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세 번, 내가 직접 이 누추한 곳의 식자재 위생 위반 여부를 검열하러 방문하겠다.”
사자 가문의 가주, 레온하르트의 목소리는 안개 숲의 서늘한 바람보다 더 차갑게 사방을 얼려 붙였다. 먼지 하나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하얀 장갑을 낀 그의 손가락끝이 빵집의 낡은 문틀을 매끄럽게 쓸어내렸다. 그의 매서운 적색 눈동자에는 여전히 인간인 르네를 향한 깊은 불신과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딸랑, 딸랑.
그때, 빵집 유리창 너머에서 작고 포근한 소리들이 연신 들려왔다.
짙은 안개 사이로 몽글몽글한 솜털 뭉치 같은 실루엣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부드러운 은빛 털을 가진 아기 늑대, 알록달록한 반점을 지닌 아기 표범들이 유리창에 코를 납작하게 들이밀고 있었다. 둥글고 촉촉한 코끝이 투명한 유리에 닿아 하얗게 김을 서리게 만들었다. 꼬물거리는 발바닥과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망울들이 빵집 창가에 오글오글 들러붙는 광경은, 조금 전까지 숨 막히는 대치가 이어지던 이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평화롭고 정겨운 풍경이었다.
“...저 맹수 아기들이 대체 왜 저러는 거지?”
기사단을 이끌고 숲 어귀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레온하르트가 멈칫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시선이 창가에 달라붙은 경쟁 가문의 아기 수인들에게 닿았다. 빵집 안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하고 달콤한 효모 냄새와 고소한 버터의 향기가 숲속의 어린 생명들을 홀린 듯 끌어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키우우우-.
갑자기 빵집 구석에서 찢어지는 듯한 아기 동물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레온하르트의 품에 안겨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던 아기 사자 루루였다. 루루의 작은 몸이 활처럼 팽팽하게 휘어지더니, 솜털로 덮인 귓가에서 지직거리는 붉은 마력의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루루!”
레온하르트가 다급하게 조카의 몸을 감싸 안았으나, 루루는 고통에 겨워 바르작거리며 그의 품에서 튕겨 나가듯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안개 숲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들어온 기묘하고 기분 나쁜 냄새가 원인이었다. 빵집 안으로 스며드는 짙은 안개 속에서 미세하게 반짝이는 붉은 가루, 즉 바실리가 은밀히 유통하려던 ‘불순 마석’의 독성 기류가 아기 사자의 예민한 후각을 자극한 것이 분명했다.
“으아아앙! 아파, 아파아!”
루루의 맑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었다. 이성을 잃은 아기 사자는 머리를 감싸 쥔 채, 눈앞에 보이는 튼튼한 참나무 진열대와 의자 다리를 향해 무작정 돌진했다.
쾅! 쾅!
작은 머리가 단단한 원목에 부딪칠 때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뭇결이 비명횡사하듯 찢어져 나갔다. 허공으로 하얀 나무 파편이 흩날렸다. 아기 사자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붉은 마력이 빵집 바닥을 그을리며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고 있었다. 2차 폭작이었다.
“모두 물러서라! 마력 폭주다!”
레온하르트가 사나운 포효와 함께 마력을 개방하려 했다. 하지만 폭주하는 아기 수인에게 강압적인 마력을 들이밀었다간 루루의 연약한 마력 회로가 완전히 망가질 터였다. 가주의 얼굴에 난생처음으로 짙은 당혹감과 초조함이 서려 들었다.
그 난장판 속에서, 루루의 목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던 은빛 목걸이가 툭 끊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대리석 바닥을 쪼르르 굴러 르네의 구두 앞코에 멈춰 선 것은, 반으로 쪼개진 사자 가문의 기사단 문양 칩이었다. 르네는 주저 없이 허리를 숙여 그 차가운 금속 조각을 집어 올렸다.
“이것을 보십시오, 대가주님.”
르네의 차분하고도 서늘한 목소리가 광풍처럼 휘몰아치는 마력의 소용돌이를 뚫고 레온하르트의 귀에 꽂혔다.
“이 아이가 안개 숲에서 길을 잃고 눈물 범벅이 되어 제 가게 문을 두드렸을 때부터 목에 걸고 있던 가문의 표식입니다. 제가 이 귀한 아이를 납치해 해를 입히려 했다면, 왜 이 증표를 고스란히 간직해 두었겠습니까? 가문의 소중한 보물을 제가 탐내어 숨기기라도 했을 거라 의심하셨습니까?”
