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지한아, 너는 절대―!"

쿠구구구궁!

유채린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통신 장치 너머로 끊어짐과 동시에, 발밑의 대지가 거짓말처럼 갈라졌다.

단순한 붕괴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이 구역 전체에 장치되어 있던 공간 붕괴 트랩이 작동한 것이다.

"꺄아악!"

서은하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녀가 들고 있던 고화질 카메라가 중력을 잃고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찰나의 순간, 몸을 날려 서은하의덜미를 채어 잡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허공을 부유하는 카메라의 삼각대를 낚아챘다.

슈우우우우욱!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의 어둠 속으로 우리 몸이 사정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귓가를 때리는 거센 바람 소리 사이로, 비릿하고 지독하게 매캐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바닥이 보였다. 보랏빛과 초록빛이 기괴하게 뒤섞인 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거대한 지하 늪지대.

단지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허파가 타들어 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력한 산성 독성 물질의 군락지였다.

쿵!

나는 낙하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력을 발끝에 집중해 디뎠다. 하지만 발이 닿은 곳은 단단한 지면이 아니었다. 점성이 극도로 높은, 끈적이고 뜨거운 독성 액체였다.

"쿨럭! 컥……! 이게, 대체……."

서은하가 코와 입을 틀어막으며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강력한 산성 독안개가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어, 정화 필터가 달린 방독면조차 무용지물로 만들 기세였다.

그녀의 피부가 독기 가득한 공기에 노출되자마자 붉게 진물러 가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입고 있는 헌터 슈트의 하단이 독액에 닿자마자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녹아내렸다. 피부를 파고드는 극심한 작열통.

정상적인 헌터라면 이 단계에서 온몸이 녹아내려 뼈조차 남기지 못하고 비명횡사했을 터였다.

그때, 내 눈앞에 붉은색 시스템 경고창들이 미친 듯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 ⚠️ 경고: SSS급 복합 독성 물질 '림보의 부식 독액'에 노출되었습니다! ] [ ⚠️ 경고: 초당 최대 체력의 5%가 감소합니다. ] [ ⚠️ 경고: 해독 불가능한 특수 독소입니다. ]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화면 너머의 관전러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 우주망 TV 채널에 성좌들이 난입합니다! ] [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배를 잡고 구릅니다. ] [ 성좌 '심해의 트롤러': 엌ㅋㅋㅋㅋㅋㅋ 유채린이 아예 묻어버릴 작정으로 함정을 팠네! 야, 강지한! 거기서 살아 나오면 내가 진짜 인정해 준다! ] [ 성좌 '방구석 평론가': 저거 닿기만 해도 뼈까지 녹는 산성 독이잖아. 랭킹 1위고 뭐고 저기서 어떻게 버티냐? 방송 종료 각 날카롭죠? ] [ 현재 동시 접속자 수: 41,200,000 명 ]

동시 접속자 수는 오히려 폭발적으로 치솟고 있었다. 대중은 영웅의 화려한 귀환보다, 추락한 영웅이 처참하게 녹아내리는 가학적인 장면에 더 열광하는 법이니까.

삐빅!

새로운 골드 퀘스트 알림음이 고막을 찔렀다.

[ ✉️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독점 미션을 제안합니다! ] [ 퀘스트 ID: '독 탕에서의 서커스' ] - 미션 내용: 어떠한 방어 마법이나 외부 보호 장비(슈트 포함)의 도움 없이, 맨몸으로 저 독성 수렁의 한복판에서 정확히 1분(60초) 동안 버티십시오. - 미션 제한: 마력 방어막 사용 금지. 오직 육체의 순수한 저항력과 내공으로만 버텨야 함. - 성공 보상: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은밀히 후원한 [심연의 톱날]의 진정한 봉인 해제 + 전성기 마력 20% 영구 복구. - 실패 패널티: 전성기 스탯 삭감 50% 및 영구적인 퇴물 확정 (즉사).

미친 미션이었다. 마력 방어막도 없이 맨몸으로 저 산성 독액에 들어가라고? 그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지한 씨……! 빨리,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해요! 몸이…… 몸이 녹고 있어요!"

서은하가 내 옷자락을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지만, 그 눈물마저 독안개에 의해 증발하며 고통을 더할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위기는 곧 기회다. 그리고 성좌들의 가학성은 내 힘의 가장 훌륭한 밑거름이 된다.

"서 기자."

"네……?"

