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쿵-.

육중한 도검의 칼끝이 나무 탁자 한가운데에 깊숙이 내리꽂혔다. 단단한 참나무 상판이 비명을 지르며 갈라졌고, 고소한 버터 향으로 가득했던 빵집의 공기가 단숨에 얼어붙었다.

칼자루를 쥔 레온하르트의 하얀 가죽 장갑 위로 팽팽하게 힘줄이 돋아났다. 그의 거대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 마력의 파동이 빵집 내부의 은은한 조명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안개 숲의 찬 바람보다 더 살벌한 냉기가 그의 심연 같은 눈동자에서 일렁였다.

“말해라, 인간.”

낮게 깔리는 목소리는 맹수의 으르렁거림과 닮아 있었다.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일개 인간 여자가 제국의 경계선이자 금단의 구역인 안개 숲속에 이런 수상한 가게를 차린 것도 모자라, 내 조카를 품에 끼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가문의 정예들조차 추적하지 못하도록 마력을 차단하는 기사단의 문양 칩까지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군.”

레온하르트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모서리가 처참하게 깨진 금빛 금속 칩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그의 구두 앞코에 닿아 있는 그 칩은 사자 가문의 엄격한 후계자 호위 계획 속에서 유실되었던 극비의 물건이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자가 이 깊은 외딴곳에서 아기 수인을 유괴하고, 정체불명의 마약 성분이 든 빵으로 미혹하여 붙잡아 둔 것이 아니라면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생각이지?”

그의 음성은 한 치의 자비도 없는 심판관의 선고와 같았다. 칼날을 타고 흐르는 미세한 진동이 탁자 위의 유리병들을 잘게 흔들었다. 당장이라도 목덜미를 물어뜯을 듯한 서슬 퍼런 기세였다.

하지만 르네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오히려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흐트러지려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과거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당하고 차가운 길바닥으로 내몰렸던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또 의심인가.’

인간이든 수인이든, 힘을 가진 자들은 언제나 약한 자를 먼저 의심하고 짓밟으려 든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식어 내렸지만, 르네는 눈동자를 피하지 않았다. 여기서 기가 죽어 눈물을 흘리거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구걸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을 그녀는 뼈저린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감정을 배제하고,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이성으로 무장해야만 이 포식자의 아가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바로 그때였다.

“으우우우-!”

르네의 새하얀 레이스 앞치마 뒤쪽에서 자그마하고 몽글몽글한 형체가 불쑥 튀어나왔다.

노란 개나리꽃을 닮은 부드러운 금빛 털을 잔뜩 곤두세운 루루였다. 아기 사자는 제 몸집보다 수십 배는 더 큰 삼촌을 향해 통통한 앞발을 내딛더니, 정수리로 레온하르트의 단단한 가죽 장화 앞다리를 쿵 밀어냈다.

팍!

자그마한 이마가 장화에 부딪히는 소리는 앙증맞기 그지없었으나, 루루의 기세만큼은 진짜 사자 못지않게 사나웠다.

“삼촌 바보! 저리 가아! 르네 괴롭히지 마!”

루루는 귀를 양옆으로 바짝 눕힌 채, 르네의 엉덩이 뒤쪽으로 다시 쏙 숨어 들어가 가르릉거렸다. 아기 사자의 핑크빛 발바닥 젤리가 바닥을 바쁘게 짚으며 르네의 다리를 더욱 단단히 감싸 안았다. 루루는 르네의 치맛자락을 꼬물거리는 앞발로 꼭 쥔 채, 삼촌을 향해 날카롭고 앙증맞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갸릉갸릉 짖어댔다.

그것은 명백한 거부이자, 르네를 지키겠다는 아기 맹수만의 확고한 의사표시였다.

“……루루?”

순간, 빵집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레온하르트의 살기 어린 마력이 툭, 끊기듯 멈춰 섰다.

제국을 호령하는 사자 가문의 위엄 넘치는 가주이자, 전장을 피로 물들이던 냉혹한 지휘관의 얼굴에 난생처음 보는 기묘한 균열이 일어났다. 황금빛 안광을 뿜어내던 그의 두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자신이 목숨보다 아끼는 조카가, 가문의 호위 무사들 앞에서도 늘 얼어붙어 있던 그 가여운 아이가, 처음 보는 인간 여자 뒤에 숨어 자신에게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정성스럽고 결연한 태도로 말이다.

“너, 지금 삼촌에게 이빨을 드러낸 것이냐? 그 미천한 인간을 지키겠다고?”

레온하르트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들이켜며 뒤로 반 걸음 물러섰다. 빵집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의 최정예 기사들조차 창문 너머로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투구 속에서 마른침을 삼켰다. 천하의 레온하르트 가주가 고작 세 살배기 조카의 들이받기 한 번에 완전히 얼이 빠져 버린 것이다.

