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를 쥔 당신의 손끝이 파르르 떨립니다. 가문의 가법(家法)은 엄혹합니다. '결계가 처진 동안 밖에서 들리는 혈육의 목소리는 필시 거짓이다.' 당신은 귀를 틀어막고 가슴속으로 가언(家言)을 되뇝니다.
순간, 문밖에서 애끓게 울부짖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기괴하게 일그러집니다. "어... 어버... 억!" 쇠긁는 소리와 물이 끓어넘치는 듯한 거품 소리가 뒤섞인 괴성이 철제 방화문을 사정없이 할혓습니다. 시멘트 벽면을 타고 찌르르한 진동이 심장까지 전해집니다. 이내 칠흑 같은 복도 저편으로 짐승의 비명 같은 소리가 멀어지며, 웅웅거리던 이명이 씻은 듯이 사라집니다. 결계가 마침내 온전히 작동한 것입니다.
방 안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현대식 아파트의 든든한 이중창도 소용없다는 듯, 폐부 깊숙이 시린 한기가 들이닥칩니다. 입을 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옵니다. 귀신이 물러간 자리에 남은 것은 혹독한 생체적 대가입니다. 문틀을 따라 붉은 실에 적셔진 당신의 피가 검붉게 굳어가는 동안, 손목의 상처에서는 여전히 미동 없는 고통이 번집니다. 너무 많은 혈액을 쏟아낸 탓에 귀밑샘 근처의 맥박이 통제 불능으로 요동칩니다. 시선이 핑글 돌며 거실 천장이 빙빙 돌기 시작합니다.
그때, 바닥에 떨어져 있던 스마트폰이 진동하며 요란하게 울립니다. 화면에는 동네 파출소에서 교대 근무를 서는 고향 친구, 진수의 이름이 떠 있습니다. 겨우 통화 버튼을 누르자 수화기 너머로 지극히 현실적이고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야, 너 살아 있냐? 지금 구청에서 너희 동네 일대에 원인 불명 가스 누출이라고 대피령 준비 중이거든? 내가 볼 땐 가스고 뭐고 음기가 들이찬 것 같은데……. 너 설마 또 가문 법도랍시고 네 피 뽑아다 바닥에 칠한 거 아니지? 적당히 해라, 인마. 귀신 잡기 전에 빈혈로 먼저 요단강 건너겠다."
"잡소리 말아라……."
당신은 갈라진 목소리로 간신히 대꾸합니다. 진수의 핀잔이 가물아가는 정신을 아주 잠깐 지탱해 주었지만, 이내 스마트폰을 쥔 손귀의 힘이 스르륵 풀려버립니다. 액정 화면이 바닥으로 툭 떨어집니다.
눈앞이 깜깜해지며 사지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집니다. 이대로 수수방관하며 쓰러진다면, 결계는 유지될지언정 당신의 생명력 자체가 바닥나 숨을 거둘 것입니다. 하지만 가슴속 주머니에는 아직 쓰지 않은 마지막 가문의 비책이 들어 있고, 머릿속에는 아직 대피하지 못한 채 도심 속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남은 가족의 얼굴이 스쳐 지나갑니다. 당신은 혼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차가운 바닥을 짚으며 결단의 순간을 맞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