삼키며 뒷걸음질을 쳤다.
"막, 막아야 해! 협회장님의 명령이다!"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억지로 소리를 지르며 장검을 치켜들었다.
나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레비아탄을 가볍게 허공에 그었다.
스으윽.
검 끝이 지나간 자리가 검게 물들며 대기 자체가 일그러졌다.
"끄아아악?!"
경비대장이 단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그가 쥐고 있던 S급 장검이 스르륵 녹아내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기만을 정확히 겨냥해 공간을 참식해 버린 것이다.
"다음은 목덜미다."
내 건조한 경고에, 로비에 서 있던 모든 이들이 무기를 버리고 양옆으로 길을 갈라놓았다.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헌터 협회의 심장부가 나를 위해 길을 열었다.
서은하는 이 경이로운 광경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생생하게 중계 화면에 담아냈다.
"좋아요, 시청자 수 폭증하고 있어요! 동시 접속자 8,500만 명 돌파!"
[ 실시간 시청자 수 급증으로 인해 마력 역류 현상이 완벽히 억제됩니다! ]
[ 전성기 스탯 복구율이 실시간으로 동조되어 상승합니다! ] - [ 현재 마력 복구율: 65% ]
전신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력이 차갑고 명징하게 정돈되는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거침없이 도준혁의 집무실이 있는 최상층으로 향하는 전용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바로 그때였다.
위이이이이이이이이잉—!
서울 하늘 전체를 뒤흔드는 기괴하고 날카로운 경보음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내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마력 핵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 경고! SSS급 게이트 ‘심연의 눈’과의 동조율이 급격히 상승합니다! ] - [ 현재 동조율: 15%…… 28%…… 42%! ]
"크윽……!"
나도 모르게 가슴을 움켜쥐며 무릎을 꿇을 뻔했다.
입안에서 비릿한 핏물이 울컥 솟구쳐 올랐다.
"지한 씨?!"
서은하가 깜짝 놀라 내 어깨를 부축하려 손을 뻗었다.
나는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하며, 붉게 충혈된 눈으로 정면의 유리창 너머 하늘을 바라보았다.
협회 사옥 정문 앞, 그리고 서울 광장 상공의 대기가 쩍 하고 거대한 지퍼가 열리듯 갈라지고 있었다.
보랏빛과 핏빛이 기괴하게 뒤섞인 거대한 균열.
그것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이트가 아니었다.
도준혁이 오랜 시간 준비해 온, 인류를 인질로 잡고 세계를 좌지우지하기 위해 설치해 둔 인공 게이트 폭주 장치가 가동된 것이었다.
균열 너머로, 지구의 마물이 아닌 우주 심연의 괴수들이 수없이 많은 눈동자를 번득이며 강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균열의 중심부에서, 도준혁의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마력 스피커를 타고 서울 전역에 메아리쳤다.
[하하하하! 강지한! 네놈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 종말은 막을 수 없다!]
[이 게이트의 제어 장치는 내 심장과 연결되어 있다! 내가 죽거나, 네 마력 핵이 완전히 동조되어 심장이 터지기 전에는 절대로 닫히지 않아!]
[자, 선택해라! 나와 함께 서울 시민 천만 명과 같이 몰사할 것인가, 아니면 내 앞에서 무릎 꿇고 개처럼 빌 것인가!]
도준혁의 오만한 외침에 서울 시민들의 비명과 절규가 멀리서부터 파도처럼 밀려왔다.
동조율은 끊임없이 치솟고 있었고, 내 전신은 마력 역류의 극심한 고통으로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피가 섞인 침을 바닥에 뱉어내며, 이를 드러내고 미소를 지었다.
"누가 죽는다고?"
나는 마검 레비아탄을 굳게 쥐고, 하늘을 향해 검 끝을 겨누었다.
* * *
[ 이번 화 누적 정산 내역 및 스탯 변화 ] - 마력 복구율: 65% (2% 상승) - 신화급 무기 각성: [심연의 마검: 레비아탄] (공간 참식 권능 획득) - 동시 접속자 수: 8,500만 명 돌파 (신기록 경신 중) - 획득 코인: +1,000,000 코인 (누적 17,200,000 코인) - 현재 동조율 상태: 42% (위기 수치 도달)
"누가 죽는다고?"
나는 품 안으로 손을 뻗었다.
손끝에 와닿는 차갑고 기괴한 감촉.
과거 림보 던전의 괴수를 도륙하고 그 사체에서 회수했던, 정체불명의 기계장치였다.