르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차가운 숨을 내쉬었다. 가슴속을 짓누르던 긴장감이 가시고, 미세한 통쾌함이 입꼬리 끝에 걸릴 뻔한 것을 억지로 내리눌렀다.

“보시다시피, 대가주님.”

르네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맑고 차분했다.

“납치범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 삼촌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는 아기 수인은 세상에 없습니다. 루루는 그저 자신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품을 지키고 싶을 뿐입니다.”

레온하르트는 미간을 험악하게 찌푸렸다. 조카의 돌발 행동에 당황한 기색을 숨기기 위해, 그는 서둘러 품속에서 반짝이는 은빛 물건을 꺼내 탁자 위에 거칠게 내던졌다.

챙강-!

맑은 금속성 마찰음과 함께 굴러간 것은 정교하게 세공된 ‘은색 미세 마력 측정기’였다. 푸른 마석이 박힌 그 장치는 빵집 내부의 공기와 탁자 표면을 쓸어내리듯 차가운 은색 빛을 깜빡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말장난은 거기까지 해라. 내 눈은 속여도 이 가문의 정밀 측정기는 속이지 못한다. 이 가게에 존재하는 모든 식기와 오븐, 그리고 네가 구워낸 모든 빵의 성분을 샅샅이 검사하겠다.”

레온하르트가 하얀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꽂혀 있던 도검의 손잡이를 가볍게 두드렸다.

“만약 이 은색 측정기에서 단 한 방울의 마약 추출 공정이나, 위생 기준에 미달하는 유해 물질, 혹은 아기의 정신을 흐리는 음험한 주술 마력의 잔재가 검출된다면…… 가문법에 의거해 즉시 이 자리에서 네 목을 베고 이 가게를 잿더미로 만들 것이다.”

그의 경고는 빈말이 아니었다. 수인 가문들의 결벽증적인 위생관념과 인간에 대한 깊은 경계심은 제국 전역에 악명이 높았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면 법보다 주먹이 먼저 움직이는 것이 그들의 생리였다.

하지만 르네의 눈앞에 나타난 시스템 창은 전혀 다른 수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 ! 알림: 영혼의 가계부 - 실시간 재고 및 유통 분석 ] - 현재 매장 내 위생도: 99.8% (황실 제과점 기준 초과 달성) - 주 원료: 남부 평원 산 1등급 밀가루, 서부 초지 방목 유기농 버터, 안개꽃 꿀. - 유해 물질 및 마약 성분 검출 확률: 0.00% - 현재 재고 현황: 밀가루 3포대, 버터 2상자, 설탕 1포대. (공급망 차단 위험도: 높음)

르네는 머릿속에 떠오른 명확한 가계부의 수치들을 확인하자마자, 가슴속을 채우고 있던 일말의 불안감마저 완전히 털어냈다. 그녀는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탁자 위의 은색 측정기를 똑바로 응시했다.

“마음대로 검사하십시오. 제 빵집의 위생과 재료는 그 어떤 황실 전용 주방보다 깨끗하니까요.”

“오만하군, 인간 여자.”

“오만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르네는 조리대 옆에 가지런히 정리된 회계 장부를 툭툭 치며, 거침없는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제 빵집에 들어오는 모든 식자재는 제국 통상법 제12조에 의거하여 정식 유통 경로를 거친 것들뿐입니다. 남부 평원에서 생산된 1등급 밀가루가 매달 세 포대, 서부의 유기농 버터가 두 상자, 그리고 안개 숲 초입에서 채집한 순수 안개꽃 꿀이 세 단지. 이 모든 식자재 유입 상황은 제 장부에 소수점 단위까지 투명하게 기입되어 있습니다.”

레온하르트의 눈썹이 꿈틀했다. 단순한 빵집 주인의 입에서 제국 통상법과 정확한 유통 수치가 흘러나오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듯했다.

“안개의 숲은 짙은 안개로 인해 일반적인 운송이 극도로 제한되는 사각지대입니다. 하지만 저는 합법적인 통행증을 가진 보급선을 통해서만 재료를 조달받고 있으며, 그 어떤 불법 마석 가루나 밀수품도 이 가게의 문턱을 넘은 적이 없습니다. 대가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마약 추출 공정’ 이라는 허무맹랑한 억측은, 수인 제국의 무역 협정 수칙을 스스로 부정하는 처사입니다.”

르네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벼려진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그녀는 단순히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수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상업적 등가 계약의 법칙’과 ‘법적 테두리’를 들어 역공을 펼치고 있었다.

