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온 것은 흐드러진 장미보다도 짙은 선혈이었다.

황실 온실의 유리 천장을 투과한 푸른 달빛이 대리석 바닥 위에 고인 붉은 얼룩을 차갑게 비추었다. 가슴을 옥죄는 난도질 같은 통증에 엘리시아는 제 가슴팍의 레이스를 움켜쥐었다. 손가락 새로 가늘게 떨리는 비단 자락이 짓겨졌다. 허파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뜨거운 열증은 목구멍을 타고 끊임없이 번져 나갔다.

“유진…… 앗, 안 돼요. 누군가 보면 어쩌려고…….”

유리 벽 너머, 만개한 백장미 덩굴 사이로 간드러진 신음이 들려왔다. 은밀하게 얽혀드는 두 개의 그림자. 하나는 제국의 태양이라 불리는 황태자 유진 알베르트였고, 다른 하나는 엘리시아가 유일하게 자매처럼 여겼던 이자벨라 빌리에였다.

유진의 넓은 어깨가 이자벨라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의 황금빛 제복 단추가 달빛을 받아 사납게 번뜩였다. 이자벨라의 살구색 실크 드레스는 이미 어깨 아래로 허물어져 있었다. 가식적인 순결함 뒤에 감춰진 탐욕스러운 살결이 유진의 거친 손길 아래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알면서도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건 너잖아, 이자벨라.”

유진의 목소리는 낮고 매혹적이었으나, 엘리시아에게는 심장을 후벼 파는 비수와 같았다.

“엘리시아 그 숨 막히는 여자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 내 곁에 서서 오만한 눈빛으로 훈수나 두는 인형 따위, 애초에 내 취향이 아니었어. 시한부의 몸으로 황태자비 자리를 탐내다니, 가당치도 않지.”

“하지만 엘리시아 님은 전하를 무척 사랑하시는걸요…… 불쌍해라.”

동정 어린 어조와 달리, 이자벨라의 가느다란 입꼬리는 비틀려 올라가 있었다. 그녀는 유진의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슬쩍 시선을 돌렸다. 장미 넝쿨 너머, 피를 토하며 쓰러져 가는 엘리시아와 정확히 눈이 마주쳤다.

경멸과 승리감으로 가득 찬 눈동자. 이자벨라는 조용히 입술을 달싹였다.

‘가여운 엘리시아. 이제 비참하게 사라질 시간이야.’

가슴이 찢겨 나가는 듯한 배신감이 전신을 난도질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울렸고,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폐부에서부터 다시 한번 뜨거운 덩어리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툭, 투두둑.

은실로 정교하게 장식된 구두 앞코 위로 붉은 피가 가차 없이 흩뿌려졌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뺨이 닿았다. 이대로 숨이 끊어지는 것인가. 억울함과 허망함이 온몸의 감각을 마비시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윙-!

고막을 찢을 듯한 이명이 울리며, 엘리시아의 흐릿해진 시야 정중앙으로 거대한 황금빛 빛무리가 끼어들었다.

【 환영합니다, 가입자 엘리시아 로렌. 】 【 영혼의 회계 장부, ‘극락의 장부(極樂之帳簿)’가 개막합니다. 】

공중에 떠오른 것은 제국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기묘하고도 탐미적인 형태의 황금빛 장부였다. 가죽 표지에는 피를 흘리는 실크 장미가 양각으로 정교하게 정제되어 있었고, 그 주위를 맴도는 활자들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기괴하게 떨리고 있었다.

【 장부 상태: 활성화 】 【 보유 수명: 7일 】 【 현재 상태: 극심한 배신감 및 흉부 파열에 따른 각혈 (고통 수치: 89) 】

글자들이 순식간에 재배열되며 새로운 문장을 완성해 냈다.

