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황과 검댕의 냄새가 자욱한 백호분타(白虎分舵)의 깊은 전각. 백색의 화염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오직 재와 침묵만이 남았습니다. 발치에 엎드린 분타주 단우서는 온몸의 기맥이 타오르는 구양신공(九陽神功)의 열기에 녹아내려, 신음을 내뱉을 힘조차 잃은 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습니다. 한때 이복형 사마륜의 권세에 아첨하여 당신을 배신하고 단전을 깨부쉈던 자가, 이제는 목숨을 구걸하는 한 마리 비루한 들개에 불과합니다.
당신이 숨을 천천히 들이켜자, 천지를 불사를 듯 요동치던 극양(極陽)의 진화(眞火)가 한 자락 아지랑이로 화해 심맥 속으로 수렴됩니다. 만물이 전율하던 열기가 고요를 되찾은 순간, 전각을 에워싼 어둠 속에서 서늘한 기운들이 일제히 솟구칩니다.
"참된 흑태자(黑太子)의 부활을 뵈옵니다."
어스름한 장막을 걷어내고 나타난 이들은 마교의 타락을 탄식하며 음지에서 칼을 갈던 혁파파(革新派)의 고수들과 완고한 장로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우두머리이자 교내의 신망 두터운 설천우(薛千宇)가 당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법검을 바칩니다. 그의 눈빛에는 광기 어린 숭배와 비장한 열망이 서려 있습니다.
"사마륜 그 간악한 잔당들의 탐욕으로 신교의 근간이 썩어 문드러졌사옵니다. 소교주께서 흘리신 피가 무정(無情)한 세월 속에서 구양의 신화(神火)로 되살아났으니, 이는 하늘이 마교를 버리지 않으시고 내리신 천명(天命)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어둠이 깊을수록 불꽃은 더욱 찬란하고, 한이 뼛속에 사무칠수록 검날은 매섭게 가라앉는 법. 당신의 주변으로 수십, 수백 명의 그림자들이 소리 없이 내려앉아 무릎을 꿇습니다. 그들이 토해내는 살기는 대마(大魔)의 숲을 이룰 만큼 무거우나, 그 중심에 선 당신의 단전은 세상을 통째로 태워버릴 듯 뜨겁게 끓어오릅니다. 마침내 당신을 파멸로 몰고 갔던 가문과 배신자들의 목을 벨 은밀하고도 강력한 군세가 당신의 손아귀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설천우가 고개를 들어 당신을 깊이 우러러보며 장엄하게 여쭙니다.
"소교주여, 이제 저 배신자들의 피를 거두어 천마의 제단에 바칠 차례이옵니다. 천하를 향해 첫 발을 내딛으실 방향을 가리켜 주소서. 이 검은 폭풍이 도대체 어느 곳을 향해 몰아쳐야 하옵니까?"
한 걸음만 더 내딛으면 마교 전체를 뒤흔들 피의 해일이 시작됩니다. 당신의 시선은 붉게 물든 손끝에서 시작해, 저 멀리 이복형 사마륜이 도사리고 있는 청룡전(靑龍殿)의 음산한 하늘을 향해 멎습니다. 단번에 적의 심장을 꿰뚫을 것인가, 아니면 어둠 속에서 적의 사지를 하나씩 잘라내어 고사시킬 것인가. 결단의 순간이 당신의 눈앞에 당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