거대한 체구의 사자 가주가 일개 인간 여자의 논리정연한 반박에 순간적으로 대꾸할 말을 잃고 침묵했다. 은색 미세 마력 측정기는 여전히 티 없이 맑고 투명한 은빛만을 깜빡이고 있었다. 유해 성분도, 음험한 저주 마력도 전혀 없다는 완벽한 무죄의 증명이었다.

르네는 침묵을 지키는 레온하르트를 응시하며, 조용히 조리대 아래쪽의 작은 나무 서랍으로 손을 뻗었다.

달그락-.

서랍이 열리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르네의 가냘픈 손가락이 서랍 속 깊은 곳에 보관해 두었던 물건을 꺼내 올렸다.

탁-.

르네가 탁자 위에 내려놓은 것은, 루루가 이전에 떨어뜨렸던 기사단 문양 칩의 깨진 조각들과 정확히 맞물리는 ‘나머지 절반의 금빛 문양 칩’이었다.

황금빛 사자 발톱의 형상이 완벽하게 합쳐지며, 탁자 위에 기묘한 광채를 뿜어냈다.

“진짜 유괴범이라면 가문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 기사단 문양 칩을 진즉에 파괴하거나 깊은 늪에 던져 버렸겠지요.”

르네는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레온하르트의 황금빛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하지만 저는 이 칩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이 아이를 애타게 찾고 있을 진짜 가족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자, 이제 누가 진짜 무뢰한인지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대가주님?”

정적 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사납게 충돌했다.

정적 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사납게 충돌했다.

레온하르트의 거대한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였다. 새하얀 가죽 장갑이 스치며 미세한 마찰음이 일었다. 그는 탁자 위에 놓인 두 조각의 금빛 칩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두 파편이 그의 손바닥 위에서 완벽하게 맞물리는 순간, 웅장하고 따스한 호박색 마력이 파도처럼 일렁이며 칩 전체로 퍼져 나갔다. 사자 가문의 고유한 마력 반응이었다.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자가 아니라면 결코 이끌어낼 수 없는, 위조 불가능한 진품의 증명이었다.

“……정말로, 네가 보관하고 있었군.”

레온하르트의 목소리에서 서슬 퍼런 살기가 한풀 꺾였다. 밤하늘을 가르던 차가운 칼바람 같던 음색에 기묘한 고뇌와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그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루루는 여전히 르네의 치맛자락을 꼬물거리는 앞발로 꼭 쥔 채, 솜사탕처럼 보들보들한 금빛 털을 잔뜩 세우고 있었다. 아기 사자의 동그랗고 촉촉한 눈망울에는 삼촌을 향한 원망과 르네를 지키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가득했다.

“르네는 나쁜 사람 아니야! 나한테 매일매일 맛있는 빵도 주구, 아픈 것도 낫게 해줬단 말이야! 삼촌 미워, 저리 가!”

앙증맞은 웅얼거림이었지만, 그 안에는 르네를 향한 깊고 따스한 우호감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루루는 르네의 맨살에 제 말랑말랑한 핑크빛 발바닥 젤리를 꾹 밀어붙이며 위로하듯 비벼댔다. 솜털 같은 꼬리가 불안하게 살랑이는 모습을 보며, 르네는 저도 모르게 아이의 작은 등에 손을 올려 부드럽고 따스한 온기를 나누어 주었다.

그 다정한 교감을 지켜보는 레온하르트의 눈동자가 다시금 흔들렸다.

가문에서 그 어떤 고위 치유사도, 황실의 명망 높은 마법사도 해결하지 못했던 루루의 마력 폭주였다. 그 어둠의 폭주 속에서 고통받던 아이의 마력이, 지금은 마치 봄날의 잔잔한 시냇물처럼 평온하게 흐르고 있었다. 이 조그만 인간 여자가 구운 우유 식빵 하나가 그 기적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의 이성은 여전히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칩을 온전히 보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하지만 그것이 네가 이 아이에게 가한 ‘마력 지배’의 무죄를 완벽히 증명하진 않는다.”

레온하르트가 천천히 오른손의 가죽 장갑을 벗어 내렸다.

가죽이 벗겨진 그의 손등과 넓은 손바닥이 드러나자, 르네는 가볍게 숨을 들이켰다. 그의 거칠고 단단한 손등 위로, 마치 용암이 흐르는 것처럼 붉고 뜨거운 마력의 핏줄들이 기괴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수인 가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대가주만이 짊어지는 저주, 극심한 마력 과부하의 흔적이었다.

“이 가게의 식기와 재료가 깨끗하다는 것은 이 은색 측정기가 증명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단 하나다.”

