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르르릉!
보랏빛으로 물든 림보의 하늘이 두 갈래로 찢어졌다.
그 균열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성스러운 빛무리가 대지를 하얗게 태웠다.
그 찬란한 안개 속에서, 유채린이 강포한 살기를 뿜으며 낙하했다.
“강지한!”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그녀의 성검이 내 가슴을 향해 일직선으로 짓쳐 들었다.
S급 헌터의 전력 도약.
대기가 찢어지는 파열음이 고막을 사정없이 때렸다.
뒤편에 서 있던 서은하가 숨을 들이켜며 카메라를 단단히 쥐는 것이 느껴졌다.
피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은 채, 오른손을 천천히 뻗었다.
콰아아앙!
빛의 검이 내 손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림보의 왜곡된 공간이 크게 흔들렸다.
성녀의 검 주위를 감싸고 있던 찬란한 검막이 사방으로 튀었다.
“……뭐?”
유채린의 두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흔들렸다.
맨손이었다.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성검을, 나는 오직 맨손의 악력만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스스스스.
내 손바닥과 그녀의 검날이 맞닿은 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심연의 톱날]에 서려 있던 어둠의 마력이 성녀의 빛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소리였다.
“성녀라더니.”
나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마력이 아주 썩어빠졌군, 유채린.”
“이, 이 괴물 같은 년이……! 손을 놓지 못해!”
그녀가 검을 빼내려 힘을 주었지만, 내 손귀는 바이스처럼 단단하게 검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성스러운 마력이 내 검은 마력과 충돌하며 기괴한 불협화음을 냈다.
파지지직!
검막의 역반응이 일어나며 유채린의 고운 손등이 붉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아악! 내, 내 마력이……!”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려 발버둥 쳤다.
바로 그때, 눈앞에 푸른색 시스템 창이 요란하게 점멸했다.
[ 띠링! ] [ 성좌들의 가학적인 시선이 당신에게 집중됩니다! ] [ 돌발 미션이 도착했습니다. ]
[ 미션: ‘배신자의 심장 타격 1초 전 정지’ ] - 내용: 배신자 유채린의 심장을 관통하기 직전, 정확히 ‘1초’ 동안 모든 움직임을 멈추어 극적인 절망감을 선사하십시오. - 실패 시 제한: 마력 역류 발생 (심정지 유발) - 성공 보상: 전성기 스탯 복구율 +10%, 성좌 ‘심해의 트롤러’의 전용 숨겨진 보상 해금.
시청자들의 가학적인 트롤링이 기어코 극치에 달했다.
성좌들은 이 순간마저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고 있었다.
채팅창이 미친 듯이 올라갔다.
- [심해의 트롤러]: ㅋㅋㅋ 저 성녀 얼굴 찌그러지는 것 좀 봐라! 1초만 멈춰봐, 그럼 개쩌는 거 준다니까? - [성좌 1]: 와, 지한 님 맨손으로 성검 막은 거 실화냐? 지렸다 진짜. - [성좌 2]: 1초 멈추기? 저 미친 성녀가 가만히 있어 주겠냐고 ㅋㅋㅋ 실패하면 심정지인데? - [성녀수호단탈퇴자]: 유채린 진짜 추하다. 저게 성녀냐? 악마지.
나는 피식 웃었다.
내 고통을 바라는 성좌들의 비열한 미션.
하지만 내게는 그것이 곧 힘을 쟁취할 기회였다.
“1초라.”
나는 왼손에 쥐고 있던 [심연의 톱날]을 가볍게 고쳐 잡았다.
검은 이빨이 돋아난 듯한 기괴한 형상의 대검.
1화에서 [심해의 트롤러]가 조롱하며 던져주었던 이 기이한 무기는, 내 마력 복구율이 올라갈수록 본연의 흉포한 광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위이이잉!
검신이 스스로 진동하며 피에 굶주린 울음소리를 냈다.
“지한아, 제발……!”
유채린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전매특허인 가식적인 피해자 코스프레였다.
카메라 렌즈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지한 행동이었다.
“내가 잘못했어! 나도 협회의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단 말이야! 제발 살려줘……!”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가슴팍을 향해 [심연의 톱날]을 겨누었다.