[ 장비 정보 ] - 명칭: [전장 진폭 무선 제어 기동 스위치] - 분류: 특수 작동 장치 (퀘스트 아이템) - 효과: 특정 차원 균열의 주파수를 교란하고 강제 동조 신호를 간섭합니다.
"도준혁. 네가 림보의 마력을 훔쳐다 이 인공 게이트를 설계할 때 말이야."
나는 검은 진폭 스위치를 서은하의 카메라 렌즈 앞으로 들이밀었다.
"그 기술을 제공한 마물들의 대가리에서 뭐가 나왔는지 알고는 있었나?"
[……?! 너, 네놈이 그걸 어떻게 가지고 있는 거냐!]
무전기 너머, 도준혁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뒤집어졌다.
언론 앞에서의 신사적인 가면은 이미 흔적도 없었다.
발가벗겨진 탐욕과 당혹감이 스피커 틈새로 질퍽하게 흘러나왔다.
치이이이이익!
나는 망설임 없이 스위치의 붉은 버튼을 힘껏 움켜쥐었다.
그러자 장치에서 푸른빛의 고주파 마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며 내 가슴팍을 감쌌다.
[ 경고! 외부 신호 간섭 발생! ] [ SSS급 게이트 ‘심연의 눈’과의 동조율 상승이 일시적으로 제어됩니다! ] - [ 현재 동조율: 42% (실시간 정지 상태) ]
"커헉……!"
심장을 쥐어짜던 극심한 압박감이 한풀 꺾였다.
하지만 기계 장치 역시 과부하로 인해 찌르르 소리를 내며 검은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길어야 3분.
그 안에 도준혁의 목덜미를 따지 못하면, 이 장치와 함께 내 심장도 터져 나갈 터였다.
"도 회장님. 당신 심장에 이식했다는 그 제어 장치 말인데."
나는 레비아탄을 비스듬히 내려쥐며 엘리베이터 홀을 응시했다.
"그거, 내가 직접 꺼내서 부숴 주지."
[이, 건방진 쥐새끼가……! 당장 저놈을 찢어 죽여라!]
도준혁의 악에 받친 비명과 동시에, 머리 위의 천장이 통째로 내려앉았다.
쿠구구구궁!
콘크리트 잔해를 뚫고, 로비 한복판으로 세 명의 거구들이 착지했다.
칠흑 같은 전신 갑주를 두르고, 기괴하게 뒤틀린 대검을 쥔 자들.
협회장 직속의 비밀 친위대이자, 도준혁이 불법 마석 실험으로 키워낸 S급 꼭두각시 헌터들이었다.
그들의 투구 틈새로 이성이 상실된 핏빛 안광이 번득였다.
[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침을 흘리며 새로운 연계 미션을 제안합니다! ]
띡!
[ 연계 미션: 120초의 학살극 ] - 성공 조건: 스위치 과부하가 끝나기 전, 2분(120초) 이내에 협회 친위대 3인을 완전히 도륙할 것. - 성공 보상: [신화급 액티브 스킬: 차원 참격(Dimension Slash)] 즉시 해금! - 실패 패널티: 스위치 즉시 파괴 및 동조율 100% 도달.
"2분이라."
나는 가볍게 목뼈를 꺾으며 마검 레비아탄을 비스듬히 치켜들었다.
검신을 따라 흐르는 검은 기류가 대기를 쩍쩍 갈라놓았다.
"성좌 놈들, 나를 너무 저평가하는군."
슈우우우욱!
가장 선두에 선 친위대원이 음속을 돌파하는 속도로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찰나의 순간, 내 목덜미를 향해 파고드는 묵직한 대검의 궤적.
그러나 내 눈에는 그들이 가르는 공간의 틈새가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스각!
가벼운 마찰음과 함께, 친위대원의 대검이 허공에서 반 토막 나며 튕겨 나갔다.
레비아탄의 공간 파괴 속성이 대검이 닿기도 전에 그 존재 자체를 지워버린 것이다.
"첫 번째."
나는 절망으로 물드는 투구 너머의 눈동자를 향해 마검을 수평으로 그었다.
* * *
[ 이번 화 누적 정산 내역 및 스탯 변화 ] - 마력 복구율: 65% (정지 상태) - 신화급 무기 각성: [심연의 마검: 레비아탄] (공간 참식 권능 활성화) - 현재 동조율 상태: 42% (스위치 작동으로 일시 고정) - 남은 제한 시간: 112초 - 실시간 시청자 수: 9,200만 명 돌파 (우주망 TV 실시간 트렌드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