레온하르트가 한 걸음 다가섰다. 그의 거대한 체구가 만들어내는 짙은 그림자가 빵집 내부의 아늑한 불빛을 완전히 가려 버렸다. 서늘한 숲의 내음과 묵직한 마력의 압박감이 르네의 피부를 미세하게 자극했다.

“네가 만든 빵에, 정말로 아무런 해가 없으며 폭주하는 마력을 안정시키는 ‘기적의 힘’이 깃들어 있는지 내 몸으로 직접 확인하겠다.”

그가 붉은 핏줄이 요동치는 단단한 손을 조리대 위에 얹었다.

“지금 내 눈앞에서 그 빵을 다시 만들어라. 그리고 그 빵으로 내 폭주하는 마력 역시 다스려 보아라. 만약 조금이라도 기만이나 독성, 혹은 부작용이 발견된다면…… 그 즉시 이 가게를 폐쇄하고 네 영혼까지 가문의 영지에 귀속시키겠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르네의 귓가에 맑고 청아한 시스템 음이 울려 퍼졌다.

[띵동! ‘영혼의 가계부’가 새로운 거래 대상을 감지했습니다.] [대상: 레온하르트 반 라이온하트] [심리적 허기 수치: 94% (완전한 고독, 후계자를 잃을 뻔한 극도의 공포와 죄책감)] [맞춤형 힐링 레시피: ‘포근한 모닥불 단호박 수프와 허브 버터 브레드’] [※ 등가교환 대가: 레시피를 해금하려면 르네의 과거 기억 중 ‘가장 추웠던 겨울날, 아무의 온기도 받지 못하고 홀로 앓아누웠던 밤의 기억’을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 경고: 조리 후 극심한 감정적 탈진과 마력 소모가 발생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또다시 소중한 기억의 한 조각을 잃어야만 한다. 한국에서 고아로 자라며 지독한 독감에 걸려 차가운 단칸방 바닥에서 신음하던, 그 서럽고 외롭던 밤의 기억.

비록 아프고 슬픈 기억일지라도, 그것은 르네라는 존재를 이루는 삶의 파편들이었다. 그것을 깎아내어 빵을 구워야 한다는 사실은 언제나 그녀의 영혼을 갉아먹는 고통을 동반했다.

하지만 르네는 떨리는 손가락을 꽉 맞잡으며 슬픔을 억눌렀다.

인간불신과 방어기제가 그녀의 이성을 차갑게 깨웠다. 이것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다. 제국 최고의 거물인 사자 대가주를 아군으로 포섭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가장 거대하고 확실한 비즈니스 기회였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레온하르트의 타오르는 황금빛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좋습니다, 대가주님. 거래를 제안하죠.”

“거래라고?”

“네. 제가 구운 빵과 수프가 당신의 폭주하는 마력을 완전히 진정시킨다면, 대가주님께서는 제게 단순한 무죄 방면이 아닌, 이 안개 숲에서의 ‘합법적인 영구 영업권’과 ‘사자 가문의 공식적인 비호’를 약속해 주십시오. 계약서에 가문의 문장을 찍어 주시는 조건입니다.”

레온하르트의 눈썹이 높게 치켜올라갔다. 가문의 검날 끝바람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의 생존권과 이익을 계산하는 인간 여자의 대담함에, 그는 깊은 경탄과 기묘한 흥미를 느꼈다.

“당돌한 인간이군. 만약 실패한다면?”

“그때는 제 목숨을 거두셔도 좋습니다.”

르네는 마음속으로 단호하게 시스템 창의 [수락] 버튼을 눌렀다.

콰르릉-.

머릿속에서 소중한 기억의 한 페이지가 거칠게 찢겨 나가는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다. 눈앞이 순간적으로 아득해졌고,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영혼이 통째로 깎여 나가는 듯한 탈진감이 그녀의 전신을 덮쳤다.

하지만 그녀는 비틀거리는 몸을 억지로 지탱하며 밀가루 포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달콤하고 노란 단호박의 향과 고소한 버터의 풍미가 오감을 자극하며 빵집 안을 채우기 시작할 때였다.

화아아악-!

갑자기 레온하르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마력의 불꽃이 빵집의 천장까지 치솟았다. 그의 거대한 몸이 크게 흔들리며, 고통스러운 신음이 그의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 위기 경고: 대상의 마력 폭주가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 10분. 시간 내에 치유 푸드를 완성하지 못하면, 폭주하는 마력의 여파로 빵집 전체가 소멸합니다!]

타오르는 붉은 불꽃 속에서 레온하르트의 이성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르네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과연 그녀는 남은 시간 동안 영혼을 깎아 만든 빵으로 이 괴물을 구하고, 자신의 마지막 보금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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