“그때 내 등에 칼을 꽂고, 내 동료들을 입막음용으로 죽일 때도 어쩔 수 없었나?”
“그건……!”
그녀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서은하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쐐기를 박았다.
“유채린 씨! 대답해 보시죠!”
서은하가 품 안에서 빛바랜 마이크로 칩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것은 제가 입수한 헌터 협회 원년 멤버들의 비밀 장부 파일입니다! 여기에는 당신이 강지한 헌터를 매장하기 위해 협회와 모의한 날짜별 뇌물 내역과 음모의 실체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카메라 줌인이 마이크로 칩에 클로즈업되었다.
동시에 화면 한편으로 비밀 장부의 일부 페이지가 실시간으로 송출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서은하가 내게 독점 카메라맨 계약을 맺으며 건넸던, 협회의 아킬레스건이었다.
- [실시간 채팅창]: - 와 미친 진짜 장부가 있었네;;; - 유채린 진짜 살인자 맞았구나 ㅋㅋㅋㅋㅋ - 성녀가 아니라 창녀였네 뇌물 받아 처먹은 거 봐라 - 와 소름 돋는다 저 얼굴로 사람을 죽였다고?
실시간 동시 접속자 수가 8,000만 명을 돌파하며 폭발했다.
유채린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 그게 왜 네년 손에……! 도준혁이 분명히 다 파기했다고 했는데……!”
“아, 도준혁 협회장이 파기했다고 직접 자백하시는 건가요?”
서은하가 차갑게 미소 지으며 카메라 각도를 꺾었다.
유채린은 자신이 스스로 무덤을 팠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을 틀어막았다.
가면은 완벽하게 조각났다.
전 세계가 그녀의 추악한 민낯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더 이상의 명분도, 도망칠 구멍도 없었다.
“이제 끝이다, 유채린.”
나는 그대로 [심연의 톱날]을 그녀의 심장을 향해 찔러 넣었다.
슈우우욱!
검끝이 그녀의 얇은 사제복을 찢고 살을 파고들기 직전.
정확히 1센티미터의 간격을 두고.
내 모든 신체 활동이 마법처럼 우뚝 멈췄다.
정적.
유채린의 확장된 동공 속에 멈춰 선 검은 칼날이 비쳤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 숨조차 쉬지 못했다.
정확히 1초.
시간이 멈춘 듯한 기묘한 감각이 림보의 공간을 지배했다.
[ 띠링! ] [ 돌발 미션: ‘배신자의 심장 타격 1초 전 정지’ 성공! ] -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당신의 기괴한 통제력에 경악합니다! - 후원 코인 3,000,000 코인이 지급됩니다!
[ 전성기 스탯 복구율이 10% 상승합니다! ] [ 현재 마력 복구율: 53% ]
[ ‘심연의 톱날’의 진정한 권능이 해금됩니다! ] - 고유 장비 스킬: [영혼 참식(Soul Devour)]이 활성화됩니다. - 대상의 생명력과 마력을 흡수하여 시전자의 영구 스탯으로 치환합니다.
쿠우우웅!
내 몸 안에서 잠들어 있던 거대한 마력의 파도가 해일처럼 일어났다.
절반을 넘어선 전성기의 힘.
그 압도적인 중압감에 주변의 대기가 비명을 지르며 내려앉았다.
“아, 아아……!”
유채린이 그 무시무시한 기세에 눌려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눈에 서린 것은 이제 분노가 아닌, 완전한 파멸의 공포였다.
“지, 지한아…… 제발 살려줘…… 내가 다 말할게…… 도준혁이 시킨 짓이야…… 나는 그냥…….”
“늦었다.”
나는 멈췄던 검을 그대로 밀어 넣었다.
푸학!
[심연의 톱날]이 그녀의 가슴뼈를 부수고 심장을 완벽하게 관통했다.
“커헉……!”
유채린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
검신을 타고 흐르는 그녀의 성스러운 마력이 [심연의 톱날] 속으로 사정없이 빨려 들어갔다.
“아아아아악!”
그녀의 영혼이 찢겨 나가는 듯한 비명이 림보의 하늘을 울렸다.
