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노을이 대지를 태우는가, 아니면 당신의 몸 안에서 용솟음치는 구양(九陽)의 진화(眞火)가 세상을 살라 먹는가.
천지가 가라앉고 산하(山河)가 무너지듯, 황량한 협곡은 이미 붉은 피와 타버린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당신의 이복형 사마륜이 자랑하던 철기군과 위선적인 맹약의 군세는, 단지 당신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열화(熱火) 한 자락에 추풍낙엽처럼 스러져 갔다. 사검(邪劍)이 꺾이고 철갑(鐵甲)이 녹아내리는 소리는 마침내 도도한 강물이 되어 무간지옥의 비가를 연주한다.
"천마(天魔)께서 강림하셨다! 마교의 참된 주인이 불길을 씻고 오셨도다!"
당신의 뒤를 따르는 혁파 세력들의 함성은 대지를 흔들고, 그들의 눈빛에는 신화적 교주의 탄생을 우러르는 광신적인 숭앙이 가득하다. 그러나 당신의 영락(瓔珞) 같은 안광 이면에는, 뼈를 깎고 단전을 녹여 내릴 듯한 극양(極陽)의 맹렬한 화마가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다. 대환단의 영기와 천지일월의 정수가 몸 안에서 통제할 수 없는 화룡(火龍)이 되어 백맥(百脈)을 난타하는 탓이다.
벼랑 끝에 몰린 자들의 마지막 발악은 늘 구차하고도 처절한 법.
저 멀리 석양이 부서지는 절벽 위, 패퇴한 군사들의 시체 너머로 음모의 원흉들이 서 있다. 검을 짚고 피를 토하는 이복형 사마륜, 그리고 중정(中正)을 가장하고 사교(邪敎)와 야합했던 구양 무림맹주 청백선(淸白仙)이다. 두 사람의 안색은 이미 사색을 넘어 사기(死氣)가 완연하되, 손에 쥔 병장기에는 최후의 생명력을 가다듬은 내력이 서릿발처럼 엉겨 붙어 있다.
"사마현... 정녕 네놈이 마공의 괴물이 되어 돌아왔단 말이냐! 천륜을 저버리고 강호를 피로 물들이는 이 사마(邪魔)의 자식놈 같으니!"
사마륜의 외침은 애처로운 늑대의 울부짖음에 불과하다. 맹주 청백선 역시 백발을 휘날리며 장엄한 검기를 세우니, 그 기세가 마치 '단금쇄옥(斷金碎玉)'의 절망적인 초식과 닮아 있다.
"사황(邪皇)의 핏줄이 이토록 잔인할 줄은 몰랐구나. 비록 오늘 내 노신이 이곳에서 뼈를 묻을지언정, 무림의 대의를 위해 마교의 역도를 척살하리라!"
그들의 말은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화산파의 영애에게서 가차 없이 밝혀진 음모—마교를 반분하여 세상을 도탄에 빠뜨리려 했던 자들이 이제 와서 대의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있다.
당신은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 순간, 대지가 흐느끼며 갈라지고 당신의 발자국마다 푸른 불꽃이 피어오른다. 대자연의 조화가 무색할 정도로, 당신의 숨결 하나에 삼라만상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양의 마력이 전장에 가득 찬다. 적들의 눈에 비친 당신은 인간이 아니요, 천지를 불태우러 강림한 '초목개병(草木皆兵)'의 화신이다.
"위선으로 덧칠해진 그 입을 열지 마십시오. 형님의 비열한 피와 맹주의 거짓된 도(道)는 오직 이 구양의 불길로써만 정화될 수 있을 터입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빙하 아래 흐르는 용암처럼 차가우면서도 뜨겁게 울려 퍼진다.
그러나 그 찰나, 몸 내부의 단전이 터져 나갈 듯 격동한다. 강제로 끌어 올린 구양의 내동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가슴에서 시작된 가공할 열기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시야가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이성을 갉아먹는 뜨거운 파괴의 욕구가 뇌리를 지배하니, 눈앞의 모든 존재를 한 줌의 재로 화하게 만들고 싶은 광기가 치밀어 오른다.
동시에, 그 광기의 이면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차가운 복수의 칼날이 숨 쉬고 있다.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정신을 집중한다면, 이 뜨거운 화마를 강제로 억눌러 저 가증스러운 적들의 무공을 한 올 한 올 해체하듯 찢어발길 수 있을 터였다.
벼랑 끝에 선 사마륜과 청백선이 최후의 검풍을 한데 모아 당신을 향해 돌진해 온다. 두 갈래의 검기가 하늘을 가르고 비장한 백색의 궤적을 그리며 짓쳐드는 바로 그 순간, 당신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태양 같은 열기가 폭발할 듯 요동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