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밤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안개가 빵집 앞마당의 흙먼지와 뒤섞여 매캐하게 피어올랐다. 갓 빻은 밀가루 포대에서 흘러나오던 구수하고 뽀얀 향방은, 제국 사법단의 철갑옷이 내뿜는 서슬 퍼런 쇠 냄새에 짓눌려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흩어졌다.
르네의 품속에서 따뜻한 온기를 나누던 아기 사자 루루가 귀를 머리 뒤로 바짝 눕혔다. 보들보들한 황금빛 털이 잔뜩 곤두서고, 핑크빛 코끝이 잘게 떨려 왔다.
"캬우우우……."
가냘프지만 명확한 경계의 으르렁거림이 안개 숲의 정적을 깼다.
제국 위생 재판소의 낙인이 피처럼 붉게 찍힌 마차들 앞에서, 사법관 옵스는 기름진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그의 손에 들린 종이는 누렇게 바랜 양가죽 영장이었으나, 그 위에 찍힌 '저울과 칼' 문양은 사나운 맹수 가문들조차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황실의 권위였다.
"황실의 위생 기준을 위반하고, 수인 아기들에게 출처 불명의 불법 설수와 전염성 수인 마력을 무단 혼합해 식품 위생법을 통째로 이탈했다는 제보다. 인간 제빵사 르네를 즉각 체포하고 빵집을 전면 폐쇄하라!"
옵스의 앙칼진 고함이 안개 숲의 밤공기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백여 명의 사복 군사들이 일제히 마력 총창을 고쳐 잡았다. 푸른 마력이 총구 끝에서 지직거리며 위협적인 빛을 발했다.
그 살벌한 대열 앞을 펠릭스가 잽싸게 가로막아 서며 가볍게 실소를 터뜨렸다. 언제나 여유롭던 그의 눈매가 사납게 좁혀져 있었다.
"이거 보시오, 사법관 나리. 정식 유통 계약을 맺고 밀가루 포대를 내린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빵을 굽기는커녕 반죽도 시작 안 한 밀가루에서 무슨 전염성 마력과 설수가 나온단 말입니까? 예언가라도 되시는 모양이지요?"
"닥쳐라, 일개 보부상 놈이 감히 황실 사법단의 신성한 집행을 가로막느냐! 네놈도 저 간악한 인간 마약상과 한패로 엮여 제국 지하 감옥에서 썩고 싶지 않다면 썩 물러서라!"
옵스는 턱을 치켜들며 펠릭스의 말을 사납게 자르고 들어왔다. 그의 눈빛에는 오직 대상을 짓밟겠다는 탐욕스러운 확신만이 가득했다. 뒷배인 대상주 바실리에게서 르네의 빵집을 완전히 파멸시키라는 밀명을 받고 온 자다. 합리적인 대화나 타협 따위가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르네는 차분하게 숨을 고르며 상황을 응시했다. 심장이 갈비뼈 안쪽을 쿵쿵 두드렸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얼음물을 끼얹은 듯 맑아졌다. 과거 한국에서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당하고 홀로 버려졌을 때 터득한 방어기제였다. 위기의 순간일수록 감정을 지우고 차가운 계산기를 두드려야 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손님의 심리적 허기 감지: 사법관 옵스] [허기 점수: 85 (극도의 탐욕과 지배욕으로 오염됨)] [치유 불가능: 영혼의 왜곡이 심각하여 힐링 푸드 수용 거부 상태]
머릿속에 떠오른 영혼의 가계부 알림을 확인한 르네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저 자는 음식을 대접해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손님이 아니었다. 오직 차가운 상업적 법칙과 확실한 증거로 뼈를 깎는 타격을 주어야만 물러설 독사였다.
그때, 옵스의 눈짓을 받은 하급 감찰원 한 명이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마차에서 갓 내려진 뽀얀 밀가루 포대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의 소맷자락 안쪽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시퍼런 가루 주머니가 흘러나오는 것을 르네의 매서운 눈동자가 포착했다.
'오염 마석 촉진 가루!'
제국에서 엄격히 금지하는, 마력을 폭주시 부추기는 극독물이었다. 바실리 상단이 광산에서 불법 밀수해 유통하던 바로 그 가루였다.