위선으로 가득 찼던 성녀의 육신이, 검은 불꽃에 휩싸여 천천히 먼지로 변해 가기 시작했다.
전 세계 8,500만 명의 시청자 앞에서 거행된, 완벽한 사법 사형이었다.
[ 띠링! ] [ 배신자 ‘유채린’을 처단하였습니다. ] [ ‘영혼 참식’ 효과 발동! ] - 영구 보상: 근력 +30, 민첩 +30, 마력 +50 획득! - 신성 길드의 영지가 붕괴하며, 길드 자산의 일부가 당신의 계좌로 강제 귀속됩니다.
[ 실시간 동시 접속자 수: 90,000,000명 돌파! ] [ 누적 후원 코인: 10,000,000 코인 돌파! ]
“지한 씨, 해냈어요……!”
서은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카메라를 내리며 내게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은 흥분과 긴장으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검을 거두며 화면을 응시했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다.”
손가락을 튕겨 라이브 방송을 종료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바스스스.
먼지가 되어 사라져 가던 유채린의 사제복 자락에서,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구식 무전기였다.
검게 그을린 무전기 너머로, 지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익숙하고도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지지직…… 유채린, 결국 그 정도 그릇이었군. 쓸모없는 인형 같으니.
그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서은하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세계 헌터 협회장, 도준혁이었다.
- 강지한. 네가 기어코 지옥에서 기어 올라왔구나.
무전기 너머의 목소리는 유채린의 죽음 앞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기괴할 정도로 차분하고 오만한 음성이 림보의 정적을 깨뜨렸다.
- 하지만 착각하지 마라. 유채린은 그저 장기판의 졸개에 불과했으니. 진짜 무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왜곡되며, 주변의 보랏빛 장막이 거칠게 일렁였다.
- 일주일 뒤, 서울 상공에 SSS급 게이트 ‘심연의 눈’이 강제로 개방될 것이다. 과거의 비극을 다시 한번 목도하고 싶지 않다면, 내 앞으로 기어오너라.
툭.
통신이 끊겼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무전기를 군화 굽으로 가볍게 짓밟아 으스러뜨렸다.
도준혁.
내 은퇴 자금 1000억 원의 마지막 열쇠이자, 이 모든 음모의 원흉.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차가운 살의가 내 전신을 지배했다.
“기다려라, 곧 머리통을 깨러 갈 테니.”
나는 으스러진 무전기 파편을 걷어차며, 가만히 주먹을 쥐었다.
***
[ 이번 화 획득 전리품 및 스탯 변화 ] - 마력 복구율: 53% (10% 상승) - 영구 스탯 상승: 근력 +30, 민첩 +30, 마력 +50 - 누적 후원 코인: 11,200,000 코인 (원화 환산 가치 약 112억 원) - 신성 길드 몰수로 인한 배상금: 250억 원 계좌 입금 완료 - 획득 고유 장비 스킬: [영혼 참식(Soul Devour)]
쩌적, 쩌저적!
무전기가 가루가 되어 흩날린 그 자리에, 기이한 붉은색 마력이 소용돌이쳤다.
소멸한 유채린의 육신이 남긴 핏빛 잔해였다.
그 잔해 속에서 붉게 빛나는 자그마한 결정 하나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 띠링! ] [ ‘수렁의 림보’ 제어 장치의 파편을 발견했습니다! ] - 획득 아이템: [기이한 전장 진폭 무선 제어 기동 스위치 (파손됨)]
8화에서 보았던 그 기괴한 기계장치와 일맥상통하는 파편이었다.
도준혁이 이 공간을 제어하기 위해 유채린에게 심어둔 족쇄이자 열쇠.
그것을 손에 쥐는 순간, 림보 전체가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지한 씨! 이, 이거 공간이 무너지는 거 아니에요?!"
서은하가 카메라를 품에 안은 채 비틀거렸다.
보랏빛으로 가득했던 하늘이 급격히 검붉게 변하며 사방에서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도준혁이 무전기를 끊으며 림보의 자폭 장치를 가동한 것이 분명했다.