"카메라 제대로 고정해."

나는 서은하를 독액이 닿지 않는 비교적 단단한 바위 위로 거칠게 밀어 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품에 카메라를 안겨주었다.

"지금부터 내가 뭘 하는지, 단 한 장면도 놓치지 말고 전 세계에 송출해."

"미쳤어요?! 저기 들어가면 죽어요! 방어막도 없이 저걸 어떻게 버틴다는 거예요!"

서은하가 경악하며 소리쳤지만, 나는 이미 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스스스스스!

바지를 타고 올라오는 산성 독액이 종아리의 맨살에 닿았다. 살을 에는 듯한 고통이 척수를 타고 뇌를 때렸다. 이대로 두면 10초도 지나지 않아 다리뼈가 드러날 터였다.

하지만 내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내 체질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자 결함. '마력 역류'.

방송이 켜져 있는 동안 강제로 통제되고 있지만, 내 몸 안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혼탁한 역류 마력이 가득 차 있었다. 그 마력들은 서로 충돌하며 내 장기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내부의 파괴적인 에너지를 외부의 독소와 맞부딪치게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독은 독으로 제어한다. 이독제독(以毒制毒)의 원리다.

스릉-.

나는 등 뒤에 매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내게 비웃음과 함께 던져주었던 기이하고 투박한 검. [심연의 톱날].

마력을 강제로 흡수하고 봉인하는 성질을 가진 이 검은, 내 몸 안의 미쳐 날뛰는 역류 마력을 조율할 가장 완벽한 피뢰침이었다.

"자, 우주의 변태들아. 똑똑히 지켜봐라."

나는 [심연의 톱날]을 거꾸로 쥐고, 내 발밑의 끓어오르는 독성 수렁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콰르르르릉!

동시에 내 몸 안의 제어 장치를 완전히 풀어버렸다. 마력 역류 부작용을 의도적으로 극대화시킨 것이다.

"컥……!"

입안 가득 비릿한 피 맛이 퍼졌다. 내부에서 폭발하듯 솟구치는 역류 마력과, 외부에서 살을 찢고 들어오는 극독이 내 가슴팍 한가운데에서 정면으로 충돌했다.

심장이 멈출 것 같은 고통. 눈앞이 붉게 물들고, 전신의 혈관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 ⚠️ 경고: 심각한 마력 역류 발생! 심정지 위험 단계! ] [ ⚠️ 경고: 외부 독소 침투율 40% 돌파! ]

하지만 나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이빨을 악물고 웃었다. 그리고 [심연의 톱날]을 매개체로 삼아, 내부의 백색 마력과 외부의 보랏빛 독기를 하나로 융합시키기 시작했다.

스으으으으으―!

검의 날을 따라 기괴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심연의 톱날]이 림보의 독액과 내 몸 안의 역류 마력을 동시에 빨아들이며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내 종아리를 녹이던 부식 독소들이 역류 마력의 흐름에 휘말려 검 내부로 밀려 들어갔다.

동시에, 내 몸 안을 괴롭히던 불순한 역류 마력들이 외부 독소와 상쇄되며 깨끗하게 정화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 ⚙️ 복선 회수: '심해의 트롤러'가 후원한 [심연의 톱날]의 봉인이 해제되기 시작합니다! ] [ [심연의 톱날]이 림보의 극독을 정화 에너지를 담는 그릇으로 변환합니다! ]

"어……? 어?"

바위에 엎드려 카메라를 쥐고 있던 서은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카메라 렌즈에 담긴 광경은 가히 신화적이었다.

강지한의 주위로 끓어오르던 보랏빛 늪이 거짓말처럼 투명한 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의 피부를 태우던 연기는 사라지고, 오히려 그의 전신에서 눈부신 백색의 오라가 스팀처럼 뿜어져 나왔다.

극독의 에너지를 정화시켜 자신의 마력 동력원으로 삼아버린 것이다.

채팅창은 그야말로 초토화되었다.

[ 성좌 '심해의 트롤러'가 턱뼈가 빠질 정도로 경악합니다. ] [ 성좌 '심해의 트롤러': ?????? 아니 저게 왜 정화가 돼??? 내 검을 저렇게 쓴다고??? ] [ 성좌 '정의의 수호자': 와…… 진짜 미친놈이다. 독을 몸 안의 역류 마력이랑 부딪쳐서 상쇄시켰어. 이게 인간의 컨트롤이냐? ] [ 성좌 '방구석 평론가': 킹지한! 갓지한! 퇴물이라 놀려서 죄송합니다! 당신은 진짜 신입니다! ] [ 시청자들의 엄청난 감탄과 환호가 이어집니다! ] [ 후원: 50,000 코인 돌파! ] [ 후원: 120,000 코인 돌파! ]

"후우……."

