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화산(華山)의 밤이슬은 차디차건만, 화산파 영애의 붉은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밀어(密語)는 당신의 가슴속에 웅크린 극양(極陽)의 화룡(火龍)을 깨우기에 충분한 불씨였소.

그녀의 사시나무 떨듯 흔들리는 가녀린 어깨 위로, 당신은 가만히 칠흑 같은 시선을 떨어뜨렸소. 그녀가 고백한 진실은 실로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나락의 심연이었소. 협(俠)을 숭상한다 자부하는 무림맹과, 교주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당신의 이복형 사마륜. 그들은 본래 양립할 수 없는 물과 불이 아니었소.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그들은 마교라는 거대한 강토를 반분(半分)하여 가질 추악한 밀약을 맺었던 것이오.

태양 뒤편에 도사린 음습한 음모가 마침내 실체를 드러낸 순간이었소.

"정(正)이라 일컫는 자들의 필치는 향기로우나 그 뜻은 장사꾼보다 비열하고, 마(魔)라 칭하는 혈육의 칼날은 매섭되 그 속은 썩은 고름으로 가득 찼구나."

당신의 나직한 독백에, 백맥(百脈)을 관통하며 흐르는 구양신공(九陽神功)의 진기가 격동하기 시작하오. 그것은 대지 아래 오랫동안 짓눌려 있던 화산(火山)의 맥동이며, 한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떠올라 만물을 불태우는 서막과도 같았소. 당신이 가만히 숨을 내쉴 때마다 밤공기를 채우던 서리 어린 백매화 향기가 순식간에 누렇게 변해 증발해 버렸소. 오운보월(烏雲步月)의 기세로 밤하늘을 가리던 구름마저 당신의 진력에 밀려 붉은 독기와 같이 흩어지니, 대자연이 당신의 분노에 공명하는 듯하오.

골육상잔(骨肉相殘)의 참극을 기획하고 비밀리에 강호의 대세를 움켜쥐려는 그들의 위선. 그 위선자의 칼끝이 일찌감치 당신의 단전을 찢어발겼던 손길과 맞닿아 있었음을 깨달았소. 가슴을 옥죄는 이 지독한 비극 속에서, 허공에 서린 검풍이 차갑게 우짖소. 피로 쓰인 밀서가 당신의 손바닥 안에서 바스락거리며 타들어 갈 듯 뜨거운 열기를 토해내오.

이제 진실을 쥐어쥔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당신은 깊은 어둠 속에서 저 멀리 불타오르는 등불을 바라보며 결심의 경계에 서 있소.

이 더러운 야합의 증거를 만천하에 드러내어 저들의 가증스러운 가면을 사정없이 찢어발길 것인가. 아니면, 복잡한 계책 따위는 극양의 불꽃으로 모두 태워버리고, 곧 다가올 폭풍우의 중심을 향해 제 발로 걸어가 그 피비린내 나는 연회장을 단칼에 도륙할 것인가.

당신의 뜨거운 진기가 마침내 운행을 마치고 손끝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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