반쪽짜리 문양 칩에 새겨진 사자 문양은 여전히 은은한 가문의 마력을 품은 채 르네의 손바닥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레온하르트의 붉은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르네의 손끝에는 어떠한 불순한 마력도, 음험한 주술의 흔적도 없었다. 오직 아이를 걱정하는 단단하고 맑은 눈빛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던 의구심의 벽에 커다란 균열이 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루루의 마력 폭주 수치는 르네의 안구에 투영된 ‘영혼의 가계부’ 가상 장부 위에서 97점이라는 파멸적인 숫자로 붉게 깜빡이고 있었다.
[대상: 루루 (사자 수인)] [심리적 허기 및 마력 과부하 수치: 97/100 (폭주 임계점 도달)] [치유 추천 레시피: 마음을 보듬는 달콤 쌉싸름한 모카 번]
‘시간이 없어. 지금 당장 만들지 않으면 아이의 영혼이 부서져 버려.’
르네는 가슴 속에서 차오르는 다급함을 억누르며 영혼의 가계부 조작 창을 띄웠다. 레시피를 해금하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했다. 가계부의 톱니바퀴가 거칠게 맞물리며 차가운 기계음이 르네의 이성을 파고들었다.
[기적의 레시피를 인출하시겠습니까? 대가로 당신의 소중한 기억을 요구합니다.] [제물로 바칠 기억: 한국에서 첫 보육원에 버려진 날 밤, 홀로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외로움에 떨며 눈물 흘렸던 기억.]
르네의 입술이 가르르 떨렸다. 아무도 손 내밀어 주지 않던 그 춥고 시렸던 밤의 기억. 비록 고통스러운 상처였으나, 그것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엄연한 한 조각이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머리를 벽에 들이받으며 울부짖는 어린 루루의 모습을 보는 순간, 르네의 마음속 방어기제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가져가.’
기억을 바치겠다는 내면의 선언과 함께, 르네의 머릿속이 뾰족한 송곳으로 찔린 듯 극심한 두통이 엄습했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소중하고 아픈 기억의 타래가 하얗게 증발해 버리는 감각. 영혼이 통째로 깎여 나가는 듯한 전신 탈진감이 르네의 무릎을 꺾으려 했다. 르네는 이를 악물고 조리대 모서리를 꽉 움켜쥐었다. 뺨은 순식간에 종이짱처럼 창백해졌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이미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포근하게 부풀어 오른 빵 반죽을 둥글게 빚어 쟁반 위에 올렸다. 달콤한 버터를 듬뿍 넣고, 갓 볶아낸 그윽한 모카 에센스를 섞어 갈색빛의 부드러운 도우 크림을 완성했다. 르네의 손끝이 부르르 떨렸지만, 반죽 위에 모카 크림을 빙글빙글 나선형으로 짜 올리는 손길만큼은 자로 잰 듯 정확했다.
뜨겁게 달구어진 오븐 안으로 쟁반이 미끄러져 들어갔다.
조금씩 열기가 가해지자, 오븐 내부에서 마법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하얗고 동글동글하던 반죽이 아기 천사의 엉덩이처럼 포동포동하게 부풀어 올랐다. 위에 얹어진 모카 도우 크림이 온기를 머금고 사르르 녹아내리며, 빵 전체를 갈색의 바삭한 외투처럼 감싸 안았다.
이윽고 오븐의 틈새를 뚫고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커피와 버터의 향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향기는 안개 숲의 음산한 불순 마석 냄새를 가차 없이 밀어내며 빵집 안을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따스하고 아늑한 모카 번의 향은 마치 어머니의 부드러운 품처럼 방 안의 거친 기류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이 향기는?”
레온하르트가 붉은 마력의 기운을 갈무리하며 굳어졌다.
향기를 맡은 루루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쾅쾅 벽을 들이받던 아기 사자의 붉은 눈망울에 서서히 이성의 빛이 돌아왔다. 루루는 킁킁거리며 젖은 코를 실룩였고, 붉게 타오르던 이마의 마력 불꽃이 연기처럼 사그라졌다.
딩-.
말갛게 구워진 모카 번이 오븐 밖으로 나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구름처럼 폭신한 갈색의 모카 번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르네는 비틀거리는 몸을 가까스로 지탱하며, 갓 구운 모카 번을 조심스레 쪼개어 루루의 앞에 내려놓았다. 바삭한 껍질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따뜻하고 달콤한 버터의 숨결이 확 퍼져 나갔다.
“루루, 이거 먹고 아픈 거 날려 보내자.”