【 고통 및 각혈 데이터를 감지했습니다. 】 【 ‘극락 포인트’로 강제 환전을 시작합니다. 】 【 환전율: 고통 수치 1당 10포인트 】 【 +890 극락 포인트 획득! 】 【 시스템 메시지: 포인트를 즉시 소모하여 생명력을 충전하거나 현실적 자원으로 교환하지 않을 시, 장부는 ‘적자 상태’로 전환됩니다. 적자 전환 시 온몸의 뼈가 바스러지는 환각과 소멸의 형벌이 따릅니다. 】

동시에 차갑게어 얼어붙어 가던 엘리시아의 심장박동이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은 단순한 온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뇌수를 마비시킬 정도로 짜릿하고 치명적인 은총, 지독할 정도의 쾌락이었다. 각혈로 인해 허물어졌던 기도가 순식간에 열리고, 온몸의 세포가 살아 움직이는 감각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전신을 채우는 이 압도적인 도파민의 향연에 엘리시아는 떨리는 숨을 들이켰다. 고통이 깊어질수록, 피를 더 많이 흘릴수록 자신이 강해진다는 이 모순적인 법칙.

슬퍼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저들의 배신은 나를 파멸시키는 독약이 아니라, 나를 영생으로 이끄는 가장 화려한 제물일 뿐이었다.

“어머, 엘리시아 님……!”

장미 넝쿨을 헤치고 나온 이자벨라가 가증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녀의 하얗게 질린 얼굴 위로 당혹감이 스쳤다. 유진 역시 옷가지를 대충 추스르며 차가운 눈빛으로 다가왔다.

“엘리시아? 네가 왜 이곳에…….”

유진의 미간이 사납게 찌푸려졌다. 밀회를 들켰다는 당혹감보다, 감히 황태자인 자신의 사생활에 흙탕물을 끼얹은 약혼녀에 대한 불쾌감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추태로군. 기어이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상태로 이곳까지 미행을 온 건가? 로렌 공작가의 영애가 이토록 품위가 없어서야 원.”

유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온실의 공기를 얼려 버렸다. 평소의 엘리시아였다면 그의 모진 말 한마디에 눈물을 흘리며 결백을 주장했을 것이다. 그의 사랑을 갈구하며, 비참하게 바닥을 기어서라도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대리석 바닥에 쓰러진 엘리시아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것은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후훗…… 아하하.”

나직하게 시작된 웃음소리가 이내 온실 안을 가득 메웠다. 맑고 청아하면서도, 어딘가 깊이 망가진 듯한 퇴폐적인 웃음이었다.

엘리시아는 바닥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실크 드레스 자락이 피로 얼룩져 붉은 장미 무늬처럼 번져 나갔지만, 그녀의 움직임에서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모습은 왕좌에서 내려오는 타락한 여왕처럼 오만하고 자태가 고고했다.

그녀는 하얀 손가락 끝으로 입가에 묻은 피를 슬쩍 훔쳐냈다. 붉은 루비 같은 선혈이 그녀의 투명한 피부 대비를 이루며 기괴할 정도로 아름다운 형상을 만들어 냈다.

“웃어……? 미친 건가?”

유진이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드러내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눈동자에 난생처음 보는 낯선 공포가 스쳤다. 언제나 제 발밑에서 순종적으로 굴던 여자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시아는 손가락 끝에 묻은 피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유진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 구슬 같은 눈동자가 아닌, 심연을 담은 듯 깊고 어두운 눈빛이었다.

“추태라니요, 전하.”

엘리시아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입술 사이에 낀 붉은 핏방울이 그녀의 미소를 한층 더 고혹적으로 만들었다.

“제 눈에는 두 분의 몸짓이 참으로 고결해 보였습니다만. 황실의 온실에서 기르는 들개들이 엉겨 붙어 있는 모습만큼이나…… 아주 천박하고, 흥미로웠지요.”

“이, 엘리시아 님! 어찌 그런 심한 말씀을……!”

이자벨라가 눈물을 글썽이며 유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엘리시아는 기가 막히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시끄럽다, 이자벨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이 실려 있었다.

“어디서 감히 공작가의 가신 주제에 내 이름을 입에 올리는 거지? 네가 황태자의 품에 안겨 있다고 해서 네 비천한 신분이 세탁되기라도 할 줄 알았더냐?”