[ 경고! ‘수렁의 림보’ 에너지가 폭주합니다! ] [ 공간 붕괴 잔여 시간: 03:00 ]
3분.
보통의 헌터라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칠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내 입꼬리는 비틀려 올라갔다.
"도망칠 필요 없어."
나는 바닥에 [심연의 톱날]을 거꾸로 처박았다.
성좌들이 날뛰는 채팅창이 눈앞에서 어지럽게 명멸했다.
- [심해의 트롤러]: 야 ㅋㅋㅋ 도준혁 저 새끼 판 깨고 튀네? 지한아, 저 폭주하는 에너지 아깝지 않냐? - [성좌 1]: 와, 저거 터지면 서울 절반은 날아갈 텐데? - [성좌 2]: 지한 님, 설마 탈출 안 함? 진짜 죽는다고!
"탈출은 겁쟁이들이나 하는 짓이지."
나는 허공의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했다.
"성좌 놈들아, 판돈 올려라. 이 에너지를 통째로 먹어 치워 줄 테니."
[ 띠링! ] [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당신의 광기에 전율합니다! ] [ 돌발 미션이 갱신되었습니다. ]
[ 미션: ‘재앙의 포식자’ ] - 내용: 림보의 폭주 마력을 80% 이상 흡수하여 공간 붕괴를 저지하십시오. - 실패 시 대가: 마력 역류로 인한 즉사. - 성공 보상: 전성기 스탯 복구율 +10%, [심연의 톱날] 진화 권능 해금.
"낙찰."
나는 거침없이 [영혼 참식]의 범위를 공간 전체로 확장했다.
쿠구구구궁!
[심연의 톱날]을 중심으로 검은 장막이 펼쳐지며 폭주하는 붉은 마력을 집어삼켰다.
"크으윽……!"
전신의 혈관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들이쳤다.
입안에서 비릿한 피맛이 감돌았지만, 나는 이 고통을 비웃어 주었다.
마력이 폭발적으로 혈관을 타고 흐르며 역류를 억누르고 내 힘으로 치환되었다.
콰아아아앙!
마침내 림보를 가득 채우고 있던 보랏빛 장막이 완전히 걷히며 소멸했다.
[ 미션 성공! ] - 전성기 스탯 복구율이 10% 상승합니다! - [ 현재 마력 복구율: 63% ] -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미치광이 같은 당신의 플레이에 경악하며 5,000,000 코인을 후원합니다!
[ ‘심연의 톱날’이 에너지를 포식하고 진화합니다! ] - [심연의 톱날] -> [심연의 마검: 레비아탄]으로 강화 완료!
장막이 사라진 하늘.
그 너머로 비친 서울 도심의 모습에 서은하가 숨을 들이켰다.
"저, 저게 뭐예요……?!"
일주일 뒤라던 도준혁의 경고는 거짓이었다.
이미 서울 한복판 상공에, 거대한 핏빛 눈동자를 닮은 균열이 쩍 갈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봉인되었던 마력 핵이 그 균열과 공명하며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 경고! SSS급 게이트 ‘심연의 눈’이 당신의 마력 핵과 강제 동조화되었습니다! ] [ 현재 동조율: 1.2% ] [ 동조율이 100%에 도달하면, 당신의 심장이 강제로 정지되며 게이트가 완전 개방됩니다. ]
처음부터 나를 죽이고 게이트를 열기 위해 도준혁이 안배해 둔 진짜 덫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허공에 뜬 핏빛 균열을 노려보며, 새롭게 진화한 마검의 자루를 꽉 쥐었다.
"놀아나 주는 건 여기까지다, 도준혁."
***
[ 이번 화 획득 전리품 및 스탯 변화 ] - 마력 복구율: 63% (20% 상승) - 영구 스탯 상승: 근력 +30, 민첩 +30, 마력 +50 (유채린 처단 반영) - 무기 진화: [심연의 톱날] -> [심연의 마검: 레비아탄] (공간 파괴 속성 추가) - 누적 후원 코인: 16,200,000 코인 (원화 환산 가치 약 162억 원) - 신성 길드 몰수로 인한 배상금: 250억 원 계좌 입금 완료 - 획득 고유 장비 스킬: [영혼 참식(Soul Dev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