나는 독안개를 한 모금 깊게 들이마셨다. 폐가 녹아내리는 대신, 정화된 마력이 단전으로 부드럽게 흘러들어와 안착하는 것이 느껴졌다.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다.

정화된 독안개가 하얀 증기가 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여파로 서은하의 카메라 렌즈에 하얗게 김이 서렸다.

나는 증기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며,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서 기자."

"네, 네?!"

"렌즈 닦아. 시청자분들이 내 잘생긴 얼굴 못 보잖아."

그 능청스럽고도 오만한 태도에 서은하는 헛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이내 픽 웃으며 소맷자락으로 카메라 렌즈를 깨끗하게 훔쳐냈다.

다시 선명해진 화면 속에, 나는 맹독의 수렁 한가운데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서 있었다. 상처 하나 없는 완벽한 초인의 모습으로.

띠링!

[ 🔔 돌발 미션 성공! 제한 시간 1분 경과! ] [ 🎁 미션 성공 보상 수령 완료! ] - 성좌 '심해의 트롤러'의 무기 [심연의 톱날]이 1단계 완전히 각성합니다. (장비 등급: 신화급 성장형) - 전성기 마력 20%가 영구적으로 복구됩니다!

쿠웅!

몸 안에서 묵직한 마력의 파동이 폭발했다. 이전과는 궤를 달리하는 밀도의 마력이 전신의 마나홀을 채워나갔다. 벼락이 치는 듯한 전율이 척추를 관통했다.

[ 현재 전성기 스탯 복구율: 41.5% ]

이 정도 스탯 복구율이면, 과거 랭킹 1위 시절의 힘을 절반 가까이 되찾은 셈이다. 온몸에 충만한 힘이 넘쳐흘렀다.

"자, 그럼 슬슬 올라가 볼까."

나는 [심연의 톱날]을 가볍게 휘둘렀다. 검 날에 맺힌 정화된 푸른 마력이 날카로운 검기가 되어 불타올랐다.

우리를 가두고 있던 지하 늪지대의 천장, 즉 무너져 내린 암벽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서 기자, 꽉 잡아."

"아, 또요?!"

서은하가 비명을 지르며 내 허리를 안아왔다. 나는 사정없이 검을 위로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앙―!

단 한 번의 참격. 수십 미터 두께의 단단한 암반층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며, 저 위 지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눈부신 빛이 무너진 틈새 사이로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그 빛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바람을 가르며 단숨에 지상으로 솟구쳐 올랐다.

파아앗!

흙먼지를 휘날리며 마침내 무너진 수렁의 림보 지표면 위로 착지했다. 이제 유채린의 더러운 음모의 흔적인 비밀 기계를 세상에 대대적으로 공개할 차례였다.

하지만.

"……?"

내 발이 완전히 지면에 닿기도 전에, 살을 에는 듯한 서늘한 금속음이 사방을 가득 메웠다.

철컥! 철커덕!

자욱한 먼지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드러난 광경에, 내 품에 안겨 있던 서은하의 숨결이 턱 막혔다.

"이, 이게 무슨……."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황폐한 던전의 잔해가 아니었다.

눈부신 은빛 갑옷을 입고, 신성 길드의 거대한 십자가 문양이 새겨진 방패와 대검을 든 자들. 그들의 눈빛에는 오직 광신적인 살의와 통제된 규율만이 서려 있었다.

신성 길드의 무력의 정점. 성녀 유채린의 직속 사설 군대이자, 수많은 불법 처형을 자행해 온 '신성 기사단'.

그 숫자가 어림 잡아도 최소 500명은 되어 보였다. 그들이 림보의 입구와 사방의 절벽을 빈틈없이 포위한 채, 우리를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선두에 선 사내가 나직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검을 뽑아 들었다.

"성녀님의 명이다."

그의 검날이 나를 지목했다.

"강지한과 그 동조자를 이 자리에서 즉시 처단하라.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남기지 마라."

서은하의 카메라가 그 압도적인 대군을 비추는 순간, 방송의 실시간 채팅창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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