하급 감찰원은 품속에서 꺼낸 시퍼런 가루를 밀가루 포대의 틈새로 털어 넣으려 했다. 아주 능숙하고 은밀한 몸짓이었다. 그대로 가루가 섞여 들어간다면, 즉석에서 오염 물질 검출이라는 거짓 조작이 완성될 판이었다.
"안 돼!"
펠릭스가 소리치며 손을 뻗으려 했으나, 제국 군사들의 총구가 그의 가슴팍을 가로막았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르네의 품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황금빛 털 뭉치가 번개처럼 튀어나갔다.
"캬우우웅-!"
작은 아기 사자 루루였다.
루루는 빵집을 더럽히려는 침입자의 존재를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날카롭고 앙증맞은 앞발을 내밀며 감찰원의 가죽 부츠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는 튼튼한 하얀 이빨로 그의 발목을 사정없이 꽉 깨물어 버렸다.
"으아아악! 이, 이 미친 짐승 새끼가!"
하급 감찰원이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손에 쥐고 있던 시퍼런 가루 주머니가 허공으로 솟구쳤다가 흙바닥 위로 흩어졌다.
비틀거리던 감찰원의 발길질에 루루가 뒤로 나뒹굴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사법관 옵스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자신의 계획이 한낱 아기 수인의 방해로 어그러지자 이성을 잃고 폭발했다.
"미천한 축생 놈이 감히 황실 공무원을 공격해? 죽여 버려라!"
옵스는 무거운 철판이 덧대어진 가죽 부츠를 치켜들었다. 묵직한 군화 끝이 허공을 가르며 땅바닥에 쓰러진 작은 루루의 머리를 향해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그대로 맞는다면 아기 사자의 연약한 머리뼈가 으스러질 것이 분명했다.
"루루!"
머릿속의 계산기 따위는 순식간에 박살 나 천 조각처럼 흩어졌다. 비즈니스적 손익계산도, 인간불신의 두꺼운 방어벽도, 목숨을 걸고 자신을 비호해 주겠다던 사자 가문과의 거래 조건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품 안에서 나에게 뺨을 비벼 오던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온기, 매일 아침 빵 냄새를 맡으며 배시시 웃던 아기 맹수의 무해한 눈동자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르네는 본능적으로 몸을 던졌다.
거칠고 차가운 흙바닥 위로 무릎이 쓸리는 아픔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양팔을 넓게 벌려 바닥에 엎어진 루루를 품속으로 단단히 수용했다. 자신의 가녀린 등으로 무거운 침입자들의 시선을 온전히 받아내며, 오직 아기 수인의 작은 몸만을 품 안 깊숙이 밀어 넣었다.
쿵-!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사법관의 단단한 군화 끝이 르네의 등허리를 거칠게 강타했다.
"윽……!"
폐부 깊은 곳에서 거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등뼈를 타고 찌릿한 통증이 뇌수까지 번졌고, 목구멍 안쪽에서 쇠 맛이 비릿하게 맴돌았다.
하지만 르네는 품에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등뒤로 먼지가 하얗게 뒤집어쓰고 머리칼이 헝클어졌지만, 품 안의 루루는 털 한 올 다치지 않은 채 무사했다.
루루는 르네의 품속에서 동그란 눈을 크게 뜬 채, 르네의 가슴팍에 보들보들한 뺨을 비벼 대며 낑낑 울었다.
"낑…… 끵…… 르네, 르네에……."
겁에 질린 아기 사자의 눈물겨운 웅얼거림이 르네의 귓가에 닿았다. 르네는 아픔을 참아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려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아, 루루. 누나가 여기 있어. 아무 데도 안 가."
차가운 먼지 구덩이 속에서, 르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허리를 펴고 일어서는 그녀의 몸짓은 느렸지만, 감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기묘한 숭고함이 깃들어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르네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맑고, 소름 끼치도록 차가웠다.
사방을 에워싸고 있던 제국 사복 군사들 사이에서 나지막한 술렁임이 일었다.
수인 제국에서 아기 수인은 가문의 미래이자 신성한 존재였다. 제 아무리 나약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아기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방패로 삼아 목숨을 걸고 뛰어든 이 숭고한 기세는 수인들의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한 야성의 본능을 강하게 자극했다.
