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의 낮게 웅웅거리는 진동 소리마저 뚝 끊기자, 집 안은 이내 기괴할 정도의 침묵에 잠깁니다. 식탁 위에 놓인 유리컵의 물이 중심부터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합니다. 얼어붙는 듯한 한기가 발목을 타고 올라와 목덜미의 솜털을 바짝 세웁니다. 쿵, 쿵, 당신의 심장박동이 귓가에서 가파르게 요동칩니다.
현관문 문틀을 따라 팽팽하게 가로지른 홍실(붉은 실). 청주와 굵은 소금으로 정화해 묶은 가문의 결계가 미세하게 파르르 떨립니다. 아파트 복도의 센서등이 꺼진 뒤, 차가운 디지털 도어락의 붉은 LED 불빛만이 어둠 속에서 마른 핏자국처럼 깜빡입니다.
그때,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짧게 진동합니다. 옆 동네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며 괴현상에 대처 중인 외삼촌의 톡입니다. [삼촌: 야, 거긴 아직 조용하냐? 이 동네는 정전되고 난리다. 혹시라도 밖에서 배달왔다고 배달원 목소리 흉내 내면 바로 112 말고 가문 비책부터 펴라. 요즘 귀신들 트렌드가 아주 영악해.]
피식 나오는 실소를 가둘 여유도 없었습니다. 둔탁하고 축축한 무언가가 현관 철문에 묵직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입니다.
스르륵, 스르르륵. 축축한 가죽이 철판을 긁으며 미끄러져 내리는 듯한 소리. 이어서 문틈 너머에서 무겁고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아들…… 거기 있냐……? 문 좀…… 문 좀 열어다오……."
당신의 온몸이 순간 돌처럼 굳어버립니다. 아버님입니다. 평생을 담배 피우며 살아서 유독 가래가 끓는 듯한 그 특유의 쉰 목소리. 조금이라도 당황하면 나오는 급한 기침 소리까지 똑같습니다.
"밖에서…… 길을 잃었다. 어떤 놈들이 쫓아와서…… 내 다리를…… 윽! 아프다, 아들아. 문 좀 열어다오!"
철문 아래의 좁은 틈새로 붉고 진득한 액체가 울컥 흘러들어와 홍실의 매듭 끝을 적십니다. 피비린내와 함께 갯벌의 썩은 내 같은 비린내가 코를 찔러옵니다. 가슴이 미어질 듯한 아버님의 울음소리가 철문을 흔듭니다. 당장이라도 걸쇠를 풀고 뛰어나가고 싶은 충동이 머릿속을 지배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손끝은 도어락 손잡이 앞에서 멈칫할 수밖에 없습니다. 머릿속에서 대대로 내려온 가문의 금기 구절이 비명처럼 울렸기 때문입니다.
'홍실로 삼문을 닫은 밤, 결계 밖에서 들려오는 혈육의 비명과 애원은 결코 진짜가 아니다. 그것은 가죽을 뒤집어쓴 삿된 것이 흘리는 미끼니라.'
귀를 찢는 듯한 아버님의 비명이 다시 한번 복도를 울립니다. 홍실이 한계까지 팽팽해지며 핑, 하고 날카로운 금속음을 냅니다. 저 목소리는 정말로 가짜일까요? 만에 하나, 진짜로 아버님이 피를 흘리며 문밖에 가로누워 있는 것이라면?
당신의 손가락이 도어락의 수동 개폐 장치 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거칠게 춤을 춥니다. 선택을 내려야 할 시간이 단 몇 초밖에 남지 않았습니다.