“너……!”

유진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물들었다. 그는 허리에 찬 예검의 자루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반역에 가까운 언사다, 엘리시아! 내 비록 로렌 공작가의 체면을 보아 네 무례를 눈감아 주려 했으나, 오늘의 방자함은 용서할 수 없다. 황실 시위대를 불러 네년을 지하 감옥에 처넣을 수도 있음을 잊었느냐!”

그 순간, 엘리시아의 눈앞에 다시 한번 황금빛 문장들이 명멸했다.

【 유진 알베르트의 강렬한 분노 및 살의 감지! 】 【 감정 수급원 ‘유진 알베르트’의 감정 밀도: 상(上) 】 【 +500 극락 포인트 획득! 】

‘아.’

엘리시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저 오만한 남자가 내지르는 화가, 내게는 고스란히 생명줄이 되는구나. 이 얼마나 완벽하고 이기적인 장부인가. 유진이 저렇게 날뛰면 날띌수록, 나는 더 화려하게 살아 숨 쉴 수 있었다.

그녀는 유진의 분노를 비웃듯,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넣으세요.”

“무어라?”

“지하 감옥이든, 황실 단두대든 어디든 처넣어 보시라고 했습니다, 전하.”

엘리시아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기억하셔야 할 겁니다. 로렌 공작가가 제국 재정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을요. 시한부인 제가 감옥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 나간다면, 제 아버님이 황실에 제공하던 군자금을 그대로 유지하실까요? 아니면…… 전하의 목을 향해 칼날을 겨누실까요?”

유진의 턱관절이 거칠게 맞물려 우드득 소리를 냈다. 그녀의 말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사실이었기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것이다. 제국 황실은 겉만 화려할 뿐, 동부의 마수 토벌과 황실의 사치로 인해 이미 로렌 공작가의 재정에 종속되어 있었다.

“너는…… 더 이상 내가 알던 엘리시아가 아니군.”

유진의 목소리에 깊은 불신과 경계가 서렸다.

그때였다. 온실의 무거운 아치형 유리문이 거칠게 열리며, 요란한 갑주 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황실 기사단 소속의 기사 다섯 명이 검을 뽑아 든 채 온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의 시선이 피로 얼룩진 바닥과 세 사람의 기묘한 대치 구도에 닿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슨 일이냐?”

유진이 위엄을 가장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기사 중 한 명이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로렌 공작가에서 보낸 호위가 황실 금령 구역을 무단으로 침범하려 하여 제지하던 중이었습니다! 허나 그 자의 무력이 예사롭지 않아…….”

“비키십시오, 기사 양반들. 우리 영애님이 계신 곳인데 시끄럽게 굴기는.”

기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사들의 등 뒤로 나른하면서도 묵직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짙은 감청색 코트를 걸친 사내가 가볍게 검자루를 툭툭 치며 기사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 나왔다. 로렌 공작가의 가신이자, 엘리시아의 유일한 충신인 세바스티안이었다. 그는 단정하게 빗어 넘긴 은발 사이로 특유의 쾌활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세바스티안……!”

유진이 이가 갈리는 듯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공작가의 개가 황궁의 안뜰까지 제집 안방처럼 드나드는구나. 무엄하게도 황실 기사단에게 검을 겨누다니, 반역으로 다스려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세바스티안은 기가 막히다는 듯 가볍게 한숨을 쉬며, 가슴에 손을 얹고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러나 그의 눈빛만큼은 칼날처럼 차갑게 살아 있었다.

“반역이라니요, 황태자 전하.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저는 그저…… 몸이 약하신 저희 영애님께서 밤이슬을 맞고 쓰러지시지는 않았을까 걱정되어 마중을 나온 것뿐입니다만.”