군사들의 손에 들린 마력 총창의 끝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아래로 처졌다.
"방금…… 사법관 나리께서 제국 대가문의 후계자를 군화로 짓밟으려 하셨습니까?"
르네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분노를 억누른 서늘한 한기가 서려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막아선 나를 발로 차셨군요. 사자 가문의 엄중한 비호를 받는 이 안개 숲의 제빵 구역에서, 가문의 후계자와 영지민을 무단으로 폭행한 죄는 제국 법전 어느 구절에 적혀 있습니까?"
"이, 이 발칙한 년이 어디서 말장난을!"
옵스의 뺨이 팽팽하게 경련했다. 주위 군사들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눈치챈 그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수작 부리지 마라! 오염 물질이 검출된 이상 너는 그저 대역죄인일 뿐이다! 어이, 당장 저 밀가루 포대를 검사해라!"
그의 명령에 따라, 아까 뒤로 넘어졌던 감찰원이 흙먼지가 묻은 손으로 밀가루 포대 안쪽을 검출봉으로 휘저었다. 이미 바닥에 흩어진 가루 중 일부가 밀가루에 섞여 들어간 뒤였다.
지잉-.
검출봉의 끝이 붉은색 마력 빛을 내뿜으며 요란한 경고음을 울렸다.
"검출되었습니다! 제국 금지 마석 오염 수치 최고 단계입니다!"
옵스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찢어졌다.
"하하하! 보았느냐? 이것이 바로 네놈이 굽던 빵의 실체다! 이 불결한 밀가루로 아기 수인들을 중독시켜 온 것이다!"
하지만 르네는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영혼의 가계부'가 눈부신 투명 장부를 펼치며 실시간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영혼의 가계부 - 실시간 재고 성분 이력 추적 가동] [식재료: 안개 숲 특제 갓 빻은 밀가루 (포대 번호: A-07)] [이력 역추적 결과:] - 22:14:05 - 펠릭스 상단에 의해 무오염 상태로 입고 완료. (신용도 100%) - 22:15:12 - 외부 유입 물질 '오염 마석 촉진 가루' 강제 주입됨. - 주입 경로: 사법단 감찰관 '디아즈'의 소맷자락에서 유출.
르네는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1초 단위로 성분 변화 이력이 가계부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이 장부의 기록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르네의 시선이 빵집 야외 탁자 위로 향했다.
그곳에는 은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정밀 도구가 놓여 있었다. 지난번 레온하르트가 위생 검사를 하겠다며 엄포용으로 두고 갔던 사자 가문의 보물, '은색 미세 마력 측정기'였다.
가주 수준의 청결과 마력을 측정하는 그 도구는, 단순한 위생 검출을 넘어 외부 마력의 유입 경로와 시간까지 역추적하여 각인하는 제국 최고급 장비였다.
'이 썩은 공직자들이 들고 온 허접한 검출봉 따위와는 격이 다르지.'
르네는 머릿속으로 완벽한 역공의 고리를 완성해 나갔다. 저들이 조작질을 펼치는 이 현장 자체가, 바실리와 그 하수인들을 법적으로 완전히 파멸시킬 가장 확실한 덫이 될 터였다.
그러나 사법관 옵스는 르네의 침묵을 패배의 굴복으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그는 붉게 타오르는 검출봉을 승리의 깃발처럼 치켜들며 사납게 포효했다.
"증거는 확실하다! 현행범으로 이 마녀를 현장에서 즉각 영지 법령에 따라 압송하라! 저항할 시에는 즉결 처분도 불사하겠다!"
철컥, 철컥!
군사들이 쇠사슬로 된 묵직하고 차가운 고정 족쇄를 양손에 쥔 채, 르네의 가녀린 손목을 향해 다가왔다.
붉게 물든 검출봉의 빛이 르네의 뺨을 서늘하게 비추고, 쇠사슬이 부딪치는 불길한 소리가 밤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과연 르네는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사자 가문의 보물을 이용해 판을 어떻게 뒤집을 것인가. 손목에 족쇄가 채워지기 바로 직전, 르네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