르네의 목소리는 비록 물기 젖은 듯 가냘팠으나, 한없이 다정했다.
루루가 뽈뽈뽈 기어와 모카 번 조각을 조심스레 한 입 베어 물었다. 바삭한 겉면이 씹히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빵 속의 쫄깃하고 촉촉한 식감이 아기 사자의 입안을 가득 채웠다. 달콤하면서도 은은한 커피 향이 루루의 뇌리로 흘러들어 가 폭주하던 마력 핵을 차분하게 잠재웠다.
“우앙... 맛있어어...”
루루의 꼬리가 기분 좋게 살랑살랑 흔들렸다. 아기 사자는 언제 폭주했냐는 듯 르네의 다리에 작은 머리를 비벼대며, 분홍색 젤리가 달린 앞발로 르네의 앞치마 자락을 꼭 쥐었다. 그리고는 르네의 발목을 연신 부드러운 혀로 핥아 내리기 시작했다. 완벽한 치유였다.
그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레온하르트는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그 어떤 고위 사제도, 강력한 마법사도 이토록 짧은 시간 안에 폭주하는 마력을 완벽하게 진정시킬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르네의 제빵 과정에는 그 어떤 마법 주문도, 수상한 마력의 개입도 없었다. 오직 순수한 식자재의 조화와, 따뜻한 마음이 담긴 빵 한 조각이 일으킨 기적이었다.
르네는 숨을 헐떡이며 조리대를 짚고 일어섰다. 영혼의 몸살로 인해 온몸의 뼈마디가 시려 왔지만, 그녀는 특유의 차갑고 단단한 눈빛으로 레온하르트를 똑바로 응시했다. 지금이 바로 그의 오만을 꺾어놓을 기회였다.
“보셨습니까, 대가주님.”
르네의 낮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빵집의 고요를 깨트렸다.
“이것이 귀관이 그토록 의심하고 경계하던 ‘마약’입니까? 아니면 어린아이의 찢어지는 영혼을 구해낸 ‘자애의 의술’입니까?”
레온하르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귀 가문이 자랑하는 그 예리하고 냉혹한 ‘사자의 눈꽃’으로 직접 판별해 보시지요. 제가 이 아이에게 해를 끼쳤는지, 아니면 당신들이 방치하고 사지로 몰아넣은 아이를 제 영혼을 깎아내며 살려냈는지 말입니다!”
르네의 매서운 팩트 폭행이 사자 가주의 심장을 칼날처럼 꿰뚫었다. 레온하르트는 하얀 장갑을 낀 손을 천천히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제국의 정점에 선 대가주가 고작 인간 제빵사 앞에서 자신의 무지와 오만을 뼈저리게 통감하는 순간이었다. 빵집 안의 공기는 이제 르네의 압도적인 기세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무례했다.”
레온하르트가 마침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전에 없던 미안함과 깊은 경외감이 담겨 있었다.
그는 품 안에서 붉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주머니가 탁자에 닿으며 짤랑거리는 맑고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도 높은 황실 금화가 가득 들어 있는 주머니였다.
“가게를 어지럽힌 것에 대한 보상과... 내 조카를 구해준 빵값이다. 그리고 약속대로 사자 가문은 너의 영업을 공식적으로 비호할 것이며, 그 누구도 이 빵집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하겠다.”
레온하르트는 품으로 파고드는 루루를 조심스레 안아 올리며 르네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태도는 이제 완전한 신뢰와 존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징-.
르네의 시야에 투영된 ‘영혼의 가계부’ 홀로그램 창이 갑자기 붉은빛으로 무섭게 소용돌이치며 깜빡이기 시작했다. 찢어지는 듯한 경고음이 그녀의 귓전을 때렸다.
[!!! 위기 경고 !!!] [안개의 숲 필수 제빵 재료(밀가루, 버터, 설탕) 공급망 전면 차단 감지.] [원인: 제국 상단 연합 대상주 ‘바실리’의 독점 영장 발동 및 상업적 금수 조치 단행.] [재고 보유량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 단 3일.]
붉은 경고등이 르네의 차가운 눈동자에 어지럽게 반사되었다. 이제 막 사자 가문의 비호를 얻어 보금자리를 지켜내나 싶었지만, 영악한 바실리가 아예 빵집의 목줄을 죄기 위해 식자재 공급망을 통째로 끊어버린 것이었다.
르네의 손끝이 다시 한 번 떨려왔다. 빵을 구울 재료가 없으면, 이곳은 더 이상 빵집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 그녀의 유일한 보금자리가 다시금 거대한 폭풍우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