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萬火)의 종주이자 극양(極陽)의 결정인 구양신공(九陽神功)이 마침내 임계(臨界)를 넘어 천지를 불사른다. 당신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백열(白熱)의 광휘는 청룡전의 들보를 녹이고, 대지를 조각내어 용암의 강으로 화하게 만든다. 은원에 얽힌 가솔도, 가증스러운 이복형 사마륜도, 그와 결탁한 위선적인 무림맹의 군세조차 그 가공할 신광(神光) 앞에서는 한낱 형체 없는 촛농과 다름없다.
"으아아악! 이, 이것은 인간의 무공이 아니다! 마공(魔功)보다 더한 천벌(天罰)이로다!"
절규하던 자들의 비명이 극양의 화폭(火暴) 속에서 한 줌의 비명으로 응축되었다가 스러진다. 아홉 개의 태양이 지상으로 내려앉은 듯한 신기의 겁화(劫火)는 수만 명의 적들을 일순간에 증발시킨다. 은혜와 원한, 탐욕과 아집으로 얼룩졌던 강호의 주역들이 회색빛 재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지는 광경은 참혹하되 장엄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고 만물의 한계를 초월한 열기를 독차지한 대가는 정녕 가혹하다. 적들의 가죽이 타들어가고 뼈가 녹아내릴 때, 당신의 단전 역시 이미 회복할 수 없는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맥박을 타고 흐르는 피는 펄펄 끓는 쇳물이 되었고, 사지백해(四肢百骸)를 지탱하던 기혈은 극양의 열기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를 소사(燒死)시키고 있다. 골수가 타들어가는 극통 속에서도 당신의 입가에는 기묘한 미소가 걸린다.
결국, 모두를 데리고 지옥의 심연으로 드는구나.
사방을 가득 채웠던 적들의 흔적은 오직 뜨거운 열풍만이 증명할 뿐, 넓디넓은 청룡전 터에는 이제 단 한 사람, 타오르는 불기둥이 된 당신만이 우뚝 서 있을 뿐이다. 복수는 마침내 완성되었으나, 그 대가로 남은 것은 독선과 허무뿐인 잿더미의 성전이다.
스스스스.
바람이 불어온다. 극양의 화염이 사그라드는 자리, 불빛을 잃어버린 당신의 육신이 새하얀 백묵처럼 변해 간다. 손끝부터 서서히 부서져 내리는 육신의 파편들이 허공에 은하수처럼 흩날린다. 만인을 공포에 떨게 했던 마교의 서출이자, 구양의 신화였던 사마현이라는 존재가 한 줌의 전설이 되어 천지간으로 산화하는 순간이다.
당신의 시야가 점차 백색의 공허함으로 물들어 간다. 뜨거웠던 심장의 고동마저 싸늘하게 식어 내리며, 핏빛 원한으로 가득했던 강호의 기억이 저 멀리 저물어 간다. 마침내 당신의 마지막 숨결이 대지에 닿았을 때, 청룡전에는 오직 백색의 재만이 함박눈처럼 고요히 흘러내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