세바스티안의 시선이 엘리시아의 얼룩진 드레스와 입가의 피에 닿았다. 그의 눈동자가 찰나의 순간 가늘어졌으나, 이내 평정을 되찾고 엘리시아의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영애님, 밤공기가 무척 차갑습니다. 가문의 주치의가 기다리고 있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시지요. 천박한 잡것들의 소음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천박한 잡것들’이라는 대목에서 유진의 얼굴이 다시 한번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세바스티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엘리시아의 어깨 위에 자신이 입고 있던 무거운 감청색 코트를 조심스럽게 얹어 주었다. 코트에서 풍기는 은은한 침향나무 향이 엘리시아의 코끝을 스쳤다.

“그래, 돌아가자. 세바스티안.”

엘리시아는 유진과 이자벨라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뒤를 돌았다.

“오늘의 구경거리는 아주 만족스러웠어. 다음번에는 더 화려한 무대에서 뵙지요, 전하.”

그녀의 오만한 뒷모습이 온실의 안개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유진은 감히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그의 손끝이 알 수 없는 굴욕감과 전율로 가득 차 잘게 떨리고 있었다.

* * *

로렌 공작저의 별채.

화려한 물랭루주풍의 인테리어로 꾸며진 엘리시아의 침실은 온통 붉은 벨벳과 황금빛 자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푹신한 카우치에 기대어 앉아, 세바스티안이 내온 따뜻한 홍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얼그레이의 쌉싸름한 향이 입안에 남은 피비린내를 지워 주었다.

“영애님.”

세바스티안이 찻주전자를 내려놓으며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황태자의 배신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만…… 오늘 영애님의 태도는 평소와 많이 다르셨습니다. 마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엘리시아는 말없이 잔을 흔들었다. 찻물 표면 위로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창백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생기가 도는 눈동자.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졌으니까.”

그녀는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세바스티안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그녀의 눈앞에는 여전히 거대한 황금빛 장부가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 현재 보유 극락 포인트: 1,390 】 【 경고: 장부의 일일 결산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잔여 포인트의 현실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시, ‘적자 패널티’가 즉시 적용됩니다. 】 【 적자 패널티 대기 중: 전신 골절 환각 및 영혼의 궤멸 】

가슴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기묘한 열증이 느껴졌다. 장부의 경고는 거짓이 아니었다. 포인트가 차오른 만큼, 그것을 빠르게 소모하여 육체의 생명력으로 치환하거나 안정시키지 않으면 온몸의 뼈가 바스러지는 고통을 겪게 될 터였다.

그리고 배운 바에 따르면, 이 장부의 포인트를 온전히 결산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매개체’가 필요했다.

‘제국 최북단, 검은 눈이 내리는 카이엔령의 지배자.’

칼릭스 카이엔 대공. 마기에 잠식되어 평생을 저주받은 냉기 속에서 살아가는 그 사내의 체온만이, 엘리시아의 장부 적자를 메우고 열증을 삭여줄 유일한 열쇠였다.

“세바스티안.”

“예, 영애님.”

“북부의 칼릭스 대공이 현재 황도에 머물고 있다고 했지?”

세바스티안의 이성적인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그렇습니다만…… 대공은 황실의 연회조차 참가를 거부하고 사저에 은거 중인 냉혹한 자입니다. 그에게 접근하는 것은 극도로 위험합니다.”

“위험할수록 도파민이 도는 법이지.”

엘리시아가 잔인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카우치에서 일어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우우웅-!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별채의 두꺼운 참나무 문이 거대한 충격파를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앗……!”

세바스티안이 본능적으로 엘리시아의 앞을 가로막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부서진 문틈 사이로, 한여름의 열기를 단숨에 얼려 버릴 듯한 혹한의 냉기가 폭포수처럼 밀려 들어왔다. 그 냉기 속에는 검은 연기처럼 일렁이는 불길한 마기가 섞여 있었다.

어둠을 뚫고 걸어 나오는 거대한 실루엣.

서리 낀 검은 머리칼 아래로, 맹수처럼 번뜩이는 푸른 눈동자가 엘리시아를 정조준하고 있었다. 혹한의 지배자, 칼릭스 카이엔 